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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지혜에 관한 연구

은바리라이프 2008. 5. 24. 14:09
이스라엘 지혜에 관한 연구




                                                                                                                                                          -잠언 8:22-31절을 중심으로


                                                                                                                                                                      최 흥 진

                                                                                                                                                              광주동성교회 목사

                                                                                                                                                             호남신학대학교 교수

-  목               차  -

      




      I  서     론      




     II 고대 근동 지혜문학의 영향    




     III이스라엘 지혜의 특성    




            A 의인화된 지혜  




            B 신격화된 지혜  




            C 이스라엘  지혜 형성의 요인 (지혜의 토착화)

                                




      IV 후기 문학에 나타난 지혜    




             A중간기 문헌에 나타난 지혜    




             B 신약에 나타난 지혜  




        V  결     론    




    **  참  고    문  헌    

       I.  서     론




   이스라엘은 고대 근동의 여러 제국들과  비교해 볼때 그 역사가 짧은 백성이다. 따라서  이 민족이 낳은 문학 역시 고대 근동의 것과 비교한다면 휠씬 후대에  형성된 것으로 볼수 있다1)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문학 활동은   다윗, 솔로몬 제국에 이르러서  비로소 시작된 데 비해서  애굽은 이미 중 애굽제국(주전 2065-2000), 옛 애굽제국(주전 3000년 혹은 3500년 부터)시대에 꽃피웠던 문학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민족과 이스라엘이 자주 접촉했다는 사실로 볼때 이스엘의 문학의 이들의 영향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지혜문학은 그 성격상 이들 제국들의 문학으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입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에는   다른 민족, 특히 이집트 지혜문학의 영향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다.2)  그러나 이스라엘 지혜문학은 단지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자기의 사상과 성격에 �추어 변형시키고, 발전시켜  자신들의 톡특한 형태를 갖게 되었다.  잠 8장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본고는 잠언 8:22-31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독특한  지혜의 성격과  특성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를 위해 먼저 2장에서는 이 지혜에 미친 고대 근동문학의 영향을 알아 본 후, 3장에서 잠언 8:22-31절의 연구를 통해 독특한 이스라엘 지혜의 모습과 이 지혜를 형성케 한 요인을,  그리고 4장에서는  이 지혜가 이스라엘 후기문학에서 어떻게 발전되어 나갔는 가를 살펴 보기로 하겠다.




     II. 고대 근동 지혜문학의 영향




    이스라엘 지혜문학의 유래를 이스라엘의 인접국가나 고대 근동 국가들의 국제적인 지혜문학에서 찾을수 있음은 일반적으로 인정 받는 사실이다.   본문 잠언 8:22-31에 나타난 지혜 역시 다른 민족의 지혜 문학의 흔적을 찾아 볼수 있다.  잠언 8: 22-29절의 지혜에 대한 표현은 특정한 이집트적 신들의 선포 문체가 받아 들여진것이 분명하며, 30-31에서 인격화된 진리 (Maat)는 사랑하는 신에 관한  에집트적 표상이 어떤 방식으로든 -물론 내적인 변화와 함께- 여기에 침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인격화된 진리로 표현된 ‘마하트’에 대해 살펴보자.  비록 에집트의 여신  마아트가 신적인 지위를 가진것이 아니며 또한 실체화된 야웨의 성품은 아니나   오히려 야훼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야웨의 기능을 맡는다.  이 마아트는 창조에서 두드러진것 존재이며 피조물중의 첫번째 존재이다.3)  때로 이 마하트는 -에집트의 지혜교훈의 중심개념-법과 세계 질서 정의의 화신으로 나타난다.  한 본문은  어떤 신이 아버지로서 아이로 생각된 딸 마아트를 포옹하고  “자기 코에” 그녀를 갖다 댄 “후에” 입맞추는 모양을 전한다. 4)  이 모습은 사랑하는 자로서,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로서 야웨 앞에서 놀며 그를 기쁘게 하는 지혜와 결정적인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5)  이 모습은 이스라엘 지혜 교사들이 에집트의 질서의 여신에 관한 표상들에 의존하고  개체적인 언어 표현들까지도 받아 들였다 볼수 있다.

