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읽는 토라②] 한미FTA를 보는 성서의 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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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한미FTA에 적극 찬성한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미국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 한국 기업가들의 야심이다. 시장의 자유로운 흐름에 어떠한 인위적인 제동도 걸지 말아야 한다는 경제이론도 한 몫 한다. 타국에 대해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자유로운 시장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보다 보편적인 세계주의로 전환하는 일이 요청된다고 한다. 세계화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대세이기 때문에 여기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론도 있다. 세계화에 보다 적극 참여할 때 조만간 3만 불 국민소득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한다. 농민은 한미FTA 체결에 반대한다. 민족주의자와 생명운동가들도 한미FTA가 체결되면 농업이 죽고, 농업이 죽으면 이 땅의 생명이 죽는다면서 반대한다. 이제는 종교인들도 반대운동에 나선다. 종각 앞에서 한미FTA 반대를 위한 범종교인 집회가 열렸다. 목사들과 신부, 스님들이 모였다. 종교인들은, 한미FTA가 미국제국주의의 침략 음모이며 민족의 뿌리인 농촌을 말살하려는 침략술책이라고 규탄하였다. 불교 스님들은 반야심경을 외우면서 한미FTA 저지를 위한 염원을 드렸고, 개신교 목사들은 하나님께서 미국의 침략을 물리쳐주시고 한반도의 생명과 농업과 민족을 지켜주시라고 기원하였다. 민족주의 반제국주의를 천명하는 사람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과 번영을 위해서 미국제국주의와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의 자유로운 개방은 민족의 통일과 번영에 무서운 족쇄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올곧게 살기’에 집중하는 성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처럼 매우 현대적이고도 실천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성서는 무어라 말씀하고 있는가? 교회의 입장은 무엇인가? 한미FTA를 놓고 대립하는 두 진영의 주장에는 공통점이 엿보인다. 모두가 부국강병으로 잘 살아보자는 염원에는 이견이 없다. 농산물 개방으로 농민의 수입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은 농민의 경제 투쟁에 기본이 된다. 부국강병과 민족의 번영을 추구하는 방법에 있어서 양자는 대립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이 되는 ‘바르게 살기’라는 쟁점에 대해서 모두 침묵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된다. 하지만 성서는 ‘올곧게 사는 일’에 집중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가? 지금까지 고도의 경제성장 속에서 농촌의 마을공동체는 거의 다 해체되었다. 그 대가로 대도시 중심의 세계 경제권에서 한국은 아시아의 주력으로 우뚝 서 있다. 한국은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나라가 되었다. 이 풍요의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었으며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지를 성서는 알려준다. 이 문제를 인문학이나 신학의 차원에서 정부나 교회가 한 번도 심각하게 고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쟁점은 미래사회의 청사진을 그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바탕이 된다. 성서가 보여주는 하나님나라의 원형은 열두 문중들로 구성된 이스라엘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도록 부름 받은 문중들의 ‘총회’이다(출24:3~8). 이 공동체의 중심은 레위지파에 있으며 모든 지파들은 레위지파에게 십일조를 나누어주어야 한다(민 18장). 이 나눔의 공동체가 교회의 원형이다(행 2:43~47). 하나님나라의 공동체가 영위하는 경제생활은 성서에 매우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다. 토라는 두 가지 경제생활을 가르친다.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하늘에서 매일 내려오는 만나로 먹고 살 것(출 16장; 민 11장), 그리고 광야생활을 마친 후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자기를 낮출 것, 이 두 가지이다(신 8~11장). ‘만나’는 욕심과 염려를 버릴 때 먹을 수 있다. 이것이 광야의 경제생활이다. 내일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고 사는 것이 바로 광야의 경제생활이다(신 8:3). 하나님께서는 ‘온 땅이 다 내 것이라’고 선언하시며(출 19:3), 땅에서 난 소출의 십일조와 각종 예물들을 레위인에게 주어서(민 18장), 가난한 자들과 과부들과 고아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을 보살피라(신 26:12)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해야 한다(레 19:18). 만나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이 소유하려는 치열한 경쟁대열에서 그만 빠져나오도록 권유한다. 더 부유해지려고 하기보다는 지금 있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도록 가르친다. 말씀을 묵상하며 사는 것이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 더 낫다. 하루의 반은 일하고, 반은 기도와 성경읽기로 보낸다. 이런 생활 속에서 온몸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굶주리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저절로 연대하게 되는 전혀 다른 삶으로 나아간다(고후 8:2). 이런 삶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사는 삶이 아니다. 자기 비움의 길을 추구하고 있는가?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역사 속에서 빈곤 퇴치에 헌신하는 나라를 세우는 일이 가능한가? 이것을 대한민국의 미래상으로 제시할 때 국민적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까? 인류가 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백 위에서 모든 나라들이 화해와 상생의 길을 열고 힘차게 나아가도록 추동하는 나라로 대한민국을 성장시켜나갈 수 있을까? 이런 국가가 역사 속에서 가능할까? 더 나아가 성서는 자기 비움의 길을 경제생활의 원리로 가르친다.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면 반드시 주의할 일이 있다. 복을 받아 배부르게 먹고 좋은 집을 짓고 살게 되었을 때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신 8:12~17). ‘교만’이란 히브리어 단어는 높은 성벽을 쌓고 남보다 자기를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 반대말은 ‘겸손’인데 자기를 남보다 낮추고 남을 섬기며 자기를 비우는 삶을 가리킨다(빌 2:6~11). 성서는 교만을 버리고 낮아지라고 가르친다. 낮아지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민 12:3).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셨다. 제자들은 무소유의 원리 위에서 활동해야 한다(마 10:9~10).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도리어 얻게 된다(마 10:39).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배고픈 사람이 복이 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복이 있다’, ‘평화로운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비밀이다(마 5장). 지금도 영원토록 이 말씀은 유효하다. 모든 성현들이 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한미FTA를 놓고 한 판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 한 가운데서 성서를 읽고 있는 우리는 우선 우리가 진정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자문하는 가운데 우리 국가의 장래 모습을 그려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사회체제를 만들어야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자기의 욕망을 국가에 투영하여 국가를 욕망실현을 위한 도구로 삼지 말고, 오히려 우리 각자가 자기 비움의 길을 통해 대한민국을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어나갈 길이 있는가? 그런 나라를 교회는 꿈꾸고 있는가?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런 문제를 놓고 얼마나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가? 지금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따라 살고 있는가? 한미FTA 반대 행렬에서 걸어 나오면서 나는 이렇게 자문했다. ‘나는 가난한가? 나는 배가 고픈가? 내 마음은 깨끗한가? 나는 지금 평화를 누리는가? 나는 평화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가?’ 이영재 / 구약학 박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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