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이야기와 담론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서사비평은 서사이야기라고 하는 한 특정한 문학유형을 연구하는 것이다.서사이야기(narrative) 는 독자들에게 이야기(story)를 들려주는 문학작품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이것은 상당히 폭넓은 정의이긴 하지만,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용어는 아니다.예를 들어,어떤 문학비평학파들은 서사이야기 보다는 수필이나 시를 연구하는 데에 심혈을 기 울인다.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네 복음서들과 사도행전만이 서사이야기로 분류된다.서신서는 서사이야기에 속하지 않는다.1
서사이야기는 이야기(story)와 담론(discourse)이라는 두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2 이야기는 서사이야기의 내용,즉 서사이 야기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가리킨다.하나의 이야기는 사건(events),등장인물(characters),배경(settings)이라는 요소들로 이루 어져 있으며,이 세 요소의 상호작용을 플롯(plot)이라고 한다.담론은 서사의 수사학(the rhetoric of narrative),즉 이야기가 전 개되는 방식을 말한다.기본적인 사건,등장인물,그리고 배경이 동일한 이야기라고 해도,이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엮느냐에 따라 상 이한 서사이야기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네 복음서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서사비평은 채트맨(Chatman)이 '담론되어진 것으로서의 이야기'(story- as- discoursed ;수사학적인 기법이 사용된 이야기 -역자주)라고 부르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3 여기서 중심되는 질문은,내재된 저자가 내재된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다.서사비평가들은 이야기 전개과정에 본래적으로 들어 있는 문학적인 기법들을 통해서,독자들이 작품을 이해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관점
내재된 저자가 독자의 텍스트 이해를 돕는 한가지 방법은 독자로 하여금 서사이야기의 관점(point of view)과 일치하는 관 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관점이라는 말은 서사비평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며,다른 문학비평에서도 자주 대하는 단어이다.여 기서 우리는 학자들이 평가관점(evaluative point of view)이라고 부르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이 관점이 작품 전체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평가관점은 내재된 저자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새운 규준,가치,그리고 전반적인 세계관을 가리킨다.달리 말하면,평가관점은 판단의 기준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데,독자들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건,등장인물,그리고 배경 등을 이 관점에 의해서 평가하게 된다.
이 평가관점이 책을 읽는 동안에 독자의 판단을 유보시킨다고 해도,독자는 내재된 저자가 택한 평가의 관점을 일단 수용해 야 한다.그래서 우리는 카우보이들은 선하고,인디안은 악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여야만 할 때도 있다.우리는 말하는 짐승이나 날아 다니는 우주선을 믿어야 할런지도 모른다.그리고 우리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번연이나 단테의 작품을 읽는 동안에는 기독교인이 되어야만 한다.물론 독자들은 설화를 효과있게 만드는 이러한 평가관점을 비평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하지만 관점을 비평 하기에 앞서 우선 그 관점을 수용해야만 한다.만약 작품의 관점을 수용하지 않는다면,무엇보다도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기 때 문이다.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들은 모두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등장하고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는 세계를 묘사한다.복음서들은 또한 뚜렷이 밝혀져 있지 않는 경우라고 해도,어떤 윤리적인 입장을 분명히 갖고 있다.이 입장은 진리와 거짓을 구분하는 기본 적인 형태를 취한다.그래서 이 관점에 의해서,사고방식들은 옳은 것과 그른 것으로 양분된다.그리고 바른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관점과 일치되어진다.킹스베리가 말한 대로,이 서사이야기들의 내재된 저자들은 하나님의 평가관점을 자신들의 작품의 규범으로 삼았다.분명히 말하자면,하나님이 생각하는 바가 참되고 바르다는 것이다.4
그러면 하나님의 평가관점은 어떻게 설정되어지는가? 각각의 서사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이야기 세계 속에 있는 인물로 간주 되어야 하며,하나님의 관점은 내재된 저자가 그것을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서 규정되어야 한다.때로 하나님은 이야기에 등장 해서 직접 말하고 행동한다.또 어떤 때는 천사나 예언자와 같은 대리인들을 통해서 말하고,꿈을 통해서,그리고 어떻든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마태27:51-53,마가15:33,38).복음서들은 또한 구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인용한다. 그래서 독자는 하나님의 관점이 참되고 옳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하나님의 관점이 천사와 예언자들,기적,꿈,그리고 성경을 통해 서 믿을 수 있게 표현되어질 수 있음을 당연히 인정할 것으로 기대되어진다.
