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공동서신

연구 3 형제들과의 교제(요한삼서)

은바리라이프 2008. 4. 26. 21:54
연구 3 형제들과의 교제(요한삼서)
연구 3 형제들과의 교제(요한삼서)

본 서에서 요한은 세 사람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 세 사람을 통하여 당시에 보여지는 교회의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이곳에서 요한은 고유 명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내용 면에서 교회에 걸맞는 표현이다. 즉 교회의 역할이 복음을 증거하며, 예수그리스도를 좇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지만, 전도자를 조력하는 것도 그 역할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세 사람들을 통해 요한은 전도자를 어떻게 접대하는지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 가이오에 대한 칭찬(요삼1:1-8)

 

요한은 가이오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누구인가? 요한은 가이오에게 축복의 말을 하였는데 그것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가이오는 어떠한 선행을 하였기에 요한으로부터 축복을 받는가? 그리고 그의 행실이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는가?

 

1) 교회의 선한 행위

요한은 가이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가이오란 이름은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그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신야성경에는 모두 네 명이 나온다(행19:29 ; 행20:4 ; 롬16:23 ; 고전1:14). 사도 요한은 모든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였다고 말하고 있다(요삼1:4). 요한의 기쁨은 가이오로 인함이었다. 그래서 가이오에게 축복의 말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삼중적 축복이다. 즉 영혼과 육신의 건강과 이 세상의 삶의 번영을 말하고 있는 거이다(요삼1:2). 그렇다면 가이오는 왜 이러한 축복의 말을 들었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성도로서 해야 할 마땅한 의무를 행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이오의 생활이 선행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전도자들을 후히 접대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요한은 가이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요삼1:6). 이 말은 하나님의 일을 대리로 하는 전도자들을 대접하기를 하나님께 하듯 하라는 의미이다.

 

2) 대접하라

교회라는 공동체가 아름답게 성장하려면 서로 대접하는 모습들이 보여져야 한다. 복음 전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행해야 할 의무요, 책임인 것이다. 그 일 중 하나는 바로 전도자를 후히 대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활이 정결하고 진실된 생활이며 복음을 따라 사는 삶인 것이다.

 

2. 디오드레베와 데메드리오(요삼1:9-12)

 

요한은 두 사람을 소개하면서 이들의 행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각각 어떻게 말하여지고 있는가? 특히 디오드레베의 악행은 어떠한 것이며, 그가 그렇게 행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요한은 디오드레배의 악행을 말하면서 가이오에게 어떤 부탁의 말을 하는가? 한편 디오드레베는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가?

 

1) 경계의 대상과 모범의 대상

요한은 디오드레베를 있어서는 안 될 교만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디오드레베는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요삼1:9). 그는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복음 전도자들을 멸시하였다. 그것은 요한이 본 서신을 보내기 전에 보냈던 서신을 아마도 찢어버렸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요삼1:9). 그래서 요한은 직접 방문하여 그를 책망할 생각이었다(요삼1:10). 요한은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크게 네 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요삼1:9,10).

첫째로 사도로서의 요한을 무시하였으며, 두 번째로는 요한과 복음 전도자들에 대해 악한 말로서 비방하였다. 이것은 그들을 거짓으로 고소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요삼1:10). 이것은 결국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에게 목회자에 대한 거짓 증거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성도로서 해야할 당연한 의무인 형제 접대하기를 하지 아니하였으며, 네 번째로 오히려 전도자들을 접대한 사람들을 출교시킨 것이다. 요한은 디오드레베의 악행에 대해 말하면서 가이오에게 선을 행하도록 한다(요삼1:11). 디오드레베를 통해 사도 요한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2) 있어서는 안 될 사람

어떠한 공동체든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그 공동체 내에서 지위나 특권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지위로 인해 교만해진 사람, 상대편의 권위를 인정해 줄줄 모르는 사람, 거짓으로 고소하는 사람들은 공동체 내에서 없어져야 할 것이다.

 

3. 끝인사(요삼1:13-15)

 

요한은 편지글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소원을 말하고 잇다.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에서 보여지는 요한의 의도는 어떠한 것인가? 서신서의 형태가 그러하듯이 항상 문안 인사와 끝 인사가 있다. 요한은 본 서신을 어떻게 시작하고 있으며, 끝맺고 있는가?

 

1) 기쁨의 마음과 간단한 끝인사

요한은 먼저 가이오에 대한 축복의 말로 본 서신을 시작하고 있다(요삼1:2). 그는 가이오의 행동에 대해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서신을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자신의 마음을 말하면서 서신을 끝내고 있다. 그는 더 할 말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대면하여 말할 것을 밝히고 있다(요삼1:13,14). 이것은 가이오가 속해 있는 교회의 형편과 처지가 좀 긴박한 상황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디오드레베의 악행으로 인해 교회 전체가 혼란의 도가니로 빠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짧은 편지로서는 도저히 이러한 것에 대해 대처할 수 없었기에 직접적으로 만나고 싶어하는 요한의 간절하고도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요한은 간단한 인사로서 본 서신을 끝맺고 있다(요삼1:15)

 

2) 기쁨을 주는 삶

요한은 자신의 심정이 가이오로 인해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력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선행에서 오는 결과인 것이다. 우리의 삶의 결과로 인해 타인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 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성도로서의 겸손하고 진실된 삶을 살 때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요한은 본 서신이 그저 한 사람의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전교회에 적용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많은 성도들의 삶이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와 같은 삶이 되어야 하며 결코 디오드레베의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성도들은 영접해야 할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영접해야 할 사람임에도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영접치 않는다는 것은 큰 잘못이다. 바로 교회와 성도는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