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세월이 지난 후에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2-11-18 |
이 '세월(歲月)'이 지나는 동안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사람과의 통신을 재개하기 위하여 고심하였던 기간이었다. 그리고 사람 쪽에서 보더라도 이 기간은 참으로 답답하고 괴로운 기간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서 사람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땀을 흘리면서 일해야 하므로 몸은 늘 고달팠고 밭에는 가시덤블과 엉겅퀴가 자라나서 더욱 힘들었다. 때로는 각종 질병이 사람을 괴롭혔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화와 갈등도 사람이 겪어야 하는 큰 괴로움 중의 하나였다. 높은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구름을 바라보아도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고 사람에게는 괴로움을 호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무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기 위하여 그 손으로 직접 빚어서 지으신 사람이 괴로워하는 신음과 탄식을 들으시고 마침내 사람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셨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공평한 방법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사람에게만 특혜를 베푸실 수 없는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그 대가로 복을 받게 하심으로써 일단 공평한 거래의 형식을 취하셨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도 사랑의 밀어를 전달하기 위한 길을 터놓으시기 위함이었다. 사람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다는 것은 자신의 땀을 흘려서 얻은 소득의 일부를 떼내어서 하나님께 드림을 의미했고, 그러므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주시는 복(福)을 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장치가 바로 제사라는 제도였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이 제사라는 것은 나중에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제사라는 것은 나중에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몸을 피의 제물로 드릴 사건에 대한 모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시고 그 제도를 통하여 하나님깨 하실 일을 미리 예고하시고 그것을 기억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복을 받기 위해서 제물을 드리는 형식을 취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대화의 통로를 여는 열쇠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이 일을 방해하기 위하여 다시 이의를 제기했다. 죄로부터의 해방이 얼마의 제물로써 간단히 이루어 질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사탄이 지적한 대로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제사의 대가가 죄의 완전한 사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통신수단에 불과한 것이었고, 장차 일을 구원의 계획에 대한 예표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금단의 열매를 먹어버린 아담과 하와에게는 제사권을 주시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죄에 대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가지 유보되었고, 그들의 자손인 가인과 아벨 이후의 사람들은 그 조상이 어떻게 죄를 지었는가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믿음으로 기다리게 하기 위하여 제사의 행사를 시행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시는 일도 예수께서 그의 피로 속죄의 제사를 완성하는 때(히 9:12)까지 유보해 두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과 대화를 하시기 위한 통로로써 대표자 한 사람을 선발하셨고, 그 대표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백성들의 대표로 선발된 사람이 바로 장자권자였다. 이 장자권자는 백성들의 소원을 모아서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대변인이 되었다. 그 최초의 장자권자로 임명된 사람이 바로 아담의 장자이며, 아벨의 형인 가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이후의 율법시대에는 이 장자권자의 직분으로부터 제사를 주관하는 직책이 분리되어서 제사장이라는 별도의 직분이 생기게 되었다. 동양에서 처음으로 글자를 만든 사람들은 이 장자권자를 형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곧 입 구(口)자에 사람 인(人)자를 쓴 것으로 '말하는 사람' 즉 대변인(Speaker)이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C.H.Kang.E.R.Nelson:'Discovery of Genesis' ch.8). 그러므로 창세기 4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늘 가인과만 대화하시고 아벨과는 직접 말씀을 나누지 않으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들을 후에 그것을 아우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가인은 그 아우 아벨에게 고(告)하니라"(창 4:8) 장자권자, 즉 형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듣고 이를 아우들에게 전하면 그것이 바로 축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목회자가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거나 전도자가 그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모두가 이 '축복'의 범주에 속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옛부터 동양에서는 형의 말씀, 곧 형의 기도를 '축(祝)'이라는 글자로 표현하였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정보전달 체계는 '장자권자'의 제도에 의하여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제사는 단순히 기복(기복)의 수단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하여 주파수를 맞추는 통신장치였고, 이 행사를 주관하는 장자권자의 직분은 사랑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출발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명을 받은 장자권자의 책임을 막중한 것이었다. 그는 단순한 하나님의 '대변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망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장자권는 모든 아우들에게 하나님의 크고 간절하신 사랑을 전해주는 대리인의 역할까지도 해야 했다. 그래서 장자권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변인의 직분 외에도 하나님을 대신해서 아우들을 잘 보살피고, 돌보고, 그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라는 사명이 주어졌다. 물론 하나님을 대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장자권자에게 여러 가지의 특권도 주어졌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특권이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부모의 기업을 모두 물려받는 혜택도 주어졌다. 아담은 에덴에서 나온 이후로 하나님게서 지정하신 대로 '농사하는 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걸고 있는 이 막중한 장자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가인은 아우를 돌보고 사랑하기는 커녕 그를 때려죽임으로써 최초의 '실패한 장자권자'가 되었고, 자신도 살해당할까봐 두려워하는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표(標)를 주셨는데 그래서 장자권자(兄)가인은 결국 이마에 표를 받은 살인범이 되었던 것이다. 가인으로부터 시작된 이 장자권자이 실패'는 그 이후로도 성경에 기록된 역사의 줄기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잇따. 하갈에게서 난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은 사라가 낳은 이삭에게 장자권자을 빼앗겼으며(창 27:36), 야곱의 장자 르우벤도 그 서모와 통간하여 장자권을 잃었다(창 35:22). 요셉의 장자 므낫세는 그 조부 야곱이 손을 어긋맞겨 안수함으로써 아우 에브라임에게 장자권을 빼앗겼고(창 48:14), 모세는 형 아론을 부리는 지도자가 되었으며(출 4:14), 아론의 장자 나답은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죽어 그 아우 엘르아살이 대제사장 자리를 물려받았고(민 3:4), 이새의 아들 다윗은 그의 형들 일곱을 제치고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이다 (삼상 16:13). 어째서 성경 속의 많은 장자들이 실패하고 있는 것일까? 성경 속에서 유사한 사건들이 눈에 띄게 반복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대개 중요한 의미가 거기 숨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장자들의 실패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가인이야말로 최초의 실패한 장자권자요, 모든 장자의 모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가인의 실패야말로 인류역사의 모든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데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가인의 문제만 이해하게 되면 이미 세계사는 우리의 눈앞에 선명하게 그 참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가인, 그에게는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한국사람들의 뇌리에까지도 '놀부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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