복음서들은 또한 하나님의 관점과는 다른 사고방식도 수용해들인다.내재된 저자들은 두번째 관점,즉 사탄의 평가관점을 그 들의 서사이야기의 규범으로 삼을 수도 있다.이러한 관점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규범으로서,그릇되고 거짓된 것을 가리킨 다.5공관복음서에서,사탄은 하나님처럼 서사이야기에 등장해서 직접 말하고 행동한다.그리고 대리자들,즉 귀신들을 통해서 간접 적으로 역사하기도 한다.사탄은 또한 인간들을 통해서 역사한다(누가22:3,요한8:44).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사람들처럼 생각하 는 것이 사탄의 관점을 표방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마태16:23,마가8:33).그래서 복음서들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생 각하는 것과 사람들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조라고 생각해 왔다.6
하나님의 평가관점이 분명히 드러나고 그것이 규범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하나의 서사이야기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강력한 수사학적인 기법이다.그것은 독자들이 그 이야기를 해석하는 데 중대한 방향을 설정해준다.내재된 독자는 하나님의 관점을 표방하는 등장인물들을 강조하려고 하며,그렇지 않은 등장인물들과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이렇듯 내재된 저자들은 이야기 를 전개해나가는 동안에 그들의 해석을 좌우하는 기준들을 마련해 놓는다.
이야기 전개과정
내재된 저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사용하는 또 한가지 방법은 해설자(Narrator)를 등장시키는 것이다.해설자는 내 재된 저자가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 등장시키는 화자이다.웨인 부스는 한 유명한 문학작품이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되는 것 에 유의한다:'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 이 첫문장은 그 다음에 나오는 모든 문장들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결정지워준다.그 문장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고 해도 ,독자는 아무런 의심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하지만 실제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우리는 이것이 누구의 의견이며,무슨 근거로 그 러한 말을 하는지 알고 싶어한다.하지만 이야기를 해나가는 과정(narration)은 저자와 독자 사이에 암암리에 체결된 협약을 전제 하는데,독자는 해설자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데 동의한다.
해설자들은 중요한 점들에서는 서로 차이를 보인다.어떤 작품들은 일인칭 해설자를 등장시킨다.이것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 베리 핀에서 발견할 수 있다.예외가 있긴 하지만(누가복음1:3,요한1:14-16,21:24),복음서의 해설자들은 삼인칭으로만 말하고 있 으며,이야기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하지만 사도행전에서는 해설자가 이야기에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우리'가 사용되는 구절 들을 보라:16:10-17, 20:5-15, 21:1-18, 27:1-28:16).
해설자들은 이야기하려는 것에 관해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지식의 정도와 자료를 선택하는 방식에서도 서로 다르다.네 복 음서의 해설자들은 많은 지식을 소유한 것처럼 여겨진다.그들은 공공적인 사건들을 보고할 뿐만 아니라,등장인물만이 관련되어 있는 개인적인 일도 보고한다(예를 들면,마가14:32-42).그들은 장소는 다르지만 동시에 일어난 일들도 이야기할 수 있다(예,요한 18:12-27).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묘사하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내적인 생각과 행위의 동기들까지도 알고 있다(예,마태2:3).하지 만 그들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공관복음서만 보더라도,해설자들의 생각은 공간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지상적인 영역에 국한 되어 있다.하늘과 지옥에 대한 묘사는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의해서만 되어질 뿐,해설자들은 거기에 대해 아무런 언급 도 하지 않는다.그리고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또 어떤 사람을 싫어하신다'는 단순한 묘사가 나타나는 데,복음서에는 이런 식의 문장을 찾아볼 수 없다.8 오히려 하나님이 이야기에 직접 등장해서 '내가 누구를 기뻐한다'고 말씀하신 다(마태3:1,17:5,마가1:11,누가3:22).해설자들은 예수의 내적인 생각들을 알고 있다.그러나 예수와는 달리 해설자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요한복음에서는 이러한 제약들이 다소 감소되어진다.해설자는 하나님의 영역을 묘사할 수 있으며(1:1-5),때로 그의 관점과 예수의 관점을 구별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9 더우기 요한복음의 해설자는 그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데(20:30,21:25),그럼으로써 독자들이 해설자를 최대한 신뢰하도록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준다.
