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C.S.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6

은바리라이프 2008. 11. 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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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웜우드에게,

    네 환자의 나이와 직업이 군복무에 소집될 가능성이, 확실치는 않지만, 어느 정도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매우 반갑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가 최대한으로 불화실한 상태에 처하게 되어 그의 마음이 희망과 공포

를 야기시키는 서로 상반되는 미래상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우리의 원수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으로서 공포와 불안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  우리

의 원수는 인간들이 현재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에 열중하기를 원하지만, 우리의 임무는 인간들로 하여금

항상 그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이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너의 환자는,  보나마나, 자기가 인내로써 원수의 뜻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될 것이다.  우리

의 원수가 이로써 의미하는 바는 다름 아니라 너의 환자가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실제로 제시된 역경, 즉 현

재의 불안과 공포를 인내로써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너의 임무는 네 환자가 현재의 공포를 절대로 그에게 맡겨진 십자가로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유으할 것

이며, 동시에 그로 하여금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로 하여금 공

포의 대상들을 그의 십자가들로 간주하도록 만들고, 그러한 것들은 서로 상반되므로 그들이 모두 그에게 일

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가 망각하도록 만들고, 또한 그로 하여금 그 모든 것에 대하여 미리 인내와 불굴

을 실행하려고 노력하도록 만들어라.

    왜냐하면, 어느 한 동일 순간에, 여남은 개의 서로 다른 가정적 운명에 대한 진정한 체념이란 거의 불가능

하기 때문이며, 뿐만 아니라 우리의 원수는 그것을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을 그다지 크게 도와 주지 안

기 때문이다 ㅡ 현재의 실제 고통에 대한 체념은, 비록 그 고통이 공포를 수반하고 있다 하더라도, 훨씬 더

손쉬운 것이며, 또한 대개의 경우 이같은 직접적인 행동에 의하여 도움을 받는다.

 

    여기에서 중대한 영적 법칙이 개입된다.  네가 너의 환자의 주의를 원수 자신으로부터 원수에 대한 그 자

신의 심적 상태로 전환시킴으로써 그의 기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너에게 설명한 바 있다.

    반면에, 환자의 마음이 두려움의 대상으로부터 두려움 그 자체로 돌려지면, 두려움은 현재의 바람직하지

못한 그 자신의 심적 상태로 간주되어 그것을 극복하기가 훨씬 쉬워지며, 또한 그가 두려움을 자기에게 주

어진 십자가로 간주하면 그는 그 두려움을 불가피한 일종의 심적 상태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일반 법칙을 형성할 수 있다.  즉, 우리의 명분에 유리한 모든 심적 활동에 있

어서는, 환자로 하여금 자의식을 버리고 두려움의 대상에 집중하도록 부추겨주어야 하며, 반면에 우리 원

수에게 유리한 모든 활동에 있어서는 환자의 마음이 두려움 자체로 되돌아가도록 부추겨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모욕이나 혹은 여인의 육체가 그의 주의를 철저히 외부로 집중되도록 하여, 그가 '나는 지금 분노라고 불

리우는, 혹은 육욕이라고 불리우는 심적 상태로 돌입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숙고하는 일이 없도록 유도하라.

    그와 반대로, '나의 감정은 지금 점점 더 종교적으로 열렬해지고 있다, 혹은 더욱더 자비로워지고 있는

중이다' 라는 생각이 그의 주의를 철저히 내부로 집중하도록 하여, 그가 자기 자신을 벗어나 우리의 원수라

든가, 혹은 그의 이웃들을 더 이상 도저히 볼 수 없도록 유도하라.

 

    전쟁에 관한 그의 좀더 일반적인 태도에 대하여 한마디 하자면, 너는그리스도교나 혹은 반그리스도교 정

기 간행물에서 인간들이 논의하기를 몹시도 즐겨하는 증오의 뭇 감정들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된다.

    네 환자는, 격분한 나머지, 네가 부추겨주기만 하면, 독일군 지도자들에 대한 원한의 감정으로 자기 자신

이 복수를 하겠노라고 나설 수도 있을 것이며, 거기까지는 그런 대로 괜찮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러

한 감정은 상상의 적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신파적이거나 가공적인 증오심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실생활에서 그러한 사람들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ㅡ 그들은 그가 신문에서 얻어들은 지식을 바

탕으로 하여 만들어낸 조작된 인물들이다.  그와 같은 공상적 증오심이란 대개의 경우 지극히 실망스러운

것이며, 모든 인간들 중에서도 특히 영국인들이 이 점에 있어서 가장 애도할 만한 졸장부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적에게는 고문도 너무 약과라고 커다란 소리로 선포하고는, 그러다가 부상당한 독일군

비행사가 자기 집 뒷문에 나타나기가 무섭게 그에게 차와 담배를 대접하는 딱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이다.

 

    너의 환자의 영혼 속에는 사악한 면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박애심도 있을 터이니, 네가 알아서 적절히

처리하도록 하여라.  일을 훌륭하게 하려면, 사악한 면은 그가 매일 만나는 그의 가까운 이웃들에게 향해지

도록 하고, 그의 자애로운 면은 아주 멀고 먼 곳에 있는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쏟아주도록 유도

하라.

    그리하여 악의는 완전히 실재적인 것이 되고 선의는 주로 상상적인 것이 되도록 만들어라.  독일인에 대

한 그의 증오심을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만약 이와 동시에, 그와 그의 어머니, 그의 고용인, 그리고 그가 기

차에서 만나는 사람 사이에서 사랑의 유해한 습관이 동시에 점점 증가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전혀 아무

런 득도 되지 않는다.

    네가 맡은 인간을 일련의 동심원으로 생각하라.  즉, 그의 의지가 가장 핵심을 이루는 원이고, 그 다음이

지력이고, 그의 공상이 가장 외부를 이루는 원으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너는 원수의 냄새가 풍기는 동심원들을 한꺼번에 모조리 제거하기를 기대해서는 안되지만, 그러나 그가

지닌 모든 미덕들이 마침내는 공상의 동심원에 위치할 때까지 너는 그것들을 끊임없이 외부로 밀어 내어야

만 하며, 동시에 모든 바람직한 요소들은 의지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내부로 밀어 넣어야만 한다.

    미덕이란 의지에 도달하여 거기에서 하나의 습관으로 구현되어야만 비로소 우리에게 진정으로 치명적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지금 너의 환자가 의지로 오해하는 의식적인 분노나 발작적인 결심, 혹은 불끈 악

문 이빨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핵심, 즉, 우리의 원수가 소위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뜻한다.)

    공상으로 채색되거나, 지성에 의하여 공인되거나, 혹은 어느 면에서 사랑받고 찬양받는 온갖 종류의 미

덕이 어느 한 인간을 우리 아버지의 집에 가까이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미덕을 지

닌 인간이 일단 우리 아버지의 집에 오게 될 때 그는 우리에게 보다 더 흥미로운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너의 다정한 삼촌

                                                                                                                                     스크루테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