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니므롯

제목 : 바벨

은바리라이프 2008. 7. 18. 14:55

제목 : 바벨  

 

온 세상의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이던 때, 백성들의 많은 지지와 기대 속에 왕위에 오른 호걸 니므롯은 자신의 강한 권력과 백성을 회유하는 경제정책으로 나라를 효율적으로 통치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곧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시대가 평화로워지자 왕의 권위가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때 악마가 그에게 찾아왔다.

“왕권이 약해지고 백성이 나태해짐은, 나라의 패망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차지한 저 영토를 보십시오. 당신의 용맹과 힘으로 얻어낸 저 땅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이 당신의 업적을 잊고 산다는 건 통탄할 일입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성과 대를 쌓으십시오. 그 탑을 하늘에 닿게 하여 당신이 신과 같음을 보이는 겁니다.”

니므롯은 백성들을 모아 시날 평지에 탑을 쌓기 시작했다. 많은 노동 인구가 강제동원 되었고 모자란 물자들은 세금을 높여 충당하였다. 처음에는 백성들도 그들의 지도자인 왕의 말에 복종했으나 탑을 쌓는 작업이 끝이 없다는 소문이 퍼지자 반대 여론이 조성되었다. 악마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며 왕을 안심시켰다.

“백성의 우매함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결단과 추진력이니, 당신은 걱정 말고 사업을 강행하십시오. 여론과 민심은 제 말에 따라 대처하면 됩니다.”

어느 날 제사장들이 모여 왕에게 탄원했다. 하늘에 닿는 탑은 신의 노여움을 살 것이라며 건축의 중지를 요구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탑이 아닌 제단이라 말하십시오. 높은 제단을 쌓는 것은 국가의 결속을 위함이며, 백성들이 온 지면으로 흩어지는 것을 면하게 하려 함이라 둘러대는 겁니다.”

니므롯은 악마의 말대로 말했다. 어느 날 생활고에 시달린 백성들이 횃불을 들고 성 앞 광장에 모여 반대 시위를 가졌다. 백성들은 그들의 지혜로웠던 왕이 백성의 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이라 기대했다.

“군중이란 불확실한 여론에 휩쓸린 겁 많은 자들의 무리일 뿐입니다. 이 참에 당신의 권위를 보여주십시오. 그들의 집회를 금지시키고 주모자를 잡아들여 사형에 처해 본보기로 삼는 겁니다. 그리하면 그들은 당신을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

니므롯은 악마의 말대로 행했다. 백성들은 저항했으나 칼을 든 왕의 군사에 대항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의 시위는 성과를 보지 못했고 탑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져갔다. 어느 날 그 모든 걸 지켜보던 신은 결국 노했다.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리라. 신이 뜻하니, 그대로 되었다. 니므롯의 백성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이 되지 않자 건축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강제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려고 했으나 명령을 알아듣지 못해 소용이 없었다. 니므롯은 이전에는 백성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지금은 들으려 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불안해진 왕은 악마를 찾아갔다.

“이게 어찌된 일이오! 당신의 뜻대로 했으나 나의 권위는 그들에게 닿지 않소! 신과 같은 나의 영광은 어디에 있으며, 하늘에 닿은 저 탑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악마는 떨리는 왕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소를 흘렸다.

“지금 대체 뭐라고 소리치는 거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군, 위대한 왕이시여.”

깔깔깔깔. 미친 듯한 악마의 웃음소리가 정적을 깨며 퍼져나갔다. 탑은 예정된 싸움 속에 무너져 내렸고, 흩어진 민중에 의해 니므롯의 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출처] 자유롭게 쓰기 |작성자 jucho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