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저작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요한 저작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김기동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 사람은 특별한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이 영을 부어 주심으로써 생령이 된 자다. 하늘에도 많은 영들이 있지만 그들은 육체가 없으므로 현재로서는 사람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으나 육체와 함께 영을 가진 사람은, 육체 안에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 조건과 영 안에 성령을 각각 모실 수 있는 특별한 은혜를 입은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러한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뜻을 이루게 하시고, 또한 아들을 통하여 인간의 고통을 담당케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셨다.
이때에 이 모든 역사는 성령이 하셨으니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에 잉태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마귀를 대적하셨다(막 1:12~13). 그리고 그는 성령으로 일하시고 성령으로 가르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죽으셨다가 성령으로 다시 사신이시다(롬 8:11). 이와 같이 사람에게도 성령을 주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성령을 받았으니, 그때로부터 성령으로 생각하고 성령으로 순종하고 성령으로 사는 것이 예수의 사람들이다(롬 8:9). 여기서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의 차별이 분명하다. 성령은 율법 아래 있으면서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과 예수 안에 있어서 성령을 받은 자들을 구별하셨다. 우리가 예수의 사도인 요한을 이해하고자 할 때는 먼저 그에게 성령이 함께 하신 것을 나는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그 증거를 받고 있으나 성령을 받아 체험한 것과 성령으로 이끌리고 있는 것을 별개처럼 아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그의 형제와 함께 그의 아버지를 도와 고기를 穗?어부였다. 그러나 주의 부르심을 받고 즉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으니 그때로부터 예수를 가까이에서 모셨다. 예수는 제자들 중 세 사람 곧 베드르와 야고보와 함께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셨다. 변형하신 산에 올라가셨을 때에도 요한이 거기에 있었고,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에도 요한을 데리고 들어가셨으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기 위하여 더 깊은 곳으로 가실 때에도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에 모친을 요한에게 부탁하셨다. 이때에 예수는 모친을 향하여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라 하시면서, 요한에게는 “네 어머니라”(요 19:27)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실 때에 그를 낳아준 그 “여자”(창 3:15)라고 하시면서 요한에게는 “네 어머니라” 말씀하셨으니, 그때로부터 예수 모친은 자기를 어머니로 모신 요한을 의지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요한에 대하여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 ”(요 21:22) 하셨으니, 그 말씀같이 요한은 백세를 살았다고 한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셨고 그때로부터 사도들의 시대로 돌입한 것이다. 이때에 열 두 사도들의 사역이 각각 분담되듯 하였고, 박해와 죽이려는 자들의 권세가 기승을 부릴 때 요한은 끝까지 목숨을 부지하였으며, 그때에 밧모 섬에 가 있는 동안 환상을 보고 기록한 책이 요한계시록이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에서도 보듯이 요한은 다른 사도들과는 조금 다른 매우 신령한 체험을 많이 한 자 같다. 요한계시록 때문에 요한의 체험을 오해한 자들이 있어서 그를 마치 신비주의자처럼 매도하는 자까지 있었다. 그 때문에 요한복음서에 나타난 특징들을 오히려 악평한 자들이 있었으니 역시 신비주의의 감각에서 비롯된 비이성적 저작으로 취급해 버리는 경우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서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 탁월하다 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하나님의 의도를 한 눈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엄한 저작이다. 이러한 복음서는 그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으로 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저작이다. 바울이 증거 하였듯이 ‘성령만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통달하시고 하나님의 모든 사정을 아시는 이다’(고전 2:10~11) 하였으니 성령으로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저술 목적을 확증하고 있다.
다른 복음서들을 쓴 그 누구도 그들의 저술한 책에 저술한 목적을 분명히 하지 아니하고 다만 기자로서 취재하는 형식을 띄고, 듣고 보고 배운 것을 정리하는 정도이지만 요한복음서는 저술 목적을 담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가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고 하였다. 그러므로 처음 붓을 들 때에 의도적으로 책을 저작한 것이다. 요한은 이 말에 앞서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요 20:30)라고 하였다. 이 말이 뜻하듯이 다른 책들에서는 주로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중심으로 예수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목적으로, 예수의 육신의 생애라는 오해가 없이 태초 이전부터 영원히 계신 이가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나타나신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이심을 말한다.
