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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맨슨│불타는 성경책, 불타오르던 그날 밤

은바리라이프 2008. 9. 2. 19:03

마릴린 맨슨│불타는 성경책, 불타오르던 그날 밤
[2008-08-19 12:05]

<ETPFEST> 마릴린 맨슨 공연 관람기

“마릴린 맨슨은 안 보고 갈래. 무서워. 공연하다 사람도 패고 그런다며?”
“저기 그래도 관객은 안 때리.....”

옆에서 공연을 보던 어떤 아가씨에게 결국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 맨슨형 그런 사람 아니라고. 맨슨 형도 이젠 불혹의 나이라고. 왜냐하면, 마릴린 맨슨은 무서워해야 제 맛이니까. 한창 막 나가던 시절에는 염소 머릿가죽을 벗겨서 공연장에 걸어놓고, 자신이 주최한 파티에서는 그 날의 VIP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기 위해 ‘관장’ 기구를 샀다는 그 마릴린 맨슨이니까 말이다. 물론 정말 막 나가는 분께서 그렇게 성실하게 앨범내고, 투어하고, 바깥에 나갈 때마다 그리 곱게 화장할리는 없지만, 마릴린 맨슨은 내 옆에 있던 아가씨처럼 적당히 무서워하며 웅성웅성 거릴 때 오르가즘을 맛보게 해준다. 모두가 확실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떠들며 그가 대체 어떻게 사람들을 놀라게 해줄까하는 공포 반 기대 반의 느낌.

충격과 경악의 시절을 거쳐 이제는 친근함으로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광복절의 <ETPFEST>. 그 곳의 스탠딩석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를 맞아가며 기다렸던 뮤지션은 물론 서태지였다. 하지만 <ETPFEST>의 현장에서 마릴린 맨슨은 끊임없는 웅성거림의 대상이 됐다. 누군가는 마릴린 맨슨의 사건 일지에 대해 읊어댔고, 누군가는 “마릴린 맨슨이 <케빈은 12살>의 폴이라며?”라는 친구의 질문에 “넌 대체 언제적 떡밥을 무는 거냐”라며 핀잔을 줬다. 그리고 유즈드(used)는 “곧 ‘fucking’한 마릴린 맨슨의 공연이 시작된다”고 말했고, 서태지는 앵콜을 요청하는 관객들에게 “지금 맨슨이 형이 뒤에서 기다리고 있단 말야”라는 말을 남겼다. 그랬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마릴린 맨슨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이제는 안다. 마릴린 맨슨은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가 아니다. <ETPFEST> 기자회견에서 “내 일 중 하나가 유명한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매너 좋은 악마가 어디 있나.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세차게 내리던 빗 속에서 마릴린 맨슨이 ‘식칼’이 달린 마이크를 들고 나오는 순간, 그 때까지 마릴린 맨슨을 보기 위해 기다렸던 모든 사람들은 크게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으니까. 그건 공포나 충격이 아닌 설렘의 표현이었다. 여전히 마릴린 맨슨을 두려워하는 몇몇의 해맑은 관객들을 제외한다면, 더 이상 마릴린 맨슨을 보고 ‘쇼크’를 느낄 사람은 없었다. 신촌의 한 뮤직비디오 감상실에서 ‘Sweet dreams’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마치 금지된 스너프 필름을 보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이미 10여 년 전의 일이다. 이젠 마릴린 맨슨의 그 기괴한 화장도, ‘Sweet dreams’를 부르며 괜히 온갖 폼은 다 잡는 마릴린 맨슨의 퍼포먼스도 모두 익숙해 졌다.

