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 헨리 래이야드(Henry Layard:1817-1894)는 저서 「니느웨와 그 유적(Nineveh and Its Remains)」에서
강력한 사냥꾼 오리온은 니므롯으로 별들 사이에 자리잡았다고 말한다.
반인 반마 신 켄타우르스(Centaur), 이집트의 반인 반마 신 콘스(Khons)는 모두 니므롯이다.
사실상, 황도대 12궁도의 모든 별자리는 바로 다양한 현시(顯示)로 나타나는 니므롯 또는 그의 아내에 다름 아니다.
전사들의 왕이며 영적인 반역자인 니므롯(Nimrod)은 많은 이름으로 신성시되었다.
니므롯 신앙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형태들 중 하나는 바빌로니아 종교에서 보인다.
전사로서 니므롯은 피흘림의 처절한 삶을 살았다.
사후에 그는 피를 흘리는 방혈(放血)의식으로 신성시되고, 존경받았는데,
반역을 뜻하는 그의 이름은 피를 갈구하는 바빌로니아 신 메로다크(Merodach)와 의미상 동일시되었다.
메로다크(Merodach)과 마르두크(Marduk)는 같은 신으로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들의 아이들을 희생 번제(燔祭)로 바쳤다.
기독교인들은 니므롯이 천상세계에서 루시퍼의 반란에 부추켜져서 천상세계의 신과 싸우기 위해 음모를 꾸며 바벨탑을 쌓은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바벨탑은 악카드 왕조에게 빼앗긴 언어와 영토를 되찾기 위해 강력한 저항운동을 전개한 니므롯이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기념하기 위해 축조한 독립 기념관 격인 언어 해방탑이었다.
게다가 앞에서 자세히 언급한 것처럼 루시퍼는 본래 빛 또는 광명과 관련한 것으로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다.
니므롯은 중근동 세계의 개혁자이자 새로운 세계질서의 건설자이며 새로운 세속질서의 창시자로 카발리스트들은
모세5경의 토라가 4가지의 다양한 자료를 취합해 얼기설기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그들의 사상적, 신앙적 뿌리를 니므롯인 마르두크에 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솔로몬의 치세 동안,
앗시리아는 오래 전부터 니므롯을 바알(Baal) 신으로 섬겨오고 있는 중이었다.
솔로몬이 죽고 나서, 이스라엘은 남, 북국으로 나뉘었으며 12개 부족 중 북쪽의 10개 부족은
200년 동안 마르두크의 또 다른 이름인 바알(Baal) 신 신앙 속으로 빨려 들어가 남쪽 동포에게 사악한 사마리아 사람들로 낙인찍힌다.
이들 10개 부족의 유태인은 자신들 신앙의 뿌리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방신이기도 한 바알(Baal) 신의 신비의식에 체질화되어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B.C. 721년, 이들 북쪽 동포 10개 부족은 앗시리아의 바빌론으로 몽땅 끌려가 노예처럼 사는 바빌론의 포로 시대를 맞이한다.
이 기간 중 유태인은 바알(Baal) 신의 본고장에서 미트라 교를 통해 그리스 신과 로마 신, 이집트 신의 뿌리인
마르두크의 원형을 만나 죠하르와 카발리즘의 본질을 체득하게 된다.
뒤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본래 유럽에서 예수가 등장하기 전 맨 처음 알려진 성모는
유색인종인 미트라교의 성모와 인도 크리슈나의 성모 그리고 겔트족의 흑성모(黑聖母)가 있었다.
그 중 특히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오딘 신의 고위 여사제 흑 성모는 마리아를 성모로 여기는 바울 종파의 손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
뒤에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는 그들이기에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바티칸과
전 세계의 기독교를 쳐 없애기 위해 프리메이슨이라는 강력한 조직으로 중세 이후 투쟁해 온 것이며,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다국적 유태인 조직을 풀 가동해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각종 혁명과 세계전쟁을 일으켜
막후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유태인 카발리스트들의 눈에 예수는 유사(Pseudo) 예언자로밖에는 보이지 않기에
자생적으로 준 기독교국가가 된 한국을 보면 그저 어안이 벙벙한 경이로움뿐이다.
남성신과 여성신의 교의는 니므롯의 아내에 의해 생각된 것으로 우리는 여기에서 복희, 여와신의 복사품을 볼 수 있다.
니므롯이 제 신들의 아버지로 숭배되고 있는 동안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Semiramis)는 신들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앗시리아의 역사에 니므롯을 말하는 니누스(Ninus)의 아내로 언급되어 나온다.
니므롯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또한 사냥꾼이었다.
고대 니느웨(Nineveh)에서 복구된 가장 유명한 조각품 중의 하나는 사냥에 나선 니누스와 그의 아내를 보여주고 있다.
세미라미스(Semiramis)의 등위에는 화살로 가득차 흔들거린다.
바빌로니아 종교에 있어 모든 신의 이름을 보면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알 수 있다.
가령 벨(Bel)로서, 벨루스(Belus)와 바알(Baal)은 제 신들의 아버지 니므롯이며,
또한 니느웨 사람들의 이름인 벨티스(Beltis)는 제 신들의 어머니를 의미한다.
