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메소포타미아의 핏소리

은바리라이프 2008. 5. 20. 21:41
제목 : 메소포타미아의 핏소리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3-01-16
아우들을 밀어내면서 강들 사이의 땅으로 내려온 장자들의 횡포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에 정착해 살고 있던 모든 족속들과 마찰을 일으켰고, 그 때마다 분쟁과 폭행이 계속되었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중동고고학을 연구한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박사는 수메르가 메소포타미아의 난 폭자로 등장하면서 건설했던 최초의 도시는 바벨론으로부터 약간 동쪽에 위치한 '기스'였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이 때로부터 인류의 역사는 왕(王)이라는 말이 탄생한다. 왕에 해당하는 수메르어는 알파벳으로 표기하면 lugal인데 이는 곧 '큰 사나이'라는 뜻이었다. 수메르의 왕들은 때로 점토판에 쐐기분자를 새겨넣을 때 자신에 대한 호칭을 '왕과 장자(長子)'로 병기했다. 즉 왕이 생기기 이전에 셈의 집안에서는 장자권자(長子權者)가 문중을 대표했는데 스스로 왕이 되었던 수메르의 영웅적인 왕 중의 하나였던 '우르남무'는 달의 신 '난나'를 위해 신전을 지어 헌당하고 점토에다 이렇게 기록하였다.
"우룩의 주인이며 우르의 왕(lugal)인 엘릴의 장장(dumu-sang)우르남무는 여기에 난나 신을 위하여 그의 신전을 건축하였노라"
여기서 dumu는 아들이란 뜻이고, sang은 머리란 뜻이니 dumu-sang은 우두머리가 되는 아들 곧 장자권자라는 의미였다. 이로써 우르남무는 자신이 신의 임명을 받은 셈 집안의 장자권자인 동시에 우룩(에렉)과 우르의 왕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내세우려 했던 것이다.
어쨌든 수메르의 우두머리가 '기스'에 성읍을 건설하고 '왕'이 되면서부터 메소포타미아는 끊임없는 전쟁의 무대가 되었고, 왕은 점점 난폭한 독재가 되었으며, 왕위(王位)는 장자권자를 뽑을 때처럼 문중의 장로들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세습으로 물려주는 것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우룩과 우르 등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굴된 점토판에는 수메르 왕의 강력한 권위와 거대한 문명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 그 가운데는 위엄에 넘친 왕이 포고문도 있고, 상인의 계약서와 재고목록에도 있으며, 종교 기록과 문학작품에서부터 교육에 대한 지침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왕의 도시들은 건설하고 지탱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주변 종족들의 희생이 따랐던가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왕의 도성과 신전을 건설하기 위해 짐승처럼 일만 하다가 죽어간 사람들, 왕의 영광과 환락을 위해 피땀 흘려 일구어낸 것들을 공출당한 사람들 그리고 수메르의 폭력에 저항하다가 피를 흘리며 죽어간 사람들의 통곡이 거대한 수메르 문명의 그늘 속에 숨겨져있는 것이다. 최초의 장자권자였던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죽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무엇을 하느냐 네 이웃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 4:10)
아우를 죽인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자신이 어떤일을 질렀는가 깨닫고 비로소 그 죄로 인한 두려움으로 떨기 시작한다. 그는 공포에 떨면서 하나님께 애원했다.
"내 죄벌(罪罰)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지면에서 나를 �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流離)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4:13-14)
실제로 난폭한 수메르를 처단하기 위하여 일어난 사람들이 있었다. 기이하게도 그것은 수메르의 압제를 받던 함 집안의 아우들이 아니라 같은 셈 집안의 형제들이 엘람과 앗수르였다. 수메르는 같은 장자 집안의 엘람과 앗수르의 공격을 받고 동쪽으로 밀려가다가 우룩의 북동쪽 55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던 라가스에 이르러 결국 소멸되었던 것이다.
어째서 압제를 당하던 함 집안에서 봉기하지 않고 오히려 셈 집안의 엘람과 앗수르가 일아나 수메르를 공격하였던 걸일까? 문중의 형제들이 일어나 집안의 이단자를 처단했으면 이는 바로 징계(懲戒) 또는 파문(破門)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엘람과 앗수르가 수메르를 징계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주변의 형제국들을 압제하고 수탈했다는 죄목뿐이었을까?
셈 집안의 형제들이 수메르를 징계했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장자 집안의 명분을 부여했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관계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앞에 적은 우르남무 왕의 점토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메르는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이것이야말로 셈 집안의 형제들이 더 이상 참아 줄 수 없는 패역이었던 것이다.
장자 집안의 대표적 족속이었던 수메르는 왜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던 것일까? 그 이유를 기록해 놓은 점토판들은 아직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수메르의 왕들이 또는 나중에 세상 신으로 땅을 덮어버렸던 바벨론 문명이 그 기록들을 모두 없애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남아 있는 수메르의 점토판들 가운데서도 그 흔적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