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일까? 끝도 보이지 않는 힘겨운 삶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의 노력으로 자기 운명을 살아내기 위해 수없이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그런데 자신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는 스스로의 결함과 부족함의 발견이라는 가슴 아픈 경험에서부터 촉발되는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갈 때는 그런 일이 없다가 어느날 자신의 절망스런 이기심과 턱없이 부족한 능력을 발견하게 될 때, 그리하여 수치심과 비대가 존재 자체에 대한 거부와 신랄함이 되어 숨을 막아올 때, 치열한 미움과 싸움 끝에 내 안에 완고히 버티고 있던 어느 한 부분이 죽게 되는 바로 그 고통의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한계와 화해하고 그 결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이상도 하지. 죽음과 새 생명은 그렇게 동시적이고 양면적 단면을 가지고 있으니…. 나의 한계와 결점이 더 이상 숨겨야 할 무엇이 아닐 정도로 자유로워졌을 때 자신에게서만 자유로워질 뿐 아니라 동시에 타인과 세상을 보는 시선에서도 자유로워진다.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들이 더 이상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존재가 되며, 모든 것을 차별하던 해체적 시선은 전체를 통합하고 수렴하는 넉넉한 시선으로 변하게 된다. 만정이 떨어진 자신의 운명과 삶으로 다시 돌아오기, 애정어린 시선으로 못난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 결점을 수군거리는 주변의 시선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숙이고 자유이며 자신을 넘어서는 초극이 아닐는지. 이스라엘 역시 ‘유배’의 고통을 통해 비슷한 여정을 겪게 된다. ‘선민(選民)’이라는 터무니없는 오만이 유배를 통해 정화되면서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종’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겸손한 자기 이해를 통해 성숙해가고 자유로워지던 눈물의 시절에 활동했던 이가 제2이사야이다. 1. 제2이사야와 제3이사야 (1) 제1이사야와 차이점 제2이사야(40-55장)는 제1이사야(1-39장)보다 거의 200년 이후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1이사야가 ‘파국적 심판’을 선고했다면 제2이사야에서는 그 심판을 모두 받았음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이사야는 오히려 유배에서 귀환과 예루살렘 재건 등 구원의 메시지를 중점적으로 언급한다. 더 나아가 제3이사야(56-66장)는 유배에서 돌아온 귀환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다. 지도층의 빈곤, 종교-민족 혼합주의, 종말론적 사고 등 그 시대의 현안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제3이사야에는 성전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입장이 공존하고 있는데, 성전이 파괴된 채로 남아 있던 상태(63, 18 ; 64,9-10)와 성전이 이미 재건된 상태(66,2-4)가 병행되고 있다. 예언자가 성전 재건(기원전515년)즈음에 활동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2) 제1이사야와 연계점 그러나 이들을 ‘이사야서’라는 하나의 책으로 연계시키는 공통분모가 있다. 제2이사야의 소명사화(40장)와 제1이사야의 소명사화(6장)가 매우 유사한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 남유다의 대표적 사조인 ‘다윗-시온 전통’이 강하게 공유되고 있다는 점 등이다. 곧 다윗 가문에서 나오게 될 메시아에 대한 희망과 예루살렘 재건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고백하고 있는 신관은 세 책 안에서 모두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주제이다.