해설자들은 또 그들이 보여주는 신뢰성의 정도에 따라서 다양하게 묘사된다.현대의 문학작품들은 때로 신뢰할 수 없는 해 설자를 등장시킴으로써,독자로 하여금 그의 견해를 반박하고 무시하도록 만드는 기법을 사용한다.켄 키지(Ken Kesey)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사나이'(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의 해설자는 때로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는 비정상적인 사람이다.하 지만 대다수의 서사비평가들은 복음서의 해설자는 신뢰할 만하며,이들의 관점은 내재된 저자의 관점과 완벽히 일치한다고 생각한 다.독자는 이 해설자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믿으리라고 기대되어진다.마태복음의 해설자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 (3:3)가 바로 세례요한이라고 말할 때,내재된 독자는 이것이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를 문제삼지 않는다.10
어떤 해설자들은 다른 해설자들에 비해서 본문에 더 많이 참견을 한다.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의 '우리 마을'(Our T own)이라는 연극에서 해설자는 매우 명확한 방식으로 등장하는데,그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자기 나름대로 설명을 첨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복음서의 해설자들은 일반적으로는 거의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때로 그들은 이야기의 영역을 벗어나기도 하고,독자에게 직접 말하기도 한다(마가3:14,요한20:31).
서사비평가들에 의하면,이러한 방법이 너무 기교적으로 사용되어서 해설자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도,해설자가 없는 경우는 없다.이야기가 들려지는 수화자(narratee)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수화자가 데오빌로라고 분명히 밝혀져 있다(누가1:3,사도1:1).그리고 내재된 독자는 이야기를 듣도록만 되어 있다.다른 작품에서는 수화 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밝힐 수 없다.그러나 독자는 누군가에게 들려지는 이야기를 어깨 너머로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서사비평의 의사소통모형은 다음과 같이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실제저자--------------------->텍스트---------------->실제독자
내재된 저자------------------>서사이야기------------>내재된 독자
해설자----------------------->이야기---------------->수화자
해설자는 내재된 저자,그리고 수화자는 내재된 독자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그들은 내재된 저자가 만들어낸 수사학적인 기법으로 설정된 인물들이다.그들은 서사 이야기 자체의 한 부분,즉 담론을 이루는 한 부분이며,담론을 통해서 이야기가 들려지 게 된다.11
이야기 진행 과정의 단계들은 때로 문학작품의 한 특정한 부분에서도 발견되어지는데,그래서 위에 제시한 모형은 연장해서 그릴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비유들은 사실 그것들이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좋 은 예이다.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누가10:25-37)를 설명하면서,예수 자신은 해설자가 되고,그와 이야기하는 율법학자는 수화 자가 된다.하지만 관찰의 범위를 작품 전체로 넓혀서 보면,예수와 율법학자는 무명의 해설자가 데오빌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다.
상징과 아이로니
때로 한 작품의 내재된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어떤 해석을 거부하고 다른 해석을 받아들이게 하거나,아니면 최소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를 찾아보게 만든다.상징과 아이로니는 이러한 내재된 저자의 의도를 이루는 데 유용한 수사학적인 기 법이다.
각 단어와 구절을 문자적으로만 읽으면,서사이야기를 잘못 이해할 수 있다.최근 어느 의학잡지에 게재된 한 논문은,겟세마 네 동산에서 예수가 심한 고통 가운데 있을 때,희귀한 유형의 뇌출혈이 일어나게 되었고,그래서 그의 땀선을 통해 피가 몸밖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누가복음22:44를 설명하려고 한다.12 하지만 누가복음의 내재된 저자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 가 뇌출혈을 일으킨 것으로 생각했다는 주장은 극단적인 오해이다.오히려 예수의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졌다는 해설자의 묘사는 일종의 비유이며,일반적인 언어비유이기 때문에,이 구절은 누가복음에서 예수를 어미닭에 비유하는 것만큼이나 비유적으로 읽혀 져야 한다(누가13:34).