   우가릿 문헌 [라스 샤므라]6) 에 ‘호크마’(hokmah)라는 용어가 비록 드물긴 하지만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호크마’가 최상신 ‘엘’의 속성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호크마’의 어근이  전부 네번 사용 되는데 전부가 엘신과 관계되는 신화 안에 있다. 7)  그 중 가장 분명한 본문은  Gordon 126의 Keret전설에 관한 것이다.  이 본문은 다음과 같다.   --  당신의 말씀은 , 오 엘이여, 지혜로우며   당신은 영원히 지혜로운 자이시나이다.  행복된 생명은 당신의 말씀이로다. 우리의 임금은 Aleyan Baal이며 그는 우리의 판관이시고 아무도 그 위에 더 높은 자 없도다. --  이 본문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엘신의 입에서 발해지는 지혜인  호크마는 지식이라기보다 생명의 힘을 가지고 있는 지혜이다.  따라서 고대 페니키아인들에게 있어서 호크마는 최고신 엘의 속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8)  이외에도 영원한 신적인 속성을 갖은 지혜의 개념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들은 본래 신들이 소유한 것이었는데 그 신들이 각각 특수하게  몸이 있는 존재로 창조하거나 (애굽에서는 ‘토트’와 ‘이시스’로, 바벨론에서는  ‘에아’와 ‘마르둑’과 ‘네보로’) 또는 종속적인 신성과 실체와 인격을 지닌자가 되었다는 것이다.9)

  이같이  이스라엘의 지혜와  유사한 속성을 가진 실체에 대한 표현들이  고대 근동의 여러 지혜의 표상들에서 발견된다.10) 그러나  이런 근동 지혜문학의  표상들은 야훼 경외와 연결되며 인격화, 신격화된 이스라엘의 지혜와는 상당한 차이점을 보인다.  그 까닭은 이스라엘이 이러한 지혜 문학적인 요소를  야훼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안에서 동화, 흡수하였기 때문이다.  곧 이스라엘의 지혜자는 고대 근동의 지혜문학적인 요소를 받아 들여 야훼 대한 자신의 신앙안에서 자신의 것으로 삼아 독특한 지혜를 발전시켰다고 볼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독특한 지혜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III.이스라엘 지혜의 특성




   A. 의인화된 지혜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색체가 가장 강하게 나타난 곳은  가장 늦게 수집된 것을 보이는  잠언 1-9장이다.   여기에서 근동의 지혜를 넘어선  이스라엘의 독톡한 지혜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지혜가 야웨신앙과 만나면서 야훼의 신앙의 관점에서 신학화 되었고, 야웨 경외가 참된 지혜의 근본으로 이해 되었다.  잠언 1:7은“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선언한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는 지혜의 선행 조건에 해당 된다는 것이다.  잠언 9;10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것이 명철이니라”고 선포한다.  하나님 경외가 인간 사고의 참 지혜로 등장하고 있다.11)  더 나아가서 지혜가 인격적인 존재로 의인화(Personnification;hypostatization)되어 있다.  잠언 1;20-33과 8장 전체는 이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이 두 본문에 의하면  지혜는 길거리에서,  광장에서,떠들석한 길머리에서, 그리고  성문 어귀에서, 성중에서 (잠1:20-21), 또는 길가의 높은 곳이나 사거리에서, 성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잠 8:2-3) 사람들에게 소리치는 한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지혜를 이처럼 여인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지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크마’가 여성명사이기 때문이며, 70역에서도 이를 η σοφια 곧 여성명사로 번역하고 있다.   이 여성지혜12)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재앙을 만날것이며,  근심과 슬픈 일을 당할 것이라고 말한다(잠1:24-27). 그때에는 사람들이  여인지혜를 부지런히 부르고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여인지혜를 부지런히 따라 야웨 하나님을 경외하려고 하지 않을뿐더러  그의 훈계와 책망을 업신 여긴 까닭에 퇴보와 멸망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잠 1:28-32). 그러나 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재앙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잠1;33). 그러기에 이 여인의 지혜는 사람들에게 어리석음을 버리고  선하고 정직하고 의로운 자신의 진리와 훈계에 귀를 기울이라고 권면한다.  은이나 정금을 구하려고하기 보다는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지식과 명철을 구할것이며 진주보다  더 귀한 자신의 지혜를 얻으라는 것이다 (잠 8;1-11, 특히 10-11).  그는 또한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를 간절히 찾는 자에게 부귀와 장구한 재물과 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8;17-21).  아울러 이 여인지혜는 자신에게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기를 통해서 왕들이 통치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재상과 존귀한 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 백성들을 다스린다고 주장한다 (8;14-16).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의 도를 지키는 자라야 복이 있으며 자기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8;31-35).  이상에서 보듯이 지혜는 사람들을 교훈하는 한 여인으로 곧 인격화된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혜는 여기에서 머무르지않고 더 발전되어 나간다.  이 의인화된 지혜가  태초 이전부터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잠언 8장 22-31은 바로 이 모습을 잘 나타내 주는  본문이다.  이 본문은  지혜의 의인화에 관한 두번째 본문(8장) 가운데 있는 것으로  이른 바 지혜의 선재성(pre-existence)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8:22-31절을 중심으로 지혜의 선재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B. 신격화된 지혜 (잠 8;22-31절 연구)