2. 제2이사야의 저자, 구조 제2이사야의 저자는 유배 초기에 활동했던 에제키엘보다 조금 후대(20년 후) 사람으로 추정된다. 자신을 ‘이사야’로 소개하고 있는 익명의 저자는 유배생활에 지쳐있던 이스라엘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던 ‘위로의 예언자’였다. 이사야서 역시 구약성경의 다른 책들처럼 한 사람의 저작으로 보여지지 않는데, 균열과 편집적 단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40-48장을 기본 수집층으로 보고 있고, 49장 이후의 내용들은 이에 대한 개작으로 간주된다. 1부(40-48장) 광복의 기쁜 소식 : 바빌론의 멸망과 키루스의 승리 2부(49-55장) 예루살렘 재건과 구원의 보편성 :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하느님의 통치
3. 제2이사야의 시대적 배경 제1이사야가 시로-에프라임 동맹과 산헤립의 침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제2이사야는 유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남유다를 초토화시키면서(기원전587년) 대부분의 주민들을 포로로 끌어간 강력했던 바빌론이었지만 그 위상이 영원할 수는 없었다. 제2이사야가 활동하던 즈음, 바빌론을 세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었고 근동의 새로운 강자로 페르시아가 부상하고 있었다. 당시 바빌론은 내정의 분열로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나보니두스가 라바시 마르둑의 권좌를 밀어내고 등극함으로써 바빌론의 내분은 극도에 달하게 되고, 이러한 혼란을 틈타 페르시아의 키루스는 메디아와 리디아를 제압한 다음 엑바타나를 점령하면서 바빌론까지 정복하게 된다. 새롭게 부상한 키루스는 영리하게도 속국민들의 민심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 과제임을 깨닫고 그 일환으로 과감한 개혁정책을 시도한다. 바빌론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에 지쳐있던 이들에게 고유의 종교와 문화를 인정해 줌으로써 독립성과 자치성을 보장해 준 것이다. 민심은 당연히 키루스의 온건-관대 정책에 대대적인 지지와 호감을 드러냈고, 유다인들 역시 그가 메시아가 아닐까 고백할 정도로 그를 환영한다. 이사44,28-45,8에서 키루스는 이스라엘을 구할 영웅, 혹은 메시아로 고백되는데,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가 심판의 도구로 이해되었다면 키루스는 구원의 도구로 이해된 것이다.
4. 제2이사야의 신학적 주제 (1) 구원과 해방 - 제2의 출애굽 제2이사야 전반에 부각되어 있는 주제는 예루살렘 귀환에 대한 구원과 해방의 메시지이며, 이러한 해방은 출애굽 사건을 연상시킨다. 바빌론에서 해방됨을 ‘출애굽’과 연결시켜 이햐한 것이다. 귀환을 ‘제2의 출애굽’으로 이해하는 전승은 이러한 맥락에 근거한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주제는 전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신 하느님께 대한 것이다. 제2이사야는 이러한 해방이 가능했던 이유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야말로 이방인들까지(키루스의 경우) 자유자재로 조정하실 수 있는 전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시라는 진리에 근거해서 이해한다. (2) 만민구원사상 - ‘종’ 개념의 부상 우주의 창조주로서 하느님 이해는 ‘만민구원사상’을 부상시켰다. 이스라엘만이 하느님 구원의 애상일 수 없고 키루스 같은 이방인도 하느님 구원사업의 직접적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각성이 새롭게 대두된 것이다. 더욱 유배라는 고통의 자리는 이스라엘의 자의식(自意識)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변화시키는데, 이전의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하느님의 ‘선민’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이러한 배타적 자부심은 유배 체험을 통해 ‘종’으로서 자신을 이해하는 차원으로까지 정화된다. ‘선민’이라는 독선적 자의식이 정화되고 성숙되면서 스스로를 하느님의 ‘종’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유배를 통해 거급나게 된 이스라엘의 ‘재창조’였다고 할 수 있다. ‘종’이라는 자의식은 이스라엘의 의식 안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데, 유배 이전의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어 ‘세상’에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는 도식으로 세상과 자신들을 이해해 왔다면, 이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당신의 종으로 부르셨다고 이해하게 된 때문이다. 이를 도식화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배 이전 : 하느님 → 이스라엘(선민) → 세상 유배 이후 : 하느님 → 세상 → 이스라엘(종) (3) 야훼의 종의 노래 ‘종’ 개념의 부상과 더불어 제2이사야에는 모두 4개의 노래(42,1-4 ; 49, 1-7 ; 50,4-11 ; 52,13-53)가 등장한다. 소위 ‘야훼의 종의 노래’라는 것으로서, 일관된 통일성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종의 임명(42장)에서 죽음(53장)이라는 내용을 통해 상호 연결되고 있다. 이 노래들 안에서 쟁점이 된 주제는 ‘종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①유배 중에 있던 이스라엘 ②키루스 ③장차 등장할 메시아적 인물 ④제2이사야 자신 등이 ‘종’의 정체로 거론되고 있는데 그리스도교에서는 이 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화되었다고 본다(루카 22,37 ; 마르 10,45 ; 14, 24 ; 사도 8,26-39 등). 그러나 첫 번째 노래는 제2이사야 자신을 염두에 두고 있고, 두 번째 종의 노래는 유배중에 있던 이스라엘을, 세 번째와 네 번째 노래는 장차 등장할 메시아적 인물을 암시한다.