서스펜스와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무대 위의 스릴러 작가

하지만 마릴린 맨슨의 공연은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그의 ‘공포’가 “형, 오늘 좀 무리하는 거 같아”라며 웃으며 볼 수 있는 ‘친근함’이 될수록 정말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마릴린 맨슨이 공연 중에 바지를 내리며 속옷을 보여주고, 관객들에게 ‘we hate love’를 외치도록 선동하는 건 그가 악마라는 걸 증명하려는 겁주기가 아니다. 마릴린 맨슨은 그렇게 우리를 자극하면서, 그 순간만큼은 우리 스스로 심리적인 금기를 넘어서도록 만든다. 그 전까지는 비교적 얌전하게 공연을 보던 관객이 마릴린 맨슨의 선동에 따라 계속 ‘fuck’을 외칠 때의 쾌감 같은 것. 모두 그것이 쇼라는 것을 알지만,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쇼의 세계 안에서 완벽한 쇼 안에서 관객들이 기꺼이 호러 영화의 학살자, 혹은 피해자가 되도록 만들어내는 힘이 있었다.

그건 단지 옷을 하나하나씩 벗고, 그 화장을 한 채 얼굴을 쥐어뜯는 마릴린 맨슨의 기괴한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만이라면, 마릴린 맨슨은 이미 오래 전에 ‘허세 맨슨’이 됐을 게다. 라이브 뮤지션으로서 마릴린 맨슨의 진정한 저력은, 그가 서스펜스와 스펙터클을 모두 연출할 수 있는 스릴러 작가라는데 있다. 그는 공연 전반에는 ‘Disposable Teens’나 ‘mOBSCENE’처럼 분위기를 들뜨게 만드는 곡으로 관객들을 선동하고, 후반에는 ‘The dope show’와 ‘Rock is dead’같은 히트 트랙들로 관객들을 폭발하게 만든다. 하지만 마릴린 맨슨의 공연에서 중요한 건 그 사이에 있는 ‘Great big white world’같은 곡이었다. 광복절에 내린 밤 비 만큼 음산하게 분위기를 잡으며 관객들을 긴장시키는 곡들. 마릴린 맨슨은 마치 손으로 직접 심장을 주무르는 것처럼 팽팽한 긴장을 연출했고, 이내 그것을 폭발적인 카타르시스로 연결했다. 마릴린 맨슨의 엽기적인 퍼포먼스는 사실상 그 긴장감을 해소해주는 또 하나의 장치다. 그렇게 긴장과 카타르시스가 반복될수록, 관객들은 불혹의 나이가 된 마릴린 맨슨의 현실을 잊고 이 ‘The dope show’의 ‘교주님’이 된 마릴린 맨슨에게 빠져든다. 그가 한국에서 누군가와 닮았다는 이유로 희화화 됐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빗 속에서 10시간을 넘게 서 있던 관객들 중 일부는 진흙 위에서 몸을 부딪히며 “맨슨! 맨슨!”을 외쳤고, 마릴린 맨슨의 공연이 무서울까 걱정했던 그 여성은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형님은 여전하시다

그렇게 사람들이 서서히 미쳐갈 때 쯤, 마릴린 맨슨은 드디어 우리 모두를 ‘죽이는’ 칼을 꺼내들었다. ‘Antichrist superstar’와 ‘The beautiful people’. 마릴린 맨슨의 선동은 ‘Antichrist superstar’에서 성경책을 불태우며 절정에 달했고, 관객들은 ‘Beautiful people’에 맞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답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마릴린 맨슨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음향 기술의 문제로 ‘Beautiful people’을 결국 듣지 못했던 그 때도, 마릴린 맨슨이 무대의 기물들을 부수는 걸 보며 “오늘은 더 신나게 부수는 거 같아”라며 농담을 하는 지금도, 마릴린 맨슨은 그렇게 우리를 선동하고, 자극하고, 유혹하며 우리를 잠시나마 악마의 자식들로 만들어주었다. 더 이상 ‘Sweet dreams’를 들으며 악몽을 꾸지 않는다. 락 스피릿은 쇼 비즈니스가 됐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맨슨 형님은 여전히 그 무대에서 성경책을 불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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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명석 <매거진t> 수석기자   사진 : 이원우  사진제공 : ETPF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