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와 거세 사이
"당신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그 인간들, 자기네 물건들이나 거세(去勢)하라지!" 성기를 잘라 버리라니, 점잖은 사람의 입에 올리기에는 적절하지 않게 험하고 거친 농(弄)이다. 더구나 온유해야 할 그리스도인이 이런 욕설 비슷한 말을 했다가는 구설수에 오르기 꼭 알맞다. 그런데 안스럽기 그지없게스리 이 말은 사도 바울의 글의 일부이고, 더구나 거룩한 성경 말씀 안에 담겨 있어서 혹자들을 놀라게 한다.
우리의 개역 성경에서는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버리기를 원하노라"는(갈 5:12)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 옮겨놓고 있고, 주석가들도 종종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갈라디아의 문제아들에게 교회를 떠나라는 뜻이라고 해석을 한다. 그러나 원문에서 사용된 헬라어 동사 '아포콥토'는 분명하게 '거세(去勢)'를 가리키고 있다. 표준새번역 성경도 다소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할례를 가지고 여러분을 선동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자기의 그 지체를 잘라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원문의 어조가 이렇게 점잖은 것은 아니었다. 빈정거림과 강경함이 진하게 배어있다.
이것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이 완성된다는 주장을 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순회 전도자들에게(갈 1:6-9; 2;4; 3:1; 5:2-12; 6:12-14), 할례에 빗대어서, 그러려면 그네들의 물건을 잘라 거세나 하라는 욕설에 가까운 풍자(諷刺)의 비아냥이었다. 바울은 빌립보서 3:2에서도 할례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카타토메'(잘라 버리는 사람, 개역성경에서는 '손할례당')라는 표현으로 비슷한 악담을 한다.
예수는 유대인이었고 복음도 유대인에게서 나왔다. 그래서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자신들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행 10:17-18).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더 강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이방인의 회개를, 이방인이 약속의 민족인 이스라엘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추론이었다. 내가 당시의 유대인이라도 그런 선입관을 벗기 힘들었을 것 같다. 신구약중간시대에 요한 히르카누스는 이두메(에돔)를 정복한 뒤 그들에게 강제로 할례를 주어 이스라엘로 편입시켰다. 이런 식의 사고가 유대인들에게 있었다면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인이 되기 위한 할례를 요구했던 일부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는 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행 15:5). 결국 이 이슈로 인해 이른바 최초의 '종교회의'까지 열렸고 결론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내려졌다(행 15:6-29).
그때 바울 측의 강경한 입장이 밀려서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는 규정이 통과되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새 신자들을 위해 세례식 대신 할례식을 가져야 할 터인데… 신학적 해명은 둘째 치고라도 현실적으로 생각만 해 봐도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예수 믿기 정말 힘들었을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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