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거짓의 아비, 거짓의 세상

은바리라이프 2008. 5. 13. 22:39
제목 : 거짓의 아비, 거짓의 세상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2-09-11
때가 이르렀음을 예감하신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던 중 한 마을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미 예수의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특히 자기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 아이들을 위해 축복하고 안수해 주실 것을 바랐다.
그러나 이것을 성가시게 생각한 예수의 제자들은 아이들이 선생님께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며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아이들을 가까이 오게 하시고 오히려 제자들을 나무라셨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눅 18:16-17)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와 어른, 그 다른 점은 무엇일까. 어린아이들은 언제부터 어른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둘어갈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것일까. 예수께서는 무엇을 가르치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일까?
우리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우선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거짓이 없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말이 순전하고 진실하지 못한다. 입으로는 늘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른은 예사로 하나님을 모르는 자같이 생각하고 늘 예수를 안 믿는 사람같이 행동하는것이다.
왜 어른들은 그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바가 다른것일까. 그것은 어른들이 버릇처럼 늘 거짓말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린아이 때에는 거짓말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즉 어린아이는 거짓말하는 것을 배우면서 하나님 나라에 갈 자격을 점점 상실해 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왜 자라면서 거짓말을 배우게 괴는 것일까.
우리 나라의 국민학교 상급반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해본 결과 '정직하게 살면 손해본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무려 60퍼센트난 되었다고 한다. 얼마 안되는 세월을 살면서도 그들은 이 세상에서 그것을 배운 것이다. 왜 아이들은 자라가면서 정직하게 살면 손해본 것을 배운 것이다. 왜 아이들은 자라가면서 정직하게 살면 손해본다고 느끼게 되는 것일까. 왜 세상은 정직하게 살며 불리하고 거짓말을 하며 살아야 유리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곧 그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이 '거짓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왜 이 세상은 거짓투성이의 세상으로 되어버렸던 것일까. 세상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세상이 본래 그렇지 않았는데 어떤 이유로 바뀌어져버렸던 것일까.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이 세상이 거짓의 세상으로 되어지기 시작했던 것일까.
우리는 이 세상의 내력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역시라고 부른다. 혼잡한 세상 속에 살면서 그래도 틈틈이 기억해두어야 할 일들을 적어놓은 역사가들에게 우리는 고마움을 느끼며 그들의 기록에서 인류가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그들이 기록해 놓은 역사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중요한 과목이 되었고, 우리는 아이였을 때부터 역사라는 것을 되풀이해서 외우며 자라왔다. 그러나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그 '역사'라는 것은 과연 얼마나 진실한 것일까. 그것은 또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 이시대에도 그 역사라는 것이 다반사로 변조되고 날조되는 현장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의 지�에 존재하고 있는 공산주의 나라에서는 모든 역사를 그들의 이념과 주장에 맞추어서 다시 쓰고 있다. 그 통치자와 가족들의 출생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과거와 모든 행적에이르기까지 모조리 다 미화하거나 터무니없이 만들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적 사건들을 공산주의자들의 혁명활동에 의한 것이라고 개작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비단 이 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성계는 자신의 위화도 회군을 나라를 구하기 위한 애국적 결단으로 미화하였고, 그의 손자인 세종은 자신의 6대조까지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 칭송하기 위하여 용비어천가를 지어 배포하였다.
우리 나라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날조하기 시작한 대표적 두 거짓말쟁이는 고려시대의 유학자 김부식과 중 일연이었다. 고려 인종때에 그 관직이 문하시중에 이르러 대권을 장악하였던 김부식은 '삼국사기'편찬의 책임자가 된 것을 기화로 이 나라의 전통과 문화가 모두 중국에서 들어온 것처럼 기록함으로써 저들을 가르치고 다스렸던 이 나라 문화의 흐름을 완전히 거꾸로 변조해 놓았다.
또 충렬왕 때에 국존의 예우까지 받아가며 권력을 휘둘렀던 일연은 온갖 터무니없는 신화와 구며낸 설화들로 '삼국유사'를 엮어냄으로써 이 나라의 역사를 잡귀의 난장터가 되게 했으며 급기야는 하나님만을 섬기던 이 나라 백성을 모두 다 가련한 불자로 만들어 놓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를 바꿔 쓰고 개작하는 것은 우리 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흔히 있어 왔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악의적으로 역사를 없애버려 사건들은 바로 종교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왜나하면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종교를 강요하려면 먼저의것을 용납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말살해야 하고 그러자니 먼저의 신앙이 속속들이 배어 있는 그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깡그리 없애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이전의 우리 역사가 왜 송두리째 없어지고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같은 엉뚱한 이야기들이 삽입되었는가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그 이유를 찾고 있다. 물론 중국 사람들이 들어와 불태운 것도 있고, 일본 사람들이 들어와서 날조한 것도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며 살아온 이 나라 백성들의 경건한 역사를 가장 악의적으로 없애버린 것은 바로 이 땅에 밀고 들어와서 주인공을 쫓아내고 들어앉은 타종교의 세력들이었다. 일연의 '삼국유사'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으며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그것을 자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거짓말을 시작한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누가 처음에 아름답게 창조된 이 세상을 거짓말로 뒤덮기 시작했는가?
초막절 기간 중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쟁론할 때에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 8:44)
이어서 그는 저들의 아비인 마귀의 정체를 밝혀주셨다.
"······저는 처음부터 살인환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