벨티스(Beltis)는 또한 바알(Baal)의 아내 바알티(baalti)와 같은 말이다.
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 시절에 '벨루스(Belus)와 벨티스(Beltis)' 둘 모두의 명칭은 위대한 바빌론의 신과 여신으로 결합되었다.
벨티스(Beltis)는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Semiramis)다. 로마의 역사가이자 도덕가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Valerius Maximus:d. 20 A.D.)는
백성들의 반란을 진압한 가운데, 한 제례의식에 갑자기 나타나 유혹적인 아름다움을 전해준 세미라미스(Semiramis)의 일화를 들려준다.
그 제례의식에 대한 기억은 그녀의 유혹적인 자태를 보여주는 바빌론에 세워진 한 조상(彫像)에 의해 영구화되었는데,
시간이 지나, 그녀는 관능적 신앙의 상징이 되었으며, 바빌론은 성적인 숭배지의 중심지가 되었다. 성적인 비밀제의(祭儀)를 치루는 그 뒤의 모든 신비교단들은 그러한 성적 비밀의식이 모두 그녀로부터 비롯했음을 말한다.
고대의 비문들은 니누스(Ninus) 또는 니므롯(Nimrod)은 다른 남자의 아내였던 세미라미스(Semiramis)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다고 기록한다. 그 둘은 모든 형태의 성적인 방종을 만끽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그들은 심지어 양성을 가진 자로 추측되기도 한다.
언어의 혼란이 오고 나서, 바빌론의 거주자들이 해외로 흩어졌을 때, 니므롯(Nimrod)과 세미라미스(Semiramis)는 다양한 언어의 무수한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다산의식(多産儀式)의 실질적인 창시자인 세미라미스(Semiramis)는 그녀의 남편보다 무려 42년이나 오래 산 것으로 알려졌다.
알렉산더 히슬랍(Aiexander Hislop)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어머니와 어린아이의 신앙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많은 종교들의 어머니-어린아이 신들 속에 영향을 주었다.
-이집트에서 어머니와 어린아이는 이시스(Isis)와 오시리스(Osiris)의 이름으로 숭배된다. 인도(India)에서는 심지어 오늘날까지 이시(Isi)와 이스와라(Iswara)로, 아시아에서는 시벨레(Cybele)와 데오이우스(Deoius)로, 로마에서는 훠튜나(Fortuna)와 쥬피터-퓨어(Jupiter-puer) 또는 소년 쥬피터(Jupiter)로, 그리스에서는 가슴에 아기를 안은 위대한 어머니 세레스(Ceres) 또는 소년 플루투스(Plutus)를 손에 잡고있는 평화의 여신 아이렌느(Irene)로, 심지어 티벳, 중국, 일본에서는 신성한 어머니 싱무(Shing Moo:聖母)는 팔에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대표된다. 날개 달린 소년 신인 비너스의 아들 큐핏(Cupid), 자유의 여신 훼로니아(Feronia)와 그녀의 젊은 아들 쥬피터(Jupiter) 등-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모든 '어머니 여신'의 기원은 세미라미스(Semiramis)로 귀착된다. 히슬랍(Hislop)에 의하면 그녀는 억제되지 않은 정욕과 음탕함의 전형이었다.
세미라미스(Semiramis)는 제 신들의 위대한 어머니인 온화한 처녀 리아(Rhea)로 숭배되었으며 비너스(Venus)로 동일시되었는데, 성교, 성병을 의미하는 버니어리얼(Venereal)은 비너스에서 온 단어이다.
우리는 당시 신전에서 어머니 여신을 숭배하는 음탕한 제례의식을 묘사한 할리(Halley)의 글에서 고대인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성병(Venereal disease)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성적 열애의 상징으로 신성시되었다. 그녀를 숭배하는데는 음탕함이 필요했으며, 그녀를 숭배하는 신전에서 행해지는 신성한 매춘은 바빌로니아 여성들 사이에 보편적인 관습이었다. 그녀를 모시는 신전에는 여 사제들이 남성숭배자에게 위락 받을 수 있는 멋진 은거처 또는 별실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들 매춘 여사제들에 더하여, 모든 처녀, 아내, 과부들은 이러한 성적 봉사 의식을 적어도 평생에 한 번은 집전 해야만 했다.-
히슬랍(Hislop)은 '어머니 여신'이 '제 신의 아버지'의 아내임과 동시에 어머니임을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교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설명해주는 몇 몇 신화들을 조사했다.
그는 난잡한 세미라미스(Semiramis)가 니므롯이 죽은 뒤 임신하게 됐다고 시사한다. 당혹스러움을 덜기 위해, 그녀는 태양의 빛 줄기에 의해 처녀잉태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자궁에는 약속된 구속(救贖)의 씨가 있었다. 그 위법적인 사내애가 태어나자, 그녀는 사람들에게 니므롯이 환생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렇게 하여 어머니 여신이 동일인의 아내임과 동시에 어머니로 전해지게 되었다. 그녀는 그 아이를 구세주로, 자신을 성모(聖母)로 신격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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