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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영화도시 밀양

은바리라이프 2008. 9. 22. 12:45

고즈넉한 영화도시 밀양
2008년 09월 06일 (토) 최갑수ssuchoi@hanmail.net
   
▲ 가곡동과 삼문동 일대를 거닐다보면 정겨운 골목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오지않을 것 같은 가을이 그래도 올 모양이다. 이마에 닿는 바람이 한결 선선해졌다. 공기는 투명해지고 하늘은 한껏 높아졌다. 푸른 하늘에 떠있는 새털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마냥 가벼워진다. 이른 가을을 맞이하러 밀양으로 간다. 표충사라는 그윽한 사찰이 있고 영남루라는 운치있는 정자가 있다. 밀양 시내를 적시며 흐르는 밀양강은 새벽마다 운무를 가득 피워 올린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흔적도 곳곳에 스며있다.

   
▲ 영화 '밀양'에서 신애(전도연)가 운영했던 '준 피아노'.

글·사진 최갑수(여행 칼럼니스트)

중부내륙고속도로 밀양IC로 나오면 밀양 시내에 닿는다. 가곡동과 삼문동·내일동 등 밀양 시내 일대다. 영화 '밀양'의 주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밀양역 인근의 가곡동은 여주인공 신애(전도연 분)가 운영했던 '준 피아노'가 있던 동네다. 죽은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서 살기로 결심한 신애는 가곡동 도로변에 자그마한 피아노 학원을 열고 아들 준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를 찍기 약 한 달 전 밀양 시내를 샅샅이 카메라에 담았고 가곡동 공터에 '준 피아노'를 세트로 꾸미게 됐다고 한다. 세트였던 '준 피아노'는 영화 촬영이 끝난 뒤 허물어졌지만 최근 관광객들을 위해 다시 세웠다.

가곡동 일대는 천천히 돌아보는 것이 좋다. 500m의 2차선 거리는 족발집과 손뜨개집 등의 간판이 전신주와 어지럽게 얽혀 있다. 이리저리 나 있는 골목은 70년대 후반 우리나라 도심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담쟁이덩굴이 무심히 자란 시멘트 벽. 버려진듯 기대어 있는 리어카, 낡은 커튼이 쳐진 창문 등 세월에 닳은 이 모든 풍경이 정겹고, 아직 견디고 있다는 것이 고맙다.

   
▲ 송강호가 주차 장면을 촬영했던 밀양남부교회.
'준 피아노'에서 가까운 곳에 밀양남부교회가 있다. 들어선지 90년이 다 되어 간다. 신애와 종찬이 나왔던 대부분의 교회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남부교회 교인들은 실제로 영화 속 엑스트라로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송강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교회 앞에 주차하는 장면을 꼽기도 했다. 가곡동 거리를 다니다보면 신애의 희망과 아들을 유괴당한 뒤의 슬픔과 좌절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밀양의 대표적인 여행지는 밀양시를 가로 지르는 밀양강과 밀양교 그리고 영남루다. 이창동 감독은 특별히 이 경관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영화 촬영 중에도 문성근 씨 등 찾아온 지인들과 차를 즐겨마셨던 커피숍 '일마레'는 신애의 생일파티가 열린 장소가 되기도 했다. 예닐곱 평 남짓한 좁은 커피숍 안은 40여명의 스태프들로 하루종일 북적였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도 종찬이 영남루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밀양강변에 서 있는 영남루에 올라보자. 영남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에 팔작지붕을 올린 누각으로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일컬어진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목조 건물로 건물 내부에는 당대 명필가와 대문장가들의 시문 현판들이 즐비하다. 누각에 앉으면 시원한 바람이 스며든다. 유유히 흘러가는 밀양강이 고즈넉하게 펼쳐진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요즘이면 밀양강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볼 수 있다. 누각에 앉아 안개를 바라보는 정취가 여행의 낭만을 돋운다.

