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컬럼바인의 가해 학생들이 여기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A: 말 안할 겁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겠어요.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이 바로 그거였죠..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컬럼바인>을 본 많은 사람들이 콜롬바인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마릴린 맨슨의 인터뷰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전쟁을 일으키는 대통령이 폭력적인가 로큰롤을 노래하는 내가 더 폭력적인가?”라는 질문으로 핵심을 찔렀다. 예의 그 새하얗게 분칠한 얼굴에 시체처럼 거무튀튀한 입술 분장과 얼굴 한가운데를 슥 가로지르는 검은 선 메이크업을 한 채로 말이다. 이 장면을 보면 그가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뮤지션이 되기 전 잡지에서 음악 기사를 썼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르게 된다.
충격적인 외모에 가려진 영민함
|
아쉽게도 그의 이런 지적인 측면은 그가 평소 선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릴린 맨슨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들에게 그는 엽기적인 컨셉의 록 뮤지션이자 불타는 십자가를 음반 사진으로 사용하고, 공연 도중에 자해도 심심찮게 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외모 때문에 연예계가 아닌 정치관련 기사의 댓글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런 그의 모습은 ‘우연’이나 ‘변덕’이 아니라 ‘전통’에 기반을 둔 ‘전략적 산물’이다.
‘록 뮤지션’으로서 마릴린 맨슨은 쇼크 록(shock rock)과 인더스트리얼 록(industrial rock)의 전통에 속해 있다. 쇼크 록은 한 마디로 관객들을 ‘충격’으로 몰아넣는 음악이다. 관객들을 충격으로 몰아넣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과격한 사운드나 폭력적인 가사도 필요하겠지만 ‘비주얼’과 ‘퍼포먼스’가 아무래도 인상에 더 남을 게다. 비주얼은 기괴하고 원색적일수록 눈에 잘 뜨일 것이고, 퍼포먼스는 금기를 건드리는 것이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가능성이 크다. 쇼크 로커들의 무대에서 유난히 섹스와 종교, 특히 기독교를 겨냥한 폭력적인 표현이 나오는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그래서 종교와 섹스와 폭력을 다루는 쇼크 록은 종종 그것들을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훨씬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그러기가 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유명한 쇼크 로커들, 즉 데이빗 보위(David Bowie)에서부터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키스(Kiss),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앨리스 쿠퍼(Alice Cooper)로 이어지는 뮤지션들의 무대를 볼 때 느끼는 ‘당시 일반 관객들’의 당혹스러움은 오늘날 우리가 맨슨의 무대를 볼 때 느끼는 그런 것과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 무대들과 분장들을 오늘날 다시 보면 촌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충격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로큰롤의 전통 위에 세운 교주님의 나라
|
맨슨은 이 쇼크 록의 전통을 1990년대에 새롭게 ‘업그레이드’시킨 뮤지션이다. 그는 극단적인 비주얼로 사람들의 넋을 쏙 빼놓는 동시에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적인 아이콘들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당장 그의 이름인 마릴린 맨슨만 해도 미국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와 1960년대 미국 최악의 살인마인 찰스 맨슨의 이름을 조합한 것이다. 여기에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록 음악 스타일이었던 인더스트리얼 록을 받아들였다. 인더스트리얼에 대해서는 ‘통상적인 헤비 메틀보다 훨씬 기계적인 느낌이 강하게 나는 메틀 음악’ 정도가 무난한 설명일 것 같다. 이 음악의 사운드가 마치 공장의 소음 같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렇게 해서 발표한 그의 음반들은 커다란 논쟁을 몰고 왔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보자면 맨슨이 일으켰던 스캔들이 만만치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록 음악의 역사라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이 유달리 새롭거나 신선한 것은 아니라는 점만큼은 이 자리에서 지적하고 싶다. 영미권 록 음악의 역사는 학부모 단체와 교회와의 분쟁으로 얼룩진 역사이기도 하며(최근에 학부모 단체는 랩 뮤지션들 또한 새로운 투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레코드를 불태웠던 것도 교회였다. 맨슨이 내한공연을 가질 때마다 기독교 단체에서 항의하는 것이 놀랍거나 혹은 이상해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것 역시 사실은 로큰롤의 오래된 전통 중 하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맨슨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 또한 놀랄 일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충격이란 결국엔 내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는 최근작 <Eat Me, Drink Me>(2007)에서 보다 ‘쌩얼’에 가까운 모습과 음악을 선보였는데, 음반을 듣다 보면 그가 ‘쇼크’보다는 ‘음악’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의 진짜 괜찮은 음악이 들어 있는 음반들이 그가 ‘쇼크’로 유명했을 때 나왔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로큰롤이란, 혹은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일개’ 로큰롤 아티스트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세계의 폭력을 연관 지으며 꾸준히 작업을 한다는 것이 ‘휴머니티’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한갓 음악적 성취만으로 판단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맨슨을 그로테스크한 광대가 아니라 아티스트로 대접하고 싶다면 그 평가의 출발점은 여기 이곳, 즉 그가 과장되게 드러내는 폭력이 예외가 아니라 상시적으로 벌어지는 이곳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