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C.S.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2

은바리라이프 2008. 11. 1. 04:11

                                                                     2

       

       

                                                                                                                              

          사랑하는 웜우드에게,

          너의 환자가 그리스도교인이 되었다는 네 편지를 지극히 불쾌한 기분으로 읽었다.  이에 따르는 평소의 처벌을 피하게 되리라는 기대는 아예 갖지도 마라.  사실, 네가 올바로 생각해보면, 그러한 처사는 오히려 네 자신이 바라지도 않으리라 믿는다.

          지금으로서는 우리 둘이서 현재 상황을 최대로 이용해야만 한다.  절망할 필요는 없다ㅡ수백 명의 이러한 성인 개종자들은 원수의 진영에서 잠시 체류한 후에 다시금 우리의 손에 넘어왔으며, 그들은 지금 우리와 함께 있다.  너의 환자의 모든 '습관'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직은 우리에게 유리하다.

          지금 우리의 강력한 동맹자들 중의 하나는 교회 그 자체이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마라.  내가 의미하는 교회는 무구한 시간과 공간에 영원토록 뿌리박고 널리 펼쳐 있으며, 깃발을 휘날리는 군대처럼 무시무시한 그러한 교회가 아니다.  내 너에게 고백하건대, 그것은 우리들 중에서 가장 대담한 유혹자들까지도 불안하게 만드는 정경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인간들에게는 그것이 전혀  보이지 않게끔 되어 있다.  너의 환자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새로운 건축지에 반쯤 지어놓은 가짜 고딕 건물이 전부이다.  그리고 그가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동네 식품가게 주인이 알랑거리는 낯빛으로 황망히 다가와서 둘이 다 전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기도예식이 실린 반들반들하게 닳은 작은 책 한 권과, 대부분은 신통치도 않고 게다가 지독히 작은 활자로 적힌 종교적 노래들이 잔뜩 담긴 나달나달하게 헐어빠진 책 한 권을 그에게 건네준다.

          그러고 나서 자리를 잡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그는 자기가 그때 까지 만나기를 꺼려하며 피해왔던 바로 그런 종류의 이웃들을 한무더기 발견하게 될 것이다.  너는 그러한 이웃들에게 무척 많이 의존해야 할 것이다.  너의 환자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과 그의 옆줄에 있는 실제 얼굴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도록 만들어라.  그의 옆줄에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 앉아 있는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 중의 하나가 네가 알기로는 원수의 편에 서 있는 위대한 용사 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없다.  지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덕분으로 너의 환자는 바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그의 주의에 앉은 이들 중에서 누군가가 음정이 틀리게 찬미가를 부른다거나, 덜거덕거리는 장화를 신었다거나, 이중턱을 가졌다거나, 혹은 이상스런 옷을 입고 있다면, 너의 환자는 그들의 종교도 그러므로 어쩐지 우스꽝스러운 종교임에 틀림없으리라고 쉽사리 믿어 버릴  것이다.

          현 단계에서, 그는 머리 속에 '그리스도교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그 자신은 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것은 거의 모두가 그림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의 머리 속은 치렁치렁한 긴 옷과, 샌들과 갑옷, 맨살이 드러난 다리 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교회에 있는 다른사람들이 현대적 의상을 입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도 ㅡ 물론, 무의식적인 것이긴 하지만 ㅡ 그에게는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너는 그것이 결코 표면으로 떠오르게 해서는 안된다ㅡ회중이 어떻게 보이기를 기대했었느냐는 질문을 그가 자기 자신에게 묻도록 내 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지금은 모든 것이 그의 머리 속에서 계속 혼미한 상태로 머물러 있도록 하라.  그러면 너는 지옥이 줄 수 있는 그 특유의 명료함을 그의 내부에 산출하면서 영원토록 즐거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도로서 첫 서너 주일 사이에 너의 환자에게 분명히 찾아올 실망이나 침체된 기분을 너는 한껏 이용해야만 한다.  우리의 원수는 인간 개개인의 노력의 문턱에서 이 실망이 발생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같은 실망은 유아시절에 「 오딧세이에 나오는 이야기들 」에 매료된 어느 소년이 진정으로 희랍어를 배우려고 전력을 다 기울일 때에도 발생하며, 또한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하여 함께 산다는 진정으로 어려운 일을 배우기 시작할 때에도 이와 유사한 실망이 발생한다.

          이 실망은, 인간의 삶의 모든 부서에서, 황홀한 열망으로부터 괴로운 행동으로의 전환을 명확히 구분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원수는 이 위험을 택하는데, 그 이유인즉, 원수는 두 다리 짐승들과 변태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영적세계 전체를 타락시키는 그의 철두철미한 사랑으로 지상의 구역질나는 모든 조무래기 인간 버러지들을 그가 소위 지칭하는 (그 자신이 사용하는 말은 '자녀들'이지만) 그의 '자유로운' 연인이요 하인으로 만들려는 기이한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자유를 갖기를 열망하는 고로, 우리의 원수는 자기가 인간들에게 제시한 여러 목적들 중 그 어느 하나에로도 인간들을 이끌어주지 않으며, '그들 자신의 힘으로 행하도록' 내 버려둔다.  바로 여기에 우리들의 절호의 기회가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우리의 위험이 놓여 있는 곳도 바로 여기이다.  

      일단 이 초기의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인간들은 감정에 훨씬 덜 의존하게 되며, 그러므로 우리가 그들을 유혹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게 된다.

       

          이제까지 나는 네 환자의 옆줄에 앉은 사람들이 네 환자에게 실망을 줄 만한 '이성적'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실망의 여지를 보여주기만 한다면, 즉,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있는 여인이 실은 광적인 트럼프 놀이꾼이라든가, 혹은 덜거덕거리는 장화를 신은 남자가 실은 구두쇠에다가 협잡꾼이라는 사실을 네 환자가 알 게 되기만 한다면, 그렇다면 너의 임무는 그만큼 더 수월해질 것이다.

          그러고 나면, 네가 할 일이란 오로지, "만약 내가, 현재의 내가, 나 자신을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내 옆자리에 앉은 저 사람들이 지닌 여러 비행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종교가 단순한 위선이요, 인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된단 말인가?"라는 질문이 네 환자의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도록 계속 감시하는 일뿐이다.  그토록 당연한 생각이, 비록 인간의 머리이기는 하나, 인간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을 막는다는 일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하여 너는 아마 의혹을 느낄 것이다.

          가능하다, 웜우드, 가능하고 말고!  네가 그를 올바로 다루면 그런 생각은 절대로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우리의 원수를 알 게 된 지 불과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는 아직 진정한 겸손이라는 것이 없다.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에 대하여 읊조리는 말들도 실은 모두 의미 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교로 귀의하기를 허용했다는 사실로 자기는 이미 원수의 원장(元帳)에 자기에게 매우 이로운 신용잔고를 쌓아놓았다고 믿고 있으며, 또한 옆자리에 앉아 '잘난 체하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웃들과 더불어 자기가 교회에 나와줌으로써 자기는 이미 지대한 겸손과 아량을 베풀고 있노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그의 마음이 이같은 상태에서 머물러 있도록 하라.

       

                                                                       

                                                                     너의 다정한 삼촌

                                                                       스크루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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