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일곱 별의 비밀

은바리라이프 2008. 5. 27. 17:31
제목 : 일곱 별의 비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3-12-18
모든 사람의 말(Speech)과 언어(Language)가 하나였을 때 사람들은 성(城)과 대(臺)를 높이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그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데 합의 하였다.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뱀의 속삭임에 하와가 미혹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바벨탑의 건축도 역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고 탐욕의 탑을 쌓아서 그 거짓의 자유 속에 갇히려는 것을 보고 그 탑의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하여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고 서로 알아듣지 못하도록 했다.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결국 반역의 탑 쌓기를 포기하오 온 지면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11:9)
결국 이들의 배후에서 반역의 탑을 건축하도록 부추겼던 사단의 음모는 또 다시 무너져 버렸다. 그러나 사단은 이에서 실망하지 않고 언어가 달라진 모든 족속들에게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그들의 문화를 더욱 혼잡하게 만드는 일이 열중했다. 사단의 새로운 전략은 모든 족속에게로 돌아다니며 그들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사단은 가는 곳마다 새로운 왕들을 세우고 그들 자신의 업적을 미화하기 위하여 역사를 날조하게 만들었다. 역사를 혼잡케하여 사람들이 그 조상의 때로부터 섬겨오던 하나님의 기억을 없애버리기 위함이었다. 또 사단은 새로운 신들을 만들어내고 그 신들의 이름을 가는 곳마다 바꾸어 모든 민족 안에 온갖 괴력난신(怪力亂神)이 날뛰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모든 민족은 다 소위 그들 스스로의 '독자적 문화'를 자랑하게 만들었고 또 그것에 집착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인본주의자들은 이런 것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 놓고 '합의된 평화'를 과시하려 한다. 유엔 본부에 게양되는 회원국의 국기들이 그러하고 올림픽 경기의 개막식에서 행진하는 국기들도 그러하다.
모든 민족과 나라들의 깃발을 한 곳에 모아 놓았다고 해서 그들간의 분쟁이 그치는 것은 아니다. 유엔 총회가 열리고 있는 동안에 폭음과 총성은 그칠 줄을 모르고 올림픽 경기가 진행되고 잇는 동안에도 암살과 테러는 여전히 계속된다. 모든 민족과 나라들이 그 문화적 우월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그들 사이의 자존심 싸움은 결코 끝날 수가 없는 것이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 마24:7~8)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보는 눈은 어지러워지게 되어 있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여 민족들과 나라들의 역사가 이렇게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전개되어 온 것인지 그 실마리를 잡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혼란스럽게 해 놓음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에서 시작된 선명한 기억을 흐려 놓는 것이 바로 사단의 음모이다.
거기다가 또 하나님을 대적하는 신비주의자들은 각 나라에 남아 있는 여러 가지의 건축물에서 돌멩이 하나에 이르기까지 온갖 추측들을 갖다 붙이고 인류의 역사를 아담의 탄생 년대인 BC4천년 이전으로 마구 잡아 늘이는가 하면 민족들마다 자기네 선조가 인류의 조상이라 주장하기고 하고 심지어는 '우주인 기원설'까지 유포되어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이런 혼란한 상황 속에서 역사를 바로 파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지금까지 거의 모든 역사학자들의 전공 분야가 역사의 극히 작은 일부분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인류의 역사를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사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본다'는 것 그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너희가 소경 되었다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41)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수없이 왜곡되고 변조된 역사적 기록들 속에서 하나님은 기적처럼 하나의 '진실된 기록'을 남겨 두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없으면 우리는 어디서도 진실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날이 갈수록 성경은 모든 '책 중의 책'으로 더욱 빛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처음 대할 때 왜 우리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를 읽어야 하느냐는 의문을 갖는다. 그러나 모든 역사책이 왜곡과 날조가 거짓문서가 되어질 � 히브리 민족만이 목숨을 걸고 역사의 진실을 지켰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히브리 민족의 역사를 통해서 인류에 대한 그분의 진심과 여사에 대한 그의 마스터플랜을 전재하신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요한을 통해서 그 해답을 미리 일러주셨다. 예수가 승천하고 약60년이 지나 그리스도인에 대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극심해지고 있을 때 밧모 섬에 유배되었던 요한은 그 황량한 채석장에서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는데 그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있었다.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1:19)
예수의 그 지시를 받아 요한이 보고 기록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이며 장차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갈 것인가 하는 계시의 내용이었다. 이러한 일은 혼잡한 현상을 한 눈에 꿰뚫어 보는 역사적 안목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에게 세상을 명쾌하게 투시할 수 있는 안목을 열어주었다.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1:20)
바로 이것이 요한 계시록의 역사적 안목인 것이다. 세상에 많은 민족들이 흩어져 살고 수 많은 나라가 생기더라도 하나님의 관심은 그런 '나라들'의 역사에 있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는 성경에 이스라엘과 유다와 그 주변 나라들의 이름 곧 가나안, 애굽, 바벨론과 바사 그리고 헬라 등의 이름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그런 나라들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 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이후로 하나님의 관심은 나라들의 이름, 즉 이스라엘이나 미국이나 영국이나 그리고 한국이나 일본 같은 이름들에 있지 않다. 그분의 관심은 '일곱 별과 일곱 촛대' 즉 '교회'가 어떻게 되어 있으며 어떻게 되어갈 것인가 곧 '교회의 역사'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