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다윗… 사랑과 인내로 무장한 ‘신앙의 전사’

은바리라이프 2009. 2. 12. 18:51

다윗… 사랑과 인내로 무장한 ‘신앙의 전사’  

다윗은 이새의 막내 아들로 베들레헴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소년의 몸으로 그 가정의 전 재산이 될 만한 큰 양떼를 관리하는 목동이었다. 다윗은 건장한 사람이었고 기운도 세며 침착하고 기지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것은 양을 치다가 사자와 곰을 만났지만 그들을 쳐죽이고 양과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사자같이 잔인하고 민첩한 동물과 싸워 이긴 것을 보면 다윗은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그것도 소년시절에 경험한 사건이니 말이다. 다윗은 소년이었지만 생각이나 마음가짐은 어른스러웠다.

이것은 그 가정과 가족들의 신앙심에서 물려받은 감화였을 것이다. 다윗의 어머니를 하나님의 여종으로 표현한 것을 보아서도 그 어머니의 신앙을 짐작할 수 있다(시 86:16,116:16). 이와 같이 이새의 가정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두번째 왕으로 선택받을 만한 영적인 분위기가 갖추어져 있는 가정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기가 갖고 태어난 자질 위에 가정에서 받은 종교적인 감화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데 촉진제가 되었다. 한 평화로운 농촌의 가정이었지만 신앙으로 잘 다듬어지고 영적으로 잘 자리잡힌 가정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준 실례이다. 한 가정이 소유하고 있는 경건성은 한 가정이나 가족에 한하지 않는다. 여기서 다윗이라는 큰 인물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다윗의 복은 그 개인이나 가정으로 끝나지 않고 그 시대와 한 나라의 국운을 좌우할 수 있었다.

한 믿음 좋은 집사가 사회생활 가운데 나름대로 실수하지 않고 살았던 이유 두 가지를 간증하는 것을 들었다. 그 첫째는 자기를 믿음 좋은 집사로 직장에서 모든 사람이 인정했기 때문에 실수할 수 없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두 남매가 대학 재학 중이었는데 자기가 만일 죄를 지으면 두 남매도 어디선가 자기와 똑같은 죄를 지을 것 같아 실수하지 않았다고 간증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작은 경계심만 가져도 자기의 사생활을 훨씬 더 훌륭하게 가꿔나갈 수 있다. 다윗의 마음에 어려서부터 자리잡은 영적인 감화는 그를 소중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였다.

다윗이 어린 소년으로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달려가서 골리앗의 칼을 빼앗아 그 머리를 쳐서 가져온 사건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다윗의 승리를 모든 주석가나 목회자들은 한결같이 신앙의 승리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힘이나 전술이나 전투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골리앗은 칼과 창과 단창을 의지해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한 다윗의 신앙적 고백이 두 사람의 싸움을 결판지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전체 군대가 패전을 예상하여 낙담했었고 특수한 체격과 뛰어난 전술과 능력을 지닌 골리앗을 아무도 당할 수 없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그와 맞서 싸울 것을 지원했던 다윗의 그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것은 사람의 담력이 아닌 순전한 신앙의 용기였다.

다윗의 이러한 영적인 담력과 전술이 물맷돌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응답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불가능도 가능케 하고 없는 가운데 있는 것같이 부르기도 하고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믿음의 효력이다.

