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가인에게 생겼던 일

은바리라이프 2008. 5. 20. 01:52
제목 : 가인에게 생겼던 일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2-11-25
고기를 취하기 위하여 양을 기른 것이 아니라면 아벨이 양을 기른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곧 양의 '가죽'을 쓰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그 벗은 것을 알고 부끄러워할 때에 그들을 위하여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셨다(창 3:21).
그러므로 아벨이 양을 길렀던 것도 그 '옷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즉 가인은 장자권자이므로 그 아비인 아담의 기업을 물려받아서 농사하는 사람이 되었으나 아벨은 양을 길러서 옷감을 생산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므로 아벨은 그가 생산한 옷감을 형인 가인에게 가져다가 납품하고 가인으로부터 곡식과 채소를 얻어와야만 먹고 살 수가 있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아벨이 얻어온 양식은 충분하지가 않았다. 제사 때가 되어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드릴 것이 없었다. 평소에 먹고사는 데도 부족하여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 남아 있지를 않았던 것이다. 아벨은 별수 없이 형 가인에게로 가서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 없으니 조금만 더 나뉘 달라고 사정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가인은 아벨의 부탁을 거절했던 것 같다. 제물이란 평소에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것이지 갑자기 형에게 얻어다가 드리는 것이 아니라며 아마도 가인이 아우를 나무랐을는지 모른다. 빈손으로 돌아온 아벨은 고심하다가 결국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양뿐이니 비록 먹을 수 없는 양이지만 그것이라도 드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는 내 딱한 처지를 잘 아실 터이니 이것이라도 드리면 받아주실 것이다······.)
아벨은 그런 믿음으로 제물을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과연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으며 오히려 아벨의 제사는 의(義)의 제사로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히 11:4)
그러나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열납하지 않으셨다. 왜 가인의 제물은 거부되었을까?
이제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아우를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장자권자 가인이 아우 아벨에게 충분히 먹을 것을 나누어 주지 않은 상태에서 드린 제물을 하나님을 차마 받으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장님이 자기네 회사 종업원들의 임금은 몇 달치 씩 밀려 놓고 교회에는 거액의 십일조를 바치는 수가 더러 있는데 그런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그 예물을 편한 마음으로 받으실 수 없을 것이다. 밀린 임금을 먼저 나뉘주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색이 변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창 4:6~7)
그렇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선(선)이라면 가인의 선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아우인 아벨을 돌보고 보살피는 일이었다. 그런데 가인은 그것을 행하지 않았다. 어째서 가인은 사랑하는 아우에게 충분한 식량을 나누어주지 않았던 것일까?
장성하여 결혼이라는 것을 해본 사람이면 이에 대한 문제의 원인을 누구나 금방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서로 사이가 좋던 형제들도 그들이 하나씩 결혼을 하여 가정을 갖게 되면 사정이 좀 달라지기 시작한다. 제각기 자신의 가정이란 것이 생기고 자녀가 생기고 하다 보면 우선 형제보다는 자기 가정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남자의 생각을 가장 쪽으로 끌어당기는 역할은 당연히 주부 쪽에서 맡게 된다 더구나 여자는 생명을 잉태하는 책임과 함께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는 직분을 받았으므로 가정의 유지에 필요한 '소유'를 확보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인이 아벨에게 충분한 식량을 나누어주지 않은 일에 대해서 아무래도 아벨의 '형수'쪽에 문제가 있었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땀을 흘려 일하면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수확을 얻게 하신다. 그러나 사람의 믿음이 약해지게 되면 '내일 먹을 것'을 염려하게 된다(마 6:34). 그러므로 사람의 염려가 확대되다 보니 가인이 비축해야 하는 식량은 점점 많아지고 아우에게 나뉘주는 식량은 점점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소유'에 집착하면 선을 행하지 못하게 되고, 선을 행하지 못하면 믿음이 약해지고, 믿음이 약해지면 죄(罪)가 문에 엎드리게 된다. 가인의 이름은 본래 '소유'라는 뜻인데 바로 이것에서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람이 처음에 지음을 받았을 때에는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라'는 권한을 받았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그러나 이들이 먹지 말라고 하신 열매를 따먹음으로써 탐욕의 절제를 포기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 끝없는 '소유'의 욕망 때문에 장차 문제가 생길 것을 아시고 '다스려야 할 대상'을 장차 '가족 이기주의'를 주도하게 될 '여자'쪽으로 집중시켜셨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을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
여자의 소유욕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자멸의 처방이었고, 구세주의 오심을 기다리기 위하여 여자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의 씨와 다윗의 핏줄에서 여자를 대표적으로 잘 보호한 의로운 사람,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장자권자 가인은 아내를 다스리는 실패하였고 아우를 보살피는 선(善)을 행하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다시 가인에게 아내를 다스리지 못하면 소유의 유혹, 즉 죄(罪)의 유혹을 받을 터이니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
그러나 가인은 죄를 다스리는 데도 실패하였다. 가인은 아벨을 시기하여 쳐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가인이 분하여 그 속마음으로 쳤던 것은 아마도 하나님 그분이었을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여 가인은 그만 안타깝게도 최초의 실패한 장자권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의 모형은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인본주의적 신념의 실패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실패의 역사는 특히 장자의 집안이었던 셈집안 특유의 자책(自責)과 회한(悔恨)으로서 남게 되었다. 그 회한이 유대인들에게는 '가인의 기억'으로 그리고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놀부의 기억'으로 아프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실망할 필요는 없다. 가인은 비록 죄를 다스리는데 실패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시는 일에 반드시 성공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