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 함축된 성령이해3
-사도행전 2:1-4 주석-
조 동 천
B. 성령 강림의 청각적 현상
2:2 kai. evge,neto a;fnw evk tou/ ouvranou/ h=coj w[sper ferome,nhj pnoh/j biai,aj
kai. evplh,rwsen o[lon to.n oi=kon ou- h=san kaqh,menoi\
사역 : 그리고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것 처럼 갑자기 하늘로부터 소리가 생겨났었고
그리고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에 가득하였다.
1. 성령의 기원 : 하늘로부터 생겨난 소리
(evge,neto a;fnw evk tou/ ouvranou/ h=coj)
성령 강림의 첫 번째 현상은 갑자기 하늘로부터 소리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성령의 임재를 표현함에 있어서 소리(h=coj)를 사용하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소리가 생겨난 것이 성령의 강림이라면 소리는 성령의 특성을 말하는 단적인 것이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성령이 소리로 현현 했다는 것이다. 소리는 3절에 나오는 혀와 잘 어울리는 것으로서 언어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누가가 증인 즉 전도라는 관점에서 성령의 임재를 이해한 것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이것은 누가가 성령을 증인됨의 관계에서 인간에게 특별히 역사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리가 바로 성령을 지시한다는 것을 독자들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누가는 그 소리의 출처를 하늘로부터(evk tou/ ouvranou/)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I. H. Marshall은 ꡐ하늘로부터ꡑ라는 말이 땅의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누가는 1:11에서 예수가 하늘로 올리워 갔다고 말하고 있으며, 2:33에서는 높여진 예수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이것을 부어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즉 하늘에서 성령이 왔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소리가 생겨난 현상을 ꡐ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것처럼ꡑ이라고 설명을 덧붙임으로 그 소리가 성령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임을 강하게 암시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바람(pnoh/j)은 구약성서에서나 신약성서에서 성령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성령이라는 단어 자체가 '바람(루아흐)ꡑ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2. 공동체에 임한 성령 : 온 집에 가득하였다
(evplh,rwsen o[lon to.n oi=kon)
ꡐ온 집에 가득하였다ꡑ는 말은 3절에서 ꡐ각 개인 위에 임재 하였다ꡑ는 말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즉 2절에서의 청각적인 성령 임재 현상에 대한 묘사는 동시에 공동체 전체에 임한 성령의 임재를 묘사하고 있으며, 3절의 시각적인 표현은 각 개인에게 성령이 임한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누가는 공동체와 개인의 체험을 동시에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집(to.n oi=kon)이라는 말은 성전으로도(7:47, 사 6:4 LXX) 개인의 집으로도 사용되어 질 수 있다. 성전으로 주장하는 근거는 to.n oi=kon이 성전이라는 말로 때때로 사용되었다는 것과, 눅 24:53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들이 ꡒ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ꡓ한다고 나와 있으며, 성전에서 무리를 향해 설교하기가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Neil은 6절에서 큰 무리가 모여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했다고 나오는 것을 증거로 to.n oi=kon이 성전의 솔로몬 행각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G. Ludemann은 1-4절은 집 안에서 5-13은 밖에서 이루어진 일로 여긴다. F. F. Bruce는 그들이 ꡐ앉아 있는 곳ꡑ이라는 말이 성전일 가능성을 배제한다고 주장한다. R. P. Menzies는 그 당시에 성인 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를 가진 집들이 있었다는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다. 누가가 oi=koj를 성전으로 사용할 때는 그 문맥에서 명백할 때이다(7:47). 그리고 무엇보다 2:46에 성전(tw/| i`erw/)에 모이기를 힘쓰고와 집(oi=kon )에서 떡을 떼 먹으며라고 동시에 기록하여 성전(i`ero,j)과 집(oi=koj)을 2장 안에서 구별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1:13의 다락방을 상기하면서 그들이 전혀 기도에 힘썼던(1:14) 그집에서 성령 강림이 일어났다는 것으로 누가는 강조하고 있다고 보아야 적당하다.
누가가 성령 강림의 장소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명시하지 않고 이렇게 애매하게, 그러나 독자들의 상상에 기도하러 모인 다락방인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성령 강림이라는 중요한 사건을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발생한 것으로 다루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누가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스데반의 설교에서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다고 강경하게 이야기하고 있다(7:48). 이것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누가는 구약성경까지(사 66:1-2) 인용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 공동체 당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에 대한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했을 것이다. 또한 유대인들과 다른 그들만의 예배 처소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 장소가 하나님의 전이 될 수 있느냐는 예배 처소의 합당성에 대한 의문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강림을 성도들이 기도하러 모인 장소로 설정함으로서 기독 공동체의 공간을 초월한 예배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장이라도 하듯 사마리아에서의 성령 강림(8:17), 고넬료 집에서의 성령 강림(10:44)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들이 모인 곳에서(4:23) 기도하면 성령의 충만을 받는(4:31)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유상현 교수는 이런 현상을 ꡒ그리하여 ꡐ지리적 공간ꡑ은 ꡐ시간 속 예배의 공간ꡑ으로 대체되고, ꡐ한 장소ꡑ로의 ꡐ구심적 집중ꡑ은 ꡐ땅 끝ꡑ으로의 ꡐ원심적 확산ꡑ으로 대체ꡓ된다고 의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다시말해 누가는 예배의 공간적 특수성과 집중성을 보편성과 다양성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순절에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모여들었을 텐데, 그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성도들이 모인 다락방에 임한 것으로 묘사하여 교육적인 대조를 강화시키고 있다. 누가는 성령 강림을 청각적인 현상으로 표현하는 2절에서 공동체의 내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그들만의 모임을 정당화 시키고 강조하여 그들의 결속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C. 성령 강림의 시각적 현상
2:3 kai. w;fqhsan auvtoi/j diamerizo,menai glw/ssai w`sei. puro,j
kai. evka,qisen evfV e[na e[kaston auvtw/n(
사역 : 그리고 그들에게 불이 갈라지는 것 같은 갈라진 혀들이 보여졌고
그리고 그들의 각 개인 위에 임재하였다.
