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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의 후손 “거짓된 인간” (창10:6-20)

은바리라이프 2008. 7. 18. 16:06
 함의 후손 “거짓된 인간” (창10:6-20)      

 우화의 아버지라고 불리 우는 "이솝"의 어렸을 때 일입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그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너 옆에 있는 공중 목욕탕에 가서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가를 보고 오너라." 이 말을 듣고 이솝은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생님은 마음 놓고 애들을 데리고 목욕탕으로 갔는데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기가 막힌 선생님이 이솝을 보고 말했습니다. "야, 이 녀석아 한사람밖에 없다더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도대체 뭘 보고 한사람 밖에 없다고 한거냐?" 이솝은 대답을 합니다. "목욕탕을 제가 들어가는데요. 목욕탕 입구에 큰 돌이 하나 있어서 사람마다 걸려 넘어질 뻔하면서도 아무도 치우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사람만이 조용히 그것을 옆으로 치웠습니다. 그러니 사람 같은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묻더랍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을 평가할 때, "아 그 사람 참 인간미가 있어 좋다. 인간성 좋다"그런 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사람 참 인간 같지 않다. " 그런 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정말로 인간답다는 말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많은 인간학자들을 말합니다. 인간이란 도대체 누구냐? 그래서 여러 각도로 조명을 해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그렇게 한마디로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계입니다.


        신학자들은 인간은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내가 생각하고 내가 평가하는 나"가 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스스로 평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내가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내가 옆에 있는 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 내 말하는 것 들어보셨어요? 그러면 참 황당할 때가 많을 겁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저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가끔 그런 분들 봅니다. 자기 사진을 보고서 혹은 자기가 나온 비디오를 보고서 " 저게 나야?"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나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도 제가 말씀을 전하는 것을 녹음해 듣고 비디오를 보면서 어떻게 내가 생각하는 것과 그렇게 다른지 충격을 받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 가지고는 나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세번째는 하나님이 평가하는 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그 부름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여러분은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평가하는 나를 진실로 받아들일 때 참된 나는 거기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상 사람들이 어떤 인간을 좋아하는지, 소위 현대인의 이상형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뭔지, 또 우리가 어떠한 인간이 마땅히 되어야 하는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상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뭔지를 잘 암시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예언대로 세상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퍼지게 되었고 구체적으로 번성하게 됐는가 그것이 바로 창세기 10장의 족보의 목적입니다.

 함의 후손은 구스와 미스라임, 붓, 가나안 네 아들을 두었는데 본문에는 붓 자손만이 기록이 없고 세 아들의 자손들만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거주지는 후에 남 아라비아, 에티오피아, 이집트, 가나안, 붓 등이었으며 오늘날로 본다면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흑인종의 조상들이 살던 지역입니다. 함이란 뜻은 "뜨거움" "검다" 으로 흑인의 조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함의 맏아들 구스라는 이름은 성경에서는 에티오피아를 의미합니다. 구스에게는 여 섯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아프리카에 있는 에티오피아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러나 막내아들 니므롯은 조금 달랐습니다. 니므롯이란 "반역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니므롯은 조상들이 섬기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대적하면서 자신의 땅을 벗어나 최초의 제국을 건설한 폭군이 되었습니다.  많은 족보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유난히 한사람에게 오늘 본문은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8절입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니므롯"이라고 하는 사람이 등장을 합니다. 그는 영걸이었다고 말합니다. "영웅 호걸"이었다는 거지요. 그가 얼마나 유명했는가는 9절에 나타납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낭꾼이로다 하더라" 속담에 이르기를 "니므롯"과 같다는 것은 전설적인 영웅이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니므롯은 어떤 사람인가?

 니므롯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우리가 대적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나는 반항아다." 그런 말이지요. 왜 니므롯이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  성경은 “니므롯”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로 “니므롯”이 어떤 자였는지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힘센 자였고 세상의 영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었으며 그를 일컫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로 세력 있는 지배자였습니다.