마치 이러한 잘못된 독서를 방지하기 위해서 인 양,복음서 서사이야기에는 본문을 문자적으로 읽는 사람들을 풍자하는 기 사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마가복음에서 잘 알려진 한 이야기는,종교지도자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예수의 경고를 제자들이 잘 못 받아들여서,종교지도자들로부터 빵이나 효소를 사지말라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마가(8:14-21,마태16:5-12).요한복음에도 이 러한 오해의 예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니고데모는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3:4). 예수께서 나사로가 깊이 잠들었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데,제자들은 나사로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다는 말로 알아들었다(11 :12).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게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시자,제자들은 누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감쪽같이 먹을 것을 가져다 드렸는지 의아해 한다(4:33).예수께서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 자,사람들은 예수께서 자결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8:21-22).그리고 예수께서 자신의 몸이 세상을 살리기 위한 떡이라고 말 씀하셨을 때,사람들은 예수께서 일종의 식육풍습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6:51-52).컬페퍼는,요한복음이 이렇듯 빈번한 오 해를 보고하는 목적은 독자들에게 복음서를 바르게 읽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13 이렇듯 본문에 나오 는 등장인물들이 갖고 있던 잘못된 생각은 해설자가 보다 적절한 해석을 내려주거나 아니면 예수 자신이 직접 설명을 함으로써 교정되기도 한다.때로는 바른 해석이 제시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독자는 이런 경우 생명의 떡이나 생명의 물과 같은 구절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서 고심해야 한다.어떤 경우에 독자는 이러한 이야기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들 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독자는 상징이 갖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찾아내는 데 능숙해져서,앞에 제시한 것과 같은 오 해들이 나타나지 않는 한,상징이 갖고 있는 가능한 의미들을 찾아내고자 한다.이음새없이 통으로 짠 그리스도의 옷(19:23),찢어 지지 않은 물고기 그물(21:6,8,11),예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피-이러한 것들이 문자적인 것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밝혀내고자 노력한다.
문학이론가들은 때로 이러한 문학적인 기법들을 비유(직유와 은유),심상(images),기호(signs),상징(symbols),모티프(motif s) 등으로 구분한다.하지만 이러한 모든 문학적이고 관형화된 기법들은 내재된 저자와 내재된 독자 사이에 어떤 특정한 의사소통 을 이루려는 의도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데,이러한 기법들을 통해서 내재된 독자는 서사이야기를 명확히 이해하도록 안내된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이야기는 그 표면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그래서 독자는 바르게 또 최소한 더 풍성하게 작품을 이 해하기 위해 애써야만 한다.비둘기,돼지,뱀,양과 같은 동물들이 상징의 기능을 할 수 있다.숫자들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 다.때로 전체 행동이나 사건들이 상징적이기도 하다.어떤 여인이 예수께 기름을 부은 것은 그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가14:3-9).산,사막,결혼,잔치 등의 장면들은 상징적인 의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내재된 저자는 독자들을 위해,컬페퍼가 '암시된 설명과 방향지시를 위한 기호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상징을 통해서 작품 속에 마련해 놓는다.14 설화비평가는 그 상징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문제삼는다.요한복음21:11의 153마리의 물고기의 의미에 대한 여러 이론들을 개관해볼 때,분명히 알게 되겠지만,해석자는 상징을 설명하는 일 자체에 빠져버리기 쉽다.서사비평의 목적은 내재된 저자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다.그 의미는 비밀스럽지 않으며,내재된 독자가 능히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기 대되는 것이다.
필립 휠라이트(Philip Wheelwright)는 상징의 의미들을 포괄하는 네 가지 범주를 설정했다.15
1.원형상징(archetypal symbols)은 그 의미를 상당히 보편적인 문맥에서 이끌어내는데,빛과 어둠의 기본적인 대조가 그 예이다. 2.전래적인 생동력의 상징들(symbols of ancetral vitality)은 그 의미를 그 이전의 자료들에서 찾아낸다.복음서에서는 구약성서에서 끌어온 개념들,즉 시험장소,이스라엘을 가리키는 12라는 숫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3.내재된 저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상징은 특정한 서사 이야기 문맥에서만 이해되어질 수 있다.예를 들어,마가복음의 독 자는 마른 무화과 나무를 이스라엘의 폐지된 성전제의의 상징으로 보게 도니다. 4.문화적인 영역의 상징은 실제 저자와 그가 속한 공동체의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문맥에서 그 의미를 이끌어낸다.
