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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 인터뷰] 감독 이창동이 작가 이창동과 다른 점
은바리라이프
2008. 9. 22. 13:00
[부메랑 인터뷰] 감독 이창동이 작가 이창동과 다른 점
기사입력 2007-05-22 10:16
[이동진닷컴] (이 기사는 '이동진의 영화풍경'의 21일자 '이창동 감독이 파놓은 깊은 우물'에 이어지는 '부메랑 인터뷰-이창동 감독 편'의 후반부 기사입니다.) "예쁘면 뭐합니까. 인간이 되어야죠."('밀양'에서 전도연이 학원 원장의 딸에게 예쁘다고 칭찬하자, 원장이 문제아인 딸에 대해서 퉁명스럽게.) - 배우를 고르실 때의 원칙은 어떤 겁니까. 저런 대사를 쓰시는 분이니, 외모로만 뽑지는 않으실 테지요.(웃음) "제 직감을 믿는 편이예요. 오디션을 하면 직감적으로 이 사람이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올 때가 많죠. 예를 들어서 '박하사탕' 때 문소리씨 같은 경우에는 오디션에서 무려 2000명이 왔어요. 문소리씨는 연기 경력이 별로 없어서 1차 오디션부터 참석했는데, 한 사람 당 주어진 시간이 30초나 될까요. 그런데도 직감적으로 뭔가 느껴졌어요. 그래서 같이 심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의해서 보라고 말했는데 다들 심드렁하더라구요.(웃음)" - '밀양'에선 조-단역들이 다 기가 막히게 사실적인 연기를 하더라구요. 그런 분들만 뽑으신 게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연출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나마 제게 있는 연출력은 캐스팅하는 능력인 것 같아요. 제가 그건 잘해요.(웃음) 송강호씨와 전도연씨는 '밀양' 전에 이미 만들어진 상태였으니 논외이지만, 사실 설경구씨와 문소리씨를 만난 것은 운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밀양'에 나오는 그 많은 조-단역들도 꼭 누가 이 영화에 출연할 수 있도록 예비해 둔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니까요. 캐릭터를 만드는 것도 일종의 창조행위라고 한다면, 생명체를 만드는 것은 계산이 아니라 운명으로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들다 보면 함께 작업하는 구성원들 뿐만 아니라 그 시간과 그 공간까지도 하나의 운명체라는 느낌이 자주 들어요." - 구체적인 종교를 갖고 계시진 않지만, 감독님은 틀림없이 종교적인 인간입니다. "그럴 수 있죠. 시인들의 경우, 어제 술을 안 먹었으면 오늘 이런 시 구절이 안 나왔을 거 아니겠어요? 우리 속에 알게 모르게 종교가 많이 들어 있어요." "대사 좀 크게 해주세요."('오아시스'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 배달 가던 설경구가 우연히 마주친 촬영차에서, 영화 감독이 배우에게 연기를 지시하며.) - 현장에서 구체적인 연기 지시를 내리지 않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배우에게서 어떻게 연기를 뽑아내시나요. "연기를 연출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거죠. 기본적으론 인간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해요. 인간관계만큼 어려운 게 없잖아요. 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내게 오만함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미리 정답을 갖고서 배우를 끌고 가지 않아야 한다는 거죠. 감독이 구체적으로 연기 지시를 하면 배우가 만들 수 있는 것을 한정 지을 위험성이 종종 생깁니다. 현장에선 사실 어디까지 배우에게 틀을 만들어주거나 열어줄 것인지 판단하는 게 어려워요. 늘 헷갈리고 실수하죠." - 다시 찍을 경우, 왜 다시 찍는지 설명하시는 편인가요. "저는 설명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제는 배우들이 그게 설명이 아니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웃음) 객관적인 연기 기준으로는 괜찮은데도 제가 아니라고 말하면 당황하겠죠. 내가 대는 이유가 모호하고 분명치 않으니까. 목소리가 너무 높다든지 포즈가 너무 길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느낌으로 이야기하니 당황스럽겠죠." "나 마지막 돈 탈탈 털어서 이거 하나 구했어. 딱 한 놈만 죽일려구. 나 혼자 죽긴 너무너무 억울해서, 내 인생 요렇게 망쳐놓은 놈들 중에서 딱 한 놈. 근데 딱 한 놈 고르려니까 그게 좆나게 어려운 거야. 내 인생 조져놓은 놈들이 너무 많아서 그 한 놈을 못 고르겠더라구"('박하사탕'에서 인생의 막다른 벽에 부딪친 설경구가 총을 산 뒤 신세를 한탄하며.) - 감독님 영화 속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은 아무래도 '박하사탕'의 영호와 '밀양'의 신애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호가 권총을 사고도 한 명을 골라서 쏘지 못한 것은 쏠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 자기의 인생을 망친 게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자각이 들어서일 거라고 느꼈습니다. 