   잠언 8장의 지혜가  단순히 시적 효과를 증대시켜려는 지혜의 의인화인가13)  아니면 인격적인 정체성을 지닌 야훼의 속성이나 행위와도 같은  야훼의 본질적인  실제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다.  대부분의 성서 신학자들은 이  지혜의 묘사가 단순한 시적 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한 상징이 아닌 지혜에 대한 반성적인 사고와 신학화  작업의 결과로서 신적인 인격화로서 명백히 실체화 했다고 주장한다.  링그렌 ( Ringgren)은 그의 책 말씀과 지혜에서  결론적으로  잠언 8장은 신적인 인격화로서 명백히 지혜를 실체화 했다고 주장한다.14) 지그프리드 (Gigfried),센케 (Schenke),부세트-그레스만 (Bousset-Gressmann)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머피 역시 지혜의 인격화 내지 신격화는 지혜에 대한 반성적인 사고를 하거나  신학화 작업의 결과로 본다.15)

그럼 과연 신학화 작업의 결과로 나타난 지혜의 모습이 어떠한지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본문에 대한 거의 일치되는 견해는  지혜가 하나님에게서 기원되었다는 것, 그리고 지혜는 모든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부터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란이 있는것은   22절의   의인화한 지혜가  자기의 기원을 말하는 표현 가운데  “여호와께서 나를 가지셨으며”로 번역된 ”카나니“(qanani)가 뜻하는 것이 무엇이냐이며,  또 하나는  30절 지혜가  하나님 곁에서 창조자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고 할때에 “창조자로 번역”된 하브리어 자음 본문 mn의 뜻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서로 독립된 문제가 아니라  연관된 문제이다.  먼저 카나니(22절)를 살펴보자.  quna는  히브리에 성서에  82번(Paul Humbert는 83번이라 한다) 나온다. 그리고 그중 12번이 잠언에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데  창조하다, 얻다,  낳다로 번역 할 수있다.  이 단어는 창세기 14:19,22, 출애굽기 15:16,신명기32;6, 시편 78:54;139:13에, 그리고 논란은 있으나 본문과 창세기 4:1에는  같은 의미이며 그 외의 본문에서는 이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16)   과연 이 단어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가.   본문은  일찍부터” 야웨께서 나를 창조하였다“로 번역되어 왔다. 최초의 번역인 칠십인역 , 시리아 역, 아랍어역,  타르굼 아랍어역등이  히브리어 동사 ‘qnh’를 창조하다(칠십인역은 εκτισεν)로 번역했다.17)  또한 성서 여러 곳에서 이 단어는  창조하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하나님이 지혜를 창조하셨다는  표현은 외경 집회서에도 나타나 있다.18)  RSV,NEB,NJB,등 대다수가 위의 번역을 따른다.  본문 자체의 증거를 보더라도  24,25절에 출생을 의미하는 ‘holalty’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고 또한 23절의‘sakkoti’도 내가  옛적부터  자궁에 숨기워져 있었다고 번역되었음을 볼 때 이 단어는 창조하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19)

