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장(2) 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살해했나? |
글쓴이 : 배목사 날짜 : 07-07-20 23:21 조회 : 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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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가인의 제사가 하나님에게 열납되지 않은 것은 가인이 드린 제물보다는 그의 삶이, 그리고 인간됨됨이가 하나님에게 거부된 것임을 살펴보았다. 자신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음을 안 가인은 자신의 부족을 돌아보기 보다는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5절) 그것을 본 하나님이 “네가 선을 행했다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7절)라며 책망하신다. 이 말씀으로 비춰볼 때 가인의 삶이 평소 하나님 앞에 선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거부는 거의 삶의 거부인 것이 더더욱 분명해진다. 가인이 하나님의 이 책망에 마음을 낮추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에게 나아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가인은 한 발 더 나아가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그 동생을 들로 유인해서 쳐 죽이고 만다. 범죄는 이처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웠더라”고 한 자연의 질서를 잘 관리 하지 못하고 오히려 파괴(살인)하는 것이다. 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살인하는 크나큰 범죄를 저질렀을까? 표면적으로 죄는 인간이 범하지만 그 이면에서 역사하는 세력 즉 사단이 있다. 사단은 인간을 유혹하여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감사보다는 불평을 갖게 하고 시기심을 격동시켜 분노를 일으킨다. 이러한 내면적인 악의 요소들은 인간이 죄의 성품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원죄)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들에게는 이러한 죄를 소원하는 성향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다스려야 잘 한다. 그래서 7절 하반 절에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하나님에게 거부되자 분노가 일어났고 그는 그것을 다스렸어야했음에도 오히려 그 분노를 키웠고, 또 동생의 제사는 열납되었음에 시기가 불같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 안에 항상 이러한 죄악의 요소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부인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아가 가인은 하나님이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9절)라고 잘 못된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실 때 아버지 아담이 책임을 회피한 것처럼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함을 보인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이니까”(9절) 이것은 죄를 은폐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잠언서 기자는 우리에게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다가 용사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잠언16:32)얻는 것 보다 낫다고 했다. 우리의 마음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성품들인 분노, 시기, 책임전가 등을 잘 다스릴 때 가인의 전철을 밟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3, 4장 타락장에서 인간의 계속되는 범죄에도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시고 살인자 가인에게도 보호의 표를 주어 위험 가운데서 지켜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류구원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늘도 그 세심하신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이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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