즉 영호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인물이지요. 그런데 '밀양'의 신애는 그저 당하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고통스런 상태에서 더 고통스런 상태로 자꾸 빠져들어가는 인물이니까요. 이 두 인물 중 누가 더 비극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묻고 보니 꼭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불에 타 죽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낫냐고 질문하는 것 같긴 하네요. (웃음) "저는 일단 관객이 '박하사탕'을 볼 때 영화에서 제시한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틀을 전제로 하고 인물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박하사탕'을 관통하는 인물의 욕망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욕망이죠. 그건 사실 이뤄질 수 없는 무모한 욕망이잖아요. 그리고 '밀양'에서 신과 맞서려는 신애의 욕망도, 어쩌면 신과 자신을 같은 위치에 두려는 욕망도 무모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 모두 무모하죠. 그런데 둘 중에 누가 더 비극성이 강한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웃음) 믿지 않으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인물에 대한 연민을 현장에서 체험해요. 극중 주인공이 경험하는 아픔을 현장에서 저도 느끼거든요. 그러면서도 현장을 조율하고 있는 나 자신이 무척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요. '박하사탕' 때도 그런 고통을 느꼈고 이번에도 느꼈어요. 그러나 시차가 있어서 어느 영화가 더 고통스러웠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도 현장에서 속으로 웁니다. -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인물에 몰입되어 우시는 것은 아니죠?(웃음) "그럼요. 현장에서 배우를 통해 육화되어 나올 때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 거죠." - '소설가 이창동'과 '영화감독 이창동'이 바로 그런 점에서 다른 건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몰라."('초록 물고기'에서 가족 소풍 도중 술 마시며 아내를 때린 뒤 일어나 노래하는 한석규의 둘째 형.) - '초록 물고기'에서 온 가족이 모처럼 함께 간 소풍은 결국 악다구니와 난장판으로 끝을 맺습니다. 감독님은 가족 제도에 대해서 매우 비관적 견해를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감독님 영화에선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좋은 날엔 꼭 사고가 나거든요.(웃음) '초록 물고기' 뿐만 아니라 '오아시스'에도 온 가족이 모인 어머니 환갑 잔칫날 가족의 갈등이 가장 극에 달하게 되죠. '박하사탕'에선 가족 뿐 아니라 직장 동료까지 초청한 집들이 장면에서 부부가 최악의 상태에 놓이구요. '밀양'에선 온 가족이 함께 등장하는 유일한 장면이 바로 장례식 장면입니다. 온통 슬픔에 젖는 그 장면에서조차 시어머니는 며느리 신애에게 악을 씁니다. "비관이라기보다도, 저는 기본적으로 그게 우리 현실의 반영이라고 생각해요. 가족이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분명한 생각이 제게 없습니다. 가족 제도가 유효한지도 잘 모르겠고,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자행되는 것도 참 많지요. 전 그런 현실을 반영할 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가족이라는 단어도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거예요. 우린 가족과 가정을 다르게 쓰고 있는데 가족이란 말에는 핏줄 개념이 강하게 담겨 있죠. 우리가 사용하는 가족이란 말 자체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속에 다른 많은 것이 담겨 있을 테지요. 제겐 그런 현실을 정직하게 반영하고 묘사하려는 생각이 더 앞서 있을 뿐입니다." - 그렇게 갈등하는 모습을 현실의 반영이라고 보시는 것 자체가 가족에 대해 비관적인 인식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렇죠. 그런데, 사실 가족들이 다 모일 때가 보통 무슨무슨 날이기 마련인데, 그렇게 모였을 때 가족 구성원이 갖고 있던 온갖 불편한 관계가 드러날 것이라는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드러내는데 그런 설정이 좀더 편리했을 수도 있을 거예요." "자, 봐라. 뭐, 달라진거 없나? 내가 자기 말대로 인테리어 확 바까뿟다. 어떻노? 괜찮지? 하도 장사가 안 되가지고 밝은 색으로 확 바까뿟다 아이가. 그랬더니 진짜 매상이 오르대." "다행이네요."