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과 레바논 전쟁의 교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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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간 전 빌리 그래함박사가 뉴스위크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성경은 무대가 중동이었는데, 앞으로 세계도 중동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것으로 말하였다. 중동은 항상 국제 뉴스의 이슈가 된다. 한달 동안 계속된 이스라엘과 레바논 전쟁은 휴전이 되었지만 활화산이다.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이다. 필자는 두 나라 전쟁이 최고조에 달하는 7월 하순과 8월 시리아, 요르단, 이란을 여행하였다. 레바논이 주목적지였으나 부득이 변경하였다. 중동의 대부분 언론들은 두 나라의 전쟁을 노골적으로 아랍과 서구의 전쟁으로 몰아붙였다. 사무엘 헌팅톤의 문명 충돌론을 은근히 인정하는 인상을 주고 말았다. 중동의 지성인들은 헌팅톤의 문명충돌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서구와 이슬람 간의 충돌로 단정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스라엘을 미국을 대신하여 싸우는, 미국의 앞잡이로 본다. 사실상 미국은 헤즈블라를 두고 보자고 벼루든 참이었다. 헤즈블라는 수년 전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미국 해군 수 백 명을 죽인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이요 테러 집단이다. 그래서 미국은 유엔의 휴전 안을 승인하지 않고 은근히 지연 작전을 하는 인상도 주었다. 부시 행정부 역시 철저히 이스라엘을 지원한다. 이스라엘이 헤즈블라를 철저히 분쇄하여 줄 것을 바랐다. 그러나 성과가 크지 못하였다고 본다. 이번 두 나라 전쟁은 과거 중동 전과는 딴판이었다. 서구의 여론마저 레바논을 동정하고 이스라엘을 비난하였다. 헤즈블라가 처음으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승자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전쟁으로 내분이 일어났다. 전쟁 중 소수지만 몇몇 이스라엘 병사와 장교가 전투 참여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들을 영어로 Refuseniks로 부른다. 이들은 레바논의 민간인을 죽이는 일에 동참할 수 없다고 하면서 감옥 행을 선택하고 말았다. 전쟁을 주도한 이스라엘 강경파들을 곤혼스럽게 하는 일이다. 참고로 전쟁을 주도한 이스라엘의 주도 세력 역시 유대 원리주의자들이다. 결국 두 원리주의가 충돌한 셈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 전쟁을 나일강에서 전갈과 개구리의 대화를 비유로 들면서 중동의 미래를 크게 걱정한다. 나일강 백사장을 걷든 전갈이 나일강에서 헤엄치는 개구리를 향하여, “개구리야 나를 등에 태워 함께 여행하면 어떻겠니?” 한다. 개구리 왈, 그러면 나를 잡아먹게.”하자 “그러면 나도 죽는데”하고 전갈이 응수한다.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업고 한 참 헤엄치다가 본색을 드러낸다.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한다. 개구리 왈, “이러면 함께 죽는데”하자, 전갈, “이것이 중동이야” 하면서 함께 죽고 말았다. 이 우화는 서구의 국제정치학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것으로, 중동은 서로 죽을 줄 알면서도 싸운다는 것을 빗댄 것이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등식이 금번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슬람 세계에서 시아파와 수니파는 이상할 정도로 원수관계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전쟁이 격화할수록 서서히 수니파도 헤즈블라를 지원하고, 심지어 헤즈블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영웅시할 정도이다. (나스랄라라는 의미는 알라의 승리를 의미한다). 다마서크스 거리와 자동차에는 나스랄라의 대형 사진으로 넘쳐 났다. 마치 시리아의 전쟁 영웅인양 착각 할 정도이다. 8월 4일 시리아 국영방송은 그의 연설을 한 시간 이상 방송하였다. 과거 레바논을 점령한 적이 있었고, 이스라엘에게 골란 고원을 빼앗긴 시리아로서는 이스라엘과 싸워주는 헤즈블라가 그지 없이 고마운 친구인 셈이다. 선교적 교훈 이번 전쟁을 통하여 이슬람과 유대교는 사랑의 종교가 아니라 복수의 종교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 전쟁으로 세계의 분위기는 반미감정이 더 고조되고 말았다. 기독교 원리주의자인 부시가 이스라엘을 지지함으로 중동 세계와 미국은 더 멀어지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도 세계 정복의 종교로 오해 받고 있다. 일본의 상당수 진보 신학자들은 노골적으로 미국 복음주의 교회를 세계 정복의 신앙으로 단정한다. 그런데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세계의 반미감정, 특히 한국의 반미정서에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반미를 떠들면서 미국에 오려고 줄 서는 것은 한 마디로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적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중동의 청년들도 “빈 라덴 넘버 원, 부시 넘버 텐” 하면서도 미국 가려고 하는 자들이 60%를 넘는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중동에서 기독교 선교를 더 어렵게 한다. 한국의 반미정서에도 불구하고 중동 인들은 한국은 미국에 가까운 나라로 생각한다. 한반도국제대학원 석좌교수 전호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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