1. 성령의 현현 : 갈라진 혀들이 보여졌다
(w;fqhsan auvtoi/j diamerizo,menai glw/ssai)
성령의 강림은 그들에게 보여졌다(w;fqhsan). 그 보여진 모습이 불이 갈라진 것 같은 갈라진 혀들이었다. 역시 누가는 성령을 소리와 연관된 것으로 표현 하고 있다. 그것은 혀인데 이것이 성령임을 나타내기 위해 불의 이미지를 추가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누가는 전승에서 명백한 것들을 자기의 신학적 표상을 위해 인용하고 채색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D. J. Williams는 구약의 전승에서 불은 출 19:18에서와 하나님의 영의 현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밝히고 있다. 누가복음 3:16에서도 성령의 강림을 불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갈라진 (뜨거운) 불들이 임했다고 표현해도 성령의 임재는 명확해지는데, 누가는 그렇게 묘사하지 않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누가는 혀가 성령을 상징하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불이라는 명확한 이미지를 동원해 꾸며주고 있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강조점은 불이 아니고 혀인 것이다. 2절에서 성령의 존재 양식을 소리에 비유하기 위해 바람이라는 이미지를 엑스트라로 동원했듯이 여기서는 성령이 혀로 존재양식을 취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불이라는 신의 현현을 추가 배치한 것이다. 이것의 이유는 앞에서 이미 밝혔듯이 소리 즉 증인됨과(1:8) 성령을 연관시키기 위한 배려이다. 지금 누가는 소리에서 혀로 점점 인간 언어에 접근해 가고 있는 성령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누가가 2절과 3절에서 소리와 혀라는 청각과 시각을 표현하면서 바람이라는 피부 촉각과 불이라는 뜨거운 온도 감각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는 것은 대단한 그의 문학적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체험한 그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감각을 통해 의심의 여지없이 느껴졌으며, 그것은 오순절에 온 수 많은 사람들도 보고 들어서(2:33) 긍정적이든(2:11) 부정적이든(2:13)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던(2:12) 명확한 사건이라는 것을 누가는 상징적으로 짧은 글에서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2. 개인에게 임한 성령 : 각 개인 위에 임재하였다
(evka,qisen evfV e[na e[kaston auvtw/n)
ꡐ임재 하였다(evka,qisen)ꡑ는 말은 능력과 권위가 있게 좌정함을 묘사하는 말이다. 이것은 마치 왕위에 등극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와 똑같은 단어가 2:30에 ꡐ그(다윗)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ꡑ에 나오고 있다. 성령 임재의 특성과 그 권위를 강조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사도행전은 철저하게 성령에 의해 명령받고 인도되어지는 공동체와 개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누가는 그것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로 evka,qise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성령 강림의 현상은 공동체의 체험일 뿐 아니라 개인의 체험임을 누가는 밝히고 있다. 누가가 사용한 ꡐ각각 개인 위에(evfV e[na e[kaston auvtw/n)ꡑ라는 말은 대단히 강조된 표현이다. 사실 e[kaston이라는 말 자체가 ꡐ각 개인(each one, every one)ꡑ이라는 의미가 있다. 누가는 이것의 강조형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ꡐ갈라진 혀(diamerizo,menai glw/ssai)ꡑ라는 표현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서 공동체(온 집)에 임한 성령이(2절) 각 개인에게 분배되는 느낌을 읽은 독자로 하여금 갖게 만든다. 이런 표현은 공동체와의 연관 속에서 개인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초석으로 보인다.
사도행전에서는 공동체성의 강화를 위해 이런 묘사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사마리아에서 이미 그들이 예수를 믿었지만 성령의 임재가 그들 자체에서 발생한 것으로 기록하지 않고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대표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어서 그들을 통해서 안수함으로 성령을 받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8:14-17). 공동체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성령과 관계하려고 성령을 돈 주고 사려는 마술사 시몬은 저주를 받는다(8:18-24). 바울도 다메섹에서 이미 예수를 만난 이후인데도 아나니아라는 하는 제자를 통해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한다(9:10-18). 이방인에게 부어진 성령의 사건인 고넬료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경건하고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지만 성령을 받기위해 먼 거리의 베드로를 초청하여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10장). 에베소의 믿는 제자들에게도 성령은 듣지도 못한 것이었고 바울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19:1-7). 이것은 누가 당시의 성령운동의 조절과 통제를 통해 공동체의 하나됨을 유지해 나가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그 원리를 오순절 성령의 강림 사건 속에 심어 놓은 것이 누가의 신학적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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