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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經이야기硏究 -敍事批評이란 무엇인가?

은바리라이프 2008. 8. 28. 19:16

聖經이야기硏究
敍事批評이란 무엇인가?

마크 알란 포웰 지음
이 종 록 옮김
Mark Allan Powell,
What is Narrative Criticism?
(1990,Augsburg Fortress)



차례

편집자 서문
저자 서문
제1장 이야기로서의 성서

성경과 문학비평
문학비평과 역사비평
제2장 독서방법
구조주의
수사비평
독자반응비평
서사비평
제3장 이야기와 담론

관점
이야기 전개과정
상징과 아이로니
서사이야기의 기법들
제4장 사건
사건에 대한 서사적 이해
연구의 실제:마태복음의 플롯
제5장 등장인물
등장인물에 대한 서사적 이해
연구의 실제:공관복음서의 종교지도자들
제6장 배경
배경에 대한 서사적 이해
연구의 실제:마가복음의 배경
제7장 성서로서의 이야기

서사비평의 장점
서사비평에 대한 반대주장들
확장된 해석학
부록-서사비평을 주석에 사용하는 방법
각주








편집자 서문


서사비평(敍事批評)을 다루고 있는 본서는,하나 또는 몇몇의 특정한 본문들보다는,상당히 폭넓고 공식적인 논제들에 촛점을 맞추어온 연속적인 기획물의 하나이다.이것은,논의 중인 주제들을 규명하기 위해서 실제적인 해석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그래서 본서에서도 역시 특정한 본문들을 해석함에 있어서,때로는 상당히 장 황할 정도로 길게,그리고 매우 명확하게 비평적인 원칙들을 적용하고 있다.이 연속기획물에서,본서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기존의 책들은 비어슬리(Beardsle)의 '신약성경의 문학비평'(Literary Criticism of the New Testament),페터슨(Petersen) 의 '신약성경비평가들을 위한 문학비평'(Literary Criticism for New Testament Critics),그리고 패트(Patte)의 '신약성경비평가 들을 위한 구조적 주석'(Structural Exegesis for New Testament Critics) 등이다.

포웰 교수는 문학비평과 역사비평의 부류들(자료비평,양식비평,편집비평)을 구분하고,문학비평을 몇가지 유형들(구조주의, 수사학적,독자-반응비평,서사비평)로 분류한다.그런 다음,그는 서사비평이 채택하는 범주들,즉 내재된 저자와 독자,해설자,등장 인물,사건,배경 등을 묘사하고,분석하고,예증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Dan O. Via
듀크신학교


 

제1장 이야기로서의 성서


예수께서는 하늘나라를 위해 훈련받아온 서기관을 자신의 창고에서 새 것과 옛 것을 찾아 내오는 집주인에 비유하신 적 이 있다.지난 몇년 동안의 성경연구는 그런 많은 서기관들이 새것과 옛것,그리고 새것이면서 동시에 옛것인 물건들이 들어 있는 많은 창고를 만들어왔음을 여실히 보여준다.서사비평(narrative criticism)은 새로운 성경연구방법이긴 하지만,그것은 지금까지 다른 문학연구방법들이 사용해온 생각들에 토대를 두고 있다.
1

성경과 문학비평


어떤 측면에서 성경은 언제나 문학으로 연구되어 왔는데,그것은 무엇보다도 성경이 문학,즉 인간이 기록한 문서나 작품이 기 때문이다.그래서 성경비평 분야에서는 성경본문을 읽고 듣는 것 이외의 다른 연구방법을 알지 못한다.하지만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지금까지의 성경연구에 있어서 성경의 문학적인 성격들은 그다지 특징적인 주제가 되지 못했다.오히려 성경은 의미있 는 역사기록,계시된 진리의 총람이나 일상생활을 위한 지침서로 읽혀져 왔다.그 많은 책들이 처음에 정경으로 인정케 된 데에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작용했음이 틀림없는데,거기에 미학적인 평가가 고려되었다는 증거는 없다.사실 성 어거스틴은 성경을 그리스 와 로마의 이방작품들에 비교했을 때,성경의 작품들이 문학적인 측면에서 열등하다는 사실로 인해서 슬퍼했으며,그는 이러한 문 학적인 열등함을 하나님의 겸손하심의 표지로서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백록 3.5).

성경학자들이 문학비평을 발견해 낸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획기적인 일이다.성경연구와 문학연구가 이렇게 갑자기 결합하게 된 이유는 최근 이 두 분야에서 보여준 학문적인 진보에 비추어서 이해되어야만 한다.2

지난 일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성경연구의 주도적인 방식은 역사비평방법이었다.3 사실 여러 연구방법들의 결정체인 이 방 법은 성경자료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서,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삶과 사상을 재구성해 내고자 한다.예를 들어, 자료비평(source criticism)은 복음서 기자들이 각 복음서를 기록할 때 사용한 자료들을 추적해 내려고 한다.양식비평(form crit icism)은 개별적인 전승단위들이 복음서에 포함되기 이전에 갖고 있던 삶의 정황을 밝혀내는 데 힘을 기울인다.편집비평(redacti on criticism)은 복음서 기자들이 자료를 수집하고 개별 전승단위들을 배열한 방식을 관찰함으로써,복음서 기자들의 신학과 편집 의도를 찾아내고자 한다.이러한 연구방법들은 복음서 전수의 과정에서 중요한 시기들,다시 말해서,역사적 예수의 시대,초대교회 의 구전전승시대,또 복음서 기자들에 의해서 복음서가 최종 형성되던 시대의 모습을 밝혀내려는 공통된 열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방법들은 한스 프라이(Han Frei)가 1974년에 밝힌 대로,복음서의 서사적인 성격을 신중하게 다루지 못했 다는 결정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4 복음서는 예수 이야기이지,예수에 관한 잡다한 자료집이 아니다.복음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 지 연속적으로 읽히도록 의도되었지,각 구절들의 상대적인 가치를 밝혀 내기 위해서,분해하고 검증하도록 된 책이 아니다.역사비 평방법은 이 책들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문서들에 관심을 기울이면서,이야기 자체가 아닌,이야기의 배후에 있는 역사적인 정황을 해석해내고자 했다.

복음서를 연구함에 있어 보다 문학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1969년 윌리엄 비어슬리(William A. Beardslee)에 의해 서 표명되기 시작했다.5 대다수의 성경학자들이 사용해온 엄격한 역사비평방법을 거부하면서,비어슬리는 성경양식(form)들의 분 석을 통해서,그 본문을 만들어낸 공동체의 성격 뿐만 아니고,그 본문 자체의 문학적인 의미와 효과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될 것임을 주장했다.그래서 양식비평은 특정한 문학양식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다시 말해서 그 양식들이 독자들에게 어떤 일정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도록 하려는 의도를 갖고,독자들로 하여금 본문을 읽도록 하는지를 주의깊게 살피는 작업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처음 시험된 신약성경의 문학양식은 비유였다.비유에 대한 문학적인 연구에서,로버트 펑크(Robert W.Funk)와 단 비아(Dan O. Via),그리고 존 크로산(John D. Crossan)이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6

비어슬리는 또 복음서 연구에 있어서 복음서 전체를 연구단위로 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했다.편집비평이 이러한 요구를 부분적으로 충족시켜 주었다.편집비평이 발전되면서,사람들은 다양한 전승들을 수집해서 그것들 을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갖는 한 작품으로 형성시키는 데 기여한 복음서 기자들의 역할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양식비평은 복 음서 기자들을 단순한 자료수집가로 간주했지만,편집비평은 복음서 기자들을 텍스트의 최종 작업에 개인적으로 책임을 진 편집자 로 생각했다.이러한 연구방법이 발전되어가면서,복음서 기자들의 역할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늘어갔으며,그들은 편집자일 뿐만 아니라 저자로 생각되기에 이르렀다.마침내 노만 페린(Norman Perrin)은 이렇게 쓰게 되었다:"이것은 우리의 연구에 전혀 새로운 차원,즉 일반적인 문학비평의 차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만약 복음서 기자들이 저자들이라면,그들은 다른 저 자들과 마찬가지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7

그래서 복음서를 보다 문학적으로 연구하려는 열망이 다름아닌 역사비평가들에 의해서 처음 표명되었는데,그들은 배타적인 역사비평방법이 한계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역사비평이 실패했다거나 그 목표가 부적절하다고는 생각치 않았지만, 역사비평 외에 무엇인가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팽배했다.당시 성경은 다른 고대문학작품과 동일한 방식으로 연구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대다수의 대학에서 호머의 작품은 최소한 두 개 과에서 연구되어진다.전통적인 역사가들은 고대 세계에 대한 정보들, 즉 사람들이 어떻게 옷을 입었고,식사는 어떻게 했으며,결혼은 어떤 식으로 하고,또 전쟁은 어떻게 했는지를 알고 싶어한다.하지 만 문학연구자들은 이들과는 전혀 다르게,플롯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등장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그 이야기가 독자들 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왜 그러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를 알고 싶어한다.역사비평이 주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동안에,성 경학자들은 성경연구가 아주 지엽적인 관심사에 국한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사실 신약성경연구는 교회사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복음서는 예수와 초대교회의 정보를 얻기 위한 자료로 간주되었고,연구할 만한 중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서사이야기(narrat ive)로는 여겨지지 않았다.1978년에 노만 페터슨(Norman R. Petersen)은 '성경본문들이 어떤 것에 대한 증빙자료로서 다루어지기 전에 먼저 성경본문 자체의 측면에서 이해되어서는 안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했다.8

복음서를 문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인식되고 난 다음에도,그것을 어떻게 구체화시켜 나갈 것인지가 분명치 않 았다.복음서와 호머의 작품 사이에는 심각한 차이가 있다.복음서를 일반문학작품들처럼 다룰 때 제기되는 문제는 복음서가 그 책 들과 본질상 같지 않다는 것이다.9 몇가지 점에서 복음서는 현대의 전기문학보다는 소설과 유사하지만,성경 기자들이 복음서를 기록할 때,그것이 픽션으로 간주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음이 분명하다.많은 학자들은 복음서를 인간의 주관적이고 상상적인 문 학작품으로는 보지 않는다.르네 웰렉(Rene Wellek)과 오스틴 워렌(Austin Warren)은 자신들의 고전적인 문학비평서에서,그러한 상상적인 문학작품에만 엄격한 문학분석이 적용되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10

하지만 복음서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1946년에 에리히 아우엘바하(Erich Auerbach)의 주저인 '미메시스:서구문학에 나타난 실재의 표현'(Mimesis:The Representation of Reality in Western Literature)에 의해서 도전을 받았다.11 아우엘바하가 내린 결론 가운데 하나는 성경의 서사이야기도 일반적인 문학비평의 원칙들에 의해서 연구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서사담론을 표현의 매개물로 사용함에 있어서,성경기자들은 실재를 서사적으로 묘사하는 데 적절한 표현양식을 필연적으로 택하게 되었다.이것은 성 경본문들이 (호머의 작품을 포함해서) 다른 문학작품들과 동일하게 공유하는 특징이다.아우엘바하는 현실세계를 서사양식으로 표 현하는 것이 미학적인 목적과 역사적인 목적 사이의 전통적인 구분을 초월하는 문학의 기본적인 요인이라고 주장한다.사실적이든 상상적이든 서사체로 표현하는 것들에 대해서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용된 표현양식을 관찰함으로써 밝혀낼 수 있다.

