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문제가 없으면 답도 없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2-08-30 |
수많은 질문들을 하나님께 퍼부으면서 나는 마침내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즉 내 마음 가운데서 일어난 의문과 문제는 내가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문제들이었다. 내게 가르쳐 주고 싶으신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주시고 내가 그것에 대해서 질문하면 하나님께서는 직접 그것을 풀어주셨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왜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주시는가? 처음부터 알시 쉽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시면 쓸데 없는 시행착오도 겪지 않고 더욱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서 의문이 생겨서 그것을 알고 싶은 강렬한 소원이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강의를 듣더라도 졸면서 귓등으로 듣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해답을 몰랐음으로 인해서 뼈아픈 시행착오를 겪어보지 않으면 해답을 듣더라도 금방 또 잊어버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대학생 시절에 가정교사를 하면서 겪어본 일이지만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들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은 시험을 보고나서도 마냥 태평인데 그것도 무엇이 틀렸는지를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을 많이 하는 아이가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된다. 10년, 20년, 30년 동안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다니면서도 아무런 의문도 없고 질문도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질문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른다는 뜻이요, 또 혹시 모르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 생각이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슴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뜻인데 성경은 「예수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시니(요1:14) 그렇다면 곧 말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예수에 관심이 없다는 뜻인 것이다. 예수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예수를 믿으러 다닌다면 그야말로 비극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믿음의 영웅들은 모두 다 「질문의 대가」들이었다. 4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던 모세는 하나님과 만나자마자 질문부터 퍼부었다.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3:13) 모세가 광야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마다 수많은 질문으로 하나님을 난처하게 하였다.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민 11:11-12) 시편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다윗도 이런 질문의 명수였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 하시나이까?』(시 22:1)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수많은 질문을 퍼부어서 귀중한 답변들을 받아내었던 것이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외로운 사람들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합 1:13) 문제가 없으면 답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문제를 주시는 것은 곧 답을 주시기 위함인데 문제를 받고도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은 답안지를 백지로 내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 인생은 시험공부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보내어졌다. 마지막 시험 당일에는 공정한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시험장에 들어오지 않으시고 오직 시험관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지켜보게 되실 것이다. 그 때에는 예수께서도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실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 5:30) 이제 그 시험날짜가 얼마남지 않았다. 공주에서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드릴고 시험관으로 오시는 예수께서 합격자들을 불러모으실 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 그 때가 되면 공정하신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가 가르치신 자녀들이 다 합격될 것인지 아니면 떨어질 것인지 지켜보고 계시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때는 늦지 않았다. 시험 날짜는 임박했어도 하나님께서는 아직 우리의 가정교사로서 우리의 곁에 계시기 때문이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우리는 부지런히 그분에게 질문해야 한다. 물론 이웃의 선배나 목사나 장로에게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분들의 답변은 모두 그들의 체험이나 그들이 공부했던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 정도일 것이다. s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문제와 정답은 모든 사람의 처지와 환경과 그에게 주어진 사명에 따라서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출제자이신 하나님께 직접 묻는 것이다. 더구나 이제 시험날짜가 임박했으므로 그분은 우리에게 「족집게 과외」로 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들을 암시해 주실는지도 모른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이러한 이론시험에 통과되지 않으면 그는 실기고사에도 합격하지 못할 것이다. 이 실기고사의 예상문제는 이미 마태복음 25장 35절 이하에 나와 있으나 하나님께서 주신 문제들을 풀지 못하면 이미 문제가 주어진 실기고사도 정해진 시간 내에 다 행하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너는 주린 자에게 얼마나 먹을 것을 주었느냐? 목마른 자에게 얼마나 마실 것을 주었느냐? 나그네 된 자를 얼마나 영접하였느냐? 헐벗은 자를 얼마나 입혀주었느냐? 병든자를 얼마나 돌보왔느냐? 옥에 갇힌 자를 얼마나 가서 보았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잘 묻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알기로 하나님께서는 귀찮게 묻는 나를 골목으로 끌고 들어가서 군밤을 먹이셨던 내 어머니처럼 지식이 부족하지도 않으시며 귀찮아하지도 않은시며 오히려 질문해 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에게 질문할 때에 우리의 눈은 밝아질 것이며 모든 시험을 이기고 그분을 뵈올 때에 우리는 비로소 환희의 찬양을 드리게 될 것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어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4-5) <김성일님의 “성경대로 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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