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대선지서

이사야 제 3장

은바리라이프 2008. 7. 21. 15:46

 

 이사야 제 3장

 http://www.kidok.info/BIBLE/B_RHV/cgi/bibleftxt.php?VR=0&CI=5891&CV=99&FR=H

 

 

 

유다에 대한 심판

 

3:1 보라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예루살렘과 유다 - 1:1과 2:1에는 '유다와 예루살렘'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선지자는 '예루살렘과 유다'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성도(聖都)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유다 전역으로 퍼져갈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예루살렘으로부터 그리고 유다로부터'로 되어 있다.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모든 물 - 유다 사람들이 의지하는 모든 것들의 구체적 대상으로서 먼저 언급된 것은 '양식'(* , 레헴)과 '물'(* , 마임)이다. 이 둘은 비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인간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 불가결한 두 요건으로서 거론된 것이다(Alexander, Delitzsch). 양식과 물을 끊는다는 것은 기근을 뜻하며(레 26:26;겔 4:16;5:16;14:13), 이것은 바벧론 왕 느부갓네살의 침공 때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왕하 25:3;렘 38:9;애 4:4, 10).

 

3:2,3 용사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 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은 앞절에서 묘사된 것처럼 단순히 육체적 파멸에만 국한되지 않고 공동체의 총체적 와해로까지 이어진다. 본문에서 선지자는 유다를 지탱하던, 다시 말하면 유다 사람들이 의뢰하고 의지하였던 그들의 지도자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1) 군사적 지도자들:

용사(* , 깁보르) - '힘있는 남자' 혹은 '영웅'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높은 계급의 군대 장관을 뜻한다(Michaelis, Gesenius, Delitzsch).

 

전사(* , 이쉬 밀르하마) - 군인을 가리킨다. 이 말은 앞의 '용사'와 관련하여 높은 계급의 군인으로 이해되기도 하고(vITRINGA), 혹은 '용사'와는 구별된 사병으로 이해되기도 한다(cOCCEIUS, dELITZSCH).

 

오십부장 - 50명으로 구성된 군대의 최하급 단위 부대의 장을 말한다. 이것은 본래 행정, 사법적인 목적에서 비롯되었으나(출 18:25, 26), 후에 군사적 목적으로 변경되었다.

 

(2) 정치적 지도자들:

재판관(* , 쇼페트) - 여기서는 사법적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당국에 의해 임명된 행정 관리들을 가리킨다.

 

장로(* , 자켄) - 이들은 나이든 노인으로 그들의 지혜와 경륜을 발휘하여 지도적 위치에서 공동체를 다스렸다.

 

귀인(* , 네수 파님) - 문자적으로는 '얼굴이 들린 (사람)'인데, 사람들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하했던 사람을 가리킨다(9:15;왕하 5:1;욥 22:8).

 

모사(* , 요에츠) - 왕의 측근으로서, 나라의 중요한 정책 결정에 조언을 했던 사람을 말한다.

 

(3) 종교적 지도자들:

선지자(* , 나비) -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계시해주는 일을 맡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들이 복술자와 함께 열거된 것으로 보아 거짓된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같다(Michaelis, Gesenius).

 

복술자(* , 코셈) - 점을 쳐주는 사람을 가리킨다(겔 21:21-23). 이런 행위는 모셉법에 의해 정죄되었다(신 18:10-14).

능란한 요술자(* , 네본 라하쉬) - '라하쉬'(* )는 '속삭이다' 는 뜻으로서, 마술 주문을 외우거나 중얼거리는 것을 가리킨다(삼하 12:19;시 41:7).

 

(4) 산업 기술자:

공교한 장인(* , 하캄 하라쉼) - 기술에 능한 사람들로서 전쟁 무기의제조(Michaelis) 혹은 우상 제조(Umbreit) 혹은 연금술(Gesenius, Ewald) 혹은 산업 기술(LXX, Luther, Vitringa)에 종사한 사람들을 가리킨다(왕하 24:14;렘 24:1).

앞절과 마찬가지로 본문의 예언 또한 느부갓네살 왕이 침공해 올 때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왕하 24:14-16을 참조하라.

 

3:4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아이들로...적자들로...하시리니 - '아이들'(* , 네아림)과 '적자들' (* -, 타알룰림)은 병행하는 동의어이다. 이 명사들은 비인격적인추상명사로서 나이의 측면에서라기보다는 그 성격적 측면에서 '어린 것들'이라고 호칭된다. 따라서 이 말은 '유치함', '치졸함'(Delitzsch) 혹은 '무책임성'(Leupold)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것이 20세에 왕위에 오른 아하스를 예언한 것(왕하 16:2)이라고 하기도 하고(Ewald, Hitzig, Knobel), 혹은 이사야 선지자 이후의 일련의 사악한 왕들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Lowth). 그러나 12절의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라는 구절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말은 특정한 인물에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적자'라고 번역된 '타알룰림'이 '욕망을 만족시키다', '자기 기분을 채우다'는 뜻을 가진 '히트알렐'(* -)에서 파생되었음을 보더라도, '적자의 통치'라는 것은 '법과 공의도 없이 오직 통치자의 기분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잔인성을 만끽하는 공포 정치'임이 분명하다. 5절 이하에서는 이러한 통치가 가져오는 비극적인 상황이 전개된다.

 

3:5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 먼저 수평적 측면에서 극단적인 이기심과 불신으로 말미암는 인간 관계의 파탄이 초래된다. 그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특징지워진다.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사는 이웃은 각기 돌보고 서로 즐거워

해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서로 학대하고 잔해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말이다.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 수직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권위의 상실이다. 그것은 하극상으로 특정지워진다. 고대 사회에서 노인은 일반적으로 존경의 대상으로 여겨졌다(레 19:32;신 28:50). 마땅히 있어야 할 공경과 우러름이 사라진 사회는 더 이상 질서있는 사회, 틀을 갖춘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은 총체적으로 '무정부 상태'로 파악될 수 있다.


3:6 혹시 사람이 그 아비에서 그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우리 관장이 되어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할 것이면

선지자는 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한 토막의 짧은 삽화를 소개한다. 그것은 남들보다 점잖은 옷을 입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받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 이 말은 앞의 '우리 관장이 되어'에 병행하는 말이다.

그 뜻은 '현재의 위기 상황을 당신의 책임하에 수습해 달라'는 것이다. '손'(* , 야데카)은 권위를 상징하는 낱말이다(창 16:9;출8:10).

