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나 지도자가 부재한 경우에 백성들 스스로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신념과 이상을 지켜 나가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공동체나 사회가 자신들의 신념을 굳건히 지켜 나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이고 결단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런 맥락에서 보면 크게 칭찬받을만한 교회였다. 영적인 지도자인 사도 바울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 신앙을 지켜 나가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랄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에도 몇 가지 어려움은 있었다. 바울은 바로 이런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의 승리를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칭찬하였다.
1. 박해를 이기는 교회에 대한 칭찬(살전1장)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문안 인사를 하면서 은혜라는 헬라식 표현과 평강이라는 히브리식 인사 방법을 같이 사용하였다. 바울은 왜 이 두 말을 같이 사용하였나? 또한 살전1:7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어떤 것들이 구체적으로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가? 그리고 그런 본이 되는 믿음을 가진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바울은 어떤 모습으로 칭찬하였는가?
1) 동역자의식과 신앙의 승리
바울이 문안 인사에서 은혜와 평강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인사 방법을 같이 사용한 것은 사도 바울의 동역자 의식과 사도로서의 겸손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굳건한 믿음에 대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렸는데 이것은 죄인을 회개시키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택하심에서 연유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지도자가 없으므로 인해 환난과 핍박이 극심하나 그 시련을 이겨낸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복음 전파에 힘쓴 것에 대해 바울은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된다고 칭찬하였다. 바울은 실로 아버지와 어머니같은 사랑과 관심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칭찬하였다.
2) 진정한 신앙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문안하였다(살전1:1). 오늘 우리는 은혜와 평강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데서 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겠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우리는 누구에게 믿음의 본이 되고 있는지 되돌아 보아야 겠다.
2. 전도 회고와 교회에 대한 감사와 재방문의 소망 피력(살전2:1-16)
바울은 과거에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전도한 것을 회상하고 있다. 바울이 왜 다시 한 번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전도한 것을 회상하고 그것에 대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나? 또한 데살로니가 전도를 회상하며 과거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보여 준 친절과 진실한 태도에 대해 바울은 감사하고 있는데 바울은 어떤 자세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나? 그리고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에 감사드린 것과 아울러 복음을 대적했던 유대인들에게 어떤 것이 임할 것이라고 하였나?
1) 반성의 계기
바울이 데살로니가 지역을 전도한 것을 회상한 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돌아보아 과거에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멀어지지 않았나 반성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였다. 또한 과거에 바울은 인간적인 동기나 인간적인 방편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였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또한 바울은 사명감과 아울러 형제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전도자에게는 사명감과 아울러 복음을 받아들일 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중요함을 보여 준다. 그리고 복음 전파를 대적했다는 것은 단순히 복음 전파자만을 대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된다(대하36:16)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2) 신앙인의 동기
바울은 인간적인 동기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였다(살전2:4). 오늘 우리는 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함인가? 그리고 살전2:7,8의 모습처럼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가? 바울처럼 사명감도 전도 대상자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는가 돌이켜보아야 겠다.
3. 성도와 사도간의 끝없는 교제(살전2:17-3:13)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피력하였다(살전2:17).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나? 재방문하고 싶어하는 바울은 대신 디모데를 보내는데 도모데를 파송한 동기와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디모데는 돌아와서 어떤 보고를 하였으며 바울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1)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바울의 데살로니가 교회 재방문의 소망은 한 번 전도한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바울의 사랑과 관심을 보여 준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의 성숙을 자신의 면류관이라고 표현한 바울의 표현에서 우리는 복음 전도자로서의 바울의 자부심과 기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디모데를 대신 파송한 동기와 목적은 바울의 재방문 소망이 여러 번 차단된 상태였기 때문에 대신 디모데를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바울이 전한 복음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살전3:2-5). 디모데가 돌아와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신앙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으며, 바울은 기뻐하였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중보기도하였다(살전3:11-13)
2) 진정한 성도간의 모습
몸은 떨어져 있으나 기도로서 서로 교통하며 관심과 사랑으로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도간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형제, 자매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그리고 바울의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처럼 우리는 전도하여 새로 나온 신자들이 교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전도한 사람에 대해 계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을 심어 주었고 자라나게 하였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머무르지 못하고 결국 데살로니가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애정 어린 눈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 보았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와 계속적인 교제를 나눔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신앙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처럼 단순히 인간적인 동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신앙적인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