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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과 수행-차마고도,색맹의 섬 핀지랩 ,지수화풍(地水火風) ..

은바리라이프 2008. 7. 26. 17:08
각인과 수행  
1.차마고도(茶馬古道, Ancient tea route)

그 옛날, 중국 북방에는 실크로드가 있었고 남방에는 차마고도가 있었다. 차마고도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일 것이다. 또 지상에서 가장 높고, 험하고 먼 길이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새나 쥐가 다닐 수 있을 거라고 했을까? 이 길을 '마방'이라 불리우는 상인들이 말과 야크를 이용해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역하고 송이버섯, 소금, 옥수수 등을 싣고 야크의 젖으로 만든 치즈, 차를 서로 사고 팔기 위해 지나다녔다. 해발4000m가 넘는 험준하고 가파른 길이지만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길로도 유명하며 작년 말 모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차마고도는 하나가 아니라 차와 말이 오고가던 수많은 길, 그 교역로를 통칭하는 말이 차마고도이다.

이 곳의 사람들은 천년 전부터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네팔로 이어지는 5000km의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차마고도만큼 가파른 그들의 삶을 이어왔다.

워낙 높고 가파르고 바람이 세어서 나무도 제 키만큼 자라지 못해서 흙이 다 드러나 있는 깎아지른 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전부이다. 물길이 센 강이 나오면 외줄을 타고 건너고, 바위가 나오면 돌아 지나며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말과 사람과 야크가 서로 소통하며 함께 가야하는 길이다. 이렇게 위험하다보니 도중에 목숨을 잃는 일도 다반사였다. 사람이고 말이고 살짝 내려다보기만 해도 멀미가 날 정도로 아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면 시신(屍身)도 찾기 어렵다. 그들은 죽음을 자연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일 뿐 애끓는 통곡소리도 긴 여운의 슬픔도 없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형제가 둘이든 셋이든 한 여자와 결혼을 한다. 형제공처라 하여 집 안 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며 농사를 짓거나, 마상이 되어 차마고도를 다니며 가족들을 부양하는 일을 형제가 서로 역할을 나누어 한 여자를 부인으로 삼아 살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 형제의 부인의 생활도 결코 편하지 않다. 그녀도 남편들 못지 않게 많은 양의 노동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녀도 그녀의 남편들도 부인이 낳은 아이의 아버지가 형인지 아우인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2. 색맹의 섬 핀지랩

색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사람을 비롯한 영장류(靈長類), 어류, 양서류, 일부 파충류, 몇몇 조류 등의 척추동물과 벌·나비에 국한된다.

선천성색맹은 여러 색상을 감지하는 원추세포의 이상으로 생기는데 반드시 양 눈에 나타난다. 색맹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색을 전혀 식별하지 못하는 전색맹과 특정한 색 1가지 이상을 식별하지 못하는 부분색맹이 있다. 전색맹은 흑백사진을 보는 것처럼 명암(明暗)이나 농담(濃淡)의 차이로만 사물에 대한 식별이 가능하지만 부분색맹은 빨간색·초록색·파란색 중 1~2가지를 식별하지 못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적록색맹이 가장 많다. 빨간색 색맹인 사람들은 보통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반면에 파란색 색맹인 사람은 파란색과 노란색을 구별하지 못한다. 부분색맹 중 적록색맹은 남성 20명당 1명꼴로 흔한 편이지만, 빛을 받아들이고 색을 구별하는 시세포인 원뿔세포(추상체)가 없거나 거의 기능하지 않는 전색맹은 3만~4만명당 1명꼴로 희귀하다.

핀지랩은 적도 부근, 하와이에서 남서쪽으로 3,900km 떨어진 곳에 있다. 섬 전체 인구 700여명 중 57명이 전혀 색을 감지 못하는 선천성 전색맹으로 이 곳에서는 12명에 한 명꼴로 나타난다고 하니 핀지랩은 여지없는 색맹의 섬이다. 또 섬 인구 3분의 1이 마스쿤(색맹을 지칭하는 토속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핀지랩이 색맹의 섬이 된 이유는 근친교배 때문이었다. 1775년 무렵 거주자가 1000명에 이르렀던 핀지랩은 어느 날 갑자기 섬을 덮친 태풍과 굶주림으로 몇 주 만에 생존자가 2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고립된 핀지랩 주민들은 불가피하게 근친교배로 인구를 늘려갔고, 이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바로 색맹의 급증이다.