 

3:7 그 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내 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로 백성의 관장을 삼지말라 하리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 문자적인 뜻은 '나는 싸매는 자가 되지 않겠다' 이다. '고치는 자'라고 번역된 '호베쉬'(* )는 '싸매다'는 뜻을 가진 동사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관장이 되어 달라고 초청받은 이의 이러한 거절에 대해 어떤 이들은 '나는 하지 않겠다'는 항의와 반감의 표현이라고도 하고(Lowth, Knobel, Alexander) 혹은 '나는 할 수 없다'는 무능력의 고백이라고 보기도 한다(Targum, De Wette, Leupold, Delitzsch).


3:8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려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 '멸망하였고'로 번역된 '카쉘라' (* )는 '흔들거리다', '걸려 넘어지다'는 뜻을 갖고 있으며, '엎드러졌다'로 번역된 '나팔'(* )은 '떨어지다'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본문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예루살렘이 비틀거리고 유다가 떨어졌다'가 된다. 선지자가 여기서 완료 시제를 쓴 것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이 확실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예언적 완료 시제).

 

그 영광의 눈을 촉범(觸犯)하였음이라 - '촉범하였음이라'(* , 라므로트)는 말은 '항거하다', '대들다'는 뜻을 가진 동사 '마라'(* )에서 연유하였다(시78:17). '영광의 눈'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성에서 뿜어 나오는 신령한 빛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영광은 종종 '눈'으로 비유된다(욥 25:5 참조).

 

3:9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 그 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가 있을찐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소돔과 같으니 - '그들의 안색'(* , 하카라트 페네헴)은 탈굼역과 시리아 역본을 따른 몇몇 주석가들에 의해 '한 쪽편을 들어 낯을 보아주는 당파적 편애'로 해석되기도 한다(Clericus, Hitzig). 그들은 신 1:17;16:19;잠 24:23;28:21 등에 나오는 유사한 표현에서 그 근거를 취한다.

러나 이 구절은 어떤 특수한 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기보다는 병행하는 구절-'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 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처럼, 죄악이 너무 깊어서 얼굴에까지 각인되어 있는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Gesenius, Calvin, Delitzsch 등). 앞 절에서 묘사된 그들의 죄는 뼈 속까지 파고들어서 영혼마저 마비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으며 굳이 죄를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하게 자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3:10,11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가 있으리니 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심는 대로 거둔다는 진리가 반복되어 나온다. 사람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기 마련이다. 의를 심으면 의의 열매를, 악을 심으면 악의 열매를 말이다. 비록 경험적 현실에서 이 같은 응보가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으나(시 73편;말 2:17;3:13)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그날에 모든 것은 바르게 드러날 것이다. 선지자는 지혜 문학적 격언 형식으로, 혹은 일반적인 금언 형식으로 이 같은 진리를 제시함으로써 이 말이 갖는 통시적, 공시적 보편성을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3:12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 선지자는 앞에서 논의된 내용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는 법정 진술로 이어지는 뒷부분과의 연관성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본문은 히브리어 원문대로 읽으면 '내 백성이여 !(혹은, 내 백성에 관해서 말한다면) 그들의 압제자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여자들이 그들을 억압할 것이다'이다. 여기에서 '아이들'이 나이와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성격적 측면에서의 방자함과 치졸함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4절). '아이들'과 더불어 거론된 '여자들' 역시 무능력하고 무자격한 통치자의 예로서 제시된 것이다. 어쩌면 선지자는 아달랴 왕비의 악한 통치(왕하 11:1-20)나 이세벧의 폭정(왕상 18:4;21:5 이하)을 상기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Leupold). 이러한 무자격한 통치자들이 나라를 주관하는 경우, 그 치명적인 결과는 자명해진다.


3:13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여호아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 본문에 사용된 두개의 동사, 즉 '일어나시며'(* , 니차브)와 '서시도다'(* , 오메드)는 각각 분사형으로서 여호와께서 재판하시기 위하여 법정에 들어서시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해주고 있다(미 6:1 이하). 재판하시는 분으로서 여호와는 기소하는 검사요, 심판하는 판사며 집행자로 묘사된다(Delitzsch).


3:14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을 국문하시되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 원문대로 읽으면 '그리고 너희, 너희가 먹어 치웠다. 포도원을'이다. 강조점이 '너희'(* , 아템)에 놓인다. 여기에 묘사된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가리킨다(5장). 그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포도원을 가꾸고 돌보는 자들로 방백들과 장로들, 즉 지도자들을 세우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포도원을 지키라는 부름을 받은 그들에 의해 포도원이 침탈되고 황폐케 된 것이다. 병행하는 다음 구절에서 그들의 죄악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있도다 - '탈취한 물건'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게젤라트'(* )는 '가죽을 벗기다', '상처를 입히다'는 뜻의 동사 '가잘'(* )에서 파생된 말이다. 가난한 자를 착취, 약탈하는 것은 그의 피부를 벗기는 것과도 같은 끔찍한 악행이다.

 

3: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리로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 - 백성들에 대한 지도자들의 범죄가 두 동사로 명료하게 표현되었다. '짓밟다'(* , 다카)는 '박살내다', '짓이기다'는 뜻이며, '멧돌질하다'(* , 타한)는 '잘게 부수다', '억압하다'는 뜻이다. 여기 보여진 광경은 너무나 선명하고 참혹해서 결코 잊을 수 없다.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땅에 가슴을 대고 엎드려 있으며 그 얼굴은 피와 먼지로 뒤범벅되어 있다. 그 얼굴을 관원의 발이 짓누르고 있다. 그가 발에 힘을 줄 때마다 가난한 자의 얼굴은 더욱더 땅에 파묻힌다. 백성들에 대한 지도자들의 횡포가 이와 같았다. 지도자들의 범죄는 대개 정치적 이유로 밝혀지지도 않고 묵과되기 쉽다. 그러나 공의로운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절대로 간과되지 않는다(잠 14:31;19:17;21:13;22:16, 22;28:27;29:7 참조).


 

시온의 교만한 딸들에 대한 책망

 

3:16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시온의 딸들 - 1:8의 '딸 시온'이 성도(聖都) 예루살렘을 의인화시킨 것이라면, 본문의 '시온의 딸들'(* , 베노트 치욘)은 시온에 거주하는 부녀들을 가리킨다.

 

교만하여 - 교만의 주제가 2:11 이하에서 계속되고 있다. 남자들의 교만이 주로 권력과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나타난다면, 여자들의 교만은 주로 허영과 음란으로 나타난다.