네번째 유형의 상징은 서사비평가에게 특별한 문제를 제기한다.이러한 상징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은 서사 이야기 자체를 통해서는 불가능하다.그것은,내재된 저자는 독자가 그것들을 이해할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하기 때문이다.현대 비평가들이 서사 이야기를 내재된 독자로서 읽는다면,그들은 이 점에서 역사비평을 통해 얻은 깊은 이해들을 활용해야만 한다.예수께서 헤롯을 여 우라고 부를 때,예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시는가?(누가13:32) 현대세계에서 여우라고 불리우는 사람은 교활하고 약삭빠르 고 속임수를 쓰는 사람으로 생각되어진다.하지만 고대문학을 살펴보면,누가복음이 기록되던 당시에 여우는 탐욕스럽고 파괴적인 인물로 생각되었다.더우기 여우는 그 당시의 문학에서 병아리들에게는 위협적인 것으로 묘사되었는데,예수께서 자신을 어미닭에 비유하는 구절에서 그러한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13:34).16
성경연구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또 하나의 개념은 아이로니(Irony)라는 문학적인 기법이다.상징과 아이로니는 이 둘이 본문의 다양한 의미를 밝혀내는 데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밀접한 연관이 있다.하지만 상징은 어떤 것이든 그것이 표면적인 의 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데 비해,아이로니는 참된 해석은 실제로는 표면적인 의미와는 반대된다는 생 각을 갖고 있다.한 여인이 나드향유로 예수께 기름부은 것(마가14:3-9)은 그것이 그녀의 감정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라,예수의 장 례준비를 의미하기 때문에 상징적이다.하지만 병정들이 예수에게 가시관을 씌운 것은 그들의 그러한 행위가 '고통을 감수하면서 세상을 다스리는 왕'에게 조롱섞인 경의를 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로니이다.
보리스 우스펜스키(Boris Uspensky)는 아이로니를 말,행동,동기,또는 신념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관점의 '불일치'(nonconcu rrence)라고 정의한다.17 예를 들어,등장인물의 말은 그 표현되어진 관점이 등장인물의 행동의 관점과 일치하지 않을 때,아이로 니로 여겨진다.병정들이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선포한 다음,그를 갈대로 치고 그에게 침뱉을 때(마가15:18-19),그들의 말은 그 들의 행동이 보여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이처럼 행동이 그 동기와 일치하지 않을 때,그것은 아이로니로 판정된 다.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아이로니는 언제나 이해의 불일치에서 오는 결과이다.18
어떤 학자들은 언어적인 아이로니(verbal irony)와 상황적인 아이로니(situational irony)를 구별한다.언어적인 아이로니 는 화자가 의도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경우를 가리킨다.상황적인(또는 극적인) 아이로니는 뭬 크(D.C.Mueke)가 부지불식의 요소라고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19 상황적인 아이로니에서,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로니 의 희생물이 된다.그들은 자신들이 아이로니의 대상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이러한 아이로니의 전형적인 예는,예수가 백성들 을 위해서 죽을 것이라고 가야바가 선언하는 요한복음11:49-52에서 찾아볼 수 있다.내재된 독자는 이것을 죽음에 대한 예수의 승 리와 그의 구원의 사역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인다.물론 요한복음에서 가야바는 그의 말이 이렇게 해석되기를 바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요한복음에서 그렇게 표현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방금 인용한 예에서는,해설자가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시선을 집중케 함으로써 아이로니를 결코 놓치지 않도록 하기 때 문에,아이로니가 분명히 드러난다.하지만 때로 아니로니는 보다 암시적인 방식으로 사용된다.그래서 부스는 아이로니가 독자에 의해서 발견되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20 그 본래 성격상 아이로니는 미묘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신중하게 살펴본다고 해도 언제나 드러나거나 해석되어지는 것은 아니다.놓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있다.