5. 제3이사야의 시대적 배경 제2이사야의 벅찬 희망과는 달리 귀환 공동체는 경제적 , 사회적 혼란, 이방인들의 이주문제, 사회적 그룹들간의 대립 등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들에 직면해야 했다. 대부분의 기득권자가 바빌론으로 유재간 후 팔레스티나에 남게 된 이들은 변두리 계층들이었지만 60년 가까운 유배기간 동안 지도자 없이 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연히 새로운 지배층이 형성되었고, 유배갔던 이들이 돌아오자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은 표면화된다. 유배에서 귀환한 이들은 이전의 기득권을 주장하였고, 팔레스티나의 잔존인들은 새로 돌아온 이들의 권리 주장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유배라는 긴 공백 기간 안에서 변두리 세력과 기득권층 사이의 권력구조가 뒤집어지고 대사회적 혼란이 일어나자 결국 각 그룹을 하나로 규합할 수 있는 핵심적 이슈로 ‘성전재건’이 부상하게 된다. 현재적 혼란과 문제점들은 ‘하느님 현존의 가시적 표징인 성전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라고 간주하고, 우선 성전을 재건하는 것만이 안정과 행복의 관건이라고 보는 소위 ‘성전재건 열광주의’로 민심을 몰아갔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제3이사야는 다소 비판적인 입장에서 피력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6. 제3이사야의 신학 (1) 창조주 하느님 - 제2의 창조 성전재건 열광주의에 대한 일반적 분위기와는 달리 제3이사야는 성전 건축에 대하여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야훼 하느님은 성전이라는 공간에 갇히는 분이 아니라 온 우주에 존재하시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이사 66,1 이하). 이러한 창조주 신관은 보편 구원사상과 연결되어 이방인들도 얼마든지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음을 개진한다(56,3-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전 우주의 창조주이시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수 있는 거룩하신 분이시다(65,17 ; 66,22). 제2이사야가 제2의 출애굽을 이슈화했다면, 제3이사야는 제2의 창조를 부상시키고 있는 셈이다. (2) 구원의 지연 당시 사람들은 성전이 재건되는 날은 하느님이 도래하시는 날, 곧 이스라엘이 구원되는 날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성전이 재건된 후에도 대중이 원하던 정치적 독립, 경제적 안정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3이사야는 성전재건 자체의 문제보다는 왜 구원이 도래하지 않는지 그 지연 상황을 문제삼는데 지도자들의 나태와 타락, 탐욕과 이기적 무절제 그리고 그로 인한 백성들의 궁핍과 고통 때문에 야훼의 종말론적 도래가 지연되고 있음을 지적한다(56,9-12 ; 59,1-8). 결국 제3이사야에 의하면 하느님은 ‘안 오신 것’이 아니라 ‘못 오신 것’이라는 것이다.
‘준비된 자에게 스승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되어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을 이룰 기회를 만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언제나 하느님과의 관계성을 관건으로 하고 있었고, 이러한 관계적 소통은 서로가 ‘공통된’ 속성을 유지하고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곧 하느님의 제1속성인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신의 속성으로 하지 않은 이상 하느님과 이스라엘 간의 소통은 이루어지지 못하며 하느님의 통치도 구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 주변에 ‘안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불충실과 속됨 때문에 ‘못 계신 것’일 수 있다. 그러니 고독과 소외로 말미암은 내 마음의 황폐는 그분이 나를 버리셔서가 아니라 내가 그분을 소외시킨 탓이다. 내 탓이 맞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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