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모세오경

창세기 6장 사랑의 하나님이 왜 홍수로 심판하셔야 했을까?

은바리라이프 2008. 4. 22. 20:21
창세기 6장 사랑의 하나님이 왜 홍수로 심판하셔야 했을까?
  글쓴이 : 배목사     날짜 : 07-07-28 22:26     조회 :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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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7,8,9장은 노아홍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 6장은 ‘노아홍수의 준비장’ 으로 하나님이 왜 당시의 세상을 심판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노아라는 한 의인에게 구원의 방주를 어떻게 지어야하는지에 대하여 명령하시고 있다. 6장을 전체적으로 보면 죄로 오염되어 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 심판과 그 속에서도 의로운 자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본장의 주요 내용이라 하겠다.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면, 먼저 죄에 타락한 세상의 발전 과정이 설명된다(1-4절). 하나님은 특별히 구원하시기로 한 자들을 위하여 죄로 오염된 세상을 어느 정도 까지는 보호하시는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도 조금도 구별되지 않고 세상과 함께 타락해가면 거룩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께서는 그 성품상 그냥 용납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노아 홍수 직전의 모습은 노아 한 사람 외에는 모두가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죄악이 관영한 이러한 세상의 흐름에 대한 하나님의 개탄과 염려가 소개된다(5-7절).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으면 인간을 창조하신 그 자체를 ‘한탄하셨다’고 까지 기록하고 있을까? 나아가 하나님의 개탄과 염려는 무서운 심판과 새 세계를 마련하시려는 계획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여기에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작정하신 바(새 세계 건설)를 실행하시고자 의인 노아를 부르시고 그로 하여금 대형 방주를 건조하도록 명령하시는 내용들로 말미를 짓는다(8-22절).

태초의 창조 이후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동역하심'임을 알 수 있는데 세계적인 타락과 포학 가운데서, 한 사람(노아)이 하나님의 눈에 귀중한 동역자로서 눈에 띈다. 그는 사람에 대해서는 의롭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비난받을 것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행했다. 그의 귀는 하나님의 뜻을 재빠르게 청취했고, 그의 손은 하나님의 뜻을 교묘히(솜씨 있게) 성취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손색이 없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께로부터 경고를 받았을 때에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자기 가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방주를 마련하였으며 이것으로 그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으로 얻은 의를 상속받는 자가 되었다' (히11:7).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 대하여 그 자신의 의를 나타내시고, 이러한 사람과 계약관계(방주를 지어라 그러면 구원하겠다.)에 들어가시는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이렇게 산다면, 우리들도 죽음의 홍수를 넘어 부활의 생명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벧후2:5).

이제 이런 배경을 가지고 오늘의 질문에 좀 더 깊이 나아가보자. 왜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들은 물론이고 그 땅에 있는 모든 생물들 까지 심판으로 제거하셨어야만 했을까?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하자 사악한 세상의 많은 죄악도 번성하기 시작했다. 인류가 땅 위에 불어나면서 그들에게서 많은 딸들이 났다. 특히 가인의 후예 가운데 딸들이 생겼습니다(참조, 창4:19). 사람의 딸들은 아름다웠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을 부추겨 놓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 아름다움에 끌려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고 말았다. 한번 타락한 인간들은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급속도로 부패하여 갔으며 죄악이 극에 달하였던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성품상 성과 속이 함께 혼합되는 것을 용납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활 속에 흐르고 있는 심각한 죄악의 흐름을 감찰하시고 방법을 찾으셨다. 인간들의 죄악은 자꾸 영역을 넓혀서 선이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 되었고 하나님이 아름답게 만드신 세상이 무질서와 혼돈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인간을 애초에 로봇 같이 자유의지가 없는 자로 만들었더라면 이런 일도 없으려니와 한 번 뜯어 고치기만 되었을 텐데... 죄악이 관영하는 세상을 보시고 하나님은 한탄하실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가슴을 �고 ‘한탄하셨다’는 것은 인간들의 죄악이 얼마나 극에 달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당시 인간의 죄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그 결과 조만간 인류는 지상에서 일소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마치 천연두에 감염된 섬에서는, 결국 그 모든 주민이 감염되어 죽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세상을 전적으로 새롭게 하시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새 창조’를 위한 ‘파괴’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다만, 악한 일의 당연한 결과를 홍수에 의해 속결시키셨을 뿐이다.

우리는 창세기 6장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인간의 사악함과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상과는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노아의 경건한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로 하여금 타락한 현대 사회 속에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노아홍수 사건은 심판 주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이 어때야하는지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경외)으로 오늘도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상과 짝하거나 세상에 매몰되어 살지는 말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