반면  qnh를 얻다, 가지다로 번역하기도 한다. 불가타, 아퀼라, 심마쿠스등은 이를 주께서 나를 가지셨다로 번역한다.  이사야 1장 3절에서 소가 그 소유주(qonehu)를 안다고 할때 qnh는 획득하다,  획득한 것을 소유하다는 뜻이다.  현대어 번역 중 이런 번역은  ASV, NASB,NKJV등이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구약에서 82(?)번중 몇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런 뜻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폰라트도 이를 창조했다라고 해석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하며 스코트도 이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만일 이것을 이같이  얻다, 취하다의 뜻으로 본다면  지혜는 야훼와 동등위치에 있는 창조의 동역자가 된다. 곧 이방세계의 신들처럼 남성신과 함께 존재하는 여성신이 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본다면 본문은  세계는 남성신인 야훼와 여성신인 지혜가 결합해서 창조했다고 풀이 할 수 있다.20) 이 해석은  고대 근동의 창조 사상에 비추어 볼 때는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신론적인 사고를 근거로 한 것이다.   비록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이 보편주의적인 특성을 가졌고 고대 근동 지혜문학의 영향을 입었다고는 하나 이들은 그것을 단순히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학적인 반성을 통해 토착화 시켰다.  특히 본문은  잠언중 가장 후기에 수집되었고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이다. 그러기에 다신론적인 사고를 인정하고 지혜를 남성신 야웨의 배우자인 여성신으로 표현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한 23절부터 계속되는 동사들 즉 ‘리사카티’,‘호랄티’,‘ 하타바우’등은  명백히 지혜가 야훼에 의해  만들어지고, 태어나고, 창조되었다고 천명하고 있기에 이주장은 받아 들이기 힘들다.

  이 단어를 ‘낳다’로 번역하기도 한다.  1978년 New Internation Version이 이 구절을 ‘가지다’로 번역하면서  난외에 ‘낳다’로 번역했다.  그외에도  에큐메니칼 번역 불어 성경 Traduction Oecumenique de la Bible에서 이같이 번역한다.  그러나 이 해석은 근거가 희박하기에 거의 받아 들여 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볼때 본문의 ‘qana’는  창조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곧 하나님이 그의 첫번 작품으로  지혜를 만드셨고 그 다음부터 지혜를 곁에 두고  창조활동을 하셨다는 의미이다.

  둘째 문제는’mn을 어떻게 이해하는냐 하는 것이다.  뜻에 따라 'mn의 모음화는 달라진다  'mn을 맛소라 본문처럼  'amon으로 읽으면  가장 사랑하는 이이다. NEB(1970)  RSV(1989))  같은 자음 본문을  아가서 7장 2절에서처럼 'oman으로 읽으면  그 뜻은 명공이 되며, ‘amun으로 읽으면 어린아이, 보호받는 아이라는 의미이다. 같은 자음을 ‘omen으로 읽으면 인도자,교사가 된다.   개역은 창조자라는 단어를 ’oman으로 읽어   명공이라는 이 의미를 나타낸다.21)  칠십인역에서도 이렇게 번역하며  솔로몬의 지혜서 (7;22), 요한복음 1;3절, 골로세서 1;16도 같은 이해를 보이고 있다.22)  70인역은 αρμοζουσα로번역했는데 라틴역도 이를 따랐다, 이 번역은 히브리어 amman을기술자로 읽어야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주장을 뒷받침 해 준다.    이말은 아마 아카디아어(ummanu-수공업자)에서 온것이며  확실치 않지만 렘52;15에서 발견되는 말이다.  그리고 작업자로서  보게하는 시사가 특별히  sap sal 7:21; 8:6에 나오는데  여기서는 지혜가 실제로  τεχνιτιs-장인,  수공업자로 표시되었다.23)

