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어둠 속의 치료자들

은바리라이프 2008. 5. 22. 00:25
제목 : 어둠 속의 치료자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3-03-17
하나님의 권고를 뿌리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사람에게 제일 먼저 찾아온 문제는 바로 병의 문제였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는 것은 곧 선악에 대한 판단과 책임을 인간 스스로 지겠다는 의미였고, 그러한 인간의 판단은 곧 ‘보이는 것’에 대한 유혹에 넘어가서 절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절제의 포기에서 오는 것은 즉 균형의 파괴이다. 인간의 건강은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절제와 균형이 무너지면 질병에 걸리게 되고 그것으로 곧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강제적인 절제를 시키기 위하여 출산과 노동의 의무를 부과하셨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창 3:16)
여자가 출산을 하지 않으면 수명이 짧아진다. 여자는 임신한 기간 중에 태아에게 영양을 공급해야 하면 탐욕을 절제하게 되고, 아이가 젖을 뗄 때까지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 여성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임신과 출산을 기피하기 때문에 출혈이 계속되고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악성 질환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남자도 역시 노동으로 땀을 흘려야 영양의 적체로 인한 콜레스테롤의 퇴적을 막을 수 있고 절제하는 생활이 가능하게 된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창 3:18~19)
그러므로 이러한 조치들은 얼른 보기에는 권면의 말을 듣지 않은 남자와 여자에게 징벌을 주신 것같이 보이나 사실은 사람이 질병으로 말미암아 급속히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보호하시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질병이 생기는 경우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대화의 창구를 터놓으셨다. 즉 제사의 제도를 만들어주시고 문제가 생기면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께 치유를 호소하도록 준비해 놓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가인의 범죄와 살인으로 말미암아 땅을 떠난 가인의 족속의 도시문명이 시작되었고(창 4:16~17), 질병과 타락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급속한 멸망을 방지하시기 위하여 다시 홍수라는 비상조치를 감행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홍수 이후에도 장자의 직분을 다하지 못한 셈 족속의 지배 때문에 니므롯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리하여 인본주의 권세가 천하를 지배하기 시작하지 노아을 통해서 이어져오던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대화 창구는 완전히 막히게 되었고, 사람은 병이 나도 치료받을 방법이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 문제야말로 니므롯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많은 병자들이 니므롯에게 나아가서 치료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니므롯의 정권 자체가 위협을 받을 만한 정도가 되었다. 마침내 니므롯은 임시변통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장자권 시대의 제사장을 모방한 무당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그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의식을 행하되 더 강렬한 방법으로 춤을 추고 노래하게 했다. 또 제사와 기도를 드리는 것만이 아니라 도끼로 자르고 칼로 째는 방법까지 동원했다. 그래도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신의 뜻이니 신에게 제물로 드린다면서 사람의 심장과 내장을 꺼내어 불사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바로 무당이라는 것이 등장하게 되었고,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게 아니라 필요한 모든 신들을 다 불러들였기 때문에 발람과 같은 만신무당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좀 께름칙한 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자르고 째는 무당의 치료 방법도 의술의 발전에 기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야만적인 치료방법에서부터 오늘날과 같이 의학이 발전된 것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지혜를 주시고 또 선한 길로 인도하셨다고 보아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냥 방치하셨다면 오늘날의 의술은 저 독일이나 일본이 저질렀던 생체실험의 만행과 같이 비인도적인 샤머니즘의 도구로 전락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학은 거래에 의한 장기이식이라든가 유전자 조작과 인간복제 문제처럼 사탄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소지를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병든 인간을 제 나름대로 치료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것이 무속이기 때문에 이것은 사탄이 이용할 만한 좋은 수단이 되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하여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거쳐 만주에 이르는 민족들의 이동경로를 더듬어보면 곳곳에 이런 무속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사탄’ 또는 ‘사이탄’을 숭배하는 무당들이 상당수가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Vilmos Dioszegi:‘시베리아의 샤머니즘’).
그러므로 샤머니즘이란 여호와를 섬기던 신앙의 한 퇴화된 형태에 불과하다. 그 예로 모압 왕이 브돌에 사람을 보내어 만신무당 발람을 초청했을 때 발람이 모든 신을 다 부리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 요청에 응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발락이 그 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 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민 22:18)
이 모든 것을 살펴볼 때 무당이란 바로 인본주의의 통치자 니므롯이 백성들의 완성을 무마하기 위하여 급조해낸 임시변통의 치료방법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무속이 나중에 여러 족속에 확산되어 오늘날까지 유치한 형태로 남아 있고 그 중의 일부는 가나안이 창안해 낸 판테이즘과 혼합되어 오늘날에도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