이런 영향은 1950년대에 핀지랩 주민들이 대거 이주한 인근 폰페이 섬에서도 나타났다. 핀지랩 출신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지난 40여 년간 다른 마을과 접촉이 거의 없었던 탓에 전색맹 ‘마스쿤’이 핀지랩보다 더 흔하다.

하지만 이 섬의 사람들은 비록 망막 내에 색을 인식하는 원뿔세포는 없지만, 빛을 인식하는 막대세포가 잘 발달되어 어둠 속에서의 움직임과 빛을 잘 인지할 수 있다.

마스쿤의 아이들은 형편없는 시력 대신 누군가 책의 내용을 한두 번만 읽어주면 마치 직접 책을 읽는 것처럼 암송하는 뛰어난 기억력과 어둠에 적응이 잘 되어 있지 않은 일반인에 비해 밤하늘의 별자리를 알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들은 색깔만 보는 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냄새 맡고 안다. 우리가 주로 눈(目)에 의존한다면 마스쿤들은 모든 걸 따진다.

나는 우리의 야간만행이 마스쿤들의 일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간만행에는 해가 있을 때 톡톡히 역할을 하는 시각이 별 쓸모가 없다. 우리는 더 검고 덜 검고의 차이로 사물을 판단하고 오히려 뺨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과 나뭇잎을 밟고 지나가는 바람의 소리, 살짝 감도는 숲의 냄새에 더욱 예민해 진다. 그것은 분명 낮에 경험하는 세상과는 달랐지만 결코 색깔이 있는 세상보다 못할 것은 없었다.

3. 대한민국의 지방색

올 설에도 차례를 지냈다. 우리 집 차례상에는 나물과 떡국과 탕국, 조기, 쇠고기 산적, 포, 전, 과일 등이 오른다. 다른 집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은 것도 아니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럼에도 어릴 때부터 주변의 친구들과는 무조건 어울릴 수 없는 묘한 이질감을 느끼며 살았다. 이질감의 시작은 말씨였다. 엄마와 나와 동생들만 경상도 말을 썼고, 할머니와 아버지, 고모, 고모부, 삼촌들 모두 서울말을 썼다. 집 안에서 늘 듣는 억양이나 단어가 집 밖의 그것들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 후 엄마가 가져온 외갓집의 제사음식에는 문어도 있고, 홍합을 꼬지에 꿴 산적도 있었다. 나는 간장에 살짝 조린 문어와 홍합의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우리 집 제사상에는 이런 해물이 없었다. 해물이라고는 조기와 건오징어를 물에 살짝 불려 간장에 조린 것이 전부였다. 우리 집은 부산에 있는 작은 서울이었다. 조상 대대로 서울 사대문 안에서 살다가 피난 내려와서 부산에 정착하게 된 할머니와 아버지는 부산의 생활방식에 전혀 적응하지 않았고, 어린 내가 왜 우리 집 제사상에는 문어와 홍합이 없냐고 물으면 아버지는 늘 우리는 서울식이라서 그렇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은 말씨부터 생활방식이 외갓집과 달랐고 이웃에 사는 친구네 집도 달랐다. 나는 대문 안과 밖, 어디에도 편안하게 속하지 못하고 물 위의 기름처럼 기름속의 물처럼 살았던 것 같다. 나는 누구인지, 부산사람인지, 서울사람인지, 그때까지 서울에는 가 본적도 없었지만 나는 본적이 서울이었고  본적은 본적이라며 그당시 호적등본이 필요하면 서울에 사는 친척에게 부탁을 하거나 그 후에는 서울시 중구청에 직접 전화를 해서 등기우편으로 받아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본적을 바꾸지 않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개인의 신상을 나타내는 서류에는 본적을 적는 난이 있었다. 지금도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대번에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본다. 90년대 무렵만 해도, 아니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은 동년배를 만나도, 자식의 친구가 인사를 해도 꼭 고향과 성(性)의 본까지 물어보았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세계지도를 펴놓고 애써 찾아야 볼 수 있을 만큼 금방 찾아지지 않는 작은 땅덩어리이고 그나마 반으로 갈라졌는데도 어디서 태어났는지 아는 것이 사람을 만나면 맨 먼저 물어봐야할 만큼 중요한 것인지, 그게 뭐 그리 중요한지 반감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우리 동네, 우리 마을, 혈연, 지연으로 우리와 우리가 아닌 사람으로 편가르기를 하는 집단이기주의하고 생각했다.