참으로 다루기 힘들고 너무 큰 시련으로 느껴지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가. 기도로 풀어가고 믿음으로 해결하기 바란다. 수학 문제를 풀 때 더해서 안되면 빼고 빼서 안되면 곱하고 곱해서 안되면 나누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모든 수학을 풀 수 있는 공식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더 믿고 더 의지하고 더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모든 문제를 신앙으로 해결해나가자.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고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는 군중의 환호에 자극을 받고 다윗을 미워하기 시작한 사울은 결국 다윗을 죽이려고 결심하게 된다. 그 뒤로 다윗은 아홉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거치는 등 큰 시련을 겪게 된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 가드왕에게 보호를 요청할 때는 몸을 대문에 그적거리고 침을 흘리며 미치광이 짓을 하기까지 하였다(삼상 21:13). 또 들과 산과 황무지의 굴을 전전하면서 겪은 피난 생활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엔게디의 굴에서 사울의 옷자락만 베고 살려준 일이나 사울의 전에서 그의 막사에 들어갔다가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오고 사울의 목숨을 살려준 일들은 성경을 읽을 때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다윗은 이렇게 13년 이상의 시련기를 거쳐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 어려움을 잘 참은 것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방법이었다. 조급한 마음으로 자신이 왕위를 앞당기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전해주는 신앙의 태도이다. 사람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원수를 용서하는 것만큼 어렵다. 하나님이 기름 부은 사람에 대해 결코 자기가 해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그를 용서했던 것을 보면 다윗은 참으로 위대한 사랑의 소유자였다.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브라함이 믿음에 대한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다윗은 사랑에 대한 대표적인 인물이 될 만큼 높이 평가받을 만한다. 우리들도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게 맡기라”(롬 12:19)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윗과 같이 지키는 사람이 되자. 또한 절대 서두르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자. 하나님이 세우시는 때를 기다려야 하겠다.

다윗이 10년 이상 겪은 이 고난은 외적인 고생보다 자기와의 싸움이 더 힘든 부분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끝까지 성공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자기가 예상할 수 없었던 영적인 소득을 얻게 되었다. 큰 고난을 겪을 때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넓어지고 더 겸손해지며 결코 남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게 된다. 이 고난의 기간에 다윗은 성군이 될 수 있는 영적인 자질을 구비했는지도 모른다. 시련을 잘 거치는 사람이 되자.

사람은 항상 약하고 부족한 자신에 대해서 경계심을 늦추면 안 된다. 자기가 자기를 잘 지켜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윗이 왕위에 올라 나라가 번영하고 국토를 확장하며 그 영광이 더해갈 때 다윗은 실수하게 된다. 이는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전선에서 죽게 하는 이중적인 큰 죄를 범한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더 무서운 것은 마귀가 틈을 타서 하나님의 백성을 쓰러뜨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항상 대적하고 깨어 있어야 하겠다. 그러나 다윗에게 있어 너무 소중한 또 다른 장점이 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권고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태도였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비유를 통해 권고할 때 다윗은 즉시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내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 철저한 신앙의 사람도 범죄할 수 있다. 기도를 많이 해도 죄의 유혹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다. 큰 시련을 겪었어도 온전해진 것이 아니다. 날마다 경건한 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죄를 물리치는 승리의 비결이다. 또 다윗과 같이 실수하거든 지체하지 말고 회개해야 한다. 회개를 지연하는 것은 마귀의 지배를 연장하는 것과 같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한번도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과 같이 깨끗이 용서하신다. 철저히 회개하고 회개한 후에는 사죄의 확신을 갖자. 과거의 죄에 얽매이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겠다.



<다윗을 통해 얻는 교훈>

다윗은 10년이 넘도록 기다려야 했던 시련의 기간이 있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이렇게 오랜 기간 기다리게 하셨다. 그것도 지속되는 고난으로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연단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연스럽게 거쳐야 할 과정과 같이 잘 참는 데 성공한 사람이다. 다윗은 이 큰 시련을 통해 성군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것 같다. 인생의 과정을 잘 수용하는 사람이 되자.

사람은 실수하거나 넘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의 영적 성향이 더 중요하다. 다윗도 칠계를 범하고 살인을 계획할 만큼 큰 죄를 범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사람이었다.시편에는 측은할 만큼 뜨겁고 간절한 다윗의 회개기도가 나타나 있다. 다윗은 바로 자신을 회복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실수할 때마다 자신을 바로 일으키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이병돈 목사(서울 은평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