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靈的 니느웨 사람이 되어 이 악한 세대를 救援하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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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로잡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또는 니느웨 사람은 상징적으로 ‘회개’ 또는 ‘회개한 사람’을 의미하고 있다. 요나서에서 보면 악독을 행한 니느웨 백성들이 요나의 외침 즉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는 경고를 받아들여 재앙을 면하는 일이 있다. 반면에 노아 때에는 홍수 직전에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 당대의 의인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담의 시대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할 것을 듣게 된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 것을 명령하셨고,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를 백성들에게 외쳤건만 그 외침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아 물 심판을 받고야 말았던 성경의 역사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흔히들 당시 구약시대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믿음과 신앙을 측량하는 ‘육적 선민의 시대’라 일컫는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육적 혈통으로 이어져 오는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택해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진리 곧 예수가 옴으로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시면서 한 시대를 마감하셨다. 그리고 ‘영접 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가 선민이 되는 그야말로 ‘영적 선민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다’라는 말을 남겨 이를 증명하고, 또 증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육적인 시대와 영적인 시대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 답은 어쩌면 간단하다. ‘육’은 보이는 것이고 ‘영’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육적인 시대에는 구원도 심판도 요나 때나 노아 때처럼 눈으로 식별할 수 있다. 그러나 영적인 시대는 성경에 기록되었듯이 ‘멸망이 홀연히...’라고 하기도 하며 ‘도적같이 임하리니...’ 라고도 한다. ‘홀연히’의 사전적 의미는 ‘예고 없이’ ‘알 수 없게’ 등의 의미며, ‘도적’ 또한 알 수 없고 예고 없이 오는 게 도둑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도적같이 밤에 오신다고 하신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육적인 시대와 달리 영적인 시대 즉 신약 속에 기록된 표현과도 같이 ‘구원과 멸망’은 ‘홀연히’ 또는 ‘도적같이’ 임한다는 이 사실을 명백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영적 니느웨 사람들이 되어 이 악한 세대를 구원하는 그야말로 나부터 회개한 사람이 되어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신앙인들이 다 돼야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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