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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율법인가? 진리인가? - 신앙길라잡이

은바리라이프 2008. 5. 24. 18:52
십일조, 율법인가? 진리인가? - 신앙길라잡이

 김창주 기자


요즘 ‘십일조’가 ‘율법이다’, ‘복음이다’ 하는 논쟁이 한창이다. 대형 서점에 가 보면 십일조를 주제로 한 책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런 서적의 영향력을 반영하듯 기독교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십일조가 토론의 화두가 되고 있다. 이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이 크게 양분된다. 십일조는 율법이기 때문에 율법이 폐지된 것처럼 십일조도 폐지되었다는 주장과 십일조는 모세 이전 아브라함 때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율법이 아니므로 오늘날 성도들도 마땅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서점 가에 쏟아져 나오는 책들이 성경적인지 아닌지조차 미처 검증되지 않은 채 일반 신자들의 손에 들어가 읽혀짐으로써 잘못된 십일조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십일조가 ‘율법이다’ ‘복음이다’ 논쟁하기에 앞서 성경으로 돌아가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모든 논쟁의 판단 기준은 오직 성경이기 때문이다.

율법과 진리
율법과 진리는 모두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그 목적은 각각 다르다. 많은 교회가 십일조에 대해서 그릇된 생각을 갖는 것도 율법과 진리에 대해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다. 율법과 진리는 서로 대립되거나 갈등하는 관계가 아니다.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듯이, 율법과 진리는 대립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완하고 완전케 하는 관계다.
하나님 앞에 범법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사 그들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 율법이다. 범죄한 인간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 섬기는 법을 몸에 익히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다. 율법은 인간을 온전케 하는, 구원하는 법이 아니라 범죄한 인간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가는 법이다. 그래서 성경은 율법을 가리켜 몽학선생이라 일컫는다(갈 3:24, 25). 율법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계명이 있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법(의식법)이 있다. 예수는 이 율법 중에서 제사법을 개혁하셨다. 이는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셨다는 것이다(마 5:17). 비유와 모형으로 하나님을 섬기던 것을 이제는 실상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신 것이다.
예수는 짐승의 피로 하나님께 제사했던 것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개혁하셨고, 제단에 무릎 꿇었던 것을 예수 이름에 무릎 꿇도록 개혁하셨다. 그리고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개혁하사 참 성전을 지으셨다.이처럼 성막과 제사로 대표되는 율법의 제사법은 예수 안에서 개혁되었다. 그러나 율법의 모든 의식이 다 개혁될지라도 하나님의 계명은 변치 않는다.
율법이 모세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진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요 1:17). 예수도 율법 아래 나셔서 율법을 초월하지 않으시고 그 요구를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율법의 모든 것이 이룬 것이다. 이제는 그가 선포하시고 명하신 것이 진리다. 예수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제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는다고 하셨다(마 5:19). 이제 우리는 율법을 완전케 하신 진리이신 예수 앞에 선 자들이다. 이제는 예수의 말씀이 법이고 하나님의 뜻이다.

십일조의 시작
십일조는 율법이 있기 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됐다. 아브라함은 도저히 불가능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멜기세덱을 만나 전리품의 십일조를 드렸다(창 14:18~20).
아브라함은 전쟁을 통해 하나님만이 천지의 주재시며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브라함의 십일조에는 자원하는 심령,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믿음이 담겨 있다. 아브라함을 통해 최초로 드려진 십일조는 믿음을 통해 야곱에게 이어졌고, 마침내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이를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계명으로 명하셨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아브라함의 믿음의 반열에 서게 하신 것이다.

율법의 십일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시고, 레위 지파를 제사장으로 세우셔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중보자 역할을 하도록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돌아오는’ 믿음을 고백하였다.
율법의 십일조는 크게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나타난 십일조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레위기(27:30~33)는 십일조가 조상 때부터 계속된 언약의 실행이라는 점과 예배 때 자발적으로 드려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약속된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재산을 십일조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민수기(18:20~32)는 십일조를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바친다는 것과 십일조가 하나님의 성전을 운영하는 데 쓰인다는 것을 말한다(21, 24, 28절). 한편 신명기의 십일조법(12:6; 14:22~29; 26:12~15)은 이전보다 더 방대하고 완전한 체계를 형성하였다.
예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도 이런 율법에 속한 십일조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 따라 제사장들에게 십일조를 드렸고, 그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갔다.