 

늘인 목 - 고개를 숙이며 걷는 것이 겸양의 표시로 간주되듯이, 목을 늘여 머리를 하늘 높게 쳐들고 걷는 것은 교만의 표중으로 간주된다.

 

아기죽거려 행하며 - 아이들처럼 잰 걸음으로 걷는 것을 말한다. 이는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것이다. 루터(Luther)는 이것을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걸었다'로 번역하였다.

 
3:17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 '정수리'는 머리 꼭대기를 말한다. 교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그곳에 하나님은 딱지(* , 시파흐)가 생기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신다. 딱지는 '옴 따위의 피부병'(KJV), '앞머리를 깎아 미는 것' (G.R. Driver), '대머리가 되게 하는 것'(Alexander) 혹은 '비듬투성이가 된 불결한 모습'(Lange) 등등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아름다움을 생명으로 하는 여성에게 이것은 치명적인 형벌이다.

 

3:18  주께서 그 에 그들의 장식한 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구체적 목록을 열거하기에 앞서 선지자는 이것들을 '티프에레트'(* )라는 한단어로 요약한다. 이 말은 '장식품' 혹은 '화려한 옷차림'으로 번역할 수 있다.

발목 고리(* -, 아카심). 이는 금, 은, 상아 고리로서 발목에 다는 것이다.

머리의 망사(* , 슈비심). 이는 머리에 덮은 그물 아래로 금박이나 은박실을 땋은 것으로, 대개 리본 장식을 매었다.

반달 장식(* , 사하로님). 목에 둘러서 가슴까지 내려오게 한 반달 모양의 금속 목걸이를 말한다(삿 8:21).

 

3:19 귀 고리와 팔목 고리와 면박과

면박(* , 레알로트) - 얼굴에 걸치는 값비싼 면사포를 말한다.

 

3:20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

발목 사슬(* , 체아도트) - 이는 '걷다'(* , 차아드)에서 파생된 것으로, 걸음걸이를 멋지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발목 고리에 연결하여 단 장신구이다.

호산부(* , 레하쉼) - '마술부리다'(* , 라하쉬)에서 파생된 것으로, 부적과 같은 말이다.

 

3:21 지환 고리와

지환(* , 타바오트) - 손가락에 낀 반지를 말한다.

코 고리(* , 니즈메 하아프) - 코를 뚫어 매다는 것으로, 동방에서 널리 사용된 장신구의 일종이다.

 

3:22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주머니

예복(* , 마할라초트) - 특별한 때에만 입는 정장을 말한다.

겉옷(* , 마아타포트) - 옷 위에 걸쳐 입는 가운 비슷한 옷으로, 안에 입은 옷보다도 더 화려하였다.

 

3:23 손 거울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

세마포 옷(* , 세디님) - 인도의 직물로 만든 베일이나 옷을 말한다(삿 14:12, 13, 잠 31:24).

너울(* , 레디딤) - 머리에서부터 겉옷 위로 둘러 전신을 가리는 넒은 망토를 말한다.

 

3:24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

유다의 지도층 인사들이 권력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착취하고 있을 때, 부유한 시온의 부녀들은 축적된 부(富)를 이용하여 온갖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장식품들로 몸을 가꾸었음을 이상의 목록들에서 알 수 있다.

마땅히 가져야할 내면의 덕(벧전 3:3, 4 참조)은 가꾸지 않고 오직 외모를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된 그들에게 여호와의 진노는 다음과 같이, 즉 먼저 사치스러운 것들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누추하고 비참한 것들을 들여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곧 없어질 좋은 것들과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나쁜 것들의 대조가 '대신에'(* , 타하트)라는 전치사에 의해 짝지워진다.

'타하트'는 본절에 모두 5번 나온다. '자자한 흔적'(* , 키)이란 노예 혹은 죄인의 표시로서 불로 낙인한 것을 가리킨다. 한편, 본절에 열거된 사항들은 모두 전쟁과 관련된다.

즉, '상처입고-포로로 잡히고-슬픔으로 머리를 뜯고-국가적 재난에 직면해 베옷을 입고-끝내는 노예가 된다.' 시온의 부녀들이 누렸던 한때의 쾌락과 허용은 전쟁과 더불어 일순간에 재난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3:25 너희 장정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너희 장정(壯丁)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戰亂)에 망할 것이며 - 앞절에서 암시되었던 상황이 여기에서 분명해진다. 전쟁에서 읽은 것은 장식품들만이 아니다. 그들의 남편이 전쟁터에서 죽을 것이며, 따라서 그들 자신은 과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불행 이외에, 나라 전체가 치욕적인 패배 속에 함몰되리라는 내용도 함축되어 있다.

 

3:26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무하여 땅에 앉으리라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 성문은 백성들의 삶의 중심지이다. 한때 웃음소리 드높았던 그곳이 그날에는 통곡소리로 가득할 것이다. 한때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던 그곳은 그날에 남편을 잃은 여인들의 울부짖음만 스산하게 울려 퍼지는 텅 빈 공간이 될 것이다(14:31;렘 14:2;애 1:4).

 

 

심판의 통고(1) (이사야 3:1-8)

이사야 예언자는 앞장의 끝에서, 사람이나 어떤 피조물을 의지하지 말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경고를 주었다. 그것은 인생의 연약함과 인간 능력의 허망함과 약함에서 이끌어낸 보편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것에 대한 특별한 이유를 들고 있다. - 하나님은 이제 피조물에게 두는 그들의 모든 신뢰를 멸하시려 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그 모든 기대에서 실망밖에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1절).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 은 제하여 질 것이다. 어떤 종류든지 그들의 지주가 되고 있는 것, 그들이 의지하며 도움과 위로를 기대하는 모든 것들이 없어질 것이다. 그들의 교회와 나라는 점점 연로해져서 이제 몰락하게 되었고, 그들은(노인들이 하는 대로, 슥 8:4) 지팡이에 기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는 것을 제거하겠다고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도회나 촌락이나, 그리고 예루살렘이나 유다나 그들이 의지하는 것이 제거되고 나면, 그들은 물론 쓰러질 수밖에 없다. 예루살렘과 유다는 실상 서로 지주가 되어 주고 있으며, 하나가 쓰러지면 다른 하나도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일을 행하시는 자는 "주, 만군의 여호와" - 곧 그 자신이 지주나 토대가 되시는 여호와 주(主) 이시다. 그러므로 만일 그 지주(支柱)가 없어지면, 우리에게 있는 다른 모든 지주들도 분명히 부서지고 만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모든 지주들의 힘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여호와이시다. 즉 그것을 행할 권위를 가지신 주권자이시며, 그것을 행할 능력을 가지신 만군의 여호와이시므로, 그는 버팀줄이나 그 기둥을 제거하실 것이다.