1940년대에는 성경학자들에게 뜻밖으로 보여지는 여러가지 입장들이 전개되었다.1940년 이전에 일반 문학비평가들은 한 작 품의 역사적인 저자가 누구인지,그리고 그의 주변세계와 저술의도 등을 밝히려는 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예를 들어,윌리엄 세익 스피어의 연극이나 찰스 디킨스의 소설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그 작품들이 기록되어진 연대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일로 생각되었 다.이들 대가들에 의해서 쓰여진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의례히 그 작품의 주변적인 것들,즉 저자의 경력과 관련되어진 그의 삶과 성품,그리고 그 시대의 영국 사회의 상황 등을 밝혀내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하지만 1940년대에 이르게 되면,이러한 해석방식 은 신비평(New Criticism)이라고 불리워지게 된 방법에 의해서 대폭 교체되었다.12

신비평은 작품의 배경에 대한 정보들이 본문을 해석해내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생각을 거부했다.예를 들어,존 키이츠(Jo hn Keats)가 사랑과 죽음의 주제가 담긴 '빛나는 별'(Bright Star)이라는 소네트를 쓸 때,죽어가는 동생을 간호하고 있었다는 사 실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13 이러한 지식이 실제로 그 소네트 연구에 반영될 때,그것은 되레 혼란만 불러일으키고,그 시를 있 는 그대로 읽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신비평가들은 한 작품의 의미와 가치는 '그 자체로서 이미 완결되고 저자로부터 독립해 있는 공공적인 작품'속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문학비평가가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 적절히 못하다고 주장 한다.14 오늘날 대다수의 문학비평가들은 신비평의 초기단계의 관심사를 넘어가고 있으며,많은 사람들은 그 입장을 극단적인 것 으로 간주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문학작품의 의미가 저자의 역사적인 의도를 초월한다는 것은 문학적인 진영에서는 이 미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15

오늘날 문학비평가들은 내재된 저자(implied author)에 대해서 말하는데,이것은 독자가 서사이야기에서 재구성해낸 인물이 다.16 한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읽을 때,그 사람은 그 이야기의 저자에 대한 인상을 반드시 갖게 된다.그 이야기 자체가 저자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보여준다.예를 들어,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나 단테의 연옥을 읽는 사람은 그 저자들이 기독교인이라고 결론내 릴 것임에 틀림없다.이와 같은 인상들을 통해서,문학비평가들이 말하는 소위 서사이야기의 내재된 저자의 모습이 규명된다.하지 만 이러한 규명의 목표는 실제 저자가 어떻했을 것인가를 단편적으로 이해하려는 데 있지 않고,서사이야기가 어떤 입장에서 해석 되어야 할지를 밝혀내려는 데 있다.내재된 저자의 관점은 그 서사이야기의 외부적인 것들을 고려치 않고서도 밝혀낼 수 있다.그 래서 문학비평가들은 서사이야기가 그 자체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파괴하지 않고,내재된 저자의 의도에 대해 서 말할 수 있는 것이다.한 작품의 실존했던 역사적인 저자가 아닌,그 작품의 내재된 저자에게 해석의 초점이 맞춰질 때,그 서사 이야기는 스스로 말하도록 허용되는 것이다.해석의 열쇠는 작품의 배경에 대한 정보에 있지 않고 작품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내재된 저자에 대한 이러한 개념이 전개됨으로써,문학연구를 위한 중요한 결론들이 많이 산출되었다.예를 들어,한 저자가 그의 실제적인 관점과 상이한 가치들을 지지하는 작품을 출판했을 때,대다수의 학자들은 내재된 저자의 관점이 그 이야기가 의미 하는 바를 결정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비평가는 역사적인 사실확인에 의해서 그 이야기를 쓴 사람이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 이야기는 원 저자와는 관계없이 스스로 자체의 의미를 전달해준다.동일한 저자가 기록한 여러 책들을 연구할 때는 내재된 저자와 원 저자를 구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보물섬(Treasure Island)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Dr. Jeckyl and Mr. Hyde)의 실제 저자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지만,이 두 소설의 내재된 저자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실제 저자와 내재된 저자 사이의 이러한 구별은 신약성경의 복음서 연구에는 별로 의미가 없는데,그것은 복음서 기자들 가 운데 두권의 복음서를 쓴 사람이 없기 때문이며,17 복음서의 실제 저자들의 생각과 그들의 책에 표현된 생각들이 일치한다는 사 실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재된 저자를 밝혀냄으로써,서사이야기의 문학적인 의미 와 효과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모두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그래서 저자를 알 수 없는 작품들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모든 서사이야기들은 실제 저자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내재된 저자를 갖고 있다.실제 저자가 없는 이야기들-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져 내려옴으로써 오랫동안 발전되어온 이야기들-도 서사비평의 원칙들에 입각해서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18 이것은 서사이야기가 형성되어온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도 어떤 서사이야기든지 서사이야기 자체만으로도 확인가능하고 설명이 가능한 내재된 저자를 갖고 있지 때문에 그렇다.

일반문학비평가들은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문학작품으로 연구하는 데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19 그러나 1970년대에 이 르러,그들은 복음서를 문학작품으로 연구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합의에 도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그래서 복음서를 문 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성경학자들이 절실히 인식하게 되고,그러한 방법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일반문학비평가들이 인정함에 따라,이 두 입장이 결국 하나로 모아지게 되었다.이러한 통합은 무엇보다도 학교수업을 통해서 시도되었다.1977년 카티 지 대학(Carthage College)의 데이비드 로드스(David Rhoads)라는 젊은 성경학 교수가 영문과 교수를 초청해서,학생들에게 복음 서를 단편소설 읽는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돈 미치(Don Michie)의 강의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로드스의 시야 도 열어주었다.그 강의의 결과로 1982년에 '이야기로서의 마가복음'(Mark As Story)이 출판되게 되었는데,20 이 두 학자들이 협 력해서 내놓은 이 책은 그 이전에 출판된 어떤 책보다 복음서를 문학작품으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21 그 다음해에는 잭 킹스베리(Jack D. Kingsbury)가 '마가복음의 기독론'(The Christology of Mark's Gospel)을,22 그리고 알란 컬페 퍼(Allan Culpepper)가 '요한복음해부'(Anatomy of the Fourth Gospel)라는 책을 펴냈는데,23 이 두 책은 로드스가 '서사비평'( narrative criticism)이라고 부르기로 한 연구방법을 의도적으로 따르고 있다.24 몇년 후에 킹스베리는 마태복음의 주요 서사이 야기를 연구해서 책으로 펴냈으며,로버트 탄네힐(Robert C.Tannehill)은 누가복음-사도행전의 서사이야기분석을 했다.25 이 방법 을 오늘날에는 많은 학자들이 사용하고 그들이 성경연구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이 네 사람-로드스,킹스베리,컬페 퍼,탄네힐-은 서사비평의 선구자들로 인정받을 만하다.그들은 서사체로 되어 있는 신약성경의 다섯책들을 종합적으로 다룬 최초 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26

문학비평과 역사비평


최근에 나타난 문학적인 성경연구방법과 전통적인 역사비평방법 사이의 관계는 매우 모호하다.한편으로 보면,문학적인 연 구방법론은 양식비평과 편집비평에 그 논리적인 기원을 두고 발전해 왔기 때문에,그 연속선 상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다른 한 편으로 보면,이 새로운 문학적인 방법은 본문해석에 있어서 역사적인 연구의 중요성을 거부하는 일반문학비평운동을 따르고,거기 서 제시하는 개념들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문학비평27과 역사비평의 주된 차이점을 밝히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1.문학비평은 텍스트의 완결된 형태에 초점을 맞춘다.문학비평적인 분석의 목적은 본문이 형성되어온 과정을 추적해내는 것이 아니고,현존하는 본문을 있는 그대로 연구하는 것이다.역사비평방법에서는 본문의 구성사가 중요하다.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료비평은,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복음서의 형성 이전부터 있었고,복음서 형성의 자료가 된 문서들을 밝혀내고 평가하는 데 힘 을 기울인다.양식비평은 전승양식이 복음서의 틀 속으로 들어오기 이전에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관심을 둔다.편집비평은 본문 형성의 최종 단계에서 복음서 기자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밝혀내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문학비평은 이러한 본문의 발전과정 에 대한 관찰을 거부하지는 않지만,그것들을 무시한다.궁극적으로 문학적인 해석은 본문의 어떤 부분이 본문형성 이전에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문학비평의 목표는 현재의 본문을 그 완결된 형태로 해석하는 것이다.28

2.문학비평은 본문의 전체적인 통일성을 강조한다.문학분석은 본문을 분해하지 않고,그것을 묶어주는 이음매를 찾아낸다. 그래서 복음서는 통일성있는 서사이야기로 간주되며,각 구절들은 그 이야기 전체를 구성하는 측면에서 해석된다.역사비평에서 복 음서는 느슨하게 연결된 단편들의 조합으로 여겨지며,대개 각각의 개별 전승단위들이 분석의 대상이 된다.자료비평과 양식비평에 서는 복음서 전체 문맥과는 동떨어진 특정 구절이나 이야기를 해석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편집비평에서조차 때로는 어떤 구절 이 같은 책에서 다른 구절들과 갖는 내적인 연관성을 밝히기 보다는 다른 복음서들에 나타나는 평행구절들과 비교하는 데 더 많 은 관심을 기울인다.29

3.문학비평은 본문 자체를 최종적인 것으로 본다.문학연구의 근본목표는 서사이야기를 연구하는 것이다.전개되는 이야기와 그것이 이야기되는 방식은 온전히 학문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적합하다.역사비평은 본문 자체를 최종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최종 적인 사실을 도출해 내는 증빙자료로 생각한다.역사비평에서 최종적인 것은 예수의 생애와 그의 가르침,예수에 대한 전승을 보전 해온 초대 기독교인들의 관심사들,또는 복음서 기자들과 그 공동체들의 관심사와 같이 본문이 입증해주는 것들을 재구성한 것이 다.

