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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2 엘리바스의 변론(욥4-7, 15-17, 20-24장)

은바리라이프 2008. 4. 25. 20:18
연구 2 엘리바스의 변론(욥4-7, 15-17, 20-24장)
연구 2 엘리바스의 변론(욥4-7, 15-17, 20-24장)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낸 파괴자는 욥의 울타리를 남김없이 부숴 버렸다. 정원의 울타리뿐만 아니라 육체의 울타리까지 파괴당한 욥은 오랜 침묵 끝에 친구들에게라도 자기 고통의 극심함을 하소연해 보고자 한다. 그들이 진정한 지혜의 소유자들이라면 침묵 뒤에 따뜻한 위로와 도움의 말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이에 그중 연장자인 엘리바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욥을 훈계하였다.

 

1. 친구의 충고

 

세명의 친구 중에 아마도 가장 나이 많은 것으로 추측되어지는 엘리바스는 데만 사람이다. 데만 사람은 지혜 있기로 유명하다(렘49:7). 멀리 살면서도 욥의 친구가  된 것은 당시에 그가 지혜자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엘리바스의 인품과 신앙관 그리고 엘리바스가 욥에게 충고한 내용은 무엇인가?

 

1) 엘리바스의 인품

그는 박식하며 꿈을 꾸는가 하면 영을 분별할 줄 아는 선견자였다. 그리하여 그를 당시의 예언자라고 간주할 수 있다.

그는 친구 욥의 파산소식을 듣고 멀리 있는 다른 친구 빌닷과 소발에게도 연락하여 같이 만나기를 약정하는 주선을 했을 것이고, 급기야는 욥 앞에 와 진심 어린 아픔과 놀라움으로 칠 일간이나 함께 말을 잃었다. 그의 인품은 고통받는 친구에게 만사를 제치고 찾아온 것에서 돋보인다.

 

2) 엘리바스의 신앙관

그는 매우 신중하며 세심한 사람으로서 많은 명상을 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은 고요 속에 자아와 대면하게 되면 하나님과 만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갈망하는 사람에게 그 분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엄숙한 그리고 위대한 음성을 들려 주신다.

엘리바스는 깊은 밤 만물이 잠들어 고요할 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고, 일반인이 볼 수 없는 환상을 보았다.

 

3) 엘리바스의 충고

그는 처음에 욥의 빛나고 찬연했던 기억에 호소하고 있다. 욥은 곤혹 가운데 처한 슬픈자, 약자에게 철학자요 인내자요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러한 은혜자가 왜 자신의 문제는 자신보다 더 큰 하나님에게 은혜를 구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의인을 무고히 벌하시지 않는 분이니 창조주에게 불평하지 말고 진정으로 은밀한 죄를 고백하라고 한다. 그의 충고는 참되고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에만 근거를 두고 그 외의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경멸하는 것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의 전통에만 집착하는 신앙 형태인 것이다.

 

2. 엘리바스의 변론

 

엘리바스는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철학적 변론을 통하여 욥을 공격한다. 그렇다면 그의 변론의 내용은 무엇이며, 문제점은 없는가?

 

1) 악인멸망의 필연성 문제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욥4:8). 악인은 질풍으로 멸망당하며 하나님의 정확한 선별에 의해 가차없이 멸망당한다고 엘리바스는 확언한다. 그는 욥의 자녀들이 대풍에 의해 죽은 것을 은연중 암시하며, 욥도 그러한 종류의 악인임을 환기시키려 한다. 과연 악인은 그렇게 일점의 오차 없이 선별되어 망하는가? 그렇다면 욥은 어떠한 은밀한 죄가 있단 말인가?

 

2) 선인불멸의 필연성문제

"생각하여 보라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욥4:7)라고 엘리바스는 선언한다. 즉 죄 없는 선한 사람은 결코 망하거나 불행하게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엘리바스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불쌍한 욥이 처한 상황을 보면 친구로서 할 말이 아니었다. 환경과 전혀 무관하게 진리만 선포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위로자의 위치에서는 신중하게 진리를 다루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비난점을 찾는 것보다 선을 발견해 내는 것이 훨씬 큰 소득이다. 엘리바스의 주장대로라면 고난받지 않는 사람은 다 의인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3)고난의 필연성 문제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욥5:7)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삶이 복되고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엘리바스는, 마치 고난 때문에 인생이 존재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인간은 태어날 대부터 고통의 영역 가운데 보내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생이 고난받도록 주관하시는 것은 아니다.

 

3. 욥의 변증과 기도

 

이러한 엘리바스의 예리하면서 합리적인 변론에 대해 욥의 변증과 기도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1) 욥의 변증

욥은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며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시증해 보이라고 강력하면서도 간절하게 요청한다. 그것은 합리적인 요구이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의 죄를 드러내시지 않은 채 무조건 회개하라고 하시지는 않는다. 예수님도 죄를 확인시키지도 않고 책잡지 말라고 하셨다(요8:46)

 

2) 욥의 타원적 기도

욥은 진지하게 죽음을 원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끊으실지라도 자신은 오히려 위로를 받겠다고 한다. 그는 죽음 후의 미래 세계에 대한 확실한 지식은 없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한 번도 거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욥6:10). 그는 "나의 기도는 정결하며"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보인이 높은 데 계시니라"(욥16:19)고 확신다. 그는 자신이 비록 죽을지라도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을 뵈올 것을 애절하게 기원한다.

욥이 죽기를 원하는 것은 그의 고통이 그만 큼 극심하였고, 더욱이 친구의 어줍잖은 위로가 그의 고통의 무게를 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능자 앞에서 자기의 무죄가 명백해지리라는 부활과 심판의 소망을 잉태하고 있다. 엘리바스와 욥의 논쟁에 나타난 위대한 진리와 장엄성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인간의 무지와 죄성에 이을진대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잠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불평과 비난을 할 특권은 없는 것이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오직 복종과 이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