성 제롬(St. Jerome)은 이 구절을 유대 민족이 우리 구주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 현저히 쇠퇴한 사실과 관련시키고 있다(롬 11:9, 10). 그러나 나는 오히려 하나님을 격동시키지 말라고 만방에 선포한 경고로 보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원수로 만든다면, 그는 이처럼 그들을 비참하게 만드실 수 있고 또 만드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세부적인 것들을 관찰해 보기로 하자.

Ⅰ. 그들의 풍족함이 그들에게 버팀목이 되었는가? 어떤 백성에게나 그럴 수 있다. 양식은 생명의 버팀목(바탕)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양식과 모든 물을 제하여 버리실" 수 있다. 그리고 식물의 풍족함이 죄의 원인이 되며(겔 16:49), 생명을 위한 양식이 될 것이 욕심을 위한 양식이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마땅하다. 그는 비를 내리지 않음으로써 양식과 물을 제하여 버리실 수 있다(신 28:23, 24). 또는, 하나님께서 비를 허용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단절시킴으로써 그들의 양식과 물의 버팀목을 제하여 버리실 수 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양식의 바탕이다(마 4:4). 따라서 그 축복이 제하여지면,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다(학 1:6). 그리스도는 생명의 양식이며 생명의 물이시다. 그가 우리의 버팀목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없어지지 않을 좋은 버팀목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요 4:14; 6:27).

Ⅱ. 그들의 팔 - 그들의 대장과 지휘관과 군사가 그들에게 버팀목이 되었는가? 이들도 제하여질 것이다. 칼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참패로 인해 낙담하여 그 직임을 포기하고 더 이상 행동하지 않기로 결심할 것이다. 또는, 직무를 수행할 수 없도록 병들어 버리거나 기가 죽어 버릴 것이다. "용사와 전사와" 심지어 하급 관리인 "오십부장" 까지도 제하여질 것이다. 용맹한 자들이 없어지는 것은 그 백성들에게 나쁜 징조가 된다. 그러므로 강한 자로 하여금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않게 하며, 백성들이 자기들의 용사를 너무 많이 의지하지 않게 하라. 오직 "강한 민족으로 주를 영화롭게 하며, 포악한 나라들의 성읍은 주를 경외하게" 하라. 그는 그 강자들을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들로 만드실 수 있는 것이다(25:3).

Ⅲ. 그들의 나라의 일군들 - 학식있는 자, 정치가, 성직자, 그들의 현인과 대가들이 그들에게 버팀목이 되었는가? 그들도 또한 제하여질 것이다. 율법에 익숙하며 재판에 숙달한 "재판관," 어려운 경우에는 백성이 상의하곤 했던 "예언자들," 다른 사람들보다 지각과 판단에 뛰어난 자로서 칭송받았고 재판관들의 보조원이었던 "복술가" (영어 성경 - 현인) 불법적인 재주를 사용했던 - 비록 썩은 지주였지만 - 사람들이 의지했던(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읽듯이 좋은 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단어 그대로) "점쟁이," 나이나 직책에 있어서 손윗사람인 "장로," 그 엄숙한 모습이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나이와 경험이 조언자로서 합당한 "귀인," 이 모두가 제하여질 것이다.

상업이 나라에게 있어서 하나의 큰 지주가 된다. 심지어 기계 공업과 수공업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모든 버팀목이 부러질 때는, "공교한 장인" 도 제하여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차례는 "능란한 요술자" (영어 성경 - "웅변가") - 비록 복술자와 장로는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 좋게 말함으로써 어떤 경우에 좋은 봉사를 할 수 있는 언변에 능한 자이다. 모세는 훌륭히 말할 수는 없으나, 아론은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들을 제하시려고 경고하셨다.

1. 즉 "재판장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 충성된 자의 말을 없이 하시며, 늙은 자의 지식을 빼앗으시어" (욥 12:17 이하), 그들로 하여금 나라 일을 할 수 없게 만드시겠다고 경고하신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우리에게 행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금까지 도움이 되었던 자들이 항상 그러하리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2. 그들의 날을 끝나게 하시겠다고 경고하신다. 방백을 의지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 "호흡이 끊어지기" 때문이다(시 146:3, 4). 유능한 사람들이 한창 일할 때에 죽음으로 인하여 제거되는 것은 그 백성에게 매우 위협적인 징조임을 기억하자.

Ⅳ. 그들의 정부가 그들에게 버팀목이 되었는가? 그러했어야 했다. 땅의 기둥을 부축하는 것은 주권자의 과업이다(시 75:3).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 버팀목이 쓰러지리라는 경고가 나와 있다. 용사와 현인이 제하여지면, "아이들이 그들의 방백이 될 것이다." - 그들은 아직 어린 나이어서 선생과 보호자 밑에 있어야 할 자들이다. 그러나 그 선생과 보호자들은 서로 충돌하며 그 어린 왕과 그의 나라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 그들은 지식에 있어서도 아기와 같아서, 요람에 있는 아기처럼 다스리기에 합당치 않은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이요, 총명과 기질에 있어서도 어린아이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들의 방백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어린아이의 어리석음과 변덕과 고집으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그 나라의 왕이 이처럼 어린 아기인 "나라에게 화가 있으리라" !(전 10:16)

Ⅴ. 백성들 가운데 이루어진 단합이, 그들이 서로 지켰던 훌륭한 질서와 훌륭한 이해와 왕래가 그들에게 버팀목이 되었는가? 그들의 형편이 실제로 그러하다면, 비록 그들의 방백들은 마땅히 되어야 할 그런 사람들이 아닐지라도 백성들은 그것을 위해 좀더 잘 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 사이에 악한 영을(삿 9:23 처럼)보내시리라는 사실이 여기에 경고되어 있다.

1. 영은 그들을 서로 해하고, 이웃과 불화하도록 만들 것이다(5절).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할 것이고, 그들의 방백들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학대하는 자들을 제지하거나 학대당하는 자들을 구해주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그들에게 호소하는 것도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이것은 각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복수하도록 유혹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물어뜯고 삼켜 곧 서로 소멸될 것이다." 그때에 homo hminilpus - 사람은 사람에게 대해 이리가 된다. jusque datum sceleri - 악이 법의 허락을 받는다. nec hospes ab hospite tutus - 손님과 주인이 서로 위험이 된다.

