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양’이 프랑스에서 열린 칸 영화제 60회 여우주연상 수상작이 됐다. 보통 프랑스에서는 ‘긴 호흡’의 극영화를 선호한다. ‘밀양’의 이야기 틀거리는 영화의 전체 가치 가운데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배우의 세심한 감정표현이 그 영화의 백미이자 골간이다. 따라서 칸 영화제에서 배우가 상을 받았다는 것은 다른 어떤 상보다도 큰 의미가 있다.
영화 ‘밀양’의 주제는 ‘인간 내면의 고통’이다. 남편을 잃고 아들까지 잃은 여자가 종교적 힘을 빌려 ‘초극(超克, 어려움 따위를 넘어 극복해 냄)’했지만 그 종교가 그녀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겨주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런 내용이다. 신애(여주인공, 전도연 분)가 아들이 사체로 발견되자 심한 실의에 빠졌고 그 고통을 잊기 위해 기독교에 귀의한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지만 신애는 굳은 결의로 살해범을 용서하기로 했다. 하지만 신애 앞에 나타난 살해범은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했다”라며 평안한 모습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신애는 이때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명대사를 쏟아낸다. “아니 내가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먼저 용서하죠?” 그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한다. 목사가 마이크 앞에서 설교할 때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틀어버리는 식으로 말이다.
한 때 영화 ‘다 빈치 코드’가 상영되면 지구에 공황이 온다던 목사가 이 영화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저건 미성숙 신앙의 표본이다. 제대로 된 신앙인이라면 살해범이 무슨 말을 하건 용서했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판단하고 또 말한다면 박약한 사고의 소치일 뿐이다. 이런 의심 피하지 말자. ‘왜 하나님은 늘 피해자에게 더 철저한 반성과 자기절제를 요구하고 있는가. 고통스럽게...’라고 말이다. 정면으로 맞아 함께 고민할 숙제인 것이다.
이창동의 영화에서 그리스도인을 대체로 위선적인 사고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박하사탕’에서 김영호(설경구 분)의 부인 양홍자(주인공 김영호 부인 역, 김여진 분)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지만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름으로써 김영호로 하여금 ‘맞바람’을 야기하게 만드는 이중적인 인간이다. 혼인을 맺은 남자와 갖는 성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도’부터하고 섹스에 돌입하는 장면도 있다. ‘오아시스’에서 목사는 홍종두(설경구 분)를 ‘새 삶을 시작해야 할 죄인’으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새 삶’은 어리숙한 종두를 형 대신 감방에 보내는데 일조한 그의 어머니와 형수였다. 이창동은 이 세 영화를 통해 한마디로 지적한다. 세속적 욕구와 탐미적 관점을 가진 그리스도인들, 곧 비신자들과 별 차이가 없는 자들이, ‘특별한 척’하지 말라고 말이다.
‘밀양’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용서하려 했지만 못 하는 그러면서 또 다른 분노에 몰입하는, 한 여자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삶이다. 예배를 훼방하고 하나님에 대해 저항하는 신애의 태도를 우리는 각별하게 볼 필요가 있다. 신애의 실존적 고민 속으로 들어가 보려는 노력, 결코 허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실존적 고민 속에도 예수님은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밀양’이 진짜 비웃는 대상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시선의 각도이다. 사실 우리는 다 똑 같은 인간들이다. 키 높이만 다를 뿐 같은 위도 위에 서서 눈을 마주 치며 산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만은 위에서 아래로 내다본다.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정죄하고, 때론 경멸하고, 때론 평가한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재수 없다’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그리스도인에게 ‘제자’로 기름 부은 하나님은, 낮은 데로 임하라 했다. 그래서 그렇다고 본다. 이 영화는, 아니 이창동이 지난 3편에서 나타낸 메시지는 ‘까불지 마라’였다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보혈을 지나’, ‘사랑 합니다 나를 자녀 삼으신 주’, ‘살아계신 주’, ‘약할 때 강함 되시네’, ‘주께 가오니’, ‘구원으로 인도하는’, ‘내가 매일 기쁘게’,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이 노래의 공통점이 뭔지 아나? CCM이다. 또 영화 ‘밀양’의 OST에 삽입된 곡이다. 전체 14곡 가운데 9곡이나 된다. 이 노래는 그런 의미에서 가식적 그리스도인들을 부연하는 음악인 셈이다.
21세기 한국교회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본다. 세속인들로부터 우리가 받는 따가운 시선과 비난을 바울이나 실라가 당했던 그 고난에 비교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의 고난은 당당한가. 부끄러움이 없는가. 영화로운 것인가. 그렇지 아니면 무지와 독선으로 인한 고립됨의 한 단면일까. ‘밀양’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물질주의와 세속적 권력 지향주의, 지극한 인본주의로 점철된 한국교회. 그래서 지극히 세속적인 한국교회.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이제 사람으로 돌아가자. 물질과 성장 패러다임, 인간을 우상시하는 잣대를 모두 버리고 말이다.
'밀양'은 동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거울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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