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장 어떻게 에녹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을까? |
글쓴이 : 배목사 날짜 : 07-07-28 00:30 조회 : 59 |
트랙백 주소 : /bbs/tb.php/m6_3/18 |
(그 동안 세미나차 동부지역(아틀란타) 여행으로 중단한 묵상의 글을 계속 올립니다.) 5장은 ‘아담의 족보장’으로 아담으로 부터 노아까지의 계보가 쭉 나열 되어있다. 표면상 아담으로 부터 노아까지가 10대이지만 이 부분은 ‘원 역사시대’에 해당하는 부분이므로 이것이 그 계보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고 아마 구속사적 맥락에서 비중이 큰 인물들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많다. 전부를 기록했던 일부만을 기록했던 이 짧은 족보에서는 아담의 7대 손으로 등장하는 에녹이라는 인물이 특별히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는 인류 역사상 최장수의 삶을 산 므두셀라(969세)를 낳았고 그 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갔으므로 죽음을 맛보지 않은 인물이다. 에녹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아벨 대신 허락하신 셋의 후손인데 이 세상에서 죽음을 맛보지 아니한 사람은 성직자를 대표하는 엘리야와 아울러 평신도를 대표하는 이 에녹뿐이다. 본문에서 에녹의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 말씀은 24절 한 절 밖에 없는데 여기에서 암시하는 것은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 때문에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어졌다는 것이한다. 이렇게 하나님이 에녹을 데려가셨다는 것은 이 세상 외에 다른 좋은 세계, 곧 하나님과 함께 사는 즐거운 세계가 있다는 것, 에녹이 육체를 가지고 그 곳에 갔으니 그 곳은 관념의 나라가 아니고 구체적이고 영화롭게 된 몸이 생활하는 실제적인 나라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후대의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5-7의 기록에서 에녹은 ‘믿음의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또 유다서 14, 15절에 그는"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 구절에 대하여 칼빈은 유대인들 중에 구전적으로 전래되다가 유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썼을 것이라고 한다. 그에 대한 모든 성경을 종합해 보면 에녹은 심판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이 땅에서는 늘 하나님과 동행한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는 죽음을 보지 않고 바로 하나님의 품에 안긴 에녹을 생각하면서 나도 에녹처럼 죽음을 초월할 수는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 어느 책에서 초대교회시대에 로마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기뻐했고 맹수의 무서운 이빨 앞에서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찬양하면서 순교한 성도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에녹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정령 그 순교자들은 그 누구보다 고통스런 죽음 앞에서도 죽음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은 커녕 하나님 품에 안긴다는 믿음으로 기쁘하며 죽음 앞에 나아갔던 것이다. 그들은 그 순교의 순간에도 구원의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했고 조금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기에 당당히 순교를 맞이했을 것이다. 주님과 깊은 교제 안으로 들어가 늘 주님과 영적으로 동행하면 생리학적인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단지 삶의 변화를 위한 한 관문에 지나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순교자들이 에녹의 발자취를 따라 산 사람들이 아닐까? 이런 신앙의 경지에 이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넘쳐난다. 엊그제 아프가니스탄으로 의료봉사를 떠났던 한 젊은 목사님이 극단적인 모슬렘 폭도들에게 납치되어 있다 결국 십 여발의 총탄을 맞고 순교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간 우리는 주님 때문에 죽는 순교는 먼 과거의 전설로만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하나님을 등진 세상 사람들은 이 일로 인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더욱 조롱하고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들이 더욱 세상에서 흉악하게 날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보다도 더 일찌기 젊은 나이에 하나님 품으로 가신 그 젊은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그 무섭고도 두려운 순교의 순간에도 하나님과 믿음으로 동행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래서 그에게 죽음은 최고의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품으로 이동하는 열차를 갈아타는 한 과정에 불과했기를 바랐다. 하나님과 온전한 믿음의 동행이 불같은 사망조차도 두렵지 않게 하는 능력이 됨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적인 종말이던 개인적인 종말이던 종말은 누구에게나 하루 하루 다가오고 있다. 에녹처럼 믿음으로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자들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죽음을 초월하여 늘 주님의 품에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 죽음(멸망)을 보지 않고... |
'성경주석강해 > 모세오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8장 홍수 사건에서 나타난 숫자가 의미를 가질까? (0) | 2008.04.22 |
---|---|
창세기 6장 사랑의 하나님이 왜 홍수로 심판하셔야 했을까? (0) | 2008.04.22 |
창세기 4장(2) 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살해했나? (0) | 2008.04.22 |
창세기 4장(1) 왜 가인의 제사는 열납되지 못했는가? (0) | 2008.04.22 |
창세기 12장(1) 왜 갈대아 우르 출신 아브라함이었고 그 때였나?(1) (0) | 2008.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