 우리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노아가 함과 그 아들을 향한 "너는 형제들의 종의 종이 되길 원한다."라고 하는 그 예언적 저주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저주가 임하기 전에 내가 하나님을 배반하겠다. 반란을 일으키겠다. 그래서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 온 세상을 호령하겠다." 이러한 의도가 그 이름 속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니므롯이 최초로 정복한 땅은 사날 땅에 있는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였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앗수르로 이동하면서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에 성을 건설하였고 “레센”에서는 큰 성을 건축하였습니다. 이렇게 니므롯은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나가면서 사람들을 지배하기 시작하였고 성을 짓는데 사람들은 노예처럼 다루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사냥감에 불과한 것처럼 취급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양꾼인 그가 나라를 세웠습니다. 옛날에는 무서운 동물들로부터 백성들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맹수를 몰아내기 위해서 많은 장정들을 동원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동원했고 기술로 맹수를 제압했고 그래서 인기와 칭찬을 받았고 그 힘으로 그 여세를 몰아서 나라를 세웠을 것입니다. 그 나라의 이름 10절입니다.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바벨을 기초로 세워집니다. 그래서 니므롯은 바벨론의 창시잡니다.

 

                   바벨론은 어떠한 곳입니까? 

역사학자들이 평가하는 바벨론의 특징이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는 우상숭배와 점술이 유행합니다. 모든 점술의 기원, 점에 관한 책을 보시면 뿌리가 있는 책은 바벨론을 기원으로 잡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고의로 대적한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에 초월적인 힘을 얻기 위하여 각종 우상숭배와 점술에 몰두합니다.

 두번째는 폭력이 난무하고 무력을 숭배합니다. 절대왕권을 표방하고 백성들을 노예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특이하고 잔인한 사냥꾼입니다.  인간 생명 알기를 짐승처럼 다루는 무자비한 사람이었고 바벨론의 형벌 중의 하나는 사람의 가죽을 산채로 벗겨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바벨론과 전쟁을 하려면 각오를 새롭게 해야 했습니다. 이기면 좋거니와 지면 끝장나는 것입니다. 그만큼 바벨론은 폭력적이었습니다.

 셋째는 음란의 극치를 달립니다. 화려하고 음란한 나라, 니므롯 자신이 자기 어머니하고 살았습니다. 바벨론의 예배의식은 음란했고 호모와 레즈비안의 시초가 다 바벨론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은 한마디로 말해서 포악한 절대왕권의 시초하나님의 뜻과 질서를 일부러 깨기로 작정한 나라가 바벨론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역사 속에 있던 바벨론 왕국을 사탄의 왕국과 비교해서 설명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그러한 세력과 나라의 상징적 존재였기 때문에, 그래서 "음녀 바벨론아" 그런 말이 구약에서 무수하게 나오고 신약에서도 계시록 끝에서 "큰 성 음녀 바벨론이 무너졌도다." 라고 말합니다. 사탄 왕국의 멸망을 그렇게 묘사하고 있는 겁니다.

 이 니므릇의 반역 행동이 어떻게 구체화되는가가 11장에 나오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니므롯"이라고 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하면 현대 인간학이 추구하는 모델적 인간상 "니므롯"에 기초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뭐, 현대인들이 겉으로 볼 때는 니므롯만큼 잔인하거나 반역적인 모습을 표방하지 않지만은 그의 사고방식을 추구하는데 있어서는 노선을 같이함에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대인이 니므롯의 노선을 따르고 있는 이유는 세 가지 입니다.

  첫째는 현대인들은 한마디로 자신을 행동하는 주체로 인식합니다.

