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에 도끼를 대어라.” 수업을 받고 있던 어느 학생의 안부편지에 인용되어 있던 성녀 소화 데레사의 말씀이다. 삶과 하느님 관계를 보다 본질적인 인생의 지표로 삼기 위해 주변적인 것들을 과감히 잘라내고자 하는 그의 노력에서 피나는 전쟁터가 느껴졌다. 아무리 젊고 용감한 나이라 하더라도 아직 겁도 나고 많이 아프기도 할 텐데 그 과정을 어떻게 견뎌내나 하는 마음에 대견스러우면서도 나도 함께 아스라한 마음이 되고 말았다. 인생의 모순된 단면이지만 이상하게도 인간은 넘어지고 무너져야 비로소 강한 삶을 배우게 된다. 무너져 본 사람만이 삶의 깊이를 갖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인데 바닥까지 가 봐야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어서일까, 예언자들 중 이러한 삶의 모순을 전달하기 위해 그 자신이 너무도 많은 고통을 받아들여야 했던 이가 있었다. 예레미야다.
1. 시대적 배경 ⑴ 국제 정세 예레미야는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최강자였던 아시리아가 붕괴되고(기원전612년) 새로 결집된 신생 바빌론이 실세로 등극하던 시기에 활동했던 사람이다(6새기 중엽). 소명을 받을 무렵 북방에서 끓는 가마솥이 남쪽으로 기울어진 환시를 보게 되는데(1,13-14), 이는 당시의 급변적 상황을 잘 표현해 준다. 또한 남쪽에는 비록 세력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강력했던 이집트가 버티고 있었다. 유다의 왕과 대신들은 남쪽의 이집트와 북쪽 아시리아와 신생 바빌론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⑵ 국내 정세 유다 당국 내부는 멸망하기 전까지(기원전587년) 약 40년간 요시아, 여호아하즈, 여호야킴, 여호야킨, 치드키야 등 5명의 왕이 교체되는 불안정한 사태가 계속된다. 예레미야와 연관된 각 왕들의 상황을 짧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요시아 시대(626-609) : 젊은 예레미야와 젊은 요시아는 서로 그다지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마음의 회개가 없는 개혁이 얼마나 역겨운지를 깨닫고 있었기 때문일까? 요시아 사망 전까지 예레미야는 특별한 신탁을 전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예레미야서 안에 구체적 신탁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② 여호야킴 시대(609-597) : 이집트와 유다가 대적했던 므기또 전투에서 요시아가 전사하자 이집트는 팔레스티나와 시리아를 장악한다. 요시아의 뒤를 이어 아들 여호아하즈가 등극하지만 이집트의 느고는 그를 폐위시키고 대신 여호야킴을 왕좌에 앉히는데, 유다의 왕을 이집트의 꼭두각시로 전락시키려는 전략이었다. 예레미야의 생애에서 이 시기는 기득권층과 갈등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였다. 예레미야는 국내에서는 압제자요. 국외적으로는 이집트에 아부하던 여호야킴의 무능을 비난하면서 ‘북의 위협’을 선포하지만 그의 성전설교(7,1-15 ; 26장)는 불온선전으로 매도되어 반대의 표적이 되고,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외면당한 채 고독하게 예언직을 수행해 나간다. ③ 치드키야 시대(597-587) : 여호야킴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여호야킨이 추대되지만 결국 그도 바빌론으로 유배되고(1차 유배, 597년) 치드키야가 왕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그가 바빌론에 반란을 시도하자 결국 바빌론은 유다를 완전 점령하고(2차 유배, 587년)예레미야 신탁도 끝나게 된다.
2. 인물 ‘예레미야’라고 한국어로 음역된 이름의 히브리식 발음은 ‘이르메야후’이며, 이는 ‘야훼께서 던지시다, 급히 보내시다’라는 의미이다. 곧 붕괴될 것 같던 유다 왕국에 예언자를 급히 보내시는 하느님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된 이름이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동북방 벤야민의 땅 아나돗에서 사제 에비아달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아나돗은 남왕국의 전통의식을 고수하던 예루살렘과는 구별되는, 소위 ‘변방신학’이 강하게 퍼져 있던 곳이었다. 이는 남왕국의 전통신학을 강하게 반영하는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구별시키는 단초가 되는데, 아나돗 사제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활동하던 ‘중앙 제도권’의 사제들과는 구별되거나 대립되는 ‘재야파’ 사제들이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원래 온순하고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었지만 하느님이 주시는 소명 때문에 ‘말씀의 고독한 예언자’로 불릴 만큼 고통과 고독으로 점철된 생애를 살아간다. 자신을 힘든 삶으로 몰아가는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삶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운명에서 도망가지 못한다.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나에게 삶을 주신 하느님이시며, 따라서 그분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인생이라는 통찰 때문이었다. 예레미야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는데, 이 때문에 학자들은 예레미야의 전기를 기록했던 바룩이 예레미야보다 먼저 죽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전승에 의하면 이집트로 끌려가 거기에서 돌에 맞아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3. 편집 과정과 내용 예레미야 예언서에 대해서는 문학비평의 문제가 강하게 제기되어 왔다. 모든 구약성경이 그렇지만 특히 예레미야를 읽으면 마치 미로에 들어선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연대순이나 주제별로 책이 저술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모음집’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서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지는 36장이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그 본문에 의하면 여호야킴은 바룩이 받아 쓴 예레미야의 신탁을 자기 앞에서 읽으라고 하고 조금씩 불에 태워버린 후 예레미야와 바룩에게 체포령을 내린다. 이렇게 하여 유실된 본문을 예레미야는 다시 바룩에게 쓸 것을 명하는데, 이것이 아마도 ‘원본’을 새로이 복원한 예레 1-25장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 후 바룩은 예레미야 말년에 여러 자료를 보충하여 예레미야의 전기(26-45장)를 스고, 이 기록은 계속 보존되어 오다가 유배 중 신명기계 학파에 의해 편집된다. 그 후 독립적으로 존재해 오던 신탁들이 규합되면서(예레미야의 고백록, 이방 민족들을 향한 신탁, 구원신탁 등) 예언서 전반에 대한 최종적 편집이 완결되었다고 본다.
