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압의 항의/ 삼하 19:1-10
1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4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압살롬의 죽음으로 1차 왕자의 난이 진압되었으나 다윗은 도리어 슬픔에 잠겼고, 반란군을 진압한 요압 장군은 다윗 왕에게 강력하게 항의합니다.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슬픔(1-4) 다윗은 빼앗길 뻔 했던 왕권을 되찾았지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자신에게 반역의 칼을 겨누었지만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합니다. 이는 승리를 이끌어낸 진압군들에게도 슬픔이 되어 마치 전쟁에 패하여 부끄러워 도망하듯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이 진압 선봉에 섰던 요압 장군에게 전해집니다.

요압의 항의(5-7) 요압은 아들의 죽음만을 비통해 하는 다윗 왕에게 강력히 항의합니다. 그리고 반란군 진압으로 왕과 그 전 가족의 생명이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주지시킵니다. 다윗의 슬픔은 목숨 걸고 싸워 승리한 모든 군사들에게 오히려 수치를 안겨 주었다고 지적하며 무책임한 처사라고 몰아세우고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 왕이 계속해서 자기의 슬픈 감정에만 휘말려 있다면, 오늘 밤 한 사람도 왕을 따르지 않을 것이며 젊었을 때 당한 화보다 더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강도 높게 경고합니다. 요압의 이러한 행동은 다윗 왕으로 하여금 주체할 수 없는 슬픈 감정을 정리하게 했고 개인의 감정보다 더 중요한 왕의 직무를 수행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뜻보다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셨던 것’처럼 자신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여받은 사명이 더욱 귀하며 우선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성문에 앉아 백성을 만나는 다윗(8-10) 다윗 왕은 슬픔을 딛고 성문에 앉아 왕으로서의 직무를 시작합니다. 비로소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 왕에게로 돌아왔고, 반란에 가담했던 이스라엘은 각기 장막으로 돌아갔다고 표현합니다. 요압의 항의가 비록 거칠고 무정한 점은 있었으나 다윗 왕으로 하여금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왕의 직무를 수행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 왕의 복권 문제를 놓고 변론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며 다윗 왕의 복권을 주장하는 참신한 무리들과, 압살롬이 죽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다윗 왕의 복권을 주장하는 현실주의자들, 이미 대세가 기운 것을 알고 재빨리 다윗을 추종하는 기회주의자들 사이에 갈등을 보여줍니다. 한번 붕괴되었던 왕권의 복권과정에서 여러 계층이 형성되었고, 각 지파 간 새로운 갈등의 징후를 드러냅니다.

묵상도우미

성문에 앉으매(8)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매매, 행정, 집회, 재판이 행해지는 곳으로(룻 4:1-2; 삼상 9:18) 다윗 왕이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왕의 집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의미함.

개인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직무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애야, 골고루 잘해라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을 둔 부모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한 과목만 제외하고는 전부 ‘가’였습니다. 그 나머지 한 과목의 성적은 ‘양’이었습니다. 그 부모는 아들을 이렇게 칭찬했다고 합니다. “얘야, 한 과목에만 너무 치중하지 말고 골고루 잘하도록해라” 모든 부모는 자기의 자녀가 공부를 잘해서 1등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1등은 한명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1등을 할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가 바르고 멋지게 될 수는 있습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에게 1등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바르고 멋지게 자라기를 바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