2. 그들이 위사람에게 건방지고 난폭해지도록 만들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가 전체적으로 다루기 어렵게 되고 거칠며, 제어하기 어려울 때 - "아이가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해" 야 함에도 불구하고(레 19:32) - 즉 "노인에게 교만할" 때, 그것은 그 백성들에게 나쁜 전조이다. 젊은 사람들이 자만에 차있고 버릇이 없으며 윗사람에게 경망스럽게 처신한다면, 그들의 행위는 그들 자신에게 책망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은 정부의 고삐를 늘어지게 하며, 그것을 잡고 있는 손을 약화시킨다. 귀인들이 자기들의 권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비열하고 천한 자들에 의해 모욕당하고, 재판관들이 모욕당하며 그들의 권세가 군중들에 의해 도전당한다면, 그것도 역시 백성들에게 나쁜 전조이다. 이렇게 행하는 자들은 그 대가를 받을 것이다.

Ⅵ. 지금은 일들이 잘 조종되지 않을지라도 좀더 잘 처리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리라는 기대가 그들에게 약간의 희망과 힘이 되고 있는가? 이 기대도 좌절될 것이다. 왜냐하면 상황이 매우 절망적이어서, 지각이 있는, 실속이 있는 자들은 그 누구도 거기에 끼어들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 정부는 구걸할 것이다(6절).

(1) 여기에 보면, 민중의 동의에 의해 권세를 부여받은 훌륭한 장군이 나타나, 그 사회의 유익을 위해 그 힘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이 모든 화를 바로잡고 질서를 회복하는 길이 없으리라는 것은 당연시되고 있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해서 실제로 여러 나라의 정부가 기원되었을 것이다. 즉 사람들은 모두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서는 믿고 일을 맡길 합당한 자에게 합심하여 복종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자기들이 그런 자의 통치를 받지 않는한 멸망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 원래의 약정이 있다. "너는 우리 관장이 되라. 그러면 우리는 네게 복종하리라. 그리고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어, 복구시키고 바로 잡은 다음, 보존하고 확립하라. 그러면 그 권익이 증진될 것이다(58:12). 대외적으로 전쟁의 칼에 의하여 해를 당하지 않도록, 그리고 공의의 칼에 의해 서로를 해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라. 그리하면 우리가 그대를 신뢰하고 그대에게 진실로 충성하리라."

(2) 그 상황이 매우 비참하고, 슬픈 형세가 되어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1] 왜냐하면 아이들이 그들의 방백으므로, 사람마다 자기가 장관될 자를 지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자기 친척들을 등용시키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방백들이 그 직책에 합당한 자였다면, 관원들을 임명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맡겨져야 마땅하다.

[2] 사람들은 또 다스리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자의 수중에는 강제력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관장으로 삼고자 하는 자는 그가 그 제의를 반대할 것을 알고서 그를 강제로 "붙잡을 것이다." 아니 그는 그것을 그의 형제에게 강권할 것이다. 반면에, 사람들은 대개 그들과 대등한 사람이 상관이 되는 것을 꺼려하는데, 이것은 바로 요셉의 형제들의 시기심을 입증해 주고 있다.

[3] 그 이웃보다 더 좋은 의복을 입은 사람을 관원으로 발탁하는 것은 충분히 근거있는 일이라고 간주될 것이기 때문에 상황은 비참하다. 그러나 실상 정부의 요직에 앉을 사람을 추천하는 요건으로서는 의복이란 매우 보잘것없는 것이다. 훌륭한 의복을 입은, 또는 관복이나 재판관의 의복을 살 만한 여유가 있는 자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는 것은, 그 나라가 매우 가난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백성들이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약 2:2, 3) 자들을 매우 존경한다는 것, 즉 그것으로 인해 그들이 그를 관장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은 그들이 사려가 없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해 준다. "너는 지혜와 결백함과 경험을 가졌으니 우리의 관장이 되라" 고 말했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지각있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의복이 있으니, 우리 관장이 되라" 고 말하는 것은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의복은 남루했지만 "가난한 지폐자가 성읍을 건졌다" (전 9:15). 우리는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의 형제가 되기를 기뻐하시고, 청을 받지 않았을지라도 스스로를 내 주시어 우리의 지배자와 구주가 되시고, 이 멸망을 당신이 철리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몰락된 자들의 처지는 얼마나 절망적이었던가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이처럼 직책을 맡으라는 압력을 받는 자들은, 맹세를 하면서 거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비록 어느 정도는 자격있는 자들로 간주될지라도, 실제로 그들 자신이 그 직책을 짊어질 만한, 그리고 그들을 선택한 자들의 기대를 채워줄 만한 능력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7절). "그가 소리 높여 이르기를" (선서할 때 쓰인 옛날의 의식대로 손을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너희는 나로 관정을 삼지 말라 하리라." 관장들은 치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훌륭한 관장들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들은 부하들을 결속시키기 위해, 그리고 그들 사이의 간격을 넓히지 않기 위해 연구해야 한다. 온유하며, 침착하고, 잘못을 고쳐주려는 마음을 가진 자만이 다스리기에 합당한 인물이다. 그들은 그 백성들의 권익을 위해, 적당한 약으로 그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그러나 왜 그가 장관이 되려하지 않는가? 그것은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기" 때문이다.

(1) 그의 말이 정말이라면, 그것은 외적으로 가장 훌륭해 보이는 사람들까지도 실상은 필수품이 궁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상황이 매우 슬프게 몰락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즉 모든 사람에게 비극이 닥쳤다는 표시다. 멋지게 살던 자들, 외적으로는 가장 그럴싸하던 자들도 그 진상을 살펴보면 큰 곤경 속에 있으며 양식과 의복이 부족하여 근심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

(2) 만일 그가 한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람들이 양심이 슬프게 타락했다는 증거이다. 직책으로 인한 수고를 피하기 위해, 그들은 위증의 죄를 스스로 지으려 했고(이것은 가장 미친 것이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영혼을 저주하려 했기(마 16:26) 때문이다.

(3) 아무튼 그 누구도, 사람들이 출세하고자 하는 두 가지 목표인, 정부의 직책에 의해 신용이나 이득을 얻을 수 없었으므로, 그것을 수락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나라의 상태가 매우 나쁘다는 증거였다.