이와 달리 ‘amun으로 읽어 어린아이, 보호받는 아이라는 의미로 보기도 한다.   24-25절에 나오는 출신 은유와  30-31절에서 보듯이 하나님 앞에서  재롱 부르는 뛰노는 아이의 모습때문에 이렇게 보는 주석가가 많다.24)    이는  30절의 일반적인 진술들(놀다, 희롱하다)에 일치한다.   30절은  아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amun-사랑하는자, 어리광 부리는 아이로 읽어야한다.  이 번역의 가설을 인정케 하는 것이 Aquila의 τιθηνουμενη  -양자, 사랑하는 자이다.25)  카야츠 ( kayatz)는 이에 대한 모델로 이집트의 신  ‘마아트’를 들고 있다. 그는 신들의 사랑스런 아이로서  그들 앞에서 놀며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신들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26) 스코트27)와 겜세르도 ‘omen으로 읽어 인도자,교사를 의미한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본문에서 지혜는  그녀의 권위의 근거와 원천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시에 그녀의 탁월함에서 발견되어 진다는 것이다.   이 중 ’mn을   만일 십장이나 기술자로 또는 교사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번역하여  이 단어를  지혜와 결부 시키면 이는 지혜가  천지를 창조한 선재적 존재로 야훼 하나님과 우주 창조에 동역하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은 26-29의 야웨만이 전적인 창조의 주인이라는 표현과 모순이 된다.  특히 27절의 그가 하늘을 지으시고 궁창으로 해면을 두를 때  내가 거기 있었다는 표현, 그리고 야훼와는 구별되나 밀접히 관련을 가진 인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을 볼때  이 단어는 amun으로 읽어 어린아이, 양육받는아이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여겨진다.

    위에 근거해 본문에 나타난 지혜의 특성을 살펴보자. 잠언 8: 4-21절에 지혜는 사람들의 가장 큰 선 또는 그들의 생명의 다함이 없는 근원으로서 자신을 나타냈는데 여기서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지혜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낳은 자 곧 모든 창조의 첫 열매이며(8;22), 또한 하나님의 창조시에 하나님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8;30).    그러므로  지혜가 가져다 주는 이득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본질과 우주가운데 가장 높은 위치 때문에 지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나는’ 의인화된 지혜인데  자체 문맥은 지혜가  자신의 기원을 하나님과 관련시켜 말하고 있다.  본문에서 지혜는 하나님과 함께 창조에 가담한 여신같은 인상을 줄 정도로 뚜렸하게 나타나지만  구약에 나타난 야웨신앙은 유일신 신앙이므로  잠언 8장 저자가  지혜를 하나님과  구별되는 또 다른  신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결국 8;22-31절에 나타난 지혜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난자이며 하나님의 창조시에 곁에 있었던 신적인 속성을 가진 존재임을 알 수있다.




    C, 이스라엘  지혜 형성의 요인 (지혜의 토착화)