이러한 연구방법들 사이의 차이점은 창문과 거울의 비유로 적절히 설명되어 왔다.30 역사비평은 본문을 창문으로 간주하고 ,비평가는 그것을 통해서 다른 시대와 장소에 대한 어떤 것을 알고자 한다.그래서 본문은 독자와 독자가 추구하는 통찰 사이에 서 있으며,통찰이 얻어질 수 있는 수단들을 제공한다.이와는 반대로 문학비평은 본문을 거울로 간주한다.비평가는 본문을 보려고 하며,그것을 통해서 다른 무엇을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그리고 독자가 본문 자체와 만남으로써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종종 이야기되는 것처럼,문학비평는 본문의 시적인 기능(poetic function)을 다루고 역사비평은 본문의 사실대조기능(refe rential function)을 다룬다.이것은 서사이야기가 사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도,문학비평가들이 그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서사이야기 세계는 그 역사성에 비추어서 평가되기보다는 오히려 있는 그대로 수용되어지고 경험되어 지는 것이다.신약성경의 복음서를 보면,하나님은 하늘에서 명확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며,환상적인 기적들이 다반사로 일어나며,인 간들은 천사와 마귀들과 같은 영적인 존재들과 자유롭게 교류한다.이러한 측면들은 사실대조기능의 관점,다시 말해서 본문이 현 실세계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복음서 서사이야기를 평가하는 역사비평가들에게는 때로 문제시된다.하지만 문학비평가는 이러한 요소들이 이야기를 만드는 데 어떻게 기여하며,그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밝히는 데 흥미가 있다.

이것은 문학비평가들이 역사적인 탐구의 적합성을 문제삼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또한 이것은 그들이 자신들이 읽 는 것은 무엇이든지 완전히 역사적이라고 순진하게 받아들인다거나,아니면 성경을 사실에 거의 근거를 두지 않은 이야기들의 수 집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오히려 이 비평가들은 본문의 문학적인 특징에 초점을 모으기 위해서,역사성의 문제를 연 구의 영역에서 배제시키고 있는 것이다.그들은 성경의 서사이야기들이 사실대조기능을 하며,성경본문을 그러한 측면에서 연구하 는 것이 가치있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4.문학비평은 말-행동 이론 (speech- act theory)의 의사소통모형 (communication model)에 근거를 둔다.문학비평의 철학적인 근거들은 의사소통 이론들에서 나왔다.이 이론들 가운데 가장 간명하면서도 가장 심오한 것은 로만 야콥슨(Roman Jako bson)이 제시한 말-행동 모형이다.31 야콥슨은 모든 의사소통 행위는 발신자,메시지,수신자를 갖는다고 주장한다.문학작품에서 발신자는 저자,메시지는 본문,그리고 수신자는 독자와 동일시된다.

저자---------->본문-------->독자

이 구성요소들이 다른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는 정확한 방식은 문학비평의 학파들에 의해서 각각 다르게 이해된다(2장을 보 라).하지만 모든 문학이론들은 텍스트를 의사소통의 형태로 이해하는데,메시지는 텍스트를 통해서 저자로부터 독자에게로 전달되 어진다.

이와는 반대로 역사비평에서는 본문을 발전론적인 모델에 근거해서 연구한다.32 본문은 일련의 연속적인 단계들을 거쳐서 발전해온 최종 형태로 간주된다.그래서 이 단계들을 밝히고 설정된 본문의 기원 형태를 재구성함에 있어서,이전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한 분석적인 과정이 해석의 임무에 포함된다.복음서의 경우에 신약학자들은 그 발전론적인 과정을 다음과 같이 도표 화했다:

역사적인 사건
|
구전전승
|
초기의 기록된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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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앞에 제시한 의사소통모형에서처럼,이 모형에서도 신약성경 복음서 가운데한권을 텍스트로 설정해도 무방하다.하지만 문학 비평에서는 이 본문이 의사소통행위에서 중간적인 구성요소로 간주되는 데 비해,역사비평에서는 발전과정의 최종적인 산물로 여 겨진다.본문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 외에는 이 두 방법은 전혀 공통점이 없다.문학비평은 본문의 수평적인 차원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역사비평은 본문을 나누는 수직적인 차원을 다루고 있다.

이렇듯 상이한 두 연구방법들은 서로 다른 철학적인 모형들에 기초하고 있어서,각자 다양한 유형의 연구결과를 산출해낼 것으로 보인다.문학비평은 본문의 의미를 기술함에 있어서,본문이 저자와 독자 사이에 의사소통케 하는 측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자 하며,역사비평은 본문의 의미를 본문의 기원과 발전과정의 측면에서 기술하려고 한다.그래서 이 연구결과들은 결코 상충되지 않으며,이 두 모형들은 개별적으로 또 상호보완적인 방식으로 적절히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차례

 

 

제2장 독서방법들


문학비평은 다수의 상이한 방법론들을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이다.성경연구의 역사가 다양한 해석방법들의 부침을 보여주는 것처럼,문학비평의 역사도 특정한 이론들을 선호하는 여러 운동들로 채워져 왔다.문학비평가가 되려는 사람은 형식주의(Formali sm),사실주의(Realsim),사상주의(Imagism),심미주의(Aestheticism),퇴폐주의(Decadence),해체주의(Deconstrution) 등등의 학파에 대해서 배운다.1 여기서는 서사비평을 성경연구에 사용되어지고 있는 다른 문학연구방법들과 비교하면서,그것들이 어떤 점에서 비슷하며,또 어떤 점에서 서로 다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다양해서 혼란스럽기까지 한 문학이론들에 어느 정도 질서를 부여하려고 할 때,아브람스(M.H.Abrams)가 고안해낸 분류체계 가 도움이 된다.2 아브람스의 견해에 의하면,문학비평에는 네 가지의 기본적인 유형들이 있으며,모든 학파들은 이 네가지 유형 가운데 하나 또는 두 가지 정도를 표방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진다.

1.표현적인 비평유형 (Expressive types of criticism)은 저자중심적(author-centered)이며,어떤 작품이 저자의 관점과 성격을 얼마나 진지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는가에 비추어서 그 작품을 평가하려고 한다.

2.실용적인 비평유형(Progamtic types of criticism)은 독자중심적 (Reader-centered)이며,작품구성의 목적을 청중에게 특별한 효과를 유발하기 위한 데 있는 것으로 본다.이 목적을 성취하는 데 성공했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작품이 평가되어진다.

3.객관적인 비평유형(Objective types of criticism)은 본문중심적 (text-centered)이며,문학작품을 그 자체적으로 충족된 하나 의 세계로 간주한다.작품은 내부적인 비판의 기준들,즉 그 구성요소들의 상호관련성에 의해서 분석되어야 한다.

4.모방적인 비평유형(Mimetic types of criticism)은 문학작품을 외부세계 또는 인간 삶의 모사(reflection)로 보며,그 묘사의 사실성이나 정확성에 근거해서 작품을 평가한다.

아브람스가 제시한 문학비평유형 가운데 처음 세가지 유형들은 1장에서 도표로 표시한 의사소통모형의 세 요소,즉 저자,본 문,독자에 각각 상응된다.그리고 네번째 유형은 우리가 발전론적인 모형이라고 명명한 것,즉 역사비평의 철학적인 근거와 관련된 다.나는 해석을 위한 의사소통모형과 발전론적인 모형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각각 해석의 수평적이고 수직적인 차원을 반영 한다는 사실을 이미 밝힌 바 있다.아브람스가 제시한 문학비평의 네가지 유형들은 일반문학연구에서 이러한 두 차원의 작업이 서 로 결합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아브람스의 비평모형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케 한다.나는 비평을 성경학자들이 '역사비평'이라고 부르는 것과 그들이 '문학비평'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구분했다.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문학비평을 폭좁게 정의 한 데서 비롯되었으며,일반문학비평가들은 이러한 구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역사비평이든 문학비평이든 넓은 의미의 문학비평에 속한다는 것이다-역자주).아브람스는 이러한 구분이 문학비평의 각 유형 사이에서 되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성경학자들이 보통 역사비평방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학비평 가운데 사실대조(모방)적이고 저자중심적(표현적)인 모형이다.최근에 성경연구를 주 도해온 신비평은 문학비평의 다른 유형들,즉 본문중심적(객관적)이고 독자중심적(실용적)인 방법에 해당한다.

이러한 네가지 방법들이 요즘 신약성경 복음서 연구방법들,즉 구조주의(Structuralism),수사비평(Rhetorical criticism), 독자반응비평(reader-response criticism),그리고 서사비평(narrative criticism) 등에 적용되고 있다.3

구조주의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프랑스에서 주로 발전되어온 구조주의4는 문학작품을 현대의 언어이론의 입장에서 분석하려는 객관 적인 비평유형이다.역사적으로 살펴보면,구조주의 운동은 블라디미르 프롭(Vladimir Propp)의 저작에서 분명히 표명된 소위 러시 아 형식주의(Russian Formalism)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러시아 민담들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를 통해서5,프롭은 각각의 이야기에 서 특정한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행동들이 비록 다르게 묘사되고 있어도 등장인물들의 행동의 기능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 을 명백히 보여주었다.100여 가지의 이야기들을 연구한 후에,프롭은 일련의 연속성을 갖고 거의 불변하게 반복되는 31가지의 기 능들을 밝혀냈다.몇가지 기능들이 어떤 이야기에서 빠져 있을 때에도 다른 기능등의 연계성은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프롭은 밝혀내었다.