3.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까지 이 슬픈 상황을 주신 이유(그것은 그 예언자에 의해서나 장관이 되기를 거절한 자에 의해서 주어졌다)를 보자. 그것은 그의 나라를 축복하시고자 하는 선한 뜻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상황이 너무나 절만적이라서 구조의 단계가 지났다는 것을 알았고, 구제를 시도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다(8절).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자신을 탓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들의 머리 위에 멸망을 초래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렸기" 때문이다. 즉 언어와 행위로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어겼고, 그리하여 그를 모욕하려 했다. 그들은 그의 권위를 경멸하고 그의 공의에 도전하여 그를 불쾌하게 하려는 고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언어는 여호와를 거스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예언자들을 말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도 그보다 낫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한대로 행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눈이 그들 위에 있었고, 그의 영광이 그들 가운데 나타났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죄를 더욱 무겁게 했다. 그러나 마치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잘 알면 알수록, 그만큼 더 하나님을 경시하고 수치스럽게 만드는 일에 큰 긍지를 느끼는 자들처럼,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을 진노케 했다.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유였다. 개인이나 민족의 멸망은 그들의 죄 때문임을 명심하자.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격동치 않았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해치 아니하실" 것이다(렘 25:6).


심판의 통고(2) (이사야 3:9-15)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의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다음을 설펴보자.

Ⅰ. 그의 논쟁의 근거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그들과 다투시는 것은 바로 죄 때문이었다. 그들이 화를 낸다면, 그들로 하여금 더 멀리 내다보게 하라. 그러면 그들은 그들 자신을 "탓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슬프다 그들의 영혼이여!" (이렇게 탄식하는 어조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이 재앙을 초래하였도다" (9절). 죄인의 처지는 두렵고 매우 비참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또한 죄로 인하여 손해를 입고 위험을 당하는 것은 바로 영혼이라는 사실을 역시 기억하자. 죄인들은 외적으로는 형통할지도 모르나, 그와 동시에 그들의 영혼에는 화가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어떤 화가 죄인들에게 임하든지 간에, 그것은 그들 자신이 자취한 것이라는 사실을 또한 기억하자(렘 2:19).

여기에 그들이 책망받는 이유가 나와 있다.

1. 그들이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견제했어야 했던 수치심이 완전히 떠났고, 그들은 점점 경망스러워졌다는 것이다(9절). 이러한 사실은 그 어느 것 못지 않게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회개치 못하게 하며, 그들의 멸망을 무르익게 한다. "그들의 안색이" 그들의 마음은 허망하며 비열하며 사악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한다." 그들의 눈은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한다" 는 것을 명백히 드러낸다(벧후 2:14).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들 마음속에 극도의 사악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그 죄를 공표함이 소돔과 같다." 즉 그들의 욕망이 매우 격렬하고 매우 긴급하며 조금도 참을 수 없고 조급하여, 덕의 섬광은 일투도 없이 완전히 꺼져 버렸다. 소돔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공표한다. 그 죄악이 크기 때문만이 아니라(창 13:13) - 그 죄가 크면 하늘에 부르짖게 된다(창 18:20) - 가장 수치스러운 죄조차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창 19:5). 유다와 예루살렘도 바로 그렇게 행했다. 즉 그들은 죄를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덕에 대한 대담한 도전과 또 양심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승리를 자랑한다. 그들은 창녀의 낯을 가졌고(렘 3:3), 조금도 부끄러움을 몰랐다(렘 6:15). 죄에 대해 점점 뻔뻔스러워지는 자들은 멸망을 향해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수치를 우리들의 속담대로, 넘어선 자들은 은혜를 넘어선다. 그리고 나면 소망도 없어진다.

2. 그들을 올바른 길로 지도해야 할 그들의 인도자가 그들을 빗나가게 한다(12절). "너의 인도자(방백과 제사장과 예언자)가 너를 잘못 인도한다. 그들이 너를 유혹한다." 그들이 백성들에게 그릇되고 잘못된 것을 가르쳤거나 아니면 그들은 참되고 선한 것을 가르쳤다 할지라도 행실로는 그것을 부인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은 좋은 권유보다는 나쁜 본보기를 더 빨리 따르려 했을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한 손으로 세워 놓은 것을 다른 한 손으로 허물어 버리면서, "그 다닐 길을 훼파하였다." Qui te beatificant - 너를 복되다 일컫는 자들이 너를 유혹한다(어떤 사람들은 본문을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그들의 제사장들은 마치 그들에게 잘못된 것이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고, 마치 그들에게 위험이 없는 것처럼 "평안이라, 평안이라" 하고 외쳤다. 이리하여 그들은 백성들이 계속 죄 속에 거하게 했다.

3. 학대당하는 자들을 돌보아 주고 보호해야 할 그들의 재판관들이 그들을 가장 학대하는 자들이었다는 것이다(14, 15절).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은 학식이 있었고, 보다 좋은 것을 알고 있었고, 큰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주위에 있는 자들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유혹을 받을 만큼 궁핍해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포도원을 삼켰다." 그들은 하나님의 포도원을 손질하고 지키기 위해서 임명받은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단어가 의미하고 있는 것처럼) 그 포도원을 불살랐다. 그들은 가장 악한 원수들처럼 악행을 했다(시 80:16).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듯이, 가난한 자들의 포도원을 빼앗거나 그 과실을 삼켜 버렸다. 궁핍한 가족들의 필요한 양식이 되어야 할 것으로 자기들의 욕망을 채웠다.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것이 그들의 집에 가득 쌓여 있었다. 하나님께 도난 당한 물건을 찾으러 갔을 때, 거기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증거가 되었다. 그것은 되돌려주어야 했던 것이요, 또 그들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 요직에 앉은 자들과 변론하신다(19절).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느뇨? 무슨 이유로 그렇게 하느뇨? 그렇게 하는 것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핍박자들과 학대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하는 피해와 모욕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임을 명심하자. "너희가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는도다. 너희는 마치 그들을 맷돌로 갈듯이 큰 고통과 두려움을 주며, 연속적인 학대의 행위로 그들을 필연코 가루로 만들어 버리려 하는도다." 또는 "그들의 얼굴을 쳐서 상처를 입혔고 짓이겼다. 너희는 그들의 가산을 파멸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신 공격을 했다" 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도 "얼굴을 맞으셨다" (마 26:67).

Ⅱ. 이 투쟁(변론)의 과정을 보자.