   이스라엘의 톡특한 의인화, 신격화된 지혜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친 요인을 살펴보자.   근본적으로 고대 근동 지혜과 이스라엘 지혜는 그 성격상  동질의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후대에 저술된 집회서, 솔로몬의 지혜서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구약성서의 지혜문학은  구속의 중대한 개념인 율법, 계약, 선택, 구원같은 제재에 대해 무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현자들이 고대 근동 제국 현자들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지혜를 형성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현자들은  예언자, 제사장들과 교류가  빈번했기 때문에 기원전 400년경 이스라엘의 왕정과 더불어 포로생활의 고배를 함께 체험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얼을 지배해온 야웨 종교의 빛 아래서 그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곧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이 비록 고대 근동의 것에서 유래하고 그와 비슷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내려진 계시의 발전에 따라  야웨가 내리신 계시의 빛 아래서 초기의 인간적 지혜에서 신학적 지혜로 발전되었다.28)  따라서 고대 근동의 지혜와 이스라엘의 지혜와의 근본 차이는 계시의 진보에 있다고 말할수 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가나안 정복 이후에 시작되어   유배이후 더욱 심해진  종교적, 문화적 혼합주의의 위기 특히 모든  종교적 차이와 문화적 차이를  흡수하여 통합시키려는 헬레니즘화 정책을 편 알섹산더 대왕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인해  다른 민족에 동화, 흡수되어 버릴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다른민족들과 같이 되어 결국은 지상을 통치하는  그 어떤제국에 흡수되어 버리는 것에 경계하여 다른 민족들과 구별되는 하나의 특수한 백성이 되려는 노력을 했다.29)  유배 생활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비록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 의해 한데 뭉치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공통된 역사를 가지고  하나의 전승을 만들었다.  좌절감에 빠졌을때 그들은 토라에 매달리는 열성을 보였고, 전승을 열심히 연구하고 그 의미를 찾았으며 후손들을 위해서 그들의 거룩한 전승을 보존했다. 백성들에게도 율법을 가르치며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겨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이 유배 기간은 그들의  종교적인 활동의 시대이며 이스라엘의 종교적 유산에 주의를 집중하고 헌신하는 시대였다.30)   그 후 주전 5세기 페르시야의 총독의 신분으로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혜미야는 그의 임기중 여러가지 개혁을 실시 하여  유대인들을  긴밀하게 결속된 공동체로 묶어 놓으려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것은  페르사야 시대의 엄청난 문화적 압력에 직면해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었다.  그는 강경한 배타주의로 나갔다. 곧  이스라엘 만족의 혈통의 순수성을 지킬려는 노력과 율법에 대한 충성과 성전보호에 충실함으로 이스라엘의  신앙의 특성을 살리고자 했다.31)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후  제사장 에스라가 나타나 백성들에게 토라를 선포했다.   율법이 모든 유대인이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며   그 율법의 규정들을 위반하는 자들에게는 중한 형벌이 내리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율법은  단지 법조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신앙의 책이요, 한 민족으로서  자기 본체를 확인하는 책이었다. 그것은 자기의 종교적인 지혜의 근원이며 그것을 요약한 내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러한 싯점에 와서  고대의 지혜전통을 지켜오던 종교적인들은 일대 각성을 하였다.  이제까지는 지혜전통을 지키는 자들은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이거나  서로 똑같이  개인에 대한 지혜전통의 특수성 지켜왔으며 구속사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제사장들과 예언자의 관심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종교적인 현인들은 이제 그런 무관심과 세속성을 멀리 하기 시작하였다. 현인들과  세기관들은  기록된 토라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여기서 새로운 형태의 개인적인 경건 사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묵상하면서 신앙의 기쁨을 찾는 경건이었다.32)  이스라엘 종교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요소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33)     지혜 교사들은 이때 특별히  종교적인 내용들을  지혜의 자료로 도입하게 되었다.   또한 지혜의 근원과 본성을 객관적인 것으로 보는 신학적인 해석으로 인해  지혜의 창조적인 신성한 내용을 이스라엘에게 계시된 율법과 연결시켜 놓았다.  신학적인 반성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34)       이러한 포로기 그리고 그 이후 시대에 다른 민족에 정치적, 종교적으로 혼합되어 버릴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자신의 정체성를 찾고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자신들이 신앙과 삶의 중심인 야웨 경외와 지혜를 연결시켰으며 신학적인 반성작업의 결과  지혜가 인격화 되고  신격화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IV. 후기 문학에 나타난 지혜




      A.중간기 문헌에 나타난 지혜




  좀더 발전된 지혜의  모습은 중간기 문헌에서 더 자주 볼수 있다. 특히 솔로몬의 지혜서, 시락서는 이것이 잘 나타나 있다.