그는 태초 이전부터 하나님이 알고 계신 말씀을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라고 증언을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요 1:1). 그 하나님이 나타내신 것이다(요 1:18). 이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요’(요일 3:8), ‘그를 믿는 자들은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요 3:16)고 증언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중거 하실 자는 하나님 아버지시며 또한 인자 자신이시며(요 8:18), 성령 보혜사이시며(요 15:26), 그가 오시기 전에 미리 증거한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만이 예수를 증거 하신다고 중언하고 있다(요 5:39).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으로 증거하지 않거나 성령으로 증거 받지 않는 것은 참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증거를 초월한 즉흥적인 감정과 이적을 보고 따르는 것은 간사한 이스라엘이 취하는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있다(요 1:47).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으로서의 공생애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계신 이의 영원한 영광이 계속되는 중에 이 세상 사람들에게 잠깐 동안 나타내신 것이요, 그리고 하늘로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과(요 14:1~3), 거기서 성령을 그의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보내주시게 될 것을 강조하셨으니(요 14:15~18),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그러므로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가 처절하고도 불행한 일이었고 마침내 부활로서 승리하였다는 결론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그의 생애의 처절하고도 불행한 감정과 감성적 자극을 주지 아니하고 영원 전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기 독자를 세상에 나타내셔서 태초에 하시고자 하신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능히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신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 저술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요한의 저작에는 하나님의 자존심을 태초 이전의 영광으로 존중함으로써 이를 하나님의 의로 나타내고 있다.
김기동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 사람은 특별한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이 영을 부어 주심으로써 생령이 된 자다. 하늘에도 많은 영들이 있지만 그들은 육체가 없으므로 현재로서는 사람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으나 육체와 함께 영을 가진 사람은, 육체 안에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 조건과 영 안에 성령을 각각 모실 수 있는 특별한 은혜를 입은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러한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뜻을 이루게 하시고, 또한 아들을 통하여 인간의 고통을 담당케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셨다.
이때에 이 모든 역사는 성령이 하셨으니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에 잉태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마귀를 대적하셨다(막 1:12~13). 그리고 그는 성령으로 일하시고 성령으로 가르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죽으셨다가 성령으로 다시 사신이시다(롬 8:11). 이와 같이 사람에게도 성령을 주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성령을 받았으니, 그때로부터 성령으로 생각하고 성령으로 순종하고 성령으로 사는 것이 예수의 사람들이다(롬 8:9). 여기서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의 차별이 분명하다. 성령은 율법 아래 있으면서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과 예수 안에 있어서 성령을 받은 자들을 구별하셨다. 우리가 예수의 사도인 요한을 이해하고자 할 때는 먼저 그에게 성령이 함께 하신 것을 나는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그 증거를 받고 있으나 성령을 받아 체험한 것과 성령으로 이끌리고 있는 것을 별개처럼 아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그의 형제와 함께 그의 아버지를 도와 고기를 穗?어부였다. 그러나 주의 부르심을 받고 즉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으니 그때로부터 예수를 가까이에서 모셨다. 예수는 제자들 중 세 사람 곧 베드르와 야고보와 함께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셨다. 변형하신 산에 올라가셨을 때에도 요한이 거기에 있었고,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에도 요한을 데리고 들어가셨으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기 위하여 더 깊은 곳으로 가실 때에도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에 모친을 요한에게 부탁하셨다. 이때에 예수는 모친을 향하여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라 하시면서, 요한에게는 “네 어머니라”(요 19:27)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실 때에 그를 낳아준 그 “여자”(창 3:15)라고 하시면서 요한에게는 “네 어머니라” 말씀하셨으니, 그때로부터 예수 모친은 자기를 어머니로 모신 요한을 의지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요한에 대하여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 ”(요 21:22) 하셨으니, 그 말씀같이 요한은 백세를 살았다고 한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셨고 그때로부터 사도들의 시대로 돌입한 것이다. 