진리의 십일조
진리의 십일조란 예수께서 명하신 십일조를 말한다(마 23:23, 눅 11:42). 사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십일조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예수는 “십일조는 율법이니 너희는 이제 십일조를 하지 말아라 이제는 더 이상 십일조 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으셨다. 성경은 은혜와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고 말씀하는데, 정작 진리의 근본이신 예수는 십일조를 금하지 않으셨다. 그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와 더불어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율법을 폐하시는 대신 오히려 더 강화하고 완전케 하셨다. 율법을 따라 십일조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 안에서 보다 강화된 십일조를 하도록 명령받았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근채나 회향과 같은 물질의 십일조는 물론 이에 더하여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율법은 믿음의 최소 한계를 정한 것으로, 하나님은 이 믿음의 최소의 표현을 십일조로써 모세에게 가르치셨다. 각 개인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은 무제한적이므로 하나님은 그 믿음의 최소의 표현으로 십일조를 명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명하신 십일조는 수입의 십일조에 의(義)와 인(仁)과 신(信)을 더하여 하는 것이다. 의(義)는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이며, 인(仁)은 하나님의 긍휼이며, 신(信)은 예수의 공로다. 의와 인과 신을 겸하여 하나님께 드리라 하는 말에는 하나님은 ‘살리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사는 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믿음을 고백했고, 이것이 모세로 말미암아 율법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진리에 속한 성도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리의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믿음을 고백한다. 소득의 십일조에 의와 인과 신을 겸한 예물, 이것이 바로 진리의 십일조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믿음의 고백이다
십일조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표다. 성경에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했다(마 6:21). 겉으로는 물질을 드리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 어떤 이는 물질이나 헌금 이야기를 하면 돈을 밝힌다고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는데, 이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십일조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표라고 거듭 강조한다. 창세기 28장에 야곱을 이끌어 약속한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야곱은 하나님의 그 약속이 응하여질 때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한다. 또한 말라기서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명한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께로 돌아가리이까 하고 반문한다. 이때 하나님께 돌아오는 표로서 십일조와 헌물을 말씀한다.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시며 인류와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는 인류를 만물보다 더 사랑하사 인류의 구주가 되셨다(요 3:17). 그러므로 인류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으며 영원히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이 십일조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믿음의 표다.

십일조는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께 드리는 것이다
십일조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 예수께 드리는 것이다.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천지의 주재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창 14:18~20). 그에게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 그는 의의 왕이자 평강의 왕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한 자다(히 7:4~8).
아브라함은 승전 후 돌아오는 길에 멜기세덱을 만나 축북을 받고 그에게 십일조를 했다(창 14:18~20). 그리고 제사장 지파에 속한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히 7:9~10).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는다 했으니 멜기세덱은 제사장 직분을 이은 제사장들보다 높은 자로서 십일조를 받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작한 날도 끝날도 없는 영원한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전혀 다른 대제사장이 되신다. 곧 예수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대제사장이 되셨다(히 7:11, 15~16). 멜기세덱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표상이다. 곧 멜기세덱이 십일조를 받을 만한 분이면, 예수 그리스도 또한 십일조를 받을 만한 분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예수를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모세가 명한 율법의 십일조는 레위에게 주었고(히 7:5), 아브라함이 드린 십일조는 예수께 드린 것으로 레위도 함께 드렸다(히 7:9~10). 율법의 십일조는 죽은 제사장들이 받았지만, 우리의 십일조는 영원히 사신 예수께서 받으신다(히 7:8). 새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은 십일조를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시요,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십일조는 이렇게 해야 한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명하신 계명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율법을 폐하신 예수 안에서 십일조를 강요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천지가 변할지라도 주의 입으로 나온 말씀은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십일조는 이삭과 야곱을 거쳐 이스라엘의 율례가 되었고, 모세의 입을 통해 율법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진리이신 예수 안에서 다시 십일조가 선포되었으니 십일조는 진리이다.
십일조에는 죄인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온 믿음이 담겨야 한다. 우리의 십일조는 율법 아래서 저주가 두려워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자원함으로 하는 것이다. 십일조를 함으로써 하나님께 돌아왔다면 마땅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의를 사모하는 자는 생명을 얻고, 인을 구하는 자는 긍휼함을 얻고, 신을 구하는 자는 예수 공로로 구원함을 얻는다.
예수의 공로를 믿어 구원을 얻은 우리는 진리에 속한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의 십일조는 의와 인과 신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하는 믿음의 고백으로 드려져야 한다.

글 김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