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를 꺼내고 싶은 유혹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2-08-23 |
인간적인 지혜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대개가 실패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들여다보았자 거기엔 전설과 같은 천지창조의 이야기나 들어 있을 뿐이고 기껏해야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그들의 문학적인 유산들과 선지자들의 애국적인 열정 같은 것이나 찾아낼 수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웅대한 스케일과 그 박진감 넘치는 역사의 전개에 다소 위압을 느끼며 성경을 읽던 사람들도 신약성경에 들어서면서 점점 더 회의에 잠기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예수란 이름의 목수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고 실망하게 되고 성경을 덮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예수에게서는 남자다운 패기도 찾아보기 어렵고 심오한 사상도 지닌 것 같지 않고 거대한 야망 같은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뭔가 있을까 하여 성경을 뒤적이다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침내 뭔가 그 「성서」를 -그런 사람들은 대개 성경을 일본 사람들이 그러듯이 「성서(聖書)」라고 표현하는데 왜냐하면 성경도 많은 문서적 자료 중의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용하여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합리화시켜 보려고 한다. 심지어는 신학을 공부한 신학자나 목회자들까지도 그런 유혹에 빠지고 있는 수가 많다. 신앙이 없이 성경을 연구하던 그들은 그런 방법이 신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철학적인 접근으로 재해석하고 예수의 의미를 자기식으로 다시 만들어보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류의 위험한 접근에 대해서 경고하면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한다. 『예수를 성서 안에 가두지 말라』 얼른 보아서 참으로 멋진 말처럼 들린다. 왜 예수를 성경 안의 예수로 제한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성경에서 약속된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벙어리가 말하게 하시며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시다가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사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성서 안에 갇혀진 예수라는 우상을 믿고 있다』 그들은 예수를 성경 안에서 해방시킨다고 말하면서 그를를 밖으로 끌어내어 자신들의 마음대로 재단한 옷을 입혀서 이리저리로 끌고 다닌다. 예수는 때로 사회주의자도 되고 혁명가도 되고 민족주의자도 되고 선동자도 되고 심지어는 전쟁과 살인의 지휘자로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를 성경 밖으로 꺼내어서 그 어느 누구도, 그리고 한번도 성공한 예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다 예수를 만신창이로 만들어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게 했고 예수를 이용하여 유명해진 사람들은 그들이 성공한 다음에 예수를 거침없이 내버렸다. 예수를 처음 만났던 예루살렘 사람들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했었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주고 그들을 위대한 민족으로 재건해 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예수가 스가랴의 예언대로 나귀새끼르 타고 (슥9:9)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그에게서 자신들의 생각에 맞는 메시야를 기대했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마 21:9) 그러나 예루살렘 성에 들어온 예수는 그들이 바라고 있던 그런 예수는 아니었다. 그는 세례 요한처럼 헤롯왕을 규탄하지도 않았고 로마의 총독을 습격하지도 않았다. 그는 민중을 선동하지도 않았고 열심당의 게릴라들을 지원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성경에 있는 대로」만 말하였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요 7:16)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8:28)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바로 인간의 시간과 공간 속에 들어오신 하나님의 말씀이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스스로의 존재를 제한하셨으며 이미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도 사람을 구원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그 성경에 기록한 대로 오셨고 기록된 대로 행하셨으며 기록된 대로 고난을 당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제한하시는 그리스도의 겸손을 깨뜨려 보려고 마귀의 유혹이 시작되었다. 그의 첫번째 시도는 바로 예수를 성경 밖으로 끌어내려 한 것이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이것은 바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부정하도록 유도하려는 속임수였다. 돌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이셨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되어 있다(창 1:31) 그런데 만일 예수께서 그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면 그것은 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보시고 만족하셨다는 그 창조사역의 완전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며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예수님은 부자간에 정면충돌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마귀가 노리는 바였던 것이다. 예수를 성경밖으로 끌어내려던 마귀의 시도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백성들을 예수를 고난의 예수가 아닌 혁명가 예수로 끌어내기 원하였다. 그 민중의 야망을 대표하려 했던 것이 바로 가룟유다였던 것이다. 가룟유다는 예수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지성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의 망치와 끌을 잡고 예수의 상을 자기가 원하는 「민중의 해방자」의 모습으로 다시 조각해 보려고 하였다. 그는 예수를 고발하여 체포당하게 함으로써 그를 궁지에 몰아 넣었다. 평소에 많은 기적을 보여준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유월절의 고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나약한 마음의 예수를 궁지에 몰아 넣으면 마침내 혁명가로서의 본색을 나타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예수는 결국 아무 능력도 나타내지 않은채로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던 것이다. <김성일님의 "성경대로 살기"> |
'성경역사 > 성경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목 : 문제가 없으면 답도 없다 (0) | 2008.05.11 |
---|---|
제목 : 소문으로만 들을때 (0) | 2008.05.11 |
제목 : 예수의 이름으로 충만하다. (0) | 2008.05.10 |
제목 : 영광을 버리신 나그네 (0) | 2008.05.10 |
제목 :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0) | 2008.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