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모세오경

[새롭게 읽는 토라④]도올 구약성서폐기론 오류 있다

은바리라이프 2008. 2. 19. 13:25
[새롭게 읽는 토라④]도올 구약성서폐기론 오류 있다
구약 모르면 신약 이해할 수 없어…하나님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제안
입력 : 2007년 03월 05일 (월) 11:38:22 [조회수 : 2652] 이영재

   
 
  ▲ 요한복음 강해를 앞두고 1월 31일 기자들과 만난 김용옥 교수는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쉽게 풀어주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도올 선생이 구약성서를 폐기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성서 공부와 그 실천에 미진하다고 보고 기성 교회를 질타했다. 그의 교회 비판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그에게 내가 공부한 구약성서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구약성서는 신약성서와 더불어 한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약성서는 구약성서를 올바르게 해석한 해설서(미드라쉬)다. 서양의 성서학자들은 ‘신약성서에 무슨 새로운 점이 있는가?’(What is new in the New Testament?)라는 질문을 자주한다. 신약성서에 구약성서와 다른 점이 없다는 뜻이다. 교권을 잡고 있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토라’(오경·율법)를 유대민족주의와 다윗 국가 재건을 위한 도구로 잘못 가르치고 해석하였기에, 이에 대항해서 예수님은 구약성서(토라와 느비임)를 완전하게 가르치고 실천하심으로써 구약성서를 완성하셨다(마 5장).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알려면 반드시 구약성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약성서, 특히 토라를 모르고서는 예수를 알 길이 없다. 신약성서는 구약성서를 구석구석에서 따와서 인용하고 있다. 좋은 예로, 도올이 강의한 요한복음서 서두에 나오는 ‘로고스’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한다. 바울은 구약이 신약을 준비하는 말씀이었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구약을 폐기하게 되면 바울 서신마저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도올을 마르시온(144년 이단으로 정죄, 160년 사망)과 동일시하는 비판은 잘못이다. 도올과 마르시온 사이에 공통점이 있지만 매우 다르다. 둘 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사랑한다는 점과 구약성서를 배척한다는 점은 같다. 마르시온은 평화를 갈망한 나머지 야훼 하나님을 폭력의 하나님으로 보고 구약성서를 배척하였다. 마찬가지로 도올도 구약성서의 하나님을 유대인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한 민족만 보호하는 매우 폭력적이고 호전적인 신이라고 본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마르시온이 요한복음서를 폐기한 것과는 달리 도올은 요한복음서를 중심에 둔다. 도올은 동서양의 사상을 섭렵한 가운데 성서를 읽는다는 점에서 마르시온과 다르다. 마르시온은 이단으로 정죄 받아 다른 교회를 세웠지만, 도올은 교회에 속하여 있다. 현대는 오직 열린 마음으로 서로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화하는 시대, 대중이 토론의 결과를 판단하는 개방의 시대다. 마르시온의 시대는 그렇지 못했다.

구약의 하나님도 오래 참으신 분

이제부터 구약성서의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보자. 토라(오경)는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동시에 사랑이 많으신 분임을 가르친다(출 34:6). 야훼께서는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가나안을 지배하던 왕들이 부패하고 가나안의 주민들이 타락하여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보시면서도 야훼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신다(신 9:1~6).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로 고통당하는 히브리인을 보시면서도 모세가 장성하여 미디안에서 성숙할 때까지 그들의 해방을 준비하시고 기다리신다(출 1~6장). 애굽의 파라오가 악행을 일삼아도 그들을 곧바로 심판하시지 않는다(창 12:10~20). 오래 참으신다. 애굽과 가나안에 대한 총체적인 심판은 이스라엘의 애굽 탈출과 가나안 진입으로 이루어진다.

야훼 하나님의 심판은 불의한 왕들과 지배자들에게 내려진다. 애굽왕 파라오와 그 신하들과 제사장들은 야훼 하나님의 손에 심판을 받아 홍해 바다에 빠져 죽는다(출 15장).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행진하는 것을 가로 막는 족속과 왕들은 모조리 하나님의 손에 죽는다. 아말렉족속(출 17장), 아랏왕, 아모리왕 시혼, 바산왕 옥(민 20장), 모압왕 발락(민 22~24장), 여리고성, 아이성(수 6~8장), 아모리 부족의 다섯 왕들(수 10장), 하솔왕 야빈(수 11장)을 모세와 여호수아가 무찔렀다.