1. 하나님 자신이 고발자이시다(13절).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신다" 고 했다. 즉 하나님이 친히 이 문제를 거론하신다. 그리고 그는 "백성들을" 심판하시려고, 학대당하고 혹사당하는 자들을 위해 "심판하시려고 일어서신다." 그리고 그는 "방백들을 국문하실" 것이다(14절). 아무리 높은 자들도 하나님의 심판의 심문과 판결을 면제받거나 피할 수 없으며, 하늘의 법정의 재판권에 대해 항변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자.

2. 그 고발장은 악명높은 사실의 증거에 의해 입증되어 있다. "학대하는 자들을 살펴보라.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고 있도다(9절). 학대받는 자를 살펴보라. 그러면 너희는 그들의 얼굴이 어떻게 찌그러지고 능욕 당했는가를 알 것이다(15절)."

3. 그 투쟁은 이미 직책이 변경됨으로써 시작되었다. 자기의 권력을 나쁜 목적에 남용한 자들을 벌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의 능력을 어떤 선한 목적에 사용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자들에게 넘겨주었다.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12절). 즉 아이와 부녀처럼 판단에 약하고 감정이 강한 사람들이 다스리게 된다. 관할하는 자가 이러한 자들이 된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고, 이것은 그들에게 심판이 되었다.

Ⅲ. 이 투쟁을 시행하는 중에서도 특정 사람들은 구별하신다는 것을 보자910, 11절).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고 말하라.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예언자는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다" 고 말했고(9절), 그 증거로써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으시리라" 는 것을 여기에서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이 의로왔다면 그들에게 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화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사악했고 또 사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가인에게 진상을 설명해 주심으로써 그가 화낼 이유가 없음을 납득시키셨다(창 4:7).

또는 그것은 이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즉 하나님은 민족적 심판을 경고하고 계신 것이다. 그 심판도 민중의 유익을 파멸시킬 것이다.

1. 그런데 어떤 선한 사람들은 자기들도 이 멸망에 포함될까봐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언자들에게 그들을 그 두려움에서 위로해 주라고 명하고 있다. "불의한 민족은 어찌되든, 의인은 죄인의 무리 속에서 버림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하라.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시지 않을 것이다9창 18 : 25). 아니 그(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확신시키라. 그 환란의 성질이 그에게는 바뀌어질 것이며, 그는 여호와의 노의 날에 숨기워 질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과 위로를 받을 것이며 그 환란이 심했던 것처럼 풍성한 복이 될 것이다."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이 제하여 질지라도 "기근의 날에 의인은 배불리 먹으리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즉 그들은 그들 자신을 그 전반적인 불의로부터 지켰다는 양심의 증거를 얻을 것이므로, 그 전반적인 재앙이 다른 사람들에게서와 같이 임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 불로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므로, 그들 자신도 그 불의 연료가 되지는 않으리라.

2. 어떤 사악한 백성들은 그 멸망을 피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언자들에게 그들의 헛된 희망을 흔들도록 명하고 있다.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라(11절). 그에게는 그 심판이 쏘는 것이 될 것이며, 환난과 불행의 날에 쓴쑥과 쓸개를 맛보리라." 악인에게는 화가 있다. 비록 그들이 법정의 심판을 피할 수는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들에게는 화가 있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욱 더 악화되고 마침내는 최악의 사태에 이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각 사람이 행한대로 받을 그 날에 "그 손으로 행한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온의 딸들의 허영 (이사야 3:16-26)

이 예언자의 사명은, 각층의 사람들에게 바로 그들 자신이 이 민족적인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과 장차 임할 민족적인 심판에도 등참할 것을 예상하라고 알려 주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이사야는 시온의 딸들에게 책망하며 경고하고 있다. 즉 그 처녀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모세도 율법에서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 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통고했으므로(예언이란 율법에 대한 설명이다. 신 28:56), 이사야도 여기에 그들이 그들에게 임할 재앙으로 어떻게 벌을 받을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Ⅰ. 시온의 딸들이 문책당한 죄(16절)는 무엇인가? 이 예언자는 자기가 그러한 것들을 지적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생각되어 처녀들이 분개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자기가 말한 것에 대해 하나님의 권위를 특별히 단언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즉 "그들이 듣든지 또는 그들이 견디든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교만한 여인들의 어리석음과 허용을 주시하시고, 그것을 불쾌히 여기시며 그의 율법은 그들의 옷까지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라" 는 것이다. 그들이 여기에서 고발당하고 있는 두 가지는 교만함과 방종이며, "여자들이 자기를 단장해야 할 아담함과 염치와 정절" (딤전 2:9)과는 정반대 되는 일이다. 그들은 걸음걸이와 몸짓으로, 그리고 경박한 태도로 마음의 의향을 드러냈다. 그들은 교만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인 목으로 다니며," 그들이 크게 보이도록 또는 그 누구도 그들에게 감히 말을 걸 수 없거나 그들의 시선이나 미소를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은 방자했고(글자 그대로) "기만적" 이었다. 즉 그들은 추파로써 남자들을 그들의 함정으로 끌어 들였다. 그들은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보고 감탄할 수 있도록, 그들이 무용 학교에 다녀 우아한 스텝을 배웠다는 것을 아 수 있로고 하기 위해 의례적인 태도로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부드럽고 우아한 태도를 지키기 위해 발바닥을 땅에 닿지 않게 하면서 "아기죽거려" 행하거나, 멋지고 경쾌하게 걸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의 견해대로, 신에 소리를 내는 쇠사슬이나 작은 종을 달아 두었으므로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냈다." 그들은 "마치 속박된 것처럼" (어떤 사람은 그것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걸음걸이를 배우기 위해 속박된 말처럼 행한다. 이처럼 아각도 즐거이 왔다(삼상 15:32). 이처럼 멋있는 체하는 사람들은 자연적인 것에 인공을 가해 사람들, 즉 상식있는 사람들 앞에서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허영심을 입증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한결 무겁게 하는 두 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이들은 경건함을 고백하는 여인답게 무게있게 행했어야 하는 거룩한 산, 시온의 딸들이다.

2. 문맥상으로 보아, 그들은 자기 가족의 교만과 사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난한 자를 탈취하고 학대했던(14, 15절) 그 방백들의 아내이며 딸이었던 것 같다.

Ⅱ. 이 죄에 대해 경고된 심판은 무엇인가? 거울로 보면 얼굴이 서로 답하듯이, 그 심판은 그들의 죄에 답하는 것이었다(17, 18절).