오늘날 구조주의자들은 심층구조를 연구하면서,프롭이 발견해 낸 것과 같은 단순히 일직선적인 구조배열을 검색하는 데에 만 연구를 국한시키지 않는다.그들은 구조의 이러한 순차적(syntagmatic:연속적)인 조합 뿐만 아니고,병렬적(paradigmtic)인 차 원,즉 서사이야기 전개의 연속적인 순서와는 상관없이,본문의 여러 부분들에서 나타나는,본문 내에서의 관계성을 찾는다.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악보의 분석이 때로 사용된다.악보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혀져야 한다.뿐만 아니라,악 보는 위와 아래로 읽혀져야 하는데,이것은 개별음표들이 때로는 독립된 화음단위를 이루기 때문이다.본문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가장 공통적인 관계성 가운데 하나는 내적인 구조를 만들어주는 대조의 조합,즉 도식적인 짝(schematic pairs;선과 악,삶과 죽 음,부자와 빈자)들의 관계성이다.앞에서 말한 대로,이러한 대조의 조합들은 본문의 여러 부분에서 발견되어진다.그리고 이러한 대조들 가운데 어떤 것은 단순히 구문론적이고 어떤 것은 논리적이며,또 어떤 것은 그 작품이 제시하는 신화적인 체계를 함축하 고 있다.구조주의자들은 본문을,내재하는 한 층의 구조 위에 다른 구조층이 덧씌워진,의미들의 총체로 생각한다.일반적으로 말하 면,구조주의자들은 본문의 '심층구조'( deep structure)를 밝혀내는 것을 연구의 목표로 삼는다.이것은 심층구조가 저자의 의도 적인 생각들을 초월하는 본문 자체의 신념체계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 구조주의는 방법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철학이다.법학,사회학,그리고 수학에 대한 구조주의자들의 연구방법도 이와 동일한 이론적인 성향에서 이루어진다.문학비평의 한 학파로서 구조주의는 '문학의 문법'(grammar of literatur e)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이러한 작업은 문학작품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이해하는 데 목표를 둔다.그들이 세운 가설은 확립된 법칙들이 문학작품의 기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언어를 지배하는 법칙들에 대해 서 명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듯이,대다수의 저자들은 문학작품의 법칙들을 의식적으로 따르려고 하지는 않는다.그럼에도 불구 하고 문학작품은 의사소통의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본문의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관습들을 따를 수 밖에 없다.그래서 한 본문의 의미는 문학의 문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저자의 의도나 독자의 인식보다는 오히려 본문의 심층구조 속에서 발견되어진다.그래서 구조주의자들은 본문이 갖고 있는 의사소통의 전략을 분석해냄으로써,저자 조차도 하지 못하는 방 식으로 그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 유능한 독자가 되려고 한다.

성경학자들은 성경의 문학적인 성격과 신학적인 의미를 밝혀내기 위해서 구조주의방법을 사용해왔다.예를 들면,다니엘 패 트(Daniel Patte)는 마태복음을 구조주의적인 방법으로 주석함으로써,마태의 신앙,즉 마태복음이 자체 증거하는 신념체계를 설명 해내고자 한다.이러한 신념들은 마태복음 속에서 식별될 수 있는 대조적인 것들,예를 들면,마태복음 9:16-17의 새것과 옛것 사이 의 대조나,23:2-3의 말하는 것과 행함의 대조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이러한 대조들은 그 구절의 중심사상을 확인시켜줄 뿐만 아 니라,작품전체를 엮어주는 신념체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한다.

서사비평은 문학작품을 본문중심적(객관적)인 방법으로 연구한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와 유사하다.하지만 서사비평은 구조주 의와는 상이한 개념들을 사용하며,철학적인 깊이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서사비평가들은 굳이 문학의 법칙들을 연속적이고 정교 한 구조적 원칙들로 간주하지 않는다.일반적으로 말해서,그들은 다른 의미의 층에서 밝혀질 수 있는 관계성(즉 파라디그마틱한 면-역자주)보다는 서사이야기의 선적이고 연속적인 이야기 진행(즉 신태그마틱한 면-역자주)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그들은 작 품을 형성하고 있는 심층구조를 밝혀내기 보다는,그 이야기의 표면적인 의미를 밝혀내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하지만 이 러한 차이점은 절대적이 아니며,원칙적으로 두 방법론은 서로 절충해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수사비평


문학의 영역에서 수사비평은 한 작품이 그 독자들에게 어떤 특별한 영향을 미치는 문학적인 기법에 초점을 맞추는 실용적 인 문학연구방법으로 간주된다.로마의 시인이며 풍자가인 호레이스는 저술의 목적이 교훈을 주는 것이거나 독자들을 기쁘게 하는 것,또는 아마도 이 둘 다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8 키케로는 세번째 기능,즉 감동케 하거나 설득하는 것에 대해서 말했다.9 수사 비평가들은 문학작품이 이 목적들을 어떻게 달성하며,그것이 왜 그러한 특별한 효과를 일으키는지를 밝혀내고자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가지 유형의 수사학을 정의하는 이론을 세웠다:고발하거나 변론하는 법정의 수사학;충고를 하는 신중 함의 수사학;칭찬하거나 비난하는 웅변의 수사학.10 이러한 효과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휘될 것인가 하는 것은 논증이나 증명 의 유형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즉 자료들이 배열되어지는 방식,그리고 그것이 전달되는 방식을 살핌으로써 알 수 있다.예를 들어,수사비평가들은 한 작품이 전달하려고 하는 의도 뿐만 아니고,그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 인다.때로 외적인 증거나 기록이 인용되기도 하고,작가의 신뢰할 만한 성품이 드러나기도 한다.또 어떤 경우에는 독자들의 감성 이나 논리적인 성격에 호소하기도 한다.하지만 이러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이야기가 전달되어지는 수사적인 상황(rhetorical sit uation)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수사비평에서는 그 작품이 염두에 두고 있는 청중의 주변상황에 대해서 가능한 한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어떤 비평가는 '특정한 담론(discourse)은 그것을 발화케 하는 어떤 구체적인 조건이나 상황이 있을 때 나타 나게 된다'고 주장했다.11 상황이 수사적인 반응을 결정하기 때문에,등장인물들,사건들,대상들,그리고 그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관계들을 살피는 일은 비평가에 부여된 책임이다.수사비평은 문학을 독자들의 반응으로 보는 이러한 견해에 의해서 독자중심의 방법으로 간주된다.본문은 그것이 염두에 두고 있는 독자들의 입장에서 이해되어진다.12

신약성경학에서 수사비평은 서신서나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일부분,즉 독립적인 문학단위로 구분되어지는 부분,이를테면 연 설들의 연구에 주로 사용되어왔다.13 예를 들어,한스 디터 베쯔(Hans Dieter Betz)는 갈라디아서를 당시 법정에서 변호를 위해 사용했던 법정의 수사학의 유형에 비추어서 연구하고 있다.14 고전주의자인 조지 케네디(George Kennedy)는 산상설교를 신중함의 수사학에 비교하며,요한복음13-17장의 예수의 말씀을 웅변의 수사학에 비교하고 있다.그는 또한 본문이 의도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복음서에서 사용하는 기법들(기적의 증거,증인들의 증언,성경의 인용 등등)을 연구한다.15

서사비평은 한 작품이 그 독자들에게 미치는 효과를 밝혀내고,그것이 왜 이러한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설명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수사비평과 유사하다.하지만 서사비평은 그것을 보다 본문중심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독자의 개념을 채택하고 있다.기본적으로 서사비평은 본문 자체에 의해서 가정되어지고 본문 자체로부터 형성된 가상적인 '내재된 독자'(implied reader )의 관점에서 본문을 해석한다.그래서 서사비평에서는 본문이 원래 염두에 두었던 실제 독자들의 역사적인 상황을 알 필요가 없 다.

여기에 덧붙여서,서사비평은 고전적인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된 것과는 다른 유형의 수사학,즉 설득의 수사학이 아닌 서사 적 수사학에 관한 분석작업을 포함한다.'소설의 수사학'(The Rhetoric of Fiction)에서 웨인 부스(Wayne Booth)는 소설연구에 적 합한 수사비평양식을 전개하고자 한다.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과는 다른 범주를 제시한다.예를 들어,논증의 유형을 검증하 는 대신,부스와 그의 동료들은 등장인물의 유형을 살핀다.그들은 플롯 전개를 분석하고,이러한 수사학적인 기법들을 아이로니(ir ony)와 감정이입(emphathy)이라고 명명한다.일반 문학진영에서는 이러한 서사연구방법을 일종의 수사비평으로 간주한다.하지만 성경연구에서는 부스의 방법을 서사비평에 속하는 것으로 보려고 한다.

독자-반응비평


그 이름이 의미하듯이,독자-반응비평16은 실용적인 문학연구방법이며,작품의 의미를 결정함에 있어서 독자의 역할을 강조 한다.더 적절히 말하자면,독자반응비평은 독자의 역할을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하는 연구방법들의 집합체이다.

1966년에 나타난 한 중요한 문학비평서는 서사문학이 이야기(story)와 이야기하는 사람(storyteller)이라는 두 가지 요소 로 특징지워진다고 보았다.17 그래서 야콥슨의 의사소통모형의 세번째 구성요소(저자-역자주)는 사라져 버렸다.독자반응비평가들 은 그 이전의 문학비평가들이 저자의 저술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독자의 독서행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그동 안 등한시되어온 독자의 역할을 부각시키고자 했다.무엇보다도 텍스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결정해야 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텍스트의 독자들이다.독자반응비평가들은 독자들이 문학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며,그들이 어떤 근거에 의해서 특정한 작품의 의 미를 창출하고 만들어내는지를 발견해 내기 위해서 독서과정의 역동성을 연구한다.

독자반응 비평가들은 독자의 반응을 일으키는 동인들을 각기 다르게 제시하며,특별히 텍스트 자체가 그러한 반응들을 불러 일으키는 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이견을 보인다.아래에 제시하는 도표는 앞으로 논의하게 될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이론들을 제시하고 체계화하기 위한 것이다.18 도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일반 문학비평가들은 대체로 구조주의와 서사비 평을 독자반응운동의 변이형태로 볼 것이다.하지만 성경연구에서는 독자반응비평이라는 용어는 도표의 처음 두 부류들만을 가리 키는 데 사용되어진다.이것들은 세번째 부류에서 제시하는 연구방법보다 실용적(독자중심적)이다.

독자-반응 이론들
I.텍스트보다 독자를 강조하는 이론들
1.(?)해체이론*(데리다[Derrida])
2.심리적 변형비평(transactive criticism)(홀랜드[Holland])
3.해석공동체이론(interpretive communities)(후기의 피쉬[Fish])
II.텍스트와 독자를 동일하게 강조하는 이론들
1.감성문체론(affective stylistics)(초기의 피쉬)
2.현상학적 비평(phenomenological criticism)(이저[Iser])
III.독자보다 텍스트를 강조하는 이론들
1.구조주의*
2.서사비평*

*이 이론들은 성경연구에서는 서사비평의 변종들이라기 보다는 대체로 독자반응이론에 해당하는 독립된 방법론들로 간주된다.