 나는 누구냐? 행동하는 만큼이 바로 나다. “내가하는 일이 바로 나며 내가 이루어 놓은 업적이 바로 나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부단히 행동을 합니다. 행위를 통하여 자기를 극복하고 자기의 한계를 끝없이 넓혀갑니다. 결국 “나 자신의 주인은 바로 나다”라고 하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둘째는 세상과 다른 인간을 향하여 정복, 군림하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가 소유하고 그리고 통제하려고 하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자기가 주인이고 남도 다스리고 싶어 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에 대하여 거부합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신격화라 이름을 붙이는 겁니다. 여기서 나온 삶의 패턴이 무엇이냐 하면 "끝없이 일하는 인간"입니다. 쉼 없이 일하는 이유는 노동과 업적을 통하여 나를 드러내야 되기 때문이요, 그러므로 쫓기며 삽니다. 그리고 자기가 누군가를 알지를 못합니다.  인간관계가 깨어지고 불화하기 쉽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갈등합니다. 철저하게 지배하고 통제하고 소유하려 하기 때문에 갈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성이 파괴됩니다.이들은 성경적 인간관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나약하다는 것입니다. 독립적이지 못하고 주체성이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셋째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은 잘못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지 행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믿음만 있다면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자기의 행동을 무책임하게 해도 되냐?  그렇게 공격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라고. 너는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너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네가 누군지 밝혀질 수 있다. 성경이 가르칩니다. 너는 죄인이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우리는 죄인인 이 모습 이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영광을 누리며 이 감격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힘을 의지해서 이웃을 조건 없이 사랑하게 됩니다. 여기에 감사와 기쁨이 있는 것이고 겸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은 진정한 인간이 되는 가장 정확한 길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거짓된 사람이란 자기의 업적과 행동을 가지고 자기를 들어내는 것입니다. 성경을 이것을 가리켜서 “자기의 의”라고 말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와 업적 그것이 그들을 의롭게 하는가 하면 겉으로는 그럴 것 같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역겨운 행동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 볼 때에는 선한 일인 것 같지만 동기는 더럽고 얼마든지 불의한 일을 아름다운 것으로 고증해서 행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취 중심적으로 자기를 이해하며 그렇지 못한 자를 멸시하며 다른 사람과 자기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인간에게는 사랑도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여러분 왜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쫓기며 살며 허무를 느낀다고 생각하십니까? 자기존재 가치를 자기 업적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 존재에 대하여 불안에 하십니까? 자기 의에 아직도 매달려 있기 때문이요. 여러분! 초조와 번민이 있습니까? 그것은 아직도 십자가의 깊은 사랑을 정확하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참인간다운 인간이 되면 하나님 안에서는 이런 것들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죄인된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십니다. 내 위에는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은 죄인된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주 앞에 구원받는다는 이 겸손한 고백만이  구원을 받고 참다운 인간이 되게 하는 진리임을 가슴속 깊이 새기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11장에서 니므롯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무모함을 보였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를 상징할 때 바벨론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18:2-3절입니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 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 바벨론은 하나의 국가만이 아니라 악령들이 모여있 는 거짓된 종교 집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니므롯”은 하나의 국가들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만들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노아의 예언대로 함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족속들 입니다.

   함의 자손 중에서 블레셋 족속이 있습니다. 함의 둘째 아들 미스라임은 7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여섯째 아들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태어났습니다. 미스라임은 오늘날 애굽을 의미하는데 애굽이 초기 인류 역사에 가장 발전된 문명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곧 가장 영향력 있는 족속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족속 중에 블레셋 족속이 하나님의 택한 이스라엘 민족을 얼마나 괴롭게 했습니까? 블레셋은 사울, 다윗, 삼손 시대에 걸쳐서 가장 혹독한 이스라엘의 압박자들 이였습니다.  함의 자손들이 니므롯을 비롯해서 인류 초창기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하고 살았지만 오늘날 함의 자손들을 볼 때 얼마나 비참합니까?

 오늘날 영적으로 보면 세상 속에서 함의 자손 같은 불신자들의 모습을 살펴볼 때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사는데도 저들은 우리보다 더 잘 살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사는 것 같지만 저들의 비참함을 우리는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부자의 비참한 고백입니다. 24절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이렇게 패역한 함의 자손 중에는 넷째 아들인 가나안의 자손들이 또 나오고 있습니다. 가나안에게는 11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이들 또한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족속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가나안 자손들도 땅을 동서사방으로 확장해 나갔습니다. 특히 19절에 나오는 악명 높은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가 가나안 사람들의 도시였다는 사실은 그들이 얼마나 타락한 민족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가나안에 대한 노아의 예언은 "셈의 종이 되리라" 한 것처럼 가나안 족속은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빼앗기고 이스라엘 민족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함의 자손들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함의 자손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신약에 와서 이들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계신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함의 첫 번째 아들 구스는 에티오피아를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8:26-40절에 보면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미스라임 막내아들 “갑도림”은 그레데 섬에 정착했는데 이 섬은 바울에 의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고후 6:2절 말씀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사도행전 2: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함 족속도 야벳 족속처럼 세상의 땅을 넓혀가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그들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 것입니다. 우리 또한 죄의 저주 아래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었지만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13)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여 주신 예수님께 날마다 감사하며 찬양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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