4. 신학과 메시지 ⑴ 고독, 소외 그리고 고통 구약성경 안에서 인간의 고독과 고통을 가장 깊이 만날 수 있는 책이 예레미야서다. 그의 고통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뽑아내고 다시 심으실 것’이라는 요지의 신탁을 전해야 하는 데 있었는데, 이러한 메시지는 이미 그의 소명사화 안에(특히, 1,10) 드러나 있다.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준다.” 이는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 곧 당시 유다인들에서 시급히 유구되던 작업은 ‘다시 심어지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뽑히는 고통스러운 작업’(유다 왕국의 참담한 붕괴)은 전제되어야 할 과정이었다. 결국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넘어지고 부서져야’ 새로 시작할 수 있음과 이를 위해 하느님께서는 신생 바빌론이라는 최강의 도구를 사용하실 것임을 전한다. 자기 백성이 망해야 하고 바빌론 왕에게 항복해야 한다고 말했던 예언자가 어떤 반대를 받았을지는 쉽게 짐작되는 부분이다. 더구나 당시 제도권에 있었던 지도자들(대표적으로는 예레미야와 대립했던 예루살렘의 대사제 하나니야)은 불안정한 정세에 혼란스러워하던 유다인들에게 하느님이 계시는 한 유다는 절대로 망하지 않고 존속할 것임을 민족주의적 정서 안에 천명함으로써 백성의 지지를 받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⑵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 오해의 여지가 다분했던 예레미야의 신탁에 백성의 분노가 극에 달하게 되자 예언자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예언자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대중과 권력의 폭력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뿐이심을 알려준다.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1,17). 어느 인간 앞에서 용기를 잃고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부족함을 의미한다. 하느님만을 두려워하는 자세가 그 어떤 권력이나 폭력에도 조정되지 않는 가장 완벽한 자유임을 알려주신 것이다. ⑶ 성전에 대한 바른 이해 다른 예언서도 마찬가지지만 예레미야서도 ‘성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강조한다. 당시 사람들에게 성전은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장소로서, 그들은 하느님이 그 안에 계시는 한 자신들은 절대로 망할 리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성전을 ‘구원의 담보’로 여기는 당시의 안일한 사고를 비판한다(7,1-15).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삶이 구체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성전에 하느님이 계신다 해도 그것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음을 주지시키면서 ‘길과 행실을 고치는 것’(7,3 ; 18,15 참조)만이 구원의 본질임을 강조한다. ⑷ 새 계약, 새 법 앞에서 언급한 본질적 회개를 위해 제시된 또 다른 주제는 ‘새로운 심장의 이식’(4,4 참조)이다. 곧 심장(마음)이 완전하게 변하는 것만이 새로운 삶의 비결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인데, 특별히 예레 31,31-34는 새로운 심장의 이식을 통해 새롭게 맺어진 하느님과의 관계(계약)가 더 이상 돌판에 새겨지지 않고 심장에 새겨짐을 선포한다. 돌판에 새겨진 계약이 ‘구약(옛 계약)’이었다면 이제 마음에 새겨지는 계약은 ‘신약’ 곧 새로운 계약이 되는데, 이렇듯 ‘구약’, ‘신약’이라는 용어는 성경 안에서 예레 31,31-34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결국 이는 구약이건 신약이건 마음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그건 계약(Testamentum, 성경)이 아님을 가르쳐 준다. 이렇게 ‘마음에 기초를 두고 새롭게 맺은 계약’이라는 주제는 토라의 반포를 통해 귀환 공동체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한 유다이즘의 기초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삶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내와 성실을 요구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그럴수로 과연 생을 걸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강하게 품어본다. 물론 답이야 천차만별이겠지만 요즘 나에게는 ‘삶의 깊이와 성숙’이 답이다. 내면의 깊이가 없다면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을 가졌다 해도 타인의 비웃음과 경멸의 대상이 되기 쉽고,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개인의 내면이 공개적 심판대에 오름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레미야서는 내면의 성숙을 ‘새 심장의 이식’이라는 독특한 모티브로 표현하고 있다. 세상이 힘겨워졌을 때,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을 지켜내기 어려워졌을 때는 마음을 모을 일이다. 깊이와 성숙이라는 생의 목표를 위해 내가 드디어 수술대에 오르는구나, 꾹 참고 깨어나면 하느님의 새 삶이 주어지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시련의 이유를 알면 고통은 멈춘다’ 는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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