몇몇 독자반응비평가들은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우월성을 강조해왔다.작품의 의미가 상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독자들은 한 작품을 해석함에 있어서 문학적인 역동성이나 저자의 의도에 굳이 얽메이지 않는다.해체주의로 알려진 운동은 이러한 생각을 지지한다.해체주의는 구조주의가 제시한 일종의 언어학에 기초한 본문분석이 과연 작품의 참된 의미를 밝혀낼 수 있는지에 회의 적인 학자들이 선호하는 이론이다.그들은 쟈끄 데리다(Jacques Derrida)19의 영향을 받았는데,궁극적으로 텍스트들이 성립가능한 의미들의 끝없는 심연으로 텍스트 자체를 해체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그래서 해체주의는 독자들로 하여금 텍스트를 창조적으 로 보게하며,독자들이 의미있는 효과를 무제한으로 그리고 다양하게 산출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사실 해체주의는 궁극적으로 작품의 의미가 독자들의 경험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다는 것까지 부인하기 때문에,전적으로 독자반응이론 에 속한다고는 할 수 없다.이런 점에서 결국 이 운동은 다른 유형의 이론들과는 상이하며 구별되게 다루어져야만 한다.20

독자반응비평가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독서의 과정을 심리분석적인 개념들로 설명하려고 한다.노만 홀랜드(Norman Holla nd)는 독자적인 문학체계를 고안했고,그것을 심리적 변형비평이라고 명명했다.이 이론은 해석이 주로 독자의 자기방어와 기대,그 리고 희망성취의 환상들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21그래서 홀랜드는 의미파악에 있어서 인간성품의 측면 을 강조한다.독자는 자신의 동질성에 부합되게 내용을 변형시킴으로써 텍스트로부터 의미를 찾아낸다.텍스트는 보편적이고 정확 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몇몇 학자들은 텍스트의 의미결정에 있어서 독자의 역할에 이처럼 극단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해석학적인 무질서를 야기 시키지 않을까 염려한다.로미오와 쥴리엣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연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어떤 사람은 그것을 비극적이라고 생각치 않고 재미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어떤 사람은 마가복음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는 장면을 읽으면서,예수가 그러한 처형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과연 이러한 해석이 잘못된 독서의 결과라고 판정할 만한 규준은 없는가?비평 가가 이것은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는가?스탠리 피쉬(Stanley Fish)는 해석공동체들에 대한 자신의 이론에서 한가지 근거를 제시했다.22 어떤 주어진 텍스트를 혼자서 읽는 것은 상이한 해석을 낳지만,동일한 독서기 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해석을 하게 된다.그래서 해석공동체 내에서는 공동체의 독서기준에 부합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서 독서행위가 평가되어진다.

독자반응비평에는 또한 독자의 역할을 보다 제한된 것으로 보려는 연구방법들도 포함된다.독자와 텍스트의 관계는 변증법 적이어서,의미는 독자들이 텍스트로부터 창출해내는 것이 아니고,독자와 텍스트 상호관계의 역동적인 산물로 이해되어져야만 한 다.각 요소(텍스트와 독자)는 잠재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서로를 변형시킨다.피쉬는 자신의 초기 저작에서,이러한 상호작 용의 과정을 기술한 감성문체론이라는 모형을 제시했다.23그는 독자가 텍스트를 순차적으로 읽어나갈 때,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추적해내고자 했다.독서과정의 한 시점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독자는 그때까지 읽은 것에 대한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고,앞으 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될 것이다.독서를 계속하면서,이러한 기대들 가운데 어떤 것은 이루어지기도 하 고 또 어떤 것은 이루어지지 않기도 할 것이다.이루어지지 않은 기대들은 그릇된 기대들로서,독자로 하여금 앞에서 내린 결론을 수정하게 만든다.이렇듯 텍스트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독자는 계속 자신의 반응들을 점검하고,텍스트를 순서대로 읽어가면서 그 릇된 반응들을 수정하도록 촉구된다.

이와 유사하게 텍스트와 독자의 상호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고안된 모형이 볼프강 이저(Wolfgang Iser)의 현상학적 비평 이다.24 피쉬와 같이 이저는 독서경험을 기대,위축,반성,그리고 재구성의 점진적인 과정으로 본다.피쉬가 한줄 한줄 읽어가는 순 차적인 독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이저는 작품을 전체적으로 파악해내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독자의 반응들은 작품의 일 관성을 발견해 내려는 욕망에 의해서 제한된다.그래서 그 작품은 독자들로 하여금 성립가능한 해석을 하도록 하는 자극을 줄 뿐 만 아니라,작품 전체에 적용될 수 없는 해석을 하지 못하게 하는 내적인 제약들을 동시에 갖고 있다.하지만 이저는 이러한 제약 들이 부분적임을 강조한다.텍스트는 독자들이 주관적으로 채워넣어야 하는 수많은 간격들(gaps),또는 비결정적인 요인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독자의 창조적인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게 인식되어진다.

유사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구조주의와 서사비평은 독자반응비평방법과는 다르다.구조주의와 서사비평이 텍스트가 독자의 반응을 결정한다고 보는 반면,독자반응비평은 독자가 의미를 결정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그래서 그들은 독자를 텍스트 안에 있는 것으로 본다.다시 말하면,독자가 텍스트 안에 코드화되어 있거나(구조주의),텍스트에 의해서 전제되어 있다(서사비평)고 보는 것이다.구조주의는 텍스트가 제시하는 독자의 반응을 밝히기 위해서 텍스트에 내재해 있는 코드들을 해독해내려고 한다.서 사비평은 텍스트의 코드들과 부호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그 자체의 범주들에 근거해 있는 다른 모형들을 제공한다.

서사비평


일반문학연구에서는 서사비평운동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앞에서 언급한 세가지 방법들과는 달리,이 운동은 일반문학 계에서는 그 정확한 대응물을 찾을 수 없으며,성경연구 분야에서만 발전되어왔다.만약 일반비평가들이 서사비평을 분류한다면,그 것은 수사비평의 새로운 유형이거나 독자반응운동의 일종으로 여길 것이다.하지만 성경학자들은 서사비평을 그 자체적으로 독립 적이고 동등한 운동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문학비평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들 가운데 하나는 '독자가 누구인가?'(Who is the reader?)하는 문제이다25 수사비평은 어 떤 작품이 처음에 전해진 원 독자들(때로 의도된 독자들[intended reader]로 불리운다)에게 관심이 있다.구조주의는 작품의 코드 를 이해하는 유능한 독자(competent reader)의 반응을 밝히고자 한다.피쉬와 이저는 연속적인 순서를 갖고 있는 텍스트를 처음 대면하는 독자(first-time reader)의 반응을 기록한다.피쉬는 자신의 후기 저작에서,우리가 독서공동체(reading communities)를 생각한다고 주장한다.오늘날 문학비평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각 학파가 독자에 대해서 갖고 있는 상이한 개념들에 근거 한다.그래서 문학비평가가 '독자'라는 말을 사용할 때,먼저 '당신이 말하는 독자는 어떤 독자를 의미하느냐?'라고 물어야 할 필 요가 있다.

서사비평은 일반적으로 서사 이야기 그 자체에 의해서 설정된 내재된 독자(implied reader)에 대해서 말한다.26 내재된 독 자는,내재된 저자가 실제 역사적인 저자와 다른 것처럼,실제 역사적인 독자와는 구별된다.실제 독자들의 사실적인 반응들은 예측 이 블가능하지만,내재된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예측할 수 있는 단서들은 서사 이야기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그래서 서 사비평을 위한 의사소통모형은 다음과 같이 그려진다:

실제저자---------------->텍스트---------------->실제독자
+-------------------------/\----------------------------+
내재된 저자------------->서사이야기------------>내재된 독자

실제저자와 실제독자는 텍스트 자체의 매개변수 밖에 위치하는 것으로 표기된다.세개의 중간요소들(내재된 저자-서사이야기-내 재된 독자)은 지금까지 단순히 텍스트로 지칭되던 것이 차지하고 있던 위치를 대신한다.그래서 우리는 이 도표에서,텍스트가 보 다 큰 의사소통모형에서 메시지의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세가지 요소(발신자,메시지,수신자)를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그 자체적으로 완전한 의사소통모형으로 여겨질 수 있음을 본다.서사비평은 텍스트를 완전한 의사소통모형으로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으며,그래서 실제저자와 실제독자를 텍스트 자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행위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외 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내재된 독자,즉 텍스트 안에 있는 독자라는 개념은 서사비평을 순수히 독자중심적(실용적) 비평유형으로부 터 벗어나게 하고,보다 텍스트 중심적(객관적)인 방법을 택하도록 한다.

위의 도표에 나타난 의사소통구조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들을 갖는다.예를 들면,그 구조는 독자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논의할 근거를 마련해준다.수사비평과는 달리,서사비평은 작품을 텍스트의 실존한 원래의 청중들의 관점에서 해석하지 않는다.그 래서 텍스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이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하지만 내재된 독자는 텍스트에 기 술되지 않은 것들을 알고 있다.예를 들어,오늘의 실제 독자들은 모른다고 해도,복음서의 내재된 독자는 한 달란트가 한 데나리온 보다 가치가 있다는 사실(텍스트는 이것을 말한다)을 분명히 알고 있다.다른 예를 들면,입장이 바뀌어진다.실제 독자들은 어떤 이야기의 내재된 독자가 결여하고 있는 지식(예를 들면,다른 복음서들에서 나타나는 지식)을 자신들이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하 지만 이러한 지식은 이야기의 의도된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서사비평의 목적은 텍스트를 내재된 독자로서 읽는 것이다.킹스베리는 내재된 독자를 '그 안에서 텍스트가 의도하는 바가 항상 달성되는 것처럼 생각되어지는 상상의 인물'로 정의한다.27 이러한 방식으로 읽기 위해서는,독자들이 안다고 텍스트가 전제 하는 것은 모두 알아야 하며,독자가 모른다고 텍스트가 생각하는 것은 모두 '잊어야' 한다.비평가는 독자가 질문할 것이라고 텍 스트가 생각하는 질문을 해야 하며,내재된 독자가 하지 않을 질문에 빠져들어서는 안된다.28 더우기 내재된 독자를 마치 텍스트 를 처음 읽는 독자인 양 생각해서는 안된다.서사 텍스트는 독자가 여러번 독서를 한 후에만 비로소 온전한 이해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29