('밀양'의 종반부에서 예전에 전도연으로부터 들은대로 매장 인테리어를 바꾼 옷 가게 주인과 전도연의 대화.) - 전 이 장면에서 감독님이 희망을 말하는 방식이 드러난다고 봅니다. 절망의 압도적인 양과 질에 비해서, 감독님 영화에서 희망이나 소통의 가능성은 딱 이 정도로만 존재하는 거지요. "신애에게 그 옷가게 여자가 무심결에 '미쳤는갑네"라고 말한 뒤 잠깐 난처해 하잖아요? 사람들 사이의 그 정도 배려가 희망이 존재하는 증거인 셈이죠.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 장면 직전에 범인의 딸과 신애가 미용실에서 우연히 만나잖아요? 둘이 함께 거울에 비친 모습에서 신애에겐 연민이 있고 그 딸에겐 죄의식이 있는데, 그게 신이 예비한 화해의 장면이든 뭐든 우리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속에 있는 사람들이 그 정도 느끼고 그 정도 상대를 이해하는 것 이상의 희망이 과연 있을까 싶어요." "썰렁하다." "노래 하나 할게요." ('박하사탕'에서 오랜만에 만난 예전 직장 동료들에게 소리를 버럭지르고 난 뒤 쑥스러워하면서 노래를 자청하는 설경구.) - 감독님 영화에는 유독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많습니다. 네 편의 영화 모두에 그런 장면이 나오지요. 세어보니 네 편 합쳐서 모두 열 번이 넘던데요?(웃음) 그 중 상당수는 음주 후 노래하는 장면들이죠. 노래 부르는 장면이 많은 것 역시 한국 사회 현실의 반영인가요? "네. 그래요.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우리 현실 속에 이미 음악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르잖아요? 그건 한국인이 노래하는 행위를 통해서 감정을 토로하기 좋아한다는 겁니다. 제겐 그 행위가 영화적이기도 하고 해서 좋습니다. 주인공이 살아가면서 자기 감정을 직접 토로하도록 하려면 노래 부르게 하는 것만큼 편한 게 없잖아요.(웃음) 우리나라 사람들 노래하는 걸 보면, '저 친구에게 저런 숨은 감정이?'라는 생각에 놀랄 때가 많아요." - 반면에 소위 영화음악은 거의 쓰지 않으십니다. "저는 외부에서 감정을 덧붙이기 위해 집어넣는 인위적인 영화음악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제 영화는 음악을 집어넣어보면 잘 안 붙기도 해요. 음악이 들어갈 여백이 없다고 할까요."
- 마이크 잡으실 기회가 있으면 어떤 노랠 하시나요. "'장미빛 스카프'를 주로 부르죠." - 아, 그래서 데뷔작인 '초록 물고기'에 그 노래가 나오는군요.(웃음) "'초록 물고기'에 그 노래를 집어넣은 것은 일종의 개인적인 기념 같은 거죠. 그 영화에 미애가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나오잖아요? 그 옷도 제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거죠. 그냥 나 혼자 그런 걸 영화를 통해 기념하는 거예요." - 보라색 원피스라니, '장미빛 스카프'보다 훨씬 더 사연이 궁금해지는데요.(웃음) "그냥 그런 게 있어요."(웃음) "전화 한번 해볼까? 이 음악 소린 언제 들어도 참 좋아. 음악 자체가 수준 있다 아이가." "수준은, 자식아. 그냥 선곡 하는 거지." "선곡도 수준 아이가."('밀양'에서 전도연을 좋아하니 핸드폰 컬러링 소리까지 맘에 드는 송강호와 친구의 대화.) - 감독님 영화에서 인물들이 부르거나 배경에 흐르는 노래들은 캐릭터의 심리나 상황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곤 합니다. 특히 '박하사탕'이 그렇지요. 영호가 첫사랑의 흔적을 찾아 군산의 술집에 들를 때는 레이 피터슨의 'Tell Laura I Love Her'가 흐릅니다. 고문 형사로 망가진 삶을 사는 영호는 술집에서 김수철의 '내일'을 부르지요. 그 가사는 "흘러 흘러 세월 가면 무엇이 될까"란 내용을 담고 있죠. 영호가 망가진 삶을 살면서도 스스로 망가진 줄도 모를 때 흐르는 노래는 레인보우의 'Catch the rainbow'입니다. 그 노래는 무지개를 잡을 거라고 믿었지만 부박한 현실 속에서 꿈을 잃어가는 사람 이야기이니 영호의 처지에 그대로 겹칩니다. 극중 노래들이 일종의 내러티브 역할까지 담당한다고 할까요. 수준 있는 선곡을 하시는데(웃음), 어떻게 노래를 고르십니까. "노래를 고르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지요. 그런데 전 아무래도 운이 참 좋은 거 같아요.(웃음) '박하사탕' 때 '내일'을 부르는 장면의 경우, 사실 그게 촬영 직전까지도 곡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노래 책을 펼쳐 놓고 연출부와 같이 검토를 했죠. 그러다가 '내일'이 즉석에서 선택된 거예요. 그 확률이 쉽지 않은 건데.(웃음) 그 노래를 부르는 영호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꼭 자신의 운명을 말하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Tell Laura I Love Her'도 현장에서 선택했어요. 그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딱 그 노래 만큼의 감상적인 느낌을 갖고 있어야 했었죠. 왜냐하면, 영호가 군산의 술집 여자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할 때, 연기를 하고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 딱 그 정도의 순정과 감상의 느낌이 필요했지요. 