야훼 하나님께서 벌이시는 전쟁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일련의 과정이다. 우상은 인민을 착취하고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낸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다. 야훼는 어떤 형상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야훼는 어떤 지배자의 이데올로기로도 전용될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왕은 부국강병정책을 쓰면 안 된다(신 17장). 예수께서는 이 점을 꿰뚫어 보시고 토라를 가지고 인민을 다스리려는 지배자들의 음모를 깨뜨리셨다.

야훼 하나님께서 벌이시는 전쟁을 ‘거룩한 전쟁’(聖戰)이라고 부른다. 거룩한 전쟁의 철칙은 진멸법(헤렘)이다(신 7장). 진멸법에 따르면, 쳐들어간 성에 먼저 화친을 제의하고 거부당하면 그 성을 멸망시켜야 한다(신 20장). 전쟁에서 전리품을 취해서는 안 된다. 특히 금이나 은을 사취해서는 안 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축까지도 다 죽여야 한다. 전쟁을 통해서 어떠한 개인의 이익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

이 진멸법을 따르면 왕들의 원정은 불가능해진다. 아무런 전리품도 없다면 용병들에게 봉급을 줄 수 없다. 전쟁을 통해 노예 노동력을 획득할 수 없다면 전쟁은 하나마나다. 진멸법은 세상의 왕들이 행하는 전쟁을 부정한다. 우상숭배의 이데올로기를 배격하는 전쟁이요, 진리를 수호하는 정신의 전쟁이다. 이 전쟁법을 꿰뚫어보신 예수께서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셨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라’고 하셨으며 ‘내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나라를 향한 전쟁은 기존의 세상적 가치를 철저히 거부하고 무너뜨리며 그 싹을 아예 문질러 버려서 다시는 내 마음에 더러운 생각이 돋아나지 못하게 하는 영혼의 전쟁이다.

진멸법에서 아무런 호전적인 하나님도 찾을 수 없다. 야훼 전쟁기에서는 오직 진리를 향한 용맹정진의 정신만이 돋보인다.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 병기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말씀이 들어 있는 법궤만이 능력을 발휘하였다. 거룩한 전쟁기에서는 평화를 열망하는 평화운동가들과 생명을 사랑하는 실천가들의 처절한 절규만이 들려올 뿐이다. 

마지막으로 도올에게 구약성서 연구의 최근 동향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다. 토라(오경)는 유대(민족)국가가 느부갓네살에게 멸망당하고 난 후에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 비로소 쓰이기 시작하였다는 학계의 중론에 주목하기 바란다. 야훼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은 디아스포라 현장에서 받는 고난 속에서 비로소 이루어졌다. 구약성서는 고난 받는 자와 함께 고난당하시고, 함께 고난 받는 형식으로(출 3:14) 고난당하는 자를 구출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한다. 타인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권력자들과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오래 참으시는 가운데 마침내 사정없이 진멸하시는 하나님이 야훼이심을 구약성서는 증언한다.

한국교회는 구약성서의 하나님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했다. 구약성서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내공이 부족했다. 위편삼절, 독서백편의 용맹정진이 더 요구된다. 구약성서를 폐기하자는 도올의 제안은 구약성서의 전공자에게 설득력이 없다. 하나님의 옷자락이라도 잡아보려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공부에 전념하는 정진심뿐이다. 예수께서 구약성서를 이미 통달하셨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단번에 깨달음에 도달했다. 단번에 깨닫고 난 뒤에 우리는 구약성서를 꿀 송이보다 더 달게 읽는다. 하나님을 만나고 진리의 만나를 날마다 받아먹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사는 자만이 느끼는 하나님나라의 비밀이다.

도올은 요한복음서뿐만 아니라 나머지 신약성서의 책들도 더 읽고 공부하기 바란다. 더 나아가 구약성서의 37권의 책도 더 공부하라. 구약성서를 이해하고 나면 신약성서가 더 새롭게 읽혀질 것이다. 우리의 삶에 현존하는 하나님을 만나서 그의 말씀을 살아내기까지 구약성서를 공부하는 길은 멀고도 멀다. 도올 선생도 이 길에 도반이 되시기를 간청한다.

이영재/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연구실장·구약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