이와는 달리,폴 듀크( Paul Duke)가 말한 대로, '본문에서 아이로니를 찾는 학자와 비평가들은 사냥의 흥분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지나치게 열중해서 그들의 한계구역을 넘어서 사냥을 하고,감동케 하는 본문의 모든 곳에 무차별 사격을 해대는 경향이 있다.'21 따라서 아이로니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논의 는 저자의 의도보다도 비평가의 창의성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함정에도 불구하고,서사비평은 아이로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복음서들은 아이로니들로 가득차 있다.누 가복음을 보면,한 바리새인은 하나님이 세리를 의롭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자신이 세리와 같지 않다는 사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18:9-14).마가복음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기를 간청하는데,그들은 이 자리가 십자가를 진 사람들에 의해서 채워질 것임을 알지 못했다(10:35-15:27).사실 복음서의 기본적인 이야기들은 확장된 아이로니들 위에 구성되어 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메시야를 거부했다.하나님의 아들이 불경한 자들에 의해서 오히려 불경죄로 고소 를 당한다.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일에 자신도 모르게 도구로 사용되어진다.22 이러한 아이로니들은 네 복음서 서사 이야기에서 발견되어지는 하나의 주제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그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임한다는 사상이다.23
아이로니와 상징은 둘다 내재된 저자가 독자로 하여금 그 이야기를 해석케 하도록 안내하는 수사학적인 기법이다.부스는 이러한 안내가 일어나는 네 단계를 제시한다:독자는 (1)내적이거나 외적인 실마리에 상응하는 단어들의 문자적인 의미를 거부하 고,24(2)그것과는 다른 설명을 하려고 하며,(3)이것을 그가 내재된 저자에 대해서 믿는 것에 근거해서 평가하려고 한다.그리고 ( 4)저자의 가정된 의도들에 근거해서 결정을 내린다.25 이 재구성의 단계들은 어떤 경우에는 다 나타나기도 하지만,그렇다고 해도 그 과정은 독자로 하여금 내재된 저자를 얼핏 대면하게 해줄 뿐이다.본문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독자는 내재된 저자의 의도를 고려해야만 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상징과 아이로니는 강력한 수사적 기법으로 사용된다.이 기법들을 사용함으로써 독자에게 최소한 두 단계의 의미를 제시하며,독자로 하여금 '보다 높은 곳에 와서 살도록' 초청한다.이러한 재구성의 단계들을 통해서 작업을 하면, 독자는 부스가 말하는 '직관의 환희의 도약'(a delightful leap of intuition)을 하게 된다.26 다른 사람들이 놓친 것을 파악해 내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독자는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보지 못한 것을 찾아낸다.그래서 아이로니는 '숨겨진 아첨 '을 사용하는 설득의 기술을 통해서 독자를 내재된 저자와 결합시킨다.27 이러한 매력적인 사실에 덧붙여서,성경학자들은 다른 효과들도 찾아내었다.듀크는 '아이로니가 그 추종자들에게 의사소통의 감각을 상으로 준다'고 말한다.28 아이로니(또는 상징)에 담겨진 작품의 의도된 의미를 놓칠 수 있기 때문에,그 의미를 찾아냄으로써 독자들은 동일한 정신성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게 한 다.여기에 덧붙여서,컬페퍼는 아이로니와 상징을 사용하는 것이 독자로 하여금 서사이야기를 반복해서 읽도록 장려한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는데,그것은 가장 민감한 독자라고 할지라도 본문이 전송하는 모든 부호를 단번에 다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 다.29
서사이야기의 기법들
내재된 저자는 서사이야기기법들을 사용함으로써 독자가 본문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이러한 기법들은 때로 정의하기 어 렵지만,그 기법들은 이야기를 구성하고 들려주기 위해서 사용되어지는 반복적인 구성방식들과 구상(design)의 특징들을 갖고 있 다.기본적인 의미에서,이것들은 본문이 문장,단락,그리고 장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가리킨다.하지만 최근의 성경역본들에서,이러 한 종류의 기법들은 내재된 저자의 의도보다는 번역자의 어휘선택상의 결정을 반영하고 있다.예를 들어,현재의 성경독자들에게 친숙한 장 절 체계는 최근에 본문에 반영된 것이다.그리고 성구색인을 활용한다고 해도,서사 이야기 자체에서 발견되어지는 기법 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서사비평가들은 내재된 저자가 작품을 구성하면서,어떤 문학적인 원칙들을 사용했는지를 밝혀내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진 다.이러한 관심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성경연구에서 구성모티프들을 찾아내는 것은 한 때는 구성분석과 수사비평 작업에 속 했다.그래서 서사비평가들은 기존의 문학연구의 작업들에서 사용되어온 방법들 가운데 활용할 만한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데이비드 바우어(David Bauer)는 로버트 트라이나(Robert Traina)와 하워드 퀴스트(Howard Kuist)가 발전시킨 체계를 수정 해서,성경 서사이야기에서 발견되어지는 15개의 '구성관계'의 범주를 제시했다.30
