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5) 롯과 헤어지다 | ||||
뒤늦은 순종도 기뻐하시고 격려하시는 하나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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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을 쌓는 아브람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13:1-5) 되찾은 아내와 함께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아브람은 이전에 처음 단을 쌓은 곳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장막을 치고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갔었는데 가나안으로 돌아온 지금 기근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애굽에서 지낸 기간이 짧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비록 애굽에서 수모를 겪긴 했지만, 아내를 되찾았고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여 돌아온 아브람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기에 깊은 감사와 정성으로 제물을 드렸을 것입니다. 아브람이 처음 단을 쌓은 그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만,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른 하나님께 다른 제물을 드렸다고 하겠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그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았으니 이전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아브람의 믿음을 논할 단계는 아직 아닙니다. 우상은 두려움 때문에 섬기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제물을 바치는데, 우상을 섬기던 아브람은 아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고 섬김의 대상으로 여겨 단을 쌓고 제물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을 받은 사람의 섬김을 원하시고 약속을 통한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시지만, 아브람은 아직 그런 하나님으로는 알지 못합니다. 나를 떠나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창13:6-13) 아브람과 롯은 애굽 왕 바로에게서 얻은 재물로 큰 부자가 되어 돌아왔지만 그 재물 때문에 문제에 봉착합니다. 그곳에는 원주민인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크게 불어난 가축들이 풀을 뜯고 마시기에는 목초지와 물이 부족하였고,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목자가 다투는 일이 생겼습니다. 아브람은 목자들이 다투는 것을 보면서, 이러다가는 조카 롯과 불편한 관계가 되겠다싶어 롯과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롯을 불러 '나를 떠나라'고 말합니다. 물론, 아브람이 롯을 떠나보내는 이유는 단순히 다툼을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고, 이 갈등의 조짐을 보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란을 떠날 때는 조카 롯이라도 힘이 될 것 같아 함께 왔지만, 애굽에서 수모를 겪으면서 조카 롯은 물론 그 누구도 도움이 되지 못함을 보았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하나님께서 바로를 꾸짖고 아내를 되찾아 주시는 경험을 하면서 계제에 조카 롯과 헤어지기로 결단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조카 롯과 헤어지도록 환경으로 도우셨음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애굽의 암담한 처지에서 구원해주셔서 하나님이 나의 힘이심을 깨닫게 하시고, 풍족한 재산을 주시면서도 그 불어난 가축 때문에 목자들이 서로 다투게 하시고 그래서 조카 롯과 헤어질 생각을 하게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말씀으로 인도하시기도 하지만, 환경을 통하여 우리를 깨우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방향을 잡아가도록 몰아가기도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좌하면 우하리라 아브람은 조카를 떠나보내면서 큰아버지로서의 애정과 배려가 묻어나는 말로 이렇게 제안합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은 롯의 큰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조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브람은 이후에도 사로잡혀간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기도 하고,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는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리는 것도 다 조카 롯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조카 롯을 떠나보내지만, 헤어진 이후에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그를 보살피며 큰아버지의 몫을 다 합니다. 그런데 조카 롯은 그런 큰아버지의 제안을 넙죽 받아들입니다. 그는 눈을 들어 요단강변의 푸르른 들판을 바라보더니, 물이 넉넉하고 기름진 땅 소돔과 고모라를 먼저 선택합니다. 아브람이 조카를 사랑하는 큰아버지의 마음으로 먼저 선택하라고 했어도, 롯은 조카로서 큰아버지에게 양보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랬더라면 두 사람의 헤어지는 모습도 참 아름다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좋은 만남도 중요하지만 헤어지는 모습 또한 아름다워야겠구나 생각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외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로 주셔서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주신 은혜는 기뻐하고 누리면서도, 그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줄 모르는 오늘의 이기적인 신앙 행태를 보면서, 롯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임을 깨닫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복음송의 가사처럼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 사랑받은 자임을 놓친다면 우리는 은혜를 잊은 자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행20:5). 성경은 롯이 선택한 땅이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이 기름진 땅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곳 사람들이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임을 지적합니다. 물리적으로 좋은 환경이 영적으로는 별로 좋은 환경이 아닌 것은 이전이나 요즘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롯은 평지 성읍에 머물더니 끝내는 그 장막을 옮겨 아예 소돔으로 들어갑니다.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의 성읍인 소돔으로 들어간 롯이 '부끄러운 조상'이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확인하면서, 우리 자신의 경계를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격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창13:14-18)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가나안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나타나 격려해주셨던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친척인 롯과 헤어지자마자 나타나셔서 말씀으로 격려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조카 롯을 떠나보내기는 했지만, 아브람의 마음은 착잡하고 허전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에 순종한 사실을 인정해주시며 그를 격려해 주십니다. 비록 뒤늦은 순종이고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하찮아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전혀 괘념치 않으시고 기뻐하시면서, 오히려 아브람의 외로움을 알아주시고 격려하시려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조카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조카 롯이 욕심의 눈으로 요단 들을 바라보았고 에덴동산 같이 보이는 곳을 선택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시면서 그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십니다. 욕심을 따라 바라본 요단들이 롯에게는 부끄러운 미래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라본 가나안 땅은 아브람과 그 후손에게 영원한 미래로 기다리고 있음을 그들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시는 말씀은 여전히 '땅과 자손'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람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도 점점 더 구체화되고 견고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땅과 후손'에 대한 반복이지만, '보이는 땅, 종과 횡으로 밟아보는 땅'으로 구체화되고, '땅의 티끌 같은 자손'이란 비유로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것으로 설명해주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람 안에 하나님 나라의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다. 여기서 '너 있는 곳'은 아브람의 신앙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고 밟는 땅'은 그가 가나안 땅에서 경험하는 신앙의 세계를 말씀하신 것으로, 아브람은 목초지를 찾아 이곳저곳 옮겨 다니지만 그러면서 경험하는 모든 삶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자료가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자산(資産)이 된다는 것을 우리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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