1. 그들은 "늘인 목으로 다니나," 하나님은 "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머리 장식을 내려서 쓰게 될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머리를 잘라야 하므로 결국 그들의 머리를 남에게 보이기를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흔히 교만에 대한 정당한 심판으로 무서운 질병이 발생하며, 때로 음탕함의 직접적인 결과로 살과 몸이 질병으로 인해 소모된다는 것을 주목하자.

2. 그들은 훌륭한 의복을 많이 구입하는 데에는 어떠한 비용을 들이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매우 궁핍하고 빈곤하게 만드실 것이므로 그들은 그 벌거벗은 몸을 충분히 덮을 만한 옷을 갖기 못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흉한 모습은 누더기 옷 사이로 드러날 것이다.

3. 그들은 그들의 장식물들을 몹시 좋아하고 자랑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집이 약탈당하고 그들의 보화가 탈취되고, 그들 자신은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어, 그들의 장식물들을 빼앗으실 것이다.

이 예언자는, 마치 그가 그들의 옷장을 지키는 자이거나 그들의 의상실에서 시중드는 자였던 것처럼, 그들이 사용했던 많은 장식물들을 일일히 본문에 열거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각기 어떤 종류의 장식물이었는가, 그리고 이 번역이 원어를 올바로 표현했는가의 여부를 묻는 것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지금부터 100년 후에는 우리들이 지금 사용하고 장식물 중 어떤 것은,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어떤 것처럼, 거의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유행은 변한다. 마찬가지로 그 이름도 변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을 언급해 놓은 것을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온의 딸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왜냐하면

(1) 이 많은 물건들은 매우 이상하고 신기하여 만일 그것들이 당시에 유행되지 않았었더라면, 조롱거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시온 산에 가야할 어른들의 장식물이 되기보다는 어린아이들이 갖고 놀 장난감이 되기에 더욱 접합했던 것들이다.

(2)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 과 같이 검소하고 편리한 것들은 이처럼 많이 그리고 여러 가지로 갖추어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상을 갖추는 것은 필요하며, 모든 사람이 각 계층대로 그렇게 하는 것은 합당하다. 그러나 그들이 같은 옷을 이틀씩 입어서는 안 될 정도로 매우 많은 예복을 입는 이유는 무엇이었는가?(22절) "그들은 낮에는 이 옷을, 밤에는 저 옷을 길고 짧으며, 일하는 날을 위한 옷과 휴일을 위한 이 색깔, 저 색깔, 명주로 된 것과 비단이나 다마스크 천으로 된 것, 식사 전에 입을 옷과 식후에 입을 옷, 스페인의 유행을 따른 옷과 터어키 유행을 따른 옷을 따로따로 입어야 했으며, 그러고도 결코 만족한 적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은 교만과 헛된 호기심의 증거인 동시에, 경건과 자선의 일에 써야할 많은 것들을 천박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에 썼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그것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가난한 채무자가 사기 당하지 않았으면 다행스러운 일이겠다.

(3) 이 물건들의 목록은, 그들이 그런 것들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기울였는가,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거기에 집착되어 있었는가, 그들이 그것들을 얼마나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는가, 그들이 그것들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고 까다로웠는가,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그들의 즐거움이 얼마나 컸나 하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처녀는 장식물들이 아무리 많을지라도(렘 2:32) 그 어느 하나라도 잊을 수 없었고, 마치 그것들이 최대의 기념물이라도 되는듯이 쾌히 그것들을 기록하고, 매우 즐겁게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 예언자는 이러한 것들 자체를 죄악된 것으로 말하지는 않았다(그것들을 합법적으로 지닐 수 있었고 사용할 수 있었다). 단지 그들이 그런 것을 뽐내기 때문에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Ⅳ. 그들은 의복에 대해 매우 민감하고 면밀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아름답고 편하게 되기 위해 이처럼 비용을 들인 그들의 육신을, 그들에게 수치와 짐이 되게 하고자 했다(24절). "썩은 냄새가", 즉 오랫동안 입에서 닳았기 때문이거나 어떤 흉칙한 병이나 그것을 치료하기 위한 약 때문에 더러워지게 된 의복이 "향(20절 난외에 적혀있듯이 향료의 알이나 향합, "영혼" 곧 "호흡의 집")을 대신할 것이다." 옷을 꼭 여미기 위해 사용되는 훌륭히 수놓은 "띠를 노끈," 곧 슬픔을 나타내기 위한 천 조각이나 갈기갈기 찢겨진 낡고 썩은 헝겊 조각이 "대신 할" 것이다. 큰 환란이나(15:2; 렘 16:6) 큰 노역의(겔 29:18) 때에 흔히 그렇게 했듯이, 머리가 뽑히거나 깎여진 "대머리가" 기묘하게 땋아지고 분칠해진 "숫한 머리털을 대신" 할 것이다. 깊은 굴욕의 표적인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또는 머리 수건이나 허리띠를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다." 고운 화색을 갖고 있어 그것을 자랑하던 자들은 포로로 끌려가 그을리고 햇볕에 탈 것이다. 그리고 가장 고운 얼굴은 기후에 의해 가장 빨리 상한다는 것을 주시하라.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다.

1. 우리의 외모에 대해 민감하여 강한 호기심을 가지며, 호화롭고 값진 것을 좋아하며, 또한 그것을 자랑하는 그런 마음을 버리도록 하자.

2. 감각적인 기쁨을 즐기는 일에 빠져 방심 상태에 있지 않도록 하자.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 그것을 빼앗길지, 또 어떤 곤경에 빠지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Ⅴ. 그들은 이 장식물들을 가지고 남자들을 매혹시키고 환심을 사려했다(잠 7:16, 17). 그러나 그것에 의해 매혹당할 자는 없을 것이다(25절).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다. 저희 청년은(시 78:63 에서처럼) 불에 살라지고 그 때에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을 것이다." 칼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임할 때, 용사들은 대개 제일 먼저 그 칼에 쓰러진다. 왜냐하면 제일 먼저 생명을 무릎쓰고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온의 파수군이 죽임을 당할 때는, 시온의 문도 "슬퍼하며 곡할" 것은 당연하다(26절). 왜냐하면 그 원수들이 그 주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읍 자체도 황무케 될 것이기 때문에, 텅비고 쏠림을 당했기 때문에 서글픈 과부처럼 "땅에 앉을" 것이다. 죄가 성벽 안에 머무르면, 탄식과 애곡이 문간에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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