1.반복(repetition)은 유사하거나 동일한 요소들의 되풀이를 의미한다. 2.대조(contrast)는 상이하거나 반대되는 것을 묶어서 병치시키는 것이다. 3.비교(comparision)는 비슷하거나 같아 보이는 것을 묶거나 병치시키는 것이다. 4.인과관계와 실증(causation and substantiation)은 서사이야기를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배치하는 것이다(인과관계는 원인에서 결과로,실증은 결과에서 원인으로 나아간다.) 5.절정(climax)은 정도가 약한 것에서 강한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6.전환(pivot)은 긍정적인 것에서 부정적인 것으로,또는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이야기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7.구체화와 일반화(particularization and generalization)는 본문 내에서 보다 구체적이거나 또는 보다 종합적인 설명으로 이 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의미한다. 8.목적의 진술(statements of purpose)은 이야기가 수단에서 목적으로 전개되도록 서사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9.복선(preparation)은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독자에게 미리 알려줄 수 있는 재료를 서사 이야기의 한 부분 에 집어넣은 것을 말한다. 10.요약(summarization)은 지금까지 충분히 다루어진 자료를 간추리거나 알기 쉽게 정리해주는 것이다. 11.질문(interrogation)은 의문이나 문제를 제기한 다음,답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12.포괄(inclusio)은 예배시에 사용하는 교송(antiphon;시편8:1,9)에서 볼 수 있듯는 것처럼,한 단락의 처음과 끝에 특징적인 것들을 반복하는 것이다. 13.교차(interchange)는 'a,b,a,b'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누가복음1-2장에서는,세례요한의 탄생과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번갈아 나타나고 있다.) 14.교차대조(chiasm)는 'a,b,b,a'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예를 들면,마태복음 5:45에는 악/선/의/불의의 요소들 이 교차되어 나타나고 있다.) 15.삽입(intercalation)은 한 문학단위를 다른 문학단위의 중간에 집어넣은 것을 말한다.
서사비평가들은 구성요소가 내재된 저자에 관한 사실들을 보여준다는 점 때문에 구성요소들을 밝히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로드스와 미치는 구체화(particularization)가 '마가복음의 가장 두드러지고 특징적인 문체'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는데,마가는 '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1:15)라는 일반적인 진술에 바로 이어서,이 구절을 보다 간명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사용한 다.31 사실 마가는 이러한 기법을 즐겨 사용했는데,이 방법을 통해서 이야기들을 연결시킨다(8:22-25).8:22-25는 이 기법이 어떤 효과를 가져다 주는지를 보여주는 표준구절이다.마가는 또한 모든 에피소드들을 교차대조적인 형태로 배열시키기를 좋아한다.32 그리고 마가복음은 전체적으로 삽입의 가장 좋은 예를 몇가지 보여준다(5:21-43,11:12-25).이외의 서사이야기들은 또 다른 기법 들을 보여준다.사도행전은 일반화의 원칙에 따라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1:8).사도행전에서 베드로의 설교는 실증의 형 태로 여겨지는데,그의 설교는 설교 직전에 일어난 사건들,예를 들면,오순절의 제자들의 비정상적인 행동(2:14-36),앉은뱅이 치유 (3:12-26,4:8-12),이방인세례(11:1-18) 사건 등에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준다.사도행전 9장에 기록된 사울의 회심은 이야기의 긍정적인 방향전환을 보여주는 한 고전적인 예이다.
이러한 모든 기법들은 개별문장으로부터 단락,또는 책 전체에 이르는 다양한 규격과 길이를 가진 모든 서사이야기의 단위 들에 적용될 수 있다.이야기를 해나가려면,이러한 기법들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사실 바우어가 지적한 대로,이러한 기법들은 예 술작품에서 비롯되었다.그것들은 비서사적인 문학유형에서 뿐만 아니라,음악,회화,조각,건축에서도 발견되어진다.33 복음서 기자 들이 이것을 알았든지 몰랐든지 간에,그들은 예수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여러가지 방법 가운데서 의도적으로 현재의 방식을 택 했다.복음서 기자들은 자료들을 어떻게 구성하고 배열할 것인가를 나름대로 결정했으며,그들의 이러한 결정은 독자들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차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