제 5 강 요나
1. 저자와 저작 연대
본 서의 저자는 선지자 요나이다.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로 왕하13:25에 잠깐 나타나는 요나라는 인물과 동일인으로 생각된다. 요나는 갈릴리의 스불론 지역에 위치한 가드헤벨에서 태어났다. 열왕기하의 기록에 의하면 요나는 여로보암 2세의 성공적인 정복 사업에 관해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이 책이 에스라, 느헤미야의 베타주의를 반대하기 위해서 주전 430년에 하나의 비유로 쓰여진 책이라고 한다. 즉 편협한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보편주의를 도입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도록 몰아내고 아내로 맞아들였던 이방 여인과 이혼하려는 유대인들의 그릇된 행위에 대항하기 위해 무명의 한 저자가 요나서를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들은 이 책이 3인칭으로 씌었으며 또한 실제로 요나가 썼다는 기록도 없다고 밝힌다. 그러나 이러한 배타주의는 요나가 활동하던 시기에도 이스라엘에 만연되어 있었다. 그리고 2장의 기도가 1인칭 단수로 서술되어 있는 것을 보아 요나 자신이 이 책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 서의 저작 연대는 본문 자체에서 측정할 수 없으나 요나가 느니웨에서 돌아온 즉시 기록했을 것이므로 주전 760년경으로 추정된다.
2. 시대적 배경
아밋대의 아들 요나는 기원전 8세기 살았다. 그는 나사렛에서 북쪽으로 약 5마일 떨어진 스불론 지역 갓-헤펠(Gath-Hepher)에서 태어났다. 왕하14:25에 따르면 그는 여로보암 2세(B.C. 793-753)가 재위한 때에 예언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사역 초기에 이스라엘의 승리와 원래 국경까지의 회복을 예언하였다. 따라서 그의 인기가 매우 높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백성들에게 여로보암 2세 치하에서 유례 없는 번영의 시기를 누리게 하였다(왕하14:24). 당시 백성들은 여러 해 동안 침체된 분위기가 걷히고 민족적 사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은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완전한 위치에 섰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지 못했고 오히려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멸시했다.
한편 호세아, 아모스 등은 이방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을 예언하였다(호9:3 ; 암6:14).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기 위해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셨다. 이 시기에 앗수르는 그 세력이 약화되었고 나약한 왕들이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쇠퇴한 듯하였으나 그래도 이스라엘에게는 위협적 존재였다. 니느웨의 회개는 아마도 아슈르단 3세(B.C. 773-755)의 통치 기간에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에 걸친 온역과 일식은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을 받아들이는데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3. 문화 형식
요나의 예언은 다른 선지서와 다르다. 그것은 예언적 신탁을 전혀 포함하지 않고 저자에 대해서도 전혀 암시하는 바가 없다. 이 책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 문학적 장르를 규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문학적 장르에 대한 많은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비유 효과를 지닌 역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비유의 목적은 현명한 삶을 위해 그것이 제시하는 시각에 있기 때문에 비유가 반드시 비역사적일 필요는 없다.
본문의 비유를 살펴보면 첫째, 그 선지자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그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된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한다. 둘째, 하나님은 자유롭게 피조물을 통치하며 이방인들을 그들의 환난에서 구출하는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그의 위대함과 자유를 보지 못할 수 있다. 위대한 왕 여호와는 열방을 축복하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에 대해 참으시는 것에 자유한다. 그는 심지어 동물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다. 셋째, 요나는 엘리야를 부정적으로 모방했다. 엘리야처럼 그도 사명을 띠고 파송되었고 그의 사명이 실패한 것으로 보이자 그도 역시 스스로 죽기를 구한다. 그러나 엘리야와 달리 요나는 낙담할 이유가 없었다. 여기서 요나는 아무도 그 역할을 변호하고자 하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등장한다.
본 서는 요나의 어리석음에 주의를 돌리게 하고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들에게 현명한 반응을 촉구하는 예언적 잠언이다.
4. 해석의 방법들
1) 전설적 해석 방법
실제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전설적인 인물에 근거해서 지어낸 이야기라는 주장이다.
2) 비유적 해석 방법
요나서의 특징은 포로기 이후 에스라, 느헤미야의 배타적인 유대적의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니느웨 성은 하나님의 복음에 의한 각성을 기다리는 비유대적 세계를 나타낸다. 이 비유는 죄를 회개할 사람에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묘사하고 있다.
3) 풍유적 해석 방법
요나는 하나님의 진리를 이방에 선포하는 이스라엘의 선교적 사명과 동일시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론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포로로 끌어갔다. 이것이 요나를 삼켰던 큰 물고기가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낸 것이 바벨론 포로로부터 이스라엘이 귀환할 것을 상징한다. 이방인들의 회개에 대한 요나의 불만은 귀환 후의 배타적 유대주의 정신의 발로가 된다.
4) 역사적 해석 방법
실제 인물인 요나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일들을 직접 체험했으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열방이 복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방에 전달하려는 이스라엘의 선교적 임무를 부분적으로 달성했다는 것이다.
