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대선지서

이사야 제 4장

은바리라이프 2008. 7. 25. 17:49

 

 이사야 제 4장

 

 

 

예루살렘의 영광된 미래

4:1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 우리가 수치를 면하게 하라 하리라 사13:12, 사54:4, 창30:23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 이전에 고운 얼굴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뭇 남성들의 시선을 끌었던 여자들이 더할 나위 없는 비참함으로 남자를 구걸하는 지경에까지 떨어질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일곱'은 완전수로서 허다하게 많은 여자들이 한 남자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본문의 한 남자는 전쟁에서 죽지 않고 생존한 사람이다. 그에게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애걸한다.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 우리를 먹여 달라, 입혀 달라 조르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에서는 본처가 아닌 첩이라 할지라도 부양받을 권리를 지녔다. 그러나 결혼해 달라고 사정하는 여인들은 그러한 당연한 권리조차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 그들의 소원은 한 가지뿐이다. 제발 결혼만 해달라는 것이며 '...의 아내'라고 불리우게 해 달라는 것이다(창 12:17, '아브람의 아내 사래';창 46:19, '야곱의 아내 라헬').

 

우리로 수치를 면케하라 - 그들이 이처럼 결혼하기를 구걸하는 것은 수치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수치는 과부의 수치요(54:4), 또한 자식을 갖지 못한 수치이다(창 30:23). 시온의 부녀들의 교만과 허영은 끝내 수치를 면케 해달라고 비는 굴욕으로 마감된다.

 

4:2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사10:20, 욜2:32

그 날에(* , 바욤 하후) - 앞절과 동일한 '그 날에'라는 말로 새로운 단락이 시작된다. 그러나 내용은 정반대이다. 1절의 '그 날'이 심판의 날이요 수치의 날이며 서 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날이라면, 본문의 '그 날'은 회복의 날이요 영광의 날이며 새로운 싹이 돋는 날이라고 할 것이다.

 

여호와의 싹이...그 땅의 소산은 - '여호와의 싹'이 메시야를 가리킨다고 보는 점에서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일치한다. 그러나 보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여호와께서 이미 시작하신 구원 운동을 비유하는 것이며, 그 운동의 일직선상에서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Leupold). '싹'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체마흐'(* )는 식물의 자라남이 함축하고 있는 신선한 생명력과 활력을 나타내는 말로서, 우리말의 '싹', '가지'보다 더 포괄적이다(창 19:25;렘 23:5;겔 16:7;호 8:7;슷 3:8). 때로 망각되고 때로 은폐되었던 여호와의 싹, 즉 여호와의 구속 사역은 질긴 생명력으로 엄동(嚴冬)의 땅을 뚫고 솟아올라 그 가냘픈 듯이 보이는 싹을 틔운다. 어떤 주석가들은 병행하는 구절에서 이와 동의어로 쓰인 '땅의 소산'과 관련하여 메시야의 이중적 기원을 읽기도 한다(Vitringa, Hendewerk). 곧 그것이 '여호와의 싹'인 한에서 신적인 기원을, 다른 한편 그것이 '땅의 소산'인 한에서 인간적인 기원을 묘사한다는 것이다(롬 1:3, 4 참조). 그러나 선지자가 그 같은 것을 말하고자 의도하였는지는 의문이다. 계속해서 선지자는 거듭되는 4개의 명사로 여호와의 싹의 아름다움을 묘사한다.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 개역 성경에는 '아름답 다'와 '영화롭다'로만 표현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원문에는 비슷한 뜻을 가진 4개의 명사, 즉 '체비'(* ), '카보드'(* ), '가온'(* ), '티프에레트'(* )로 표현되어 있다. '체비'는 광채 혹은 영광을 뜻하며, '카보드'는 명예와 존귀 혹은 영광을 뜻하며, '가온'은 고상함과 위엄을 뜻하며, '티프에레트'는 장식 혹은 광채를 뜻한다. 이처럼 '아름다움'을 뜻하는 4개의 명사를 병렬시킴으로써 선지자는 여호와의 싹이 나타내는 비할 데 없는 영광과 그 아름다움을 최고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아름다움이 모든 이들에게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메시야의 영광이 믿음으로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만 밝히 보이듯이, 여호와의 싹과 땅의 소산으로 비유된 여호와의 구원 운동이 지니는 지극한 아름다움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에게만 인식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 - 이들은 바벧론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이며, 2:2-4:1에 묘사된 심판에서 생존한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Leupold). 이들에 대한 묘사가 다음절에서 계속된다.