몇몇 독자반응비평가들은 서사비평이 채용한 내재된 독자의 개념을 거부한다.그들은 이 개념이 해석학적인 사실들(hermene utical realites)을 밝혀내는 데 무관심하다고 주장한다.실제 독자는 텍스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복합적인 상호관계들을 파악할 수는 없다.뿐만 아니라,실재하지 않는 내재된 독자들에 대한 언급들은 언제나 실제 독자들에 의해서 되어지기 때문에,내 재된 독자개념은 필연적으로 실제 독자의 특정한 관심사나 상황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 해석학적인 순환에 관한 논의가 서사비평가들과 독자반응학자들 사이의 계속되는 대화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이제는 서사비평에서 말하는 내재된 독자가 가설적인 개념(a hypothetical concept)임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그러한 인물이 실존했었다거나 앞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내재된 독자가 추상 화된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텍스트를 내재된 독자로서 읽는 목적은 달성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은 여전히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적으로 남을 것이다.사실 그 개념(내재된 독자-역자주)은 해석을 위한 기준을 세우는 한 원칙이다.기존의 독서이론에 대해 이러한 질문이 제기된다:독자가 이러한 방식으로 반응할 것으로 기대되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떤 것이 텍스트 내에 있는가? 서사비평가들은,이 질문에 관한 절대적으로 분명하거나 완벽하고 명확한 대답을 언제나 얻을 수 있을 것으로는 생각치 않는다고 해도,이 질문을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초보자들에게는 사소하게 보이는 것인데,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생각이 옳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최근에 서사비평과 독자반응비평은 점차로 결합되어져 가고 있다.이저(Iser)는 내재된 독자를 텍스트 자체에 속해 있는 내재된 저자의 구상물보다는 실제 독자와 텍스트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형성된 구상물로 정의하고 있긴 하지만,분명히 내재된 독자개념을 채택하고 있다.부스는 내재된 독자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저자의 침묵이 독자에게 미치는 효과- 이저의 '간격'에 해당하는 개념-를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30 여기서 논의된 모든 문학비평유형들 가운데 서사비평과 독 자반응의 (텍스트와의) 대화적인 방식들이 가장 유사하며,이 둘은 궁극적으로는 분리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차례

 

 

제3장 이야기와 담론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서사비평은 서사이야기라고 하는 한 특정한 문학유형을 연구하는 것이다.서사이야기(narrative) 는 독자들에게 이야기(story)를 들려주는 문학작품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이것은 상당히 폭넓은 정의이긴 하지만,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용어는 아니다.예를 들어,어떤 문학비평학파들은 서사이야기 보다는 수필이나 시를 연구하는 데에 심혈을 기 울인다.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네 복음서들과 사도행전만이 서사이야기로 분류된다.서신서는 서사이야기에 속하지 않는다.1

서사이야기는 이야기(story)와 담론(discourse)이라는 두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2 이야기는 서사이야기의 내용,즉 서사이 야기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가리킨다.하나의 이야기는 사건(events),등장인물(characters),배경(settings)이라는 요소들로 이루 어져 있으며,이 세 요소의 상호작용을 플롯(plot)이라고 한다.담론은 서사의 수사학(the rhetoric of narrative),즉 이야기가 전 개되는 방식을 말한다.기본적인 사건,등장인물,그리고 배경이 동일한 이야기라고 해도,이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엮느냐에 따라 상 이한 서사이야기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네 복음서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서사비평은 채트맨(Chatman)이 '담론되어진 것으로서의 이야기'(story- as- discoursed ;수사학적인 기법이 사용된 이야기 -역자주)라고 부르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3 여기서 중심되는 질문은,내재된 저자가 내재된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다.서사비평가들은 이야기 전개과정에 본래적으로 들어 있는 문학적인 기법들을 통해서,독자들이 작품을 이해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관점


내재된 저자가 독자의 텍스트 이해를 돕는 한가지 방법은 독자로 하여금 서사이야기의 관점(point of view)과 일치하는 관 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관점이라는 말은 서사비평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며,다른 문학비평에서도 자주 대하는 단어이다.여 기서 우리는 학자들이 평가관점(evaluative point of view)이라고 부르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이 관점이 작품 전체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평가관점은 내재된 저자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새운 규준,가치,그리고 전반적인 세계관을 가리킨다.달리 말하면,평가관점은 판단의 기준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데,독자들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건,등장인물,그리고 배경 등을 이 관점에 의해서 평가하게 된다.

이 평가관점이 책을 읽는 동안에 독자의 판단을 유보시킨다고 해도,독자는 내재된 저자가 택한 평가의 관점을 일단 수용해 야 한다.그래서 우리는 카우보이들은 선하고,인디안은 악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여야만 할 때도 있다.우리는 말하는 짐승이나 날아 다니는 우주선을 믿어야 할런지도 모른다.그리고 우리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번연이나 단테의 작품을 읽는 동안에는 기독교인이 되어야만 한다.물론 독자들은 설화를 효과있게 만드는 이러한 평가관점을 비평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하지만 관점을 비평 하기에 앞서 우선 그 관점을 수용해야만 한다.만약 작품의 관점을 수용하지 않는다면,무엇보다도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기 때 문이다.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들은 모두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등장하고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는 세계를 묘사한다.복음서들은 또한 뚜렷이 밝혀져 있지 않는 경우라고 해도,어떤 윤리적인 입장을 분명히 갖고 있다.이 입장은 진리와 거짓을 구분하는 기본 적인 형태를 취한다.그래서 이 관점에 의해서,사고방식들은 옳은 것과 그른 것으로 양분된다.그리고 바른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관점과 일치되어진다.킹스베리가 말한 대로,이 서사이야기들의 내재된 저자들은 하나님의 평가관점을 자신들의 작품의 규범으로 삼았다.분명히 말하자면,하나님이 생각하는 바가 참되고 바르다는 것이다.4

그러면 하나님의 평가관점은 어떻게 설정되어지는가? 각각의 서사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이야기 세계 속에 있는 인물로 간주 되어야 하며,하나님의 관점은 내재된 저자가 그것을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서 규정되어야 한다.때로 하나님은 이야기에 등장 해서 직접 말하고 행동한다.또 어떤 때는 천사나 예언자와 같은 대리인들을 통해서 말하고,꿈을 통해서,그리고 어떻든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마태27:51-53,마가15:33,38).복음서들은 또한 구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인용한다. 그래서 독자는 하나님의 관점이 참되고 옳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하나님의 관점이 천사와 예언자들,기적,꿈,그리고 성경을 통해 서 믿을 수 있게 표현되어질 수 있음을 당연히 인정할 것으로 기대되어진다.

복음서들은 또한 하나님의 관점과는 다른 사고방식도 수용해들인다.내재된 저자들은 두번째 관점,즉 사탄의 평가관점을 그 들의 서사이야기의 규범으로 삼을 수도 있다.이러한 관점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규범으로서,그릇되고 거짓된 것을 가리킨 다.5공관복음서에서,사탄은 하나님처럼 서사이야기에 등장해서 직접 말하고 행동한다.그리고 대리자들,즉 귀신들을 통해서 간접 적으로 역사하기도 한다.사탄은 또한 인간들을 통해서 역사한다(누가22:3,요한8:44).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사람들처럼 생각하 는 것이 사탄의 관점을 표방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마태16:23,마가8:33).그래서 복음서들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생 각하는 것과 사람들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조라고 생각해 왔다.6

하나님의 평가관점이 분명히 드러나고 그것이 규범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하나의 서사이야기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강력한 수사학적인 기법이다.그것은 독자들이 그 이야기를 해석하는 데 중대한 방향을 설정해준다.내재된 독자는 하나님의 관점을 표방하는 등장인물들을 강조하려고 하며,그렇지 않은 등장인물들과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이렇듯 내재된 저자들은 이야기 를 전개해나가는 동안에 그들의 해석을 좌우하는 기준들을 마련해 놓는다.

이야기 전개과정


내재된 저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사용하는 또 한가지 방법은 해설자(Narrator)를 등장시키는 것이다.해설자는 내 재된 저자가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 등장시키는 화자이다.웨인 부스는 한 유명한 문학작품이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되는 것 에 유의한다:'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 이 첫문장은 그 다음에 나오는 모든 문장들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결정지워준다.그 문장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고 해도 ,독자는 아무런 의심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하지만 실제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우리는 이것이 누구의 의견이며,무슨 근거로 그 러한 말을 하는지 알고 싶어한다.하지만 이야기를 해나가는 과정(narration)은 저자와 독자 사이에 암암리에 체결된 협약을 전제 하는데,독자는 해설자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데 동의한다.

해설자들은 중요한 점들에서는 서로 차이를 보인다.어떤 작품들은 일인칭 해설자를 등장시킨다.이것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 베리 핀에서 발견할 수 있다.예외가 있긴 하지만(누가복음1:3,요한1:14-16,21:24),복음서의 해설자들은 삼인칭으로만 말하고 있 으며,이야기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하지만 사도행전에서는 해설자가 이야기에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우리'가 사용되는 구절 들을 보라:16:10-17, 20:5-15, 21:1-18, 27:1-28:16).

해설자들은 이야기하려는 것에 관해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지식의 정도와 자료를 선택하는 방식에서도 서로 다르다.네 복 음서의 해설자들은 많은 지식을 소유한 것처럼 여겨진다.그들은 공공적인 사건들을 보고할 뿐만 아니라,등장인물만이 관련되어 있는 개인적인 일도 보고한다(예를 들면,마가14:32-42).그들은 장소는 다르지만 동시에 일어난 일들도 이야기할 수 있다(예,요한 18:12-27).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묘사하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내적인 생각과 행위의 동기들까지도 알고 있다(예,마태2:3).하지 만 그들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공관복음서만 보더라도,해설자들의 생각은 공간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지상적인 영역에 국한 되어 있다.하늘과 지옥에 대한 묘사는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의해서만 되어질 뿐,해설자들은 거기에 대해 아무런 언급 도 하지 않는다.그리고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또 어떤 사람을 싫어하신다'는 단순한 묘사가 나타나는 데,복음서에는 이런 식의 문장을 찾아볼 수 없다.8 오히려 하나님이 이야기에 직접 등장해서 '내가 누구를 기뻐한다'고 말씀하신 다(마태3:1,17:5,마가1:11,누가3:22).해설자들은 예수의 내적인 생각들을 알고 있다.그러나 예수와는 달리 해설자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요한복음에서는 이러한 제약들이 다소 감소되어진다.해설자는 하나님의 영역을 묘사할 수 있으며(1:1-5),때로 그의 관점과 예수의 관점을 구별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9 더우기 요한복음의 해설자는 그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데(20:30,21:25),그럼으로써 독자들이 해설자를 최대한 신뢰하도록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준다.