   
▲ 밀양강변에서 바라본 영남루와 밀양강.
밀양에 와서 표충사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표충사는 밀양을 대표하는 사찰. 1천3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신라 무열왕 원년(654년) 원효대사가 창건해 이름을 죽림사라 하였다가 영정사로 바뀌었다. 지금의 이름은 조선 헌종 5년(1839년) 사명대사의 8대 법손 천유선사가 임진왜란때 구국을 위해 헌신한 사명·청허·기허 대사 등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면서 부르기 시작했다. 표충사는 거찰답게 초입부터 심상치 않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1㎞에 이르는 길 양편을 가득 메워 고적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절집 주변도 운치가 가득하다. 여름날 무성했던 잎은 어느 새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표충사에서 사자평으로 오를 수 있다. 오프로드 마니아들이 즐겨찾는다. 표충사 매표소에서 출발하면 곧바로 비포장길이 이어진다. 길은 가파르다. 40도가 넘을 정도로 경사진 길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봉고차로도 비탈길을 요리조리 빠져나가 오프로드 동호인들을 어리둥절케 만든다. 맑은 날이면 정상에서 부산의 금정산, 지리산 천왕봉, 대구 팔공산, 가야산과 덕유산도 볼 수 있다. 정상 아래서 사자평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언양 방면. 언양 쪽으로는 길이 조금 쉽다. 산악타이어를 끼지 않은 사람은 언양 쪽으로 가다 표충사길로 진입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좋다.

   
▲ 표충사는 1천3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밀양에는 땀 흘리는 비석이 있다. 표충비다. 임진왜란때 국난을 극복한 사명대사를 기린 비석으로 앞면에는 사명대사의 행적을, 뒷면에는 스승 서산대사의 공덕과 기허대사의 사적을 새겼다. 나라에 큰 사건이 있을 때를 전후해 비면에 땀방울이 맺혀 구슬처럼 흐르는데 사람들은 나라를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 해 신성시하고 있다.

   
▲ 밀양강. 가을 무렵이면 밀양강은 안개를 피워올린다.

여행수첩

■ 가는 길=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만종 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탄다. 대구와 경산, 청도를 지나면 밀양에 닿는다. 여주 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대구를 지나 영산IC를 나와 24번 국도를 따라가도 된다. 가곡동과 삼문동 등 영화 '밀양' 촬영지는 시내에 몰려 있다. 중앙고속도로 밀양IC로 나오는 것이 편하다. 표충사(055-352-1070)는 긴 늪 사거리를 지나 24번 국도를 이용, 표충사 이정표를 보고 빠져나온다. 사자평으로 가는 산행길은 많지만 가장 빠른 길은 내원암과 진불암 쪽이다. 일주문 왼쪽으로 접어들면 내원암 가는 길이다. 이정표가 잘 돼있다. 밀양역 앞의 관광안내센터에서 시내 지도를 구할 수 있다. 밀양시청 문화체육과(055-359-5641)

■ 먹을 거리=밀양의 별미인 돼지국밥<사진>을 먹어 본다. 시청과 내이동 일대에 돼지국밥집이 몰려 있다. 시청 서문앞 욱조국밥(055-352-1771)은 사골로 우려낸 육수 맛이 좋다. 이곳 주인장은 종찬의 친구로 영화에 나오기도 했다. 내이동 설봉돼지국밥(055-352-9555)도 명성이 높다. 돼지국밥 5천원. 표충사 들어서는 길의 행랑채(055-352-8927)는 산채비빔밥이 유명하다.

■ 잠잘 곳=밀양시청 서문 앞에 모텔들이 밀집해 있다. 아시아나 모텔, 필 모텔 등이 깔끔한 편이다. 가족끼리 여행이라면 얼음골 초입의 아이스벨리 가족호텔(055-356-2002)이나 단장면의 펜션 물안개 피는 마을(055-352-4300)이나 들꽃향기(055-352-4300)를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