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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2) 하나님의 부르심

은바리라이프 2008. 4. 23. 19:39
성경인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2) 하나님의 부르심
믿음의 길을 가는 길목에서, 부르심을 세밀하게 귀기울일 때
입력 : 2005년 04월 23일 (토) 16:08:08 / 최종편집 : 2005년 04월 27일 (수) 18:26:49 [조회수 : 1194] 이용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1~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떠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가라'이고 또 하나는 '그 이유' 즉 부르신 목적에 대한 설명이십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은 물론, 그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매우 중요한 명령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떠나야 하는 세계가 있고, 가야하고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복을 주시기 위함이지만, 그 복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고 동의 받고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1. 떠나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시는데, 왜 이 세 가지를 떠나야 하는지 하나님의 의도를 살펴보면서, 오늘 믿음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본토(本土)

아브라함이 태어나 성장하고 결혼하여 살던 고향 갈대아 우르가 곧 본토입니다. 본토는 삶의 본거지로서 안전이 보장된 곳이며 아버지가 우상을 섬기던 곳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본토를 떠나야 하는 이유는 그곳이 멸망의 자리 곧 세상이기 때문이며, 새롭게 정착하여야 하는 땅 가나안이 상징하는 천국을 향해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잃었던 본향을 되찾기 위해서 이 땅의 본향을 떠나는 것이지요. 하란을 본토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하란은 본토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목적지인 가나안으로 가던 중간 기착지이기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데라의 죽음 참조)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3~16).

친척(親戚)

친척은 힘 즉 도움을 상징합니다. 경조사(慶弔事)는 물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친척입니다. 왜냐하면 친척이 가장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輯姓村)이 많이 있었고, 그곳의 성씨가 다른 사람은 늘 소외당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 친척을 떠나라고 하신 까닭은 이제는 하나님이 나의 힘 되심을 알고 믿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셨습니다(창 15:1).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욥 19:14).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가치가 어디 있느뇨(사 2:22).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시 63:7).

아비 집

아비 집은 혈연관계 즉 가족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까지 아버지 데라를 따라온 것도 가족이기 때문이며, 가족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중요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이제 아브라함은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과 하나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데라는 가나안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출발했지만 하란에 정착하였고, 아브람에게 가나안으로 가라고 명하신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아버지 데라와 형제들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주님과 복음을 위해 가족과 재산을 버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십계명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고, 신약에서도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책망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의 일이지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버리는 것이 선행될 수밖에 없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야 함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버리면, 내세뿐 아니라 금세에서도 여러 배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 18:29~30).

2. 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떠나야 할 세 가지를 말씀하시고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떠나는 이유는 당연히 가야할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목표를 상실하거나, 중도에 멈춘다면 데라처럼 죽은 자이며 버린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창 12:5).

아브람에게 가라고 하신 곳은 가나안이 분명합니다. 그는 가나안으로 가려고 떠났고, 마침내 도착한 곳도 가나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이라고 하지 않고 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이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야 할 장소는 가나안이 분명하지만, 그 땅에 도착하였다고 도착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비록 몸은 가나안에 도착하였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것이 가나안이라는 장소만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아브라함이 '지시할 땅'에 이른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마침내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동의하고그 자리에 이르게 되는데, 그 때가 '지시할 땅'에 이른 것이란 말씀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네가 밟는 땅을 네게 준다'고도 하셨는데, 이 역시 그 땅을 주는 것은 물론 그 땅이 의미하는 천국을 소유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면서도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만 1백세에 이삭을 낳고, 청소년이 된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시험을 통하여 부활의 신앙을 갖게 하신 것이 바로 지시할 땅이라고 하신 이유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3. 복을 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를 '복을 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이 복에 대한 약속이 아브라함의 생애를 평가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에 그 복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과연 이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가를 살펴보고, 아브라함은 과연 이 약속을 믿고 있는가를 함께 주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아브라함은 지금 75세인데 자식이 없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식은 주지 않으면서 반복해서 이 약속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믿어야 하는 하나님의 약속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후손과 땅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구체화되어 가고, 아브라함의 믿음도 함께 자라가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이름을 크게 한다는 것은 큰 인물, 유명한 인물이 되리라는 뜻이고, 권세를 가진 자가 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블레셋 땅의 나그네지만,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그 이름을 크게 해주셨기 때문에 그 땅의 왕 아비멜렉이 찾아와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합니다. 또 아브라함이란 이름대로 '많은 무리의 아비'가 되어 유대민족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조상이 된 것처럼, '믿음의 조상'으로 많은 사람들의 흠모와 존경의 대상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복의 근원

'복의 근원'이란 복의 중심이며 발생지라고 할 수 있는데, 아브라함이 그 복의 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온 세상에 복을 주시기 위해 그를 부르셨다는 말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을 택하셔서복을 주셨고, 그의 믿음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그를 통한 복을 주십니다.

'너를 축복하면 복을 내리고, 저주하면 저주하겠다.' 여기가 참 어려운 대목입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복을 받고, 저주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는데, 물론 아브라함이 잘 하는데도 저주를 하면 저주받아 마땅하지만, 아브라함이 잘못하여서 저주하였는데도 저주한다는 것은 공의의 하나님답지가 않습니다. 더구나 아브라함도 우리처럼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런 전제 없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복 받고, 저주하면 저주받는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에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잘못하여 빚어진 일인데도 상대는 두들겨 패고 아브라함은 높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나는 네 편'이라는 것을 깨우쳐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잘잘못에 의해 상벌을 받고, 택함과 버림을 받는 '조건적인 거래 관계'가 아닌, 절대적 관계, 즉 '인격적 신뢰의 관계'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말씀입니다(이 부분은 창세기 20장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시 118:6).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복 주시는 이유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복 주시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에게 복을 주는 것은 물론 그들을 통하여 온 세상이 복을 받게 하려 하심이었지만, 그들의 잘못된 선민의식에 빠져 사명을 잊고 끝내는 버림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복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도 복을 받게 하려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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