5. 내용
본 서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비와 인자로써 다루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열방에 대한 사명이 강조되었고 이스라엘의 완고한 편협성이 배격되어 있다. 하나님은 히브리 민족을 통하여 온 세계에 축복을 주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하셨다(창12:3). 출애굽기의 말씀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제사장의 나라로서 다른 나라 백성들을 섬겨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편협한 민족주의적 사상은 요나의 특별한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교정된다. 따라서 본 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통치와 구원의 계획은 범우주적이며 그의 사랑은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1. 저자와 그 신상배경
요나라는 이름은 '비둘기'를 뜻한다. 스불론 지파에서 태어난 가드헤벨은 현재 마사드마울 자리이며 나사렛 북쪽 리베리아로 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다(수19:13).
제롬이라는 신학자는 그가 엘리야 선지자가 살려낸 사렙다 과부의 아들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왕상17:17-24). 그가 활동하던 여로보암 2세 통치 기간에는 엘리사, 호세아, 아모스와 같은 선지자들도 활동 했었다. 요나가 청년기 때에는 엘리사와, 노년기 때에는 호세아, 아모스와 함께 활도했을 것이다. 그가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명령을 하나님께로부터 들었던 시기는 노년기로 추정된다.
그외에 그의 생애나 신상에 대한 것은 알려진 것이 없다.
2. 등장하는 도시들
1) 다시스(Tarshish)
구약성경에 여러번 등장하는 해안항구 도시다. 그러나 그 위치는 분명치 않다. 팔레스틴에서 먼 곳 지중해 서편 끝 어디쯤이다. B.C. 7-6세기경 그리스인들은 서반아의 '탈테서스'라는 해상무역 도시와 교역을 했는데 그렇다면 현재 남지브랄탈 근처의 탈테서스 항구로 볼 수도 있다. 풍부한 금속류가 생산되는 곳으로 그 옛날 페니키아 상인들이 개발한 곳이다(겔27:12). 다시스의 배는 먼 곳으로 향해하는 큰 상선대를 가리킨다(시48:7 ; 사2:16). 주로 페니키아 상인들이 소유한 것으로 솔로몬 시대 때 주로 희랍을 구리 제련소에서 물품을 나르는데 쓰였던 배이다(왕상9:26).
2) 욥바(Joppa)
오늘날 쟈파(Jaffa)라고 불리는 예루살렘 서북 50km쯤 떨어진 지중 해안의 항구 도시다.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 항구와 접해 있다. 작은 배가 드나드는 간이 항구 도시로서 신약에 '피장이 시몬'의 집이 있는 곳이요,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도르기를 살린 곳이기도 하다(행9, 10장). 현재는 이스라엘의 유명한 '샤론의 귤'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기지로 쓰이고 있다.
3) 니느웨(Nineveh)
앗수르 제국의 최후의 수도였다. 창10:9에 이하면 니므롯이 세운 성이며, 함무라비 법전에 기록된 고대 도시다. 그 성의 둘레는 4km나 되고 12km의 내성을 쌓은 형태로 되어 있다, 고 전해진다. 또 50km의 수도관까지 있다고 한다.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과의 전쟁의 참패로 앗수르 제국이 멸망할 때 니느웨 성도 훼파되었다.
3. 역사적 사실에 관한 문제들
요나서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나 우화나 전설을 포함한 허구로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과 증거들이 본 서의 역사성을 증언해 준다.
1) 요나의 실존
요나라는 인물 자체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그는 왕하14:25의 요나 선지자와 동일 인물이다. 본 서에 기록된 그 부친의 이름이 '아밋대'로 같다.
2) 요나의 경험의 사실성
큰 물고기 안에서 3일간 있었던 일, 하루만에 자라는 박넝쿨과 금새 시드는 예 등이 우화적인 이야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유대교의 문헌인 '토빗서'(Tobit), 또 아카비서에는 요나의 경험을 역사적인 사실로 인증하셨음이 중요하다(마12:39, 40 ; 마16:4 ; 눅11:29-32).
또 요나서의 내용 중 역사적 사건, 지리적 형편이 사실과 부합된다. 요나의 활동 시기였던 B.C. 700년경 니느웨 성이 큰성이 아니었다고 했는데 역사적으로 니느웨 왕 산헤립(B.C. 722-705)이 다스리던 때에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에서 가장 큰 성이요, 서울로 불리웠었다.
3) 본 서의 저작자 문제
진보주의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본 서가 요나가 기록한 것이 아니요, 훗날 B.C. 200년 쯤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된다면 모순이 있다. 즉 요나 자신 외에 경험을 그처럼 자세하고 생생하게 기록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물고기 뱃 속에서의 기도문과 같은 내용은 기록자 자신 외에 상상하여 지어낼 성질의 것이 될 수 없다.
4. 본 서의 가치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초기 기독교회는 본 서를 상징적인 알레고리로 해석했었다. 요나는 참이스라엘로, 니느웨는 이방인들로, 바다는 세계의 정치 권세로, 선원들은 이웃 나라로, 폭풍우는 중동 지역의 전란으로 우화화한 것이다. 그러나 본 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온 인류의 구속자로 보내시는 하나님의 큰 구속의지와 섭리가 계시되었다. 요나는 세례 요한보다 일찍 주님의 복음 은혜를 전한 선지자다. 구약에서 가장 고상한 복음의 선교문이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얻는 자들은 이스라엘인들이든 이방인들이든 영원한 용서를 베푸신다는 복음 진리가 본 서의 핵심이요,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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