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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5(공생애 초기의 예수님)

은바리라이프 2007. 12. 8. 21:30
예수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5(공생애 초기의 예수님)
2. 공생애 초기의 예수님

유대 땅에서의 세례운동
   30세쯤 되시어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땅으로 오심으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유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 마귀에게 3가지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갈릴리로 돌아가시지 않고 유대 땅에 머무신다. 세례를 베푸는 중에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본 세례 요한은 오리라 한 메시아가 곧 예수님이심을 증거 하는데 이 당시 세례 요한의 세례 운동의 근거지는 요단강 하류로 유대에 속한 지역이었다.

   예수님은 죄 사함의 세례를 베푸는 세례 요한 앞에 나타나셨고 이를 본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요1:29-30)”하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는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땅을 구원할 메시아로 오셨음을 언제 알았을까?

   사도 요한의 기록을 보면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요1:32)”고 기록하여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기 전까지는 몰랐던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을 알지 못하였다고 세례 요한이 고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마태의 기록은 보면 “세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3:14)”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려고 세례 요한에게 오셨을 때 이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았던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마태와 요한의 증거는 어느 부분에서 무엇이 차이가 있는가?
   이것을 비교해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 수 있는 방법과 깨닫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먼저 마태의 기록을 살펴보자.
   왜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려 하시는 것을 말렸을까?
   말렸다는 표현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을 알았다고 볼 수 있는가?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이름이 ‘구원자’라는 뜻이요, 요셉이나 마리아에게 계시되었던(마1:18-21, 눅1:26-31)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사실을 전해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친족지간으로서 서로 왕래가 있을 수 있었을 것이고 평범치 않았던 예수님의 삶(12살 때 성전에서 가르치시던 사건)을 전해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가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으며 그를 통해 큰일이 이루리라는 것은 짐작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세례 받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식했기에 예수님께 세례 베풀기를 꺼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태가 전하는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음을 증거 하고 있지 하나님의 아들로서 증거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계시된 것은 마리아에게 밖에 없고 당시 종교적 상황으로 볼 때 아마도 마리아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사도 요한의 증거를 살펴보자.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기 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세례 요한이 몰랐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분을 세례 요한은 어떻게 알아 볼 수 있는가.
   또한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음을 어떻게 알았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사실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시고 인정되는 방법을 세례 요한의 증거를 통해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례 요한의 고백을 살펴보면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요1:31)"고 말했으며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두 번씩이나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라고 반복하여 강조하며 성령이 내리는 것은 봄으로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주시는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유추해 보건대 아마도 세례 요한은 한사람 한사람에게 세례를 줄 때에 두려움과 설레임과 세례를 주었을 것이다. 세례를 줄 때에 성령이 내리는 것을 보게 되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룰 수 있는 시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태어나면서 세례 요한 자신에게 주어졌던 사명이었으며,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을 증거 하기 위해 기다린 30여년의 세월은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 세월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세례 요한은 예수께 세례를 줄때 성령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고 증거하고 있다. 계시된 말씀대로, 자신의 사명대로 성령이 내리는 것을 보았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했던 것이다.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요1:34)

   이처럼 당시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 성령으로 세례를 줄 자, 곧 구원자가 오셨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이며 이 계시는 세례 요한이 보게 되고 그의 증거를 통해 예수님의 사역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계시가 세례 요한에게 임했고, 계시된 말씀대로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본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의 제자들에게 증거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아마도 그 증거를 받으시기 위해서 유대에 머무셨는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 곧 그리스도(메시아)이심이 세례 요한의 두 제자(안드레와 요한)에게 전해지자 그들은 너무도 기다려 왔었기에(유대인으로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은 사람은 없다.) 즉시 예수님을 따르게 되고 예수님께서는 ‘와 보라’ 하시며 자신의 거처를 공개한 후 따르게 한다.

   그후 예수님께서는 안드레의 형제인 시몬(베드로)을 만나 메시아라는 고백을 들으시고 시몬에게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지만 시몬(베드로)는 예수님을 떠나게 된다. 그후 예수님은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하셨고 빌립의 전도를 받고 온 나다나엘에게는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을 제자를 삼아 함께 다니게 된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은 계시를 통한 증거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계시를 받은 세례 요한의 체험이었고 그 체험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증거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를 볼 때에 하나님의 아들 되심이 완전하게 고백된 것은 십자가를 지신 후 로마의 한 백부장과 예수를 지키던 자들의 고백을 통해서이다(마27:54, 막15:39).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마 27:54)

    사도 요한은 메시야를 만나 제자가 되어 따르는 여러 유형을 기록하고 있다. 다음에 살펴보겠지만 공생애 초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고백하고 제자로서의 삶은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 성도에게는 좋은 거울이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임을 고백했고 만난바 여러분들! 증거합시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노라”고....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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