그러고보니 결과적으로 다 운인 것 같네.(웃음) - '오아시스'에서 공주가 안치환의 '내가 만일'을 부르는 것은 가사와 곡의 분위기를 생각할 때 정말 그 이상의 선곡이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내가 만일'이야말로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그 노래는 애당초 제 머리 속에 없는 노래였으니까요. '오아시스'를 위해서 취재를 할 때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젊은 여성 한 분이 우릴 도와줬는데, 그 분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바로 안치환이었어요. 그래서 안치환 노래 중 어떤 걸 고를까 했을 때 문소리씨가 곧바로 '내가 만일'을 추천하더라구요. 그제서야 가사를 보니, 거기에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게 다 담겨 있더라구요. 그러니 운명 아니겠어요. 그건 내 능력이 아니예요.(웃음)" - 선곡도 수준이라고 영화 속에 대사로 쓰셔놓고.(웃음) "딱 그 만큼만 능력이죠.(웃음)" "너, 나 먹고싶지 않니? 말만 해. 줄게. 아무나 다 먹는데 너라고 못 주겠니?"('초록 물고기'에서 심혜진이 한석규에게 침대 위에서 위악적으로 말하며.) - 감독님 영화 속에선 위악적인 행동을 하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초록 물고기'에선 밤무대에서 노래하는 미애(심혜진)이 그렇구요, '박하사탕'에서는 첫사랑 순임(문소리) 앞에서 영호가 일부러 홍자(김여진)의 엉덩이를 쓰다듬는 추행을 합니다. 영호는 순임의 남편 앞에서 "나 사는 게 한심하지?"라면서 자학도 합니다. 위악과 자학으로 망가지는 '밀양'의 신애는 말할 것도 없구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오아시스'의 주인공들은 위악도 자학도 없다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가장 자학에 빠질 만한 인물들이 자기 모멸의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것은 어쩐 일일까요.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아마도 내가 자학을 많이 하는 인간이라서 내 영화 속 인간들이 자학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아시스'의 종두와 공주만큼은 자학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저의 자의식이 반영됐을 것 같습니다. 특히 종두는 관객이 그 인물에 쉽게 감정이입하길 원치 않았어요.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자 했죠. 사실 한심한 인간이니까요. 그럼에도 그 둘이 마음으로부터 자학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습니다." - 혹시 그건 다른 영화 속 인물들에 비해서 '오아시스'의 두 인물에 대해선 감독님이 감정이입 하지 않고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오아시스'의 두 인물에 대해선 감독님이 어느 정도 뒷짐을 진 채 바라보고 계신다고 느꼈습니다. 그건 감독님의 개인적 삶과 공통점이 거의 없는 인물들이기 때문인 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두 인물 속에 내 자신의 반영이 없다는 것은 분명 사실일 겁니다. 다만 종두와 공주가 표면상 드러나는 모습이 좀 그렇다 보니, 자학까지 하도록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스톱. 박재영씨 숙제 안했죠?" "했어요." "진실만을 말해야 돼요. 했어, 안했어?" ('밀양'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초등학생에게 장난스레 따져묻는 전도연.) - 감독님은 영화를 만들 때 최대한 인위와 허위를 배제하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도 있으신 것 같구요. 소설가 출신이지만, 대사가 일상적이고, 관념적인 부분이 거의 없는 것도 무척 놀랍습니다. "지금 지적하신 게 제가 영화를 할 때의 가장 큰 화두입니다. 영화는 사진처럼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는 매체이면서 동시에 볼거리와 판타지를 제공하는 매체이기도 하죠. 어느 한쪽도 완전히 밀어내긴 어렵죠. 그런데 갈수록 영화가 그중 어느 한쪽으로 쏠리고 있고, 그래서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으로서의 매체 성격도 점차 무력해지는 것 같아요. 거기에 대해서 나는 저항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나라도 저항하고 싶은 거죠. 저는 문자 같은 관념이 아닌, 영상이란 직관 작용을 통해서 진실을 드러내려는 영화 매체의 본성에 매달리고 싶습니다. 특히 '밀양'은 보이지 않는 것과 눈에 보이는 것의 관계를 다루는 영화니까 더욱 그랬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결국 그 방법론은 눈에 보이는 것에 충실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 드러내면서 어떻게 진실에 더 가까워지는가가 나의 핵심 숙제이죠. 