4. 지수화풍(地水火風)

인간은 주변의 주어진 자연환경에 의지하고 자연이 주는 생산물을 이용하여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자기의 생명과 종족을 이어왔다. 그러다 보니 살고 있는 자연환경에 따라 다양한 문화와 전통, 가치를 지니며 살아오게 되었다. 바닷가에 사는 부족은 바다를 의지해서 해마다 풍어제를 지내고, 해산물을 먹고, 해풍을 견디며 살았고, 들에 사는 부족은 곡물농사를 지으며 그 해 농사를 좌우하는 비 때문에 기우제를 지냈다. 산에 사는 부족은 화전을 일구면서 밭작물을 먹으며 나무로 지은 집에 살고 집 주변에서 자라는 약초와 산나물을 캐서 직접 먹거나 아랫마을로 내려가 곡식과 바꾸어 먹고 살았다. 산바람을 맞고 산 사람, 들바람을 맞고 산 사람, 바닷바람을 맞고 산 사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침에 눈을 뜨면 들판에서 자라는 벼를 보고 자란 사람, 집 앞에 시퍼런 바다가 출렁거리고 뻘을 기어다니는 게, 조개를 보며 자란 사람, 장엄한 앞산과 푸른 나무를 보면서 자란 사람 그들의 마음의 무늬가 같을까? 보리밥과 나물을 먹고 산 사람, 어패류를 먹고 산 사람. 옥수수나 감자와 산나물을 먹고 산 사람, 그들이 환경의 자극에 반응하는 모습이 다 같을까? 인간의 몸은 지수화풍에서 왔고 그 역할을 다하면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니 그 사람이 태어난 땅의 지수화풍이 그 사람의 에너지의 원천이다. 어쩌면 고향을 물어보는 것, 조상을 물어보는 것은 니편, 내편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 지수화풍을 되짚어봄으로서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매우 근원적인 기준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5.각인과 수행

알에서 갓 부화한 새끼거위들은 처음 만나는 움직이는 물체를 제 어미인줄만 알고 따라 간단다. 갓 태어난 새끼오리를 어미 없이 키우면 나중에는 어미가 있어도 키워준 사람만 따라 다녔다고 한다. 이것은 197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동물심리학자 콘레드 로렌츠(Konrad Lorenz) 란 학자가 실험을 통하여 발견한 이론으로 ‘각인(Imprinting)이란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각인은 동물이 본능적으로 가지는 학습 양식의 하나로 어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대상에게 '각인'이 형성되며 그 대상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되는데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한정된 시기에 습득하여 영속성을 가지게 되는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백지상태로 태어난 인간도 자기가 태어나 처음 본 모습, 들은 소리, 맡은 냄새, 살결을 스치는 촉감, 혀에 닿은 맛으로부터 출발하여 자기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세상이 나와 너의 차이가 되고 그 차이가 구별의 기준이며 행복과 불행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여유있고 쾌적한 주거공간 속에서 건강에 좋다는 것을 골라 이것저것 차려놓고 먹는 삶이 거친 바람을 뚫고 차마고도를 오가는 티벳 사람들보다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색깔이 있는 세상과 흑백의 세상을 놓고 누구의 세상이 더 우수하다고, 더 옳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선명하고 다양함이 주는 명랑한 이미지의 원색이 흑백의 그윽한 향기와 운치를 앞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세계를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자기의 세계만을 고집하다보면 자칫 자기중심적인 시각에서 생각하고, 이해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만 노력하는 편협하고 이기적이거나 바늘구멍 같은 시야(視野)로 그것만 파고, 다른 것이 있음을 모르는 무지몽매한 어리석은 길로 들어서게 된다. 돌담 옆에서 자라는 호박은 돌담을 타고 자라고 대나무 옆에서 자라는 나팔꽃은 대나무를 타고 올라가 듯, 주어진 인연과 함께 어울리며 자기 세계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아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수행을 통하여 내 마음그릇을 키우고 닦는다. 온갖 마음의 작용으로부터 스스로 돌아보고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키며 자신의 삶을 바르게 하려는 노력을 한 시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인정하고 수용하며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 마음그릇으로 키우기 위해서...
                                               
                         참고: 차마고도 KBS 인사이드아시아 차마고도팀 제작>
                               색맹의 섬 <올리버 색스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