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영원한 테마···「사랑」

은바리라이프 2008. 5. 10. 20:11
제목 : 영원한 테마···「사랑」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2-07-13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자기를 「닮게」지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形像)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하나님께서 세상에 새와 물고기와 모든 짐승들을 지으실 때 그들 중에 서로 닮은 것들끼리 사랑할 수 있게 하시었다. 물론 서로 다른 종류들끼리도 오랫동안 함께 지내보다면 서로들 아껴주는 본능적인 사랑은 서로 닮은 종류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자기의 형상대로」지으셨다는 것은 곧 사람을 그 「사랑의 상대」로 지으셨다는 뜻이 된다.
그것도 연민이나 동정처럼 간격 있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 껴안고 부비고 함께 울고 함께 웃고 뜨겁게 구체적인 사랑을 주기 위하여 그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사랑하신 사건들 중에서도 특히 호렙 산에서 모세를 만나시면서부터 시작되는 격정적인 사랑의 파노라마는 지금도 우리에게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온다. 누구보다도 다루기 까다로운 상대였던 모세는 처음 하나님과 만났을 때 우선 질문부터 시작한다. 그는 감히 하나님께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냐」(출 3:13)고 물었으며 하나님이 그와의 동행을 요청하자 「약속의 증거」를 요구하였고(출 4:1) 지팡이의 증거를 받고나서도 다시 「나는 자격이 없어 안되겠다」며 (출 4:10) 몸을 도사렸다.
이런 모세를 달래고 구슬러서 마침내 하나님은 그와 관계를 맺으신다. 그는 모세를 이끌고 광야를 동해하시면서 밀고 당기고 부르짖고 응답하는 뜨거운 사랑의 대로망을 연출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모세는 때로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마구 떼를 쓰기도 하고 또 그러다가 호되게 꾸중을 듣기도 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의 대탈출을 이루어내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 격노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다 진멸하고 모세의 후손을 길러내어 그 역할을 대신케 하겠다고 선언하셨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이 아브람함과 약속하였던 사실을 걸어서 하나님께 따졌으며 나중에는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고 떼를 써서 겨우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켜 드리고 용서를 받아낸다.
그러나 마치 사랑싸움을 겨우 끝낸 사이처럼 하나님은 아직도 그 마음이 편치 않으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이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 나는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출 33:1-30).
모세는 다시 백성들에게 모든 단장품을 제하여 근신하게 한 후 여호와께 나아가 마음을 푸시고 동행하시기를 다시 한번 간청한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주의 길을 내게 보아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출 33:13)
모세의 이 말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비로소 「내가 친히 가거라」는 약속을 하시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싸움도 대단하시지만 당신이 안가시면 나도 안가겠다고 버틴 모세의 열정도 상당한 것이었다. 이렇게 밀고 당기는 사랑싸움 끝에 하나님은 드디어 이렇게 고백하신다.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출 33:17)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하나님께 「내게 주를 알리시고」라고 한말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를 앎이니라」하신 말씀의 그 「안다」는 말은 히브리어의 「야다」로써 이 말이「동침하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실감하게 된다. 창세기 4장1절에서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였다는 말이 바로 이 「야다」였던 것이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탈출을 그의 계획대로 성취하셨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곧 모세를 통해서 표현하신 그의 열정적인 사랑이었으며 그것은 곧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심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성경의 영원한 테마는 바로 「사랑」이다. 거기엔 몰론 갈등도 있고 분노도 있고 징계도 있지만 성경 전체에 화산처럼 타오르고 파도처럼 흘러 넘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를 떨리게 하는 그 엄청난 「사랑」인 것이다. 솔로몬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그 거대한 사랑사건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주고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 8:7)
그러므로 성경은 그 가운데 흐르고 있는 이 거대한 사랑의 불길을 발견하지 못하면 거기서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 그것은 도덕 교과서도 아니며 세상의 지식을 기록한 책도 아니며 학문이나 철학도 아니고 종교는 더욱 아닌 것이다. 성경에서 그것을 찾는 사람은 바로 연인에게서 학식이나 재산이나 가문이나 사상을 찾으려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자이다. 「사랑」에는 아무런 조건도 붙어 있을 수 없으며 아무런 세상 일들도 끼어들 수 없는 것이다.
이 순수해야 하는 사랑에 다른 것들이 끼어드니까 혼수감 문제로 주먹질이 오가고 시집식구 친정식구 때문에 싸움판이 벌어지고 그릇을 내던지고 가구를 때려부수는 가정이 생긴다. 똑같은 이치로 「사랑」말고 다른 것을 찾기 때문에 아름다워야 하는 교회들이 세상의 모임들보다도 더 추악한 일들을 저질러서 부끄러움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 13:1)

<김성일님의 "성경대로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