지금 거론하신 그 장면에서 신애가 '너, 오늘은 내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았지?'라고 말하는데 그 오늘이라는 말이 아들의 죽음 직후의 상황이니 참 슬픈 말이잖아요. 결국 아이가 피아노를 치다가 막혀서 선생님을 쳐다보면 신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데 그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 있어요. 사실 그런 건 연출되기 어려운 타이밍이죠. 영화의 진실이라는 게 그런 것 같습니다. 저게 연출이 아닐텐데 라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감정이나 표정이 영화적 진실에 가까운 거죠. 진실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예요. 우리 삶에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국면이 찰나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여타 매체와 다른 영화의 진실인 것 같습니다." "막동씨, 이 일이 좋아?"('초록 물고기'에서 심혜진이 조폭 보스의 자가용 기사 일을 시작한 한석규에게.) - 교사와 소설가를 거쳐서 감독으로 영화 일을 하시게 되셨습니다. 단적으로 묻겠습니다. 이 일이 좋으신가요.(웃음) "단적으로 말하면, 썩 좋지는 않아요. 동료들은 현장이 즐겁다고 하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현장에 나가는 게 괴로워요. 그게 당연히 얼굴에 나타날 거고 그 어두운 에너지가 스태프와 배우에게 영향을 주겠죠. 이게 참 나쁜 병인데…" - 그렇게 괴로운데 왜 영화를 계속 하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꼭 계속할 생각도 없어요.(웃음) 영화 감독이란 직업이 자기가 하고 싶다고 계속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와 정반대로 할 수 있을 땐 안 하기도 쉽지 않아요. 하다 못해 다음 작품 계약금도 받아서 사무실 운영비 등에 벌써 다 써버렸거든요." - 그럼 다행히도 신작이 금방 나오겠네요.(웃음) "계약서에 언제까지 작품을 만들겠다는 기간은 명시가 안 되도록 했죠.(웃음) 그런데 영화라는 게 내 스스로가 괴로워도 할만한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관객과의 만남에 있어서 그렇죠. 글 쓸 때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게, 소통의 힘을 느낄 수 있어요. 다른 무엇으로 이만한 소통 방식을 찾겠어요." "막동이 꿈이 뭐라 그랬냐?" "식구들이랑 같이 살면서 식당이나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초록 물고기'에서 조폭 보스인 문성근과 그의 운전 기사로 일하는 한석규의 대화.) - 마지막 질문입니다. 10년간 네 편의 영화를 만드셨고 한국영화사에도 굵직한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감독으로서 향후 꿈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예전에 영화 연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딱 다섯 편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때 생각으로 보면 이제 한 편 남은 거죠. 다섯편까지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듯 해요. 지금은 제가 영화를 통해서 뭘 해야겠다, 무슨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 혹은 크게 흥행하고 싶다는 욕망이 없어요. 제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욕심이 없죠. 지금은 오히려 소박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밀양'을 찍을 때도 부끄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나름대로 관객과 소통하면서 뭔가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그런 영화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 그게 어려워지면 미련 없이 그만두실 수 있으십니까. "미련은 남겠죠. 저는 영화감독으로서 제 자신에게 크게 실망하면 영화를 그만 둘 것 같아요. 그게 내가 영화를 찍는 감각이든 능력이든 제 내면에 있는 허위의식이든 무엇이든, 나를 실망시키는 것이 지금도 있지만 그게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울 정도인 때가 언젠가는 오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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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 인터뷰] 이창동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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