해설자들은 또 그들이 보여주는 신뢰성의 정도에 따라서 다양하게 묘사된다.현대의 문학작품들은 때로 신뢰할 수 없는 해 설자를 등장시킴으로써,독자로 하여금 그의 견해를 반박하고 무시하도록 만드는 기법을 사용한다.켄 키지(Ken Kesey)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사나이'(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의 해설자는 때로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는 비정상적인 사람이다.하 지만 대다수의 서사비평가들은 복음서의 해설자는 신뢰할 만하며,이들의 관점은 내재된 저자의 관점과 완벽히 일치한다고 생각한 다.독자는 이 해설자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믿으리라고 기대되어진다.마태복음의 해설자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 (3:3)가 바로 세례요한이라고 말할 때,내재된 독자는 이것이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를 문제삼지 않는다.10

어떤 해설자들은 다른 해설자들에 비해서 본문에 더 많이 참견을 한다.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의 '우리 마을'(Our T own)이라는 연극에서 해설자는 매우 명확한 방식으로 등장하는데,그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자기 나름대로 설명을 첨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복음서의 해설자들은 일반적으로는 거의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때로 그들은 이야기의 영역을 벗어나기도 하고,독자에게 직접 말하기도 한다(마가3:14,요한20:31).

서사비평가들에 의하면,이러한 방법이 너무 기교적으로 사용되어서 해설자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도,해설자가 없는 경우는 없다.이야기가 들려지는 수화자(narratee)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수화자가 데오빌로라고 분명히 밝혀져 있다(누가1:3,사도1:1).그리고 내재된 독자는 이야기를 듣도록만 되어 있다.다른 작품에서는 수화 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밝힐 수 없다.그러나 독자는 누군가에게 들려지는 이야기를 어깨 너머로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서사비평의 의사소통모형은 다음과 같이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실제저자--------------------->텍스트---------------->실제독자

내재된 저자------------------>서사이야기------------>내재된 독자

해설자----------------------->이야기---------------->수화자

해설자는 내재된 저자,그리고 수화자는 내재된 독자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그들은 내재된 저자가 만들어낸 수사학적인 기법으로 설정된 인물들이다.그들은 서사 이야기 자체의 한 부분,즉 담론을 이루는 한 부분이며,담론을 통해서 이야기가 들려지 게 된다.11

이야기 진행 과정의 단계들은 때로 문학작품의 한 특정한 부분에서도 발견되어지는데,그래서 위에 제시한 모형은 연장해서 그릴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비유들은 사실 그것들이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좋 은 예이다.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누가10:25-37)를 설명하면서,예수 자신은 해설자가 되고,그와 이야기하는 율법학자는 수화 자가 된다.하지만 관찰의 범위를 작품 전체로 넓혀서 보면,예수와 율법학자는 무명의 해설자가 데오빌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다.

상징과 아이로니


때로 한 작품의 내재된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어떤 해석을 거부하고 다른 해석을 받아들이게 하거나,아니면 최소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를 찾아보게 만든다.상징과 아이로니는 이러한 내재된 저자의 의도를 이루는 데 유용한 수사학적인 기 법이다.

각 단어와 구절을 문자적으로만 읽으면,서사이야기를 잘못 이해할 수 있다.최근 어느 의학잡지에 게재된 한 논문은,겟세마 네 동산에서 예수가 심한 고통 가운데 있을 때,희귀한 유형의 뇌출혈이 일어나게 되었고,그래서 그의 땀선을 통해 피가 몸밖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누가복음22:44를 설명하려고 한다.12 하지만 누가복음의 내재된 저자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 가 뇌출혈을 일으킨 것으로 생각했다는 주장은 극단적인 오해이다.오히려 예수의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졌다는 해설자의 묘사는 일종의 비유이며,일반적인 언어비유이기 때문에,이 구절은 누가복음에서 예수를 어미닭에 비유하는 것만큼이나 비유적으로 읽혀 져야 한다(누가13:34).

마치 이러한 잘못된 독서를 방지하기 위해서 인 양,복음서 서사이야기에는 본문을 문자적으로 읽는 사람들을 풍자하는 기 사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마가복음에서 잘 알려진 한 이야기는,종교지도자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예수의 경고를 제자들이 잘 못 받아들여서,종교지도자들로부터 빵이나 효소를 사지말라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마가(8:14-21,마태16:5-12).요한복음에도 이 러한 오해의 예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니고데모는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3:4). 예수께서 나사로가 깊이 잠들었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데,제자들은 나사로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다는 말로 알아들었다(11 :12).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게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시자,제자들은 누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감쪽같이 먹을 것을 가져다 드렸는지 의아해 한다(4:33).예수께서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 자,사람들은 예수께서 자결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8:21-22).그리고 예수께서 자신의 몸이 세상을 살리기 위한 떡이라고 말 씀하셨을 때,사람들은 예수께서 일종의 식육풍습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6:51-52).컬페퍼는,요한복음이 이렇듯 빈번한 오 해를 보고하는 목적은 독자들에게 복음서를 바르게 읽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13 이렇듯 본문에 나오 는 등장인물들이 갖고 있던 잘못된 생각은 해설자가 보다 적절한 해석을 내려주거나 아니면 예수 자신이 직접 설명을 함으로써 교정되기도 한다.때로는 바른 해석이 제시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독자는 이런 경우 생명의 떡이나 생명의 물과 같은 구절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서 고심해야 한다.어떤 경우에 독자는 이러한 이야기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들 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독자는 상징이 갖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찾아내는 데 능숙해져서,앞에 제시한 것과 같은 오 해들이 나타나지 않는 한,상징이 갖고 있는 가능한 의미들을 찾아내고자 한다.이음새없이 통으로 짠 그리스도의 옷(19:23),찢어 지지 않은 물고기 그물(21:6,8,11),예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피-이러한 것들이 문자적인 것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밝혀내고자 노력한다.

문학이론가들은 때로 이러한 문학적인 기법들을 비유(직유와 은유),심상(images),기호(signs),상징(symbols),모티프(motif s) 등으로 구분한다.하지만 이러한 모든 문학적이고 관형화된 기법들은 내재된 저자와 내재된 독자 사이에 어떤 특정한 의사소통 을 이루려는 의도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데,이러한 기법들을 통해서 내재된 독자는 서사이야기를 명확히 이해하도록 안내된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이야기는 그 표면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그래서 독자는 바르게 또 최소한 더 풍성하게 작품을 이 해하기 위해 애써야만 한다.비둘기,돼지,뱀,양과 같은 동물들이 상징의 기능을 할 수 있다.숫자들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 다.때로 전체 행동이나 사건들이 상징적이기도 하다.어떤 여인이 예수께 기름을 부은 것은 그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가14:3-9).산,사막,결혼,잔치 등의 장면들은 상징적인 의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내재된 저자는 독자들을 위해,컬페퍼가 '암시된 설명과 방향지시를 위한 기호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상징을 통해서 작품 속에 마련해 놓는다.14 설화비평가는 그 상징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문제삼는다.요한복음21:11의 153마리의 물고기의 의미에 대한 여러 이론들을 개관해볼 때,분명히 알게 되겠지만,해석자는 상징을 설명하는 일 자체에 빠져버리기 쉽다.서사비평의 목적은 내재된 저자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다.그 의미는 비밀스럽지 않으며,내재된 독자가 능히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기 대되는 것이다.

필립 휠라이트(Philip Wheelwright)는 상징의 의미들을 포괄하는 네 가지 범주를 설정했다.15

1.원형상징(archetypal symbols)은 그 의미를 상당히 보편적인 문맥에서 이끌어내는데,빛과 어둠의 기본적인 대조가 그 예이다.
2.전래적인 생동력의 상징들(symbols of ancetral vitality)
은 그 의미를 그 이전의 자료들에서 찾아낸다.복음서에서는 구약성서에서 끌어온 개념들,즉 시험장소,이스라엘을 가리키는 12라는 숫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3.
내재된 저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상징은 특정한 서사 이야기 문맥에서만 이해되어질 수 있다.예를 들어,마가복음의 독 자는 마른 무화과 나무를 이스라엘의 폐지된 성전제의의 상징으로 보게 도니다.
4.
문화적인 영역의 상징은 실제 저자와 그가 속한 공동체의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문맥에서 그 의미를 이끌어낸다.

네번째 유형의 상징은 서사비평가에게 특별한 문제를 제기한다.이러한 상징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은 서사 이야기 자체를 통해서는 불가능하다.그것은,내재된 저자는 독자가 그것들을 이해할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하기 때문이다.현대 비평가들이 서사 이야기를 내재된 독자로서 읽는다면,그들은 이 점에서 역사비평을 통해 얻은 깊은 이해들을 활용해야만 한다.예수께서 헤롯을 여 우라고 부를 때,예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시는가?(누가13:32) 현대세계에서 여우라고 불리우는 사람은 교활하고 약삭빠르 고 속임수를 쓰는 사람으로 생각되어진다.하지만 고대문학을 살펴보면,누가복음이 기록되던 당시에 여우는 탐욕스럽고 파괴적인 인물로 생각되었다.더우기 여우는 그 당시의 문학에서 병아리들에게는 위협적인 것으로 묘사되었는데,예수께서 자신을 어미닭에 비유하는 구절에서 그러한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13:34).16

성경연구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또 하나의 개념은 아이로니(Irony)라는 문학적인 기법이다.상징과 아이로니는 이 둘이 본문의 다양한 의미를 밝혀내는 데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밀접한 연관이 있다.하지만 상징은 어떤 것이든 그것이 표면적인 의 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데 비해,아이로니는 참된 해석은 실제로는 표면적인 의미와는 반대된다는 생 각을 갖고 있다.한 여인이 나드향유로 예수께 기름부은 것(마가14:3-9)은 그것이 그녀의 감정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라,예수의 장 례준비를 의미하기 때문에 상징적이다.하지만 병정들이 예수에게 가시관을 씌운 것은 그들의 그러한 행위가 '고통을 감수하면서 세상을 다스리는 왕'에게 조롱섞인 경의를 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로니이다.

