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에서 지워진 이름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3-01-02 |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가끔 너무 '남성' 위주로 기록되었다고 생각 할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지으실 때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뽑아서 지으셨다는 대목부터가 어쩐지 그렇지만 인류가 저질러온 모든 잘못들이 다 여자에게서 비롯되었다는 듯한 논조도 그렇고, 여자를 그저 남자에게 딸린 부속품 정도로 여기는 듯한 시각도 못마땅한 점이 없지 않다. 실제로 메소포다미아와 중동 지역에서는 여자를 남자가 소유권을 가진 재산목록 중의 하나로 취급하여 결혼을 할 때에는 돈이나 가축을 대가로 주고 여자를 데려온다. 야곱은 돈 대신 7년간 머슴살이를 하여 라반의 딸은 아내로 맞았으며, 하몰의 아들 세겜은 야곱의 딸 디나를 얻기 위하여 얼마든지 값을 지불하겠다고 제의한다. 모세의 율법에도 여자를 데려올 때에는 값을 지불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람이 정혼하지 안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며 빙폐(聘幣)를 드려 아내로 삼을 것이요 만일 그 아비가 그로 그에게 주기를 거절하면 그는 빙폐하는 일례로 돈을 낼지니라"(출22:16-17) 처녀를 데려올 때에 그 몸값이 얼마나 되는 것인지 출애굽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신명기에는 처녀를 강간하고 그를 아내로 데려올 경우의 가격이 나와 있다.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만나 그를 붙들고 통간하는 중 그 두 사람이 발견되거든 그 통간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비에게 은(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로 아내를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신22:28-29) 은의 한 세겔은 대략 일반 노동자의 나흘치 임금이었다고 하니 처녀 하나의 값이 대략 어느 정도였다는 것을 미루어 짐자할 수가 있다. 이렇게 여자를 데려올 때에 신부의 아버지에게 내는 값을 '모하르'라고 했는데 신부를 사오는 이런 습관이 지금도 아랍의 몇몇 국가들에게 남아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 세상에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창조하셨고, 더구나 그 여자에게는 장차 남자와 또 자신의 생명을 구원해야 하는 소중한 사명을 맡기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가 여자는 은 오십 세겔에 팔려야 하는 존재로 되어버렸던 것일까? 성경에서 여자를 홀대하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사람의 수를 헤아릴 때에도 여자는 아예 '사람 축'에 끼워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 아래에서 계명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수(計數)하라고 명하시면서 여자는 그 계수의 대상에서 빼버리셨다. "....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군대대로 계수하되"(민1:1-3) 여자는 군대에도 못 나갈 어린아이들과 늙은이 속에다 도매금으로 포함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때 계수된 수가 60만3천5백50명이 었는데 그래서 우리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의 인구를 어린아이, 노인, 여자를 합해서 약 2백만 명쯤 되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예수께서 벳새다 들녘에 모였던 사람들에게 보리떡과 물고기를 먹이셨던 사건에도 그것을 먹은 사람들의 숫자에 여자들은 빠져있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마14:20-21) 성경은 사람 수를 계수할 때에 여자를 빼버렸을 뿐만 아니라 여자의 이름을 기록하는 데도 아주 인색했다. 처음 여자 하와는 그 남편 아담으로부터 겨우 이름을 지어받았지만 그 다음 대에 들어서면서 여자의 이름은 벌써 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보기에 가니과 아벨의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은 분명히 그 아내들 사이에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도 창세기 4장에는 그녀들의 이름이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들이 가인과 아벨의 이름만을 보고서 그때 땅 위에는 아담과 하와와 가인과 아벨의 이름만을 보고서 그때 땅 위에는 아담과 하와와 가인과 아벨만 있었을 텐데 가인은 누구와 결혼했는가라고 곧잘 질문하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아담은 이 땅에서 9백30년을 살면서 가인과 아벨외에도 많은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나(창5:4-5) 창세기 4장에는 다만 문제가 되었던 두 아들, 즉 '장자권자'였던 가인과 그에게 맞아 죽은 아벨만 등장하였던 것이다. 창세기 4장은 가인과 아벨의 아내들은 막후에 숨겨두고 가인의 5대손이었던 라멕의 두 아내, 하 남자에게 시집감으로써 처음으로 일부일처의 규칙을 깨뜨린 아다와 씰라의 이름만 남겨놓은 채 끝나고 있다. 이렇게 사라지기 시작한 여자들의 이름은 홍수가 끝날 때가지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홍수가 끝난 이후에도 우리는 그 방주의 큰 살림을 맡았던 노아의 부인이 누구였는지 그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으며 그 아들을인 셈과 함과 야벳과 함께 아이를 낳아서 모든 인류의 조상이 된 그 아내들의 이름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여자의 이름을 하찮게 여긴 것은 특히 장자인 셈 집안에 속하는 민족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까지 여자의 이름은 하필이면 딸이냐 하는 뜻에서 섭섭이나 서운이 등으로 불리워졌으며, 이쁜이나 곱단이 정도면 그래도 제법 대우를 받은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도 처녀때 뿐이고 시집을 가게되면 남편의 족보에 그냥 김씨, 이씨, 등으로만 기재되었던 것이다. 왜 아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장자 집안에서 이렇게 여자를 박대하는 전통이 생겼던 것일까? 여자를 무시해서였을까? 그러나 지난날 우리의 선조들이 생활했던 모습을 살펴보면 소위 '뼈대 있는' 집안에서는 결코 여자를 무시하지 않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옛날 우리 나라의 가옥 구조는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어져 있는데 남편은 언제나 바깥쪽의 사랑채에 기거했고, 부인은 '안채'에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뿐만 아니라 안주인은 잡안의 대소사를 모두 관장했으며 남편은 안주인의 일에 절대로 간섭하지를 못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남편이 안주인의 일에 절대로 간섭하지를 못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나편이 아내를 부르거나 아내와 대화를 할 때에는 늘 정중하게 경어를 썼다. 실로 한국의 여인들이 홀대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이름'뿐이었던 것이었다. 도대체 오랜 옛날부터 무슨일이 있었기에 셈 집안의 남자들은 여자들의 이름 부르기를 회피했던 것이며 성경은 그토록 여자들의 이름 기록하기를 기피했던 것일까? 여자들의 사라진 이름..... 그 속에는 어떤 역사의 비밀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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