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C.S.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5

은바리라이프 2008. 11. 1. 04:13

                                                                     

                                                                    5

       

       

                                                                                                                              사랑하는 웜우드에게,

          너의 임무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기대하고 있다가 지난번 네 편지와 같은 흐리멍덩한 잡소리나 적은 편

      지를 받고 보니 다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인들이 또다시 전쟁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너 자신은 "기

      쁨에 들떠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 수 있다.

          너는 들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취해 있을 뿐이다.  네 환자의 잠 못 이루는 밤에 대하여 적은 너의 매

      우 두서없는 설명을 음미해보면 나는 내 나름대로 너의 정신상태를 퍽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악마로서의 너의 직업에서 너는 최초로 우리 모두의 수고의 보상인 포도주를 맛보았는데, 다시 말하면,

      한 인간의 영혼의 고뇌와 당혹을 맛보았는데, 그 맛이 너의 머리 속까지 침투한 것이다.

          나로서는 너를 책망할 수가 없다.  젊은 어깨 위에 노련한 머리가 올라앉아 있기를 기대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너의 환자는 네가 보여준 미래의 공포상에 반응을 보이더냐?  행복했던 과거를, 그의 가슴 깊숙히

      간직한 감미로운 전율을 그가 철저한 연민의 눈초리로 바라보도록 힘썼느냐?  넌 바이올린을 퍽 잘 켰었지,

      안 그러냐?  그래, 그래,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웜우드, 쾌락 이전에 의무가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라.  만약 현재 너의 방종으로 인하여 결국

      은 네 먹이를 잃게 된다면, 너는 네가 지금 그토록 즐기고 있는 한모금의 최초의 술맛을 못 잊고 앞으로 영

      원토록 그 술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반면에, 만약 네가 침착하고 냉정하게 행동한다면 너는 지

      금 이 자리에서 그의 영혼을 최종적으로 확보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그는 영원히 너의 것이 될 것이다 ㅡ

      네가 원할 때마다 언제든지 네 입술에 가져갈 수 있는, 절망과 공포와 경악으로 가득 찬 살아 있는 술잔으로

      서 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시적인 흥분으로 인하여 믿음을 손상시키고 미덕의 형성을 방지하는 참된 임무로부터

      너의 정신이 산란해져서는 결코 안된다.  다음번 네 편지에는 유럽전쟁에 대한 네 환자의 반응을 잊지 말고

      자세히 적어보내도록 하여라.  그러면 극단적인 애국자와 열정적인 반전주의자 중에서 어느 것으로 너의

      환자를 만들어놓는 것이 너에게 더 유리할지 우리가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으로서는, 전쟁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네게 경

      고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이란, 물론, 흥미진진한 것이다.  인간들이 겪는 즉각적인 공포와 고통은 땀흘려 일하는 무수한 우리

      일꾼들이 마땅히 즐겨야 할 유쾌한 활력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을 이용하여 인간들의 영혼을 지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리지 못하는 한, 전쟁이 우리에게 과연 무슨 영구한 이득이 되겠느냐?

          일시적인 고통 끝에 마침내 우리의 손에서 벗어나는 인간들을 볼 때마다 나는 마치 풍요한 잔칫상을 앞

      에 놓고 첫 번째 나오는 음식맛만 보고 나머지는 전혀 입에 대보지도 못하게 되었으 때와 같은 기분을 느낀

      다.  그 기분이란 차라리 맛을 전혀 보지 않으니만도 못한 것이다.

          우리의 원수는 자기 특유의 미개한 전법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아끼는 인간들이

      치르는 짧은 고통을 목격하도록 허용하고 있으나, 이는 오로지 우리를 괴롭히고 조바심나게 하려는 술책이

      며, 또한 그의 당당한 방해가 명백한 이 대 전쟁의 현 단계에서 볼 때, 그의 목적은 우리의 끊임없는 굶주림

      을 조롱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유럽전쟁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자.  왜냐하면 이 전쟁에는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결코 이롭

      지 못한 요소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대한 양의 잔학과 부정(不貞)이 있으리라는 것은 기대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이 환란 속에서 수천 명이 우리 원수의 품으로 향하는 것을 목

      격하게 될 것이며, 한편, 그 정도 까지 심하게 멀리 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하튼 수만 명의 인간들이

      자기 자신들이 아니라 자아보다 더욱 고귀하다고 믿는 가치나 명분을 위하여 그들의 심혈을 쏟게 될 것이

      다.  우리의 원수는 이러한 명분의 대다수를 수긍하지 않는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우리의 원수가 그토

      록 불공평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는 비록 그 자신은 악하다고 생각하는 명분이라 할지라도, 인간들 나름대로 선하다고 믿으며 그들이

      아는 바로 최선을 따르면서 그 명분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친 인간들에게 상을 내려주곤 한다.  너는 또

      한 전시에서 얼마나 탐탁지 않은 죽음들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인간들은 자기들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장소에서 죽어가는 것이며, 또한 만약

      그들이 원수의 무리에 속한 자들이라면 그들은 죽은 후에 가게 될 장소도 이미 준비되어 있는 상태에서 죽

      어간다는 점을 생각해보아라.

          만약 모든 인간들이 호사스러운 양로원에서, 죽어가는 자에게 생명을 약속하는 의사들과, 병을 핑계로

      온갖 방종을 부추겨주는 간호원들과, 그리고 우리편 일꾼들이 자기들 임무를 제대로 알고만 있다면, 환자

      에게 그의 진정한 상태를 알려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신부를 모셔 온다는 제안은 언급조차도 철저하게 회피

      하는 친지들 가운데서, 즉, 우리가 훈련시켜 놓은 대로, 거짓말하는 의사들과 거짓말하는 간호원들과 거짓

      말하는 친구들 가운데서 모든 인간들이 죽는다면, 이는 우리에게 그 얼마나 반가운 일이겠느냐!

          그러나 전쟁이 강화시켜주는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회상은 우리들에게 그 얼마나 손해 막심한 일이냐!  

      우리 최상의 무기 중의 하나인 '만족한 속된 자세'가 그만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전시중에는 비록

      인간이라 할지라도 아무도 자신이 영원히 살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스캡트리를 위시한 몇몇 동료들이 전쟁을 통하여 믿음을 공격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찾아내고 있다

      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는 바이다만,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견해는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원

      수는 그이 인간 도당들에게 고통이란 그가 소위 말하는 '구속'(救贖)에서 없어서는 안될 요소라고 명백히

      말해오고 있으므로, 전쟁이나 역병에 의하여 파괴되는 믿음이란 사실상 우리가 파괴할 수고를 들일 만한

      가치도 없는 믿음이다.

          내가 지금 말하는 고통이란 전쟁에서처럼 오랜 기간을 통하여 널리 산포된 고통을 의미한다.  물론, 공

      포나 비애, 혹은 육체적인 고통이 발발하는 바로 그 순간, 즉 네가 맡은 인간의 이성이 일시적으로 마비된

      바로 그 순간에 너는 그를 네 손아귀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순간에조차도 그가 원

      수의 본영에 자신의 영혼을 쏟고 있다면, 나의 경험에 의할 것 같으면, 그러한 자리는 거의 항상 방어가 되

      어 있는 것이다.

       

                                                                                                                                      너의 다정한 삼촌

                                                                                                                                           스크루테이프

 http://lilac3373.com.ne.kr/letter/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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