보리스 우스펜스키(Boris Uspensky)는 아이로니를 말,행동,동기,또는 신념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관점의 '불일치'(nonconcu rrence)라고 정의한다.17 예를 들어,등장인물의 말은 그 표현되어진 관점이 등장인물의 행동의 관점과 일치하지 않을 때,아이로 니로 여겨진다.병정들이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선포한 다음,그를 갈대로 치고 그에게 침뱉을 때(마가15:18-19),그들의 말은 그 들의 행동이 보여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이처럼 행동이 그 동기와 일치하지 않을 때,그것은 아이로니로 판정된 다.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아이로니는 언제나 이해의 불일치에서 오는 결과이다.18

어떤 학자들은 언어적인 아이로니(verbal irony)와 상황적인 아이로니(situational irony)를 구별한다.언어적인 아이로니 는 화자가 의도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경우를 가리킨다.상황적인(또는 극적인) 아이로니는 뭬 크(D.C.Mueke)가 부지불식의 요소라고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19 상황적인 아이로니에서,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로니 의 희생물이 된다.그들은 자신들이 아이로니의 대상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이러한 아이로니의 전형적인 예는,예수가 백성들 을 위해서 죽을 것이라고 가야바가 선언하는 요한복음11:49-52에서 찾아볼 수 있다.내재된 독자는 이것을 죽음에 대한 예수의 승 리와 그의 구원의 사역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인다.물론 요한복음에서 가야바는 그의 말이 이렇게 해석되기를 바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요한복음에서 그렇게 표현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방금 인용한 예에서는,해설자가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시선을 집중케 함으로써 아이로니를 결코 놓치지 않도록 하기 때 문에,아이로니가 분명히 드러난다.하지만 때로 아니로니는 보다 암시적인 방식으로 사용된다.그래서 부스는 아이로니가 독자에 의해서 발견되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20 그 본래 성격상 아이로니는 미묘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신중하게 살펴본다고 해도 언제나 드러나거나 해석되어지는 것은 아니다.놓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있다.이와는 달리,폴 듀크( Paul Duke)가 말한 대로, '본문에서 아이로니를 찾는 학자와 비평가들은 사냥의 흥분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지나치게 열중해서 그들의 한계구역을 넘어서 사냥을 하고,감동케 하는 본문의 모든 곳에 무차별 사격을 해대는 경향이 있다.'21 따라서 아이로니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논의 는 저자의 의도보다도 비평가의 창의성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함정에도 불구하고,서사비평은 아이로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복음서들은 아이로니들로 가득차 있다.누 가복음을 보면,한 바리새인은 하나님이 세리를 의롭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자신이 세리와 같지 않다는 사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18:9-14).마가복음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기를 간청하는데,그들은 이 자리가 십자가를 진 사람들에 의해서 채워질 것임을 알지 못했다(10:35-15:27).사실 복음서의 기본적인 이야기들은 확장된 아이로니들 위에 구성되어 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메시야를 거부했다.하나님의 아들이 불경한 자들에 의해서 오히려 불경죄로 고소 를 당한다.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일에 자신도 모르게 도구로 사용되어진다.22 이러한 아이로니들은 네 복음서 서사 이야기에서 발견되어지는 하나의 주제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그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임한다는 사상이다.23

아이로니와 상징은 둘다 내재된 저자가 독자로 하여금 그 이야기를 해석케 하도록 안내하는 수사학적인 기법이다.부스는 이러한 안내가 일어나는 네 단계를 제시한다:독자는 (1)내적이거나 외적인 실마리에 상응하는 단어들의 문자적인 의미를 거부하 고,24(2)그것과는 다른 설명을 하려고 하며,(3)이것을 그가 내재된 저자에 대해서 믿는 것에 근거해서 평가하려고 한다.그리고 ( 4)저자의 가정된 의도들에 근거해서 결정을 내린다.25 이 재구성의 단계들은 어떤 경우에는 다 나타나기도 하지만,그렇다고 해도 그 과정은 독자로 하여금 내재된 저자를 얼핏 대면하게 해줄 뿐이다.본문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독자는 내재된 저자의 의도를 고려해야만 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상징과 아이로니는 강력한 수사적 기법으로 사용된다.이 기법들을 사용함으로써 독자에게 최소한 두 단계의 의미를 제시하며,독자로 하여금 '보다 높은 곳에 와서 살도록' 초청한다.이러한 재구성의 단계들을 통해서 작업을 하면, 독자는 부스가 말하는 '직관의 환희의 도약'(a delightful leap of intuition)을 하게 된다.26 다른 사람들이 놓친 것을 파악해 내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독자는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보지 못한 것을 찾아낸다.그래서 아이로니는 '숨겨진 아첨 '을 사용하는 설득의 기술을 통해서 독자를 내재된 저자와 결합시킨다.27 이러한 매력적인 사실에 덧붙여서,성경학자들은 다른 효과들도 찾아내었다.듀크는 '아이로니가 그 추종자들에게 의사소통의 감각을 상으로 준다'고 말한다.28 아이로니(또는 상징)에 담겨진 작품의 의도된 의미를 놓칠 수 있기 때문에,그 의미를 찾아냄으로써 독자들은 동일한 정신성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게 한 다.여기에 덧붙여서,컬페퍼는 아이로니와 상징을 사용하는 것이 독자로 하여금 서사이야기를 반복해서 읽도록 장려한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는데,그것은 가장 민감한 독자라고 할지라도 본문이 전송하는 모든 부호를 단번에 다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 다.29

서사이야기의 기법들


내재된 저자는 서사이야기기법들을 사용함으로써 독자가 본문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이러한 기법들은 때로 정의하기 어 렵지만,그 기법들은 이야기를 구성하고 들려주기 위해서 사용되어지는 반복적인 구성방식들과 구상(design)의 특징들을 갖고 있 다.기본적인 의미에서,이것들은 본문이 문장,단락,그리고 장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가리킨다.하지만 최근의 성경역본들에서,이러 한 종류의 기법들은 내재된 저자의 의도보다는 번역자의 어휘선택상의 결정을 반영하고 있다.예를 들어,현재의 성경독자들에게 친숙한 장 절 체계는 최근에 본문에 반영된 것이다.그리고 성구색인을 활용한다고 해도,서사 이야기 자체에서 발견되어지는 기법 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서사비평가들은 내재된 저자가 작품을 구성하면서,어떤 문학적인 원칙들을 사용했는지를 밝혀내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진 다.이러한 관심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성경연구에서 구성모티프들을 찾아내는 것은 한 때는 구성분석과 수사비평 작업에 속 했다.그래서 서사비평가들은 기존의 문학연구의 작업들에서 사용되어온 방법들 가운데 활용할 만한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데이비드 바우어(David Bauer)는 로버트 트라이나(Robert Traina)와 하워드 퀴스트(Howard Kuist)가 발전시킨 체계를 수정 해서,성경 서사이야기에서 발견되어지는 15개의 '구성관계'의 범주를 제시했다.30

1.반복(repetition)은 유사하거나 동일한 요소들의 되풀이를 의미한다.
2.대조(contrast)는 상이하거나 반대되는 것을 묶어서 병치시키는 것이다.
3.비교(comparision)는 비슷하거나 같아 보이는 것을 묶거나 병치시키는 것이다.
4.인과관계와 실증(causation and substantiation)은 서사이야기를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배치하는 것이다(인과관계는 원인에서 결과로,실증은 결과에서 원인으로 나아간다.)
5.절정(climax)은 정도가 약한 것에서 강한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6.전환(pivot)은 긍정적인 것에서 부정적인 것으로,또는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이야기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7.구체화와 일반화(particularization and generalization)는 본문 내에서 보다 구체적이거나 또는 보다 종합적인 설명으로 이 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의미한다.
8.목적의 진술(statements of purpose)은 이야기가 수단에서 목적으로 전개되도록 서사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9.복선(preparation)은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독자에게 미리 알려줄 수 있는 재료를 서사 이야기의 한 부분 에 집어넣은 것을 말한다.
10.요약(summarization)은 지금까지 충분히 다루어진 자료를 간추리거나 알기 쉽게 정리해주는 것이다.
11.질문(interrogation)은 의문이나 문제를 제기한 다음,답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12.포괄(inclusio)은 예배시에 사용하는 교송(antiphon;시편8:1,9)에서 볼 수 있듯는 것처럼,한 단락의 처음과 끝에 특징적인 것들을 반복하는 것이다.
13.교차(interchange)는 'a,b,a,b'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누가복음1-2장에서는,세례요한의 탄생과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번갈아 나타나고 있다.)
14.교차대조(chiasm)는 'a,b,b,a'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예를 들면,마태복음 5:45에는 악/선/의/불의의 요소들 이 교차되어 나타나고 있다.)
15.삽입(intercalation)은 한 문학단위를 다른 문학단위의 중간에 집어넣은 것을 말한다.

서사비평가들은 구성요소가 내재된 저자에 관한 사실들을 보여준다는 점 때문에 구성요소들을 밝히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로드스와 미치는 구체화(particularization)가 '마가복음의 가장 두드러지고 특징적인 문체'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는데,마가는 '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1:15)라는 일반적인 진술에 바로 이어서,이 구절을 보다 간명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사용한 다.31 사실 마가는 이러한 기법을 즐겨 사용했는데,이 방법을 통해서 이야기들을 연결시킨다(8:22-25).8:22-25는 이 기법이 어떤 효과를 가져다 주는지를 보여주는 표준구절이다.마가는 또한 모든 에피소드들을 교차대조적인 형태로 배열시키기를 좋아한다.32 그리고 마가복음은 전체적으로 삽입의 가장 좋은 예를 몇가지 보여준다(5:21-43,11:12-25).이외의 서사이야기들은 또 다른 기법 들을 보여준다.사도행전은 일반화의 원칙에 따라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1:8).사도행전에서 베드로의 설교는 실증의 형 태로 여겨지는데,그의 설교는 설교 직전에 일어난 사건들,예를 들면,오순절의 제자들의 비정상적인 행동(2:14-36),앉은뱅이 치유 (3:12-26,4:8-12),이방인세례(11:1-18) 사건 등에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준다.사도행전 9장에 기록된 사울의 회심은 이야기의 긍정적인 방향전환을 보여주는 한 고전적인 예이다.

이러한 모든 기법들은 개별문장으로부터 단락,또는 책 전체에 이르는 다양한 규격과 길이를 가진 모든 서사이야기의 단위 들에 적용될 수 있다.이야기를 해나가려면,이러한 기법들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사실 바우어가 지적한 대로,이러한 기법들은 예 술작품에서 비롯되었다.그것들은 비서사적인 문학유형에서 뿐만 아니라,음악,회화,조각,건축에서도 발견되어진다.33 복음서 기자 들이 이것을 알았든지 몰랐든지 간에,그들은 예수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여러가지 방법 가운데서 의도적으로 현재의 방식을 택 했다.복음서 기자들은 자료들을 어떻게 구성하고 배열할 것인가를 나름대로 결정했으며,그들의 이러한 결정은 독자들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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