    솔로몬의 지혜서35)에는  잠언서보다 더 빈번한 인격화, 신격화된 지혜의 모습을 찾아 볼 수있다.   지혜를 지적이며 거룩한 영으로서 물질적인 재료가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이며 돌아 다니며 선한것을 사랑하며 정복되어 질수 없고 친절한 사람의 친구요(8:22) 신부라 (8:2)라 말한다.   고통과 근심의 때에 용기를 주는 존재(8:9)이며 곤경에 처한 하나님의 백성의 보호자(10:17)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지혜가  세상 창조의 도구이고 (14:5) 세계 모든 곳에 있으며, 유용한 질서로,  모든것을 다스리는 존재로 (8:1) 사물에 대한 참 이해요, 만사의 운행 구조에 대한 이해(17:17)이고, 과거 해석과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며 (8;8), 만물을 다스리는 힘이며(9;2),  하나님의 광채요 (7;26), 신 능력의 거울이요 (7;29), 신의 선하심의 조명으로, 하나님과 동거하며 (8;3, 9;9), 그의 명령하에 움직이는 존재(7;15)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지혜가 세속적인 실천 기술이라기 보다는 인격적이며 신적인 속성을 가진 존재로 나타난다. 이스라엘 고유의 지혜의 모습이 두드러지게 강조된 것이다.  

  시락서36)에는 가장 높은 형태의 지혜의 모습이 나타난다. 지혜가  이미 태초부터 있는 선재적인 존재이며 (1:4) 하나님 함께 영원하며  (1:1)  창조 사역의 동참자(1:9)로 서술 되어 있다. 시락서 24장 1-19에는37) 이 가장 높은 형태의 지혜가 가장  뚜렸하게 서술되어 있다: 나는 지고하신 분의 입으로부터 나왔으며 안개와 같이 땅을 덮고있다.   나는 높은 곳에 살며 나의 보좌는 구름 기둥 가운데 있었다. 나는 홀로  하늘을 우회했으며  깊은 심연에서 걸었다 ... 태초에 영원부터 그는 나를 창조했으며 영원까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시락 24:3-5. 9).   그런데 시락서의 주목할만한 점은 지혜와 율법을 동일시 하고 있다는 것이다 (24:23).   또한 지혜가 모든 사람 모든 민족에게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율법에 뿌리를 박았고 구체화된 이스라엘만이 이를 알고 있다. (시락 24:6-12,  23) 또한 24:20절에는 지혜가 예언자나 설교가처럼  사람들로 오라(24:;9)든지 순종하라고 호소한다. 이것은 후기에 점차 율법과 예언이 지혜의 영역에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와 동일시 되고 있는 여인 지혜가 토라와 지혜를 연결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같이 중간기에 들어 이스라엘의 지혜는 독특한 사변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지혜가 올바른 행동이나 가르치는 안내의 역할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인격화된 존재,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분리 되어 있지만 사람들이 가까이 할수 없은 존재이며 세계 이전에 창조된 존재이며 천상의 존재이요  선재자이다. 또한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존재이며 심지어는 율법과 동일시 되어있다 .  이 시기에 와서 점차로 지혜의  종교적 신학적인 의미가 강조되었으며 지혜를 이스라엘 종교의 근거로 여기게 되었다.




    B. 신약에 나타난 지혜




신약성서에서 잠언8;22-31 그리고 솔로몬, 시락서 영향하에  인격적인 존재, 신적인 존재로서 지혜를 표현하는 곳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특이한 점은 거의 지혜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공관복음서에서(특히 마태복음) 예수는 메시야적 지혜의 소유자 혹은 종말론적 지혜의 교사로 나타나며 (눅 2:40-52, 마 2:1-12, 12:38, 막 6:2, 눅 21:15) 고린도 전서에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지혜라고 (고전 1:4)일컫는다. 또한 골로세서 1:15-20, 빌 2:6-11등의 그리스도 찬양시에서도  지혜 전승의 흔적을 발견 할 수있다. 특히 이는 요한복음의 로고스 기독론에 보다 잘 나타나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를 ‘로고스’ 곧 ‘말씀’이란 용어로 부르고 있는 점에서  그리고 성육 계시를 강조하는 점에서 다른 복음서와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요한이 이렇게 예수를 증거할 때 구약성경에 묘사된 바 있는 인격화된 신적 지혜사상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 지적되어 왔다.38)  이 개념에 우리의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요한복음의 로고스 찬가가 이미  헬라적 유대교안에서 잘 알려져 있던 지혜의 찬양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며 또한 요한의 로고스 찬가에서 지혜 기독론의 직접적인 영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때 요한의 로고스 찬가가  영지 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주장과 이해가 있었지만 (불트만등)이제 많은 학자들은 요한의 로고스 교리의 근원을  유대교 지혜 문학에 찾는다.  다드에 의하면 요한복음 서언을 구성할 때  요한 저자의 마음은 유대교의 지혜 학파 저자들이 따르고 있는 길과 비슷한 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39)   브라운은 요한복음 서언에 나오는  로고스와 지혜간의 관계에 대해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 짓는다  “지혜문학이  요한 복음의 예수상을 위해서 간혹 주장되어 왔던 것과 같이 후대의 영지주의적, 만다교적, 또한 헤르메스적 본문들보다도 휠씬 더 훌륭한 모델을 제시해 주고있다... 구약 성서의 지혜 설명 가운데는 요한 복음 서언의 말씀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거의 모든 상세한 내용들을 위한 훌륭한 평행 본문들이 있다.40)

