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사랑의 전류가 흐를 때

은바리라이프 2008. 5. 10. 20:29
제목 : 사랑의 전류가 흐를 때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2-07-15
사랑의 테마가 「사랑」이라는 것은 안 다음부터 나는 거시서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는 성경에서 찾아낸 「사랑」하나만으로도 세상에서 얻지 못했던 가장 소중한 것을 얻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성경의 한자 한자, 그 말씀의 한줄 한줄이 내게는 모두가 감사한 것이었고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것이 바로 그가 「사랑하기 위하여」지으신 것이므로 태초에 그가 천지를 창조하신 것도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였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빛이 있게 하신 것도 사랑 때문이었고 땅과 바다를 가르신 것도 사랑 때문이었고 거기에 풀과 채소와 나무를 나게 하시고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 물고기와 새와 온갖 짐승들을 지으신 것도 모두가 다 사람 때문이었던 것이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잉태하는 고통과 농사짓는 수고를 주신 것도 그의 사랑 때문이었고 홍수에서 노아의 가족을 구하신 것도 사랑때문이었고 홍수가 지난 후에 무지개의 언약을 주신 것도 사랑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국은 ··· 그 뜨거운 사랑의 불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까지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성경의 결론은 사랑으로 맺어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그러므로 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사랑을 훼방하려고 에덴에 스며들었던 사탄은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전쟁을 시작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천사장이었던 사탄은 처음부터 딴 마음을 품었으므로 이 「사랑」의 능력을 지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부터 네 모든 길을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텨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겔 28:15-17)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사랑을 가지지 못했던 사탄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그를 에덴에 두사 그를 사랑하시기 시작하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강력한 살사랑의 고압전류(高壓電流) 때문에 드디어 감전사(感電死)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탄은 자신이 살기 위하여 이 사랑의 고압전류를 차단시킬 방법을 궁리해 내었던 것이다. 그것이 곧 사람을 유혹하여 먹어서는 안되는 열매를 먹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전류란 언제나(+)에서 (-)로 흐르는 것이다. 그런데 사탄은 사람을 유혹하여 사람의 전압을 하나님과 같은 수위에 올려놓음으로써, 그 사이에 흐르는 전류의 흐름을 막으려고 하였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5)
그리하여 사탄은 이 사랑의 전류를 성공적으로 차단시켜 놓은 다음 사람이 하나님의 그 아가페적인 아름다운 사랑을 다시는 기억해내지 못하도록 육체적인 에로스의 사랑에 집착하게 만드는데 전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사랑의 흐름을 막아보려는 사탄의 이 필사적인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지으실 때에 본래의 그 역할을 다르게 지은신 것이지 지위가 다르게 지은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것을 지위의 지위의 불평등이라 선전하여 여자에게 남자와 평등해야 한다고 선동함으로써 그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전류를 차단시킨다. 마찬가지로 사탄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선생과 제자 사이에, 기업주와 근로자 사이에 사회의 모든 관계 속에서 평등을 주장하게 하여 이 사랑의 전류를 차단시키려 하는 것이다.
어느 남자가 수염난 여자를 사랑할 것이며 어는 아버지가 대드는 아이을 사랑할 것이며 어느 선생이 주먹질하는 제자를 사랑할 것이며 어느 기업주가 발길질하는 근로자를 사랑할 것인가, 이렇게 사회의 모든 곳에서 사랑의 전류가 차단될 때 비로소 사탄은 다리를 펴고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차단된 전류를 다시 흐르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이땅에 오시었다. 그는 십자가에서 흘린 자신의 물과 피를 다 쏟아서 우리의 메말라 버린 사랑의 축전지에 그 핏빛의 사랑을 다시 채워 넣어 주셨다. 그 사랑에 비로소 깨어진 베드로와 바울과 모든 사도들이 자신들에게 부어주신 그 사랑을 세상의 모든 외로운 영혼들에게 불어 넣어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의 겸손을 본받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을 주는 자 앞에서는 예수처럼 (-)의 겸손으로 사랑을 받고 외로운 영혼들에게는 다시 (+)가 되어서 사랑을 부어주고···.
이렇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다시 세상의 구석구석까지 흘러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사랑은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흘러야 하는 것이다. 고여 있는 것은 사망이요, 흐르는 것은 생명인 것이다. 바로 이것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그리고 우리들 서로의 사이에 다시 흐르는 사랑의 고압전류가 마지막 때에 사탄을 체포하게 될 것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김성일님의 "성경대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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