 

4:3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 '시온'과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집을 가리키는 동일한 이름이다(2:3). '남아 있는 자'(* , 하니쉬아르)와 '머물러 있는 자'(* , 하노타르)는 동의어로서 둘 다 집합적인 의미를 갖는 단수로 쓰였다(주제 강해, '남은 자(The Remnant)에 관한 역사적 이해' 참조).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고 칭함을 얻으리니 - '녹명된'이란 표현은 '생명의 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출 32:32; 시 69:28; 단 12:1;말 3:16;눅 10:20;빌 4:3;계 3:5;13:8;17:8;20:12, 15;21:27). 고대의 도성(都城)들은 그 도성의 시민으로 인정된 자들의 이름을 모두 기록한 시민 인명록(人名錄)을 보존하였다. 여기에 이름이 기록되고 혹은 지워지는 것은 공동체의 삶가가 관련하여 개인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선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이상이다. 종말론적으로 표상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요 세말의 구원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차이는 단지 공동체의 삶에 참여하느냐 안하느냐를 넘어서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의 문제로까지 부각되는 것이다(행 13:38 참조). 따라서 이들에게 '거룩'(* , 카도쉬)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이 부여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정화하는 심판을 통해서 더러움의 때를 벗고 순결한 원상태로 회복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4:4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사28:6, 눅3:17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 '루아흐'(* )는 '영' 혹은 '바람'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영은 땅 위를 휩쓰는 바람처럼 눈에 보이지 않으나 놀라운 힘과 권능으로써 더러운 모든 것들을 제거하신다. 그 앞에서 악인이 징벌을 당하기 때문에 그것은 '심판의 영'이라 불리우며, 또한 불로 태움같이 악을 철저히 제거하기 때문에 그것은 '소멸의 영'이라 불리운다(Delitzsch). 이러한 씻음이 선행된 뒤에야 이스라엘은 비로소 본래의 '거룩한 나라'(출 19:6)로 회복될 것이다.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정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 '시온의 딸들'의 죄악을 선지자는 '더러움'으로 표현하고, '예루살렘'(의 남자들)의 죄악을 '피'로 표현한다. 남자들, 특히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였으니, 그들의 죄악을 '피'(* , 데메)라 불러 마땅하다.

여자들은 허영과 사치속에서 음욕을 찾아 헐떡였으니, 그들의 죄악을 '더러움'(* , 초아트)이라 불러 당연하다. '오물(혹은 배설물)'을 뜻하는 '초아트'는 그들의 도덕적 불결함을 드러내고, '피'는 그들의 법적인 살인 행위를 고발한다(Delitzsch).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온전히 씻겨지며, 청결케 될 날이온다. 그날은 여호와의 구원의 날이다. '씻으시며'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하츠'(* )는 '몸을 정결케 한다'는 신체적 의미 이외에도 법적으로 '사면되다', '깨끗케 되다'는 의미로 내포하고 있다.

 

4:5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사60:1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만드시고 - 원문대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그리고 창조하실 것이다(* , 우바라), 여호와께서. 시온 산의 모든 장소(* , 메콘) 위에와 그녀의 집회(* , 미크라에하)위에...' 시온 산은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여호와의 전의 산'(2:2)일 뿐 아니라 거룩한 백성들이 모여서 축제를 행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에 여호와는 과거 광야 유랑 때 시내 산

에서 보였던 영광을 훨씬 능가하는 새로운 영광을 창조하신다. 이 영광으로 인해 '시온 산 구석구석이 찬란하게 빛날 것'(Calvin)이며, 이 영광의 빛으로 인해 시온 산은 모든 산 위에 뛰어나 굳게 서며 만방이 그리로 몰려들게 될 것이다(2:2).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 - 선지자는 독자의 시선을 멀리 광야 유랑 시대로 인도한다. 그때 여호와는 낮의 구름과 밤의 불로써 출애굽한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보호해주셨던 것이다(출 13:21, 22). 낮의 구름과 밤의 불은 여호와의 임재와 보호의 표징이었다. 구름과 화염 사이에 놓여 있는 '연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 델리취(Delitzsch)는 '구름과 연기'를 중음법(重音法)으로 파악한다. 즉, 형체는 구름이면서 실체는 연기로 되어 있어 일반적인 구름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구름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이가 주석가들은 불이 없이는 연기가 생길 수 없다는 점을 들어 '화염'에 연결시킨다(70인역, Vitringa, Lange, Hengstenberg). 공동 번역은 본문을 이렇게 풀이하였다:'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솟아오르는 연기와 환한 불길.'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 '천막'(* , 후파)은 덮여 있는 것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한 것으로서 시온 산위에 구름 형태로, 연기와 화염의 빛의 형태로 떠 있게 된다.

 

4:6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또 천막이 있어서...되리라 - 본절에 나오는 낮의 더위와 풍우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적대적인 세력들에 대한 상징어이다. 이들에 맞서 그늘을 지어주고 숨을 곳을 만들어 주는 '천막'은 '구름'(Lowth)이나 '시온 산'(Delitzsch)이라기보다는 '하나님 자신'으로 봄이 가장 적절하다(Gesenius, Gray). 시편 기자가 노래했듯이, 오직 하나님만이 성도의 그늘이며 피난처가 되시는 것이다(시 91:1):"여호와께서 네 우편에 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시 121: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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