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사학 특강] (4) 기독사관으로 본 한민족의 정체성 |
[2001.01.26 10:33] | ||
우리는 단일민족인가? 우리 민족이 고려시대에 137년간이나 몽골의 지배를 받고 다시 조선 말기에 한일합방으로 36년간 수모를 당하면서 민족 정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내세웠던 것은 소위 단일민족이라는 것이었다.그러나 우리의 민족성은 매우 복합적이다.어떤 때에는 셈족의 특징대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것 같은데 뜻밖에도 한국 사람들은 매우 진취적이기도 하다.실제로 강인한 여성들의 힘으로 한민족은 버티어 왔고 지금도 인터넷 인구나 휴대전화 소지율은 세계의 선두에 서 있다. 우리 민족은 정말 단일 민족일까? 물론 도중에 더러 타국에서 들어와 귀화한 인물들도 있기는 하나 우리가 대체로 단일 민족이라는 것은 맞는 말일까?그러나 우리 고대 국가의 언어를 비교 연구한 강길운 박사의 대답은 다르다.그는 우리 민족 중에 길약어와 같은 계통의 언어를 쓴 북방계 고(古)아시아족과 알타이어 계통의 언어를 썼던 고구려계의 지배층이 있었고 또 가야어에는 인도의 드라비다어가 혼재되어 있다고 했다.같은 SOV형의 교착어를 썼어도 그 계통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설화는 그 계통이 고조선에서 부여로 내려오는 재래 질서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주몽은 하백의 딸이라고 자처하는 여인 유화(柳花)가 천제의 아들이라는 해모수와 사통하여 낳은 아들로 말을 잘 다루고 활을 잘 쏘아서 부여왕 금와의 아들들이 그를 시기했다.그래서 주몽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과 함께 부여를 떠나 졸본에 이르러 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웠던 것이다.이 주몽의 설화는 말과 활에 능하고 진취적인 여성이 국면을 이끄는 고구려적 성품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그 고구려에서 백제가 나왔고 훗날 중국 대륙을 뒤흔든 선비도 같은 계통이며 발해와 몽골도 모두 고구려에서 나온 알타이계의 기마 민족이었던 것이다. 창조사학회의 학술 조사단은 알타이 지역과 몽골 지역을 모두 답사했다.거기서는 여자가 대외적으로 집안을 대표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즉 손님을 맞고 대접하는 사람은 여주인이고 남자들은 나서지를 않는다.또 그들에게는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같은 설화가 있었다.이것은 고아시아족에서 보이는 곰의 설화와 대조적이다.곰의 설화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내려오는데 알타이와 몽골의 설화에서는 하나님의 딸이 목욕하러 내려오는 것이다.언어 계통이 같은 이 두 갈래의 셈족은 약 3백년의 간격을 두고 먼저 온 자와 나중 온 자가 되어 동방에 도착한 셈이다.그렇다면 혹시 성경에도 셈의 자손들이 동방으로 갔다는 사례가 있었을까.그런데 성경에 그 두번의 사례가 있었다.그 하나는 바벨탑 공사가 중단되었던 해로 추정되는 BC 2357년이었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 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창 10:25-32) 그런데 이보다 약 3백년이 지난 후에 또 한번 동쪽으로 간 셈족의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고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처와 관계가 있다.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창 25:1-2) 아브라함은 그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이 후처의 아들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후처 그두라의 아들들을 동쪽 나라로 보냈다고 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東國)으로 가게 하였더라”(창 25:5-6) 그의 서자 즉 그두라 소생의 여섯 아들 중에서 욕산과 미디안과 수아는 그 후에도 성경에 등장하고 있다.그러나 시므란과 므단과 이스박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것이다.만일 그두라가 그 세 아들을 데리고 동방으로 옮겨갔다면 그녀는 아들들을 지휘할 정도로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한 활동적인 여성이었을 것이다.또 하백의 딸 즉 다른 신을 섬기던 지역 출신의 여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던 천손족 해모수와 사통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던 유화부인처럼 매우 진취적인 여성이었을 것이다. 그두라의 아들들이 동방으로 오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또 하나 있다.이 알타이계 숙신에 속하는 선비족이나 몽골족 등이 대륙의 중원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힘은 그들이 말과 활에 능할뿐만 아니라 그들의 특수한 군대 조직 때문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천부장, 백부장, 십부장 등의 제도였다.이 제도는 대규모의 병력을 신속하게 움직이도록 할 수 있는 강력한 전투 체제였다.그런데 성경에는 광야에서 2백만명 가까운 히브리 백성들을 지휘하느라고 애쓰는 모세에게 그의 장인 즉 미디안 족장인 이드로가 그에게 이 조직을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출 18:21-22) 이것이 과연 인본주의적 사학자들이 말하는 병행발생설적 우연일까? 우리는 이제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좁은 견해를 깨야 한다. 필자는 중국 섬서성 박물관의 입구에서 중국 동부에 동이족이 살았다고 표시된 ‘고대 중국의 인종분포도’를 보았다.동이에 속하는 소호족이 난하를 건너 대륙의 동쪽에 들어가 살았고 야벳계로 보이는 하화족은 황하의 상류 지역에 있었던 것이다.이제 우리는 동이족이 흩어져 살았던 중국 동부와 만주 지역 그리고 한반도와 일본까지를 모두 포함한 ‘동방’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강화도 마리산은 바로 그 모든 지역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김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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