이런 주장에 근거해 볼 때 요한복음 서언은 구약의 지혜 개념의 영향을 입고 있는 것은 타당성이 있다.  여기서는 잠언 8장과 요한복음 서언을 서로 비교해 봄으로 이를 더  확실히 하고자 한다.

** 잠 8;23-24-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아니 하였고... 이미 났다. (선재성)     * 요1;1-2 태초에 말씀(λογοs)이 있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잠 27-30절-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을 두르실때 내가 거기 있었고 .... 땅의 기초를 정할때 그의 곁에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 요 1;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 ..

**잠 30절- 내가 양육받는 아이(창조자)가되어..     * 요 1;1 이 말씀은 곧 하나님 이시니라 (본문은 θεοs에 관사를 생략함으로서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 신적인 속성을 가진 존재임을 나타낸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잠언의 지혜의 영향을 입었으나 그보다 더 발전되었다.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어떤 인격적, 신적인 존재를 넘어서 온전히 하나님과 거의 동등한 존재로서 기독교 신앙의 대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또한 단지 단어 그자체의 의미를 넘어서 그속에 기독교 신앙 자체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V.  결     론




    고대 근동의 지혜 문학보다 후기에 형성된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은 이들 제국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입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혜 문학은 이 지혜의 개념들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고유의 야훼 신앙과 연결시키면서 야웨 경외를 지혜의 근본으로, 그리고 인격화된 존재, 신격화된 존재로 발전시켰다.  이것은 잠언 1-9장 특히 8:22-30절에  잘 나타난다.  이 본문 역시 고대 근동의 지혜 곧 이집트 여신 ‘마아트’나 우가릿 문서 라스 샤므로의 신적인 속성을 가진 호크마라는 개념의 영향등이 나타기는 하나  이스라엘의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고 지키려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결과 그들의  신앙은 개인주의적이며 배타적이 되어갔다.  이와 함께  지혜 역시 사변화되어 인격화 존재, 신격화된 존재로 표현되었다.  지혜가 인생의  성공의 길을 알려주는  실천적인 기술이 아니라 선재적인 존재요,  신의 창조의 동역자라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후대에 갈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중간기 문헌인  솔로몬의 지혜서나 시락서에는 지혜의 신적인 모습이 강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멸망치 않는 존재로, 더 나아가서는  율법과도 동일시 되고 있다. 이는 지혜가 이스라엘 신앙의 근거로 발전되어 나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  이는 신약성서에도 볼 수 있다.  신약성서의 거의 모든 지혜의 언급은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다. 공관복음에는 (특히 마태복음) 예수가 지혜의 스승으로 그리고   고린도 전서에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라 말한다(고전 1:24).  요한 복음에서는‘로고스’라는 어휘를 통해 이를  선재적이며 창조의 중재자요 하나님과 거의 동일한 속성을 가진 존재로까지 그리고 있다.   이것은 어떤 개념에  종교적인 의미가 부여되고 그것이  강조되고  발전되면 그의 마지막 자리는 결국은 신앙의 궁극적인 대상인  신적인 위치에까지 나아가는 것임을 보여주는 한 예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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