이때에 열 두 사도들의 사역이 각각 분담되듯 하였고, 박해와 죽이려는 자들의 권세가 기승을 부릴 때 요한은 끝까지 목숨을 부지하였으며, 그때에 밧모 섬에 가 있는 동안 환상을 보고 기록한 책이 요한계시록이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에서도 보듯이 요한은 다른 사도들과는 조금 다른 매우 신령한 체험을 많이 한 자 같다. 요한계시록 때문에 요한의 체험을 오해한 자들이 있어서 그를 마치 신비주의자처럼 매도하는 자까지 있었다. 그 때문에 요한복음서에 나타난 특징들을 오히려 악평한 자들이 있었으니 역시 신비주의의 감각에서 비롯된 비이성적 저작으로 취급해 버리는 경우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서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 탁월하다 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하나님의 의도를 한 눈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엄한 저작이다. 이러한 복음서는 그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으로 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저작이다. 바울이 증거 하였듯이 ‘성령만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통달하시고 하나님의 모든 사정을 아시는 이다’(고전 2:10~11) 하였으니 성령으로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저술 목적을 확증하고 있다.
다른 복음서들을 쓴 그 누구도 그들의 저술한 책에 저술한 목적을 분명히 하지 아니하고 다만 기자로서 취재하는 형식을 띄고, 듣고 보고 배운 것을 정리하는 정도이지만 요한복음서는 저술 목적을 담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가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고 하였다. 그러므로 처음 붓을 들 때에 의도적으로 책을 저작한 것이다. 요한은 이 말에 앞서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요 20:30)라고 하였다. 이 말이 뜻하듯이 다른 책들에서는 주로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중심으로 예수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목적으로, 예수의 육신의 생애라는 오해가 없이 태초 이전부터 영원히 계신 이가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나타나신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이심을 말한다.
그는 태초 이전부터 하나님이 알고 계신 말씀을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라고 증언을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요 1:1). 그 하나님이 나타내신 것이다(요 1:18). 이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요’(요일 3:8), ‘그를 믿는 자들은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요 3:16)고 증언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중거 하실 자는 하나님 아버지시며 또한 인자 자신이시며(요 8:18), 성령 보혜사이시며(요 15:26), 그가 오시기 전에 미리 증거한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만이 예수를 증거 하신다고 중언하고 있다(요 5:39).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으로 증거하지 않거나 성령으로 증거 받지 않는 것은 참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증거를 초월한 즉흥적인 감정과 이적을 보고 따르는 것은 간사한 이스라엘이 취하는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있다(요 1:47).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으로서의 공생애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계신 이의 영원한 영광이 계속되는 중에 이 세상 사람들에게 잠깐 동안 나타내신 것이요, 그리고 하늘로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과(요 14:1~3), 거기서 성령을 그의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보내주시게 될 것을 강조하셨으니(요 14:15~18),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그러므로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가 처절하고도 불행한 일이었고 마침내 부활로서 승리하였다는 결론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그의 생애의 처절하고도 불행한 감정과 감성적 자극을 주지 아니하고 영원 전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기 독자를 세상에 나타내셔서 태초에 하시고자 하신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능히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신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 저술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요한의 저작에는 하나님의 자존심을 태초 이전의 영광으로 존중함으로써 이를 하나님의 의로 나타내고 있다.
'기독칼럼·논문·서적 > 기독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계에 흐르는 저주 (0) | 2008.05.24 |
|---|---|
| 십일조, 율법인가? 진리인가? - 신앙길라잡이 (0) | 2008.05.24 |
| 펠라기우스 [Pelagius] (0) | 2008.05.24 |
| 종교다원주의란 무엇인가 (0) | 2008.05.24 |
| 히브리어란 무엇